그냥 발이 닿는대로 걸었다. 반항같은 건 아니었다. 그저 혼란스러웠을 뿐이다. 단순히 꿈일 수도 있는 장면에 나는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왜 이렇게 그립고 슬픈 걸까.
"대체 난 뭘 그리워 하는 거야."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 대해 그리움이 커져갈 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누구라도 날 잡아줬으면. 이 혼란스러움에서 꺼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학교를 가는 길에 있는 벚꽃나무 아래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일찌감찌 떨어지고만 벚꽃잎에 나무는 벌거벗은 모습이었다.
"그래. 다 꿈이야."
꿈일 뿐이야. 벚꽃잎을 받은 것도. 내가 이렇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도. 모두 꿈일 거야. 빨리 혼란이 가라앉기를 바라며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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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달리던 윤기는 마음을 안정시키며 눈을 감았다. 윤기는 분명 알고 있었다. 여동생은 분명 윤기가 알고 있는 곳에 있다. 윤기는 과거에 여동생이 보검과 서있던 벚꽃나무가 있는 곳을 떠올렸다. 그곳과 지형이 비슷한 곳을 지금 현재에도 본 적이있다. 눈을 뜨자마자 윤기는 학교로 향하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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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에 얼굴을 묻자 누군가의 희미한 얼굴이 떠올랐다. 누구지. 누굴까. 희미하게 뜬 얼굴의 잔상은 또렷이 보이지는 못했다. 선명하게 그 얼굴을 그려보려고 해도 그 얼굴을 계속해서 멀어졌다.
"아가."
"윤기오빠?"
눈 앞에는 윤기오빠가 서있었다. 윤기오빠는 나를 발견하자 마자 자신의 품안에 나를 감싸안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오빠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윤기오빠의 목소리는 불안함에 떨리고 있었다.
`낭자,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시오.`
`...`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보검도령은. 제가 부족함이 없이 그 자리를 채우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낭자의 마음이 닿을 때까지 끊임없이 기다릴 겁니다. 마음을 달라 재촉하지도 않겠습니다. 그저 바라만 보게 해주십시오. 그러다가 언젠가 낭자가 저를 필요로 할 때면 그때 오십시오.`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윤기오빠는 한동안 뭔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아가."
"응?"
"힘들 때는 이렇게 혼자 있지말고 오빠한테 오라고 했잖아."
"오빠. 걱정시켜서 미안해."
정말 신기하게도 혼란스럽던 마음은 윤기오빠의 품에서 한바탕 울음보를 터뜨리고 나자 눈녹듯이 사라졌다. 희미하던 그 얼굴 위에는 선명하게 윤기오빠의 얼굴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