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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06. 민 교수의 여자친구 - W.멜라
06. 민 교수의 여자친구 - W.멜라


유나예님 예쁜 표지 감사합니다♥







브금 재생해주세요

(헤이 - 쥬뗌므)





06. 민 교수의 여자친구





민윤기의 나이는 스물 일곱 살. 충분히 여자친구가 있을 법한 나이대고 학력 또한 남들과 다르게 뛰어나고 얼굴도 잘생겼기 때문에 여자들의 퍼펙트한 이상형이 아닐까 싶다. 철벽왕 민윤기도 연애를 할까. 민윤기는 여자친구에게 어떻게 대해줄까. 자기가 잘난게 많아서 여자친구를 가르치려고들게 뻔하지만 우선 민윤기 같은 철벽치는 스타일은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전혀 멀다. 최근들어, 학과내에서 러브러브한 소문들이 돌고 있다고 한다. 민윤기에게 여자가 생겼다. 저번에 교내 식당에서 어떤 여자 교수님과 점심을 같이 먹고 있는 모습도 봤다는 목격담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그 여자 교수님이 대체 누군데."





"있잖아. 그 손나은 교수님이신가. 엄청 도도한 교수님 한명 계시잖아."





손나은 교수님이라면 제 2의 민윤기라고 불리는 C폭격기 손 교수님이시다. 민윤기처럼 F학점을 주기 보다는 학생들에게 C학점을 많이 주시는 말 그래도 씨밭 생성을 좋아하신다. 손나은 교수님과 민윤기 교수님 이 둘의 조합은 어울리면서도 묘하게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철벽과 철벽끼리 만나면 모 아니면 도다. N극과 N극이 만나면 서로를 밀어내지 않나. 그럼 나와 민윤기는 너무나도 다른 N극과 S극인데 그렇다고 우리 둘이 잘 맞는 성격도 아니다. 아 머리만 복잡해지네. 결론은 손나은 교수님과 민윤기 교수님이 연애를 한다는게 내 입장에서는 별로 내키지 않는 부분이다.





"곧 중간고사가 다가오니까 졸지 마시고 모두들 수업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민윤기의 강의를 듣게 된지 정확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강의 안 듣겠다고 난리 피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나고 곧 있으면 중간고사가 온다는게 믿겨지지 않았다. 시간 참 빠르기도 하지. 오늘도 어느때와 다름없이 지겨운 민윤기의 강의를 반수면 상태로 들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책상과 입맞춤을 도대체 몇번이나 하는걸까. 졸고 있는 학생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반 이상은 책상과 입맞춤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대놓고 책상과 딥키스를 하고 있었다. 강의 끝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민윤기는 할 말이라도 있는 듯 졸고 있는 학생들의 주위를 집중시켰다.





"잠은 늙어서 주무시라고 분명 말했을텐데요."





"......"







"다들 밤 늦게까지 안자고 뭐 한겁니까."





"......."





"단체로 F학점 받으려고 작정한건가요. 학사경고 받아야 정신을 차리나요. 1학년 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걸 누구보다 잘 알텐데 말이죠."





"........"





"다음에도 오늘 같이 개판으로 강의 들으면 F학점을 받고 싶다는 뜻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이의 있나요."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는 F학점으로 학생들에게 위협을 가하자 모든 학생들의 동작이 단체로 일시 정지 되었다. 그렇다. 민윤기의 F학점은 피해야만 한다. F학점이라는 말에 모두가 당황해하며 어쩔줄을 몰라하자 마지못해 가장 뒷줄에서 심하게 졸고 있던 남자아이가 억울한 목소리로 소신껏 자기 주장을 펼쳤다.





"아 교수님. 너무하세요. 저희 정말 힘들고 지치다고요. 어제 다른 과목 과제 하느라 밤까지 샜어요."





"맞아요. 요즘 팀플에다 레포트 작성에다 할일이 산더미에요. 저도 어제 밤 새면서 레포트 작성했다니까요."





팀플: 조별과제

(대학교 암 유발 과제 1위)








"이러려고 대학생 되려고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우리도 졸고 싶어서 조는게 아니다. 졸고 있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다른 과목 과제 때문에 밤을 새다가 피곤해서 강의 시간에 잠이 든 것 뿐이다. 지금껏 강의 도중 민윤기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감히 그 누구 한명도 입 뻥끗 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는데 오늘도 민윤기의 잔소리가 이어지자 그 남자아이도 참지 못하고 사정을 토로하였고 주변의 몇몇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하긴.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교에 오면 힘들었던 수능의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만 알았는데 현실은 매주마다 비현실적인 양의 과제 폭탄이 투척되니 아이들의 만발에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과제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뜻입니까. 밤 늦게 연인과 카톡 주고 받으면서 날을 샌건 아니고요?"





"과제도 하면서 카톡도 주고 받았어요. 과제와 연애 두 가지 모두 충실하게 임했다구요. 교수님도 연애중이시면서 저희라고 못 할 법 있나요?"





"연애?"





"교수님, 요즘 손나은 교수님과 썸 탄다는 말이 들려오던데요."





학과의 소문은 생각보다 빨리 퍼졌다. 손나은 교수님과 민윤기 교수님이 썸을 타고 있다는 학생의 말에 처음 듣는 아이는 엄청 놀란 반응을 보였고 몇몇의 학생들이 피식피식- 웃으며 진짜냐고 재차 묻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런 반응이 나타나자 난생 처음으로 민윤기가 학생들 앞에서 진땀을 빼기 시작했다. 진짠가? 정말 썸인가? 아니면 사귀고 있는 중인가?





"수업과 관련 없는 발언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교수님~ 얘기해주세요. 정말인가요?"





"말 나온 김에 이번 학기 1차 과제 나갑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손나은 교수님과의 러브스토리를 듣고 싶었는데 난데 없이 과제라니. 환호성을 보내려던 학생들의 눈동자가 단체로 동공 지진을 하였다. 이러려고 분위기 띄어놓은거 아닌데. 어째 학생들이 생각하는 전개와 다르게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과제입니다. 다음주 금요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가장 인상깊게 본 유물 하나를 레포트로 작성하여 소개하는게 이번 과제입니다."





"......."





"박물관 앞에서 찍은 자신의 얼굴이 담긴 인증 사진 한장까지 첨부하여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





"이상. 궁금한 점?"





자기 혼자 과제 내고 자기 혼자 떠들며 다음주 금요일까지 박물관에 다녀오는게 과제라는 민윤기의 한마디에 학생들 모두 말이 없는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주말에 박물관 갈 시간이 어디있어. 아까 과제 때문에 밤 샜다고 투덜거린 사람 죽빵 한대 맞자. 모두들 한 마음으로 과제 이야기를 꺼낸 그 아이를 속으로 욕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표정이 굳어감에도 불구하고 민윤기는 아랑곳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레포트는 당연히 자필입니다. 제출 기한을 넘기면 점수는 무조건 F."





"........"





"이상. 질문 없나요? 그럼 오늘 강의는 이걸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강의가 끝남을 알리는 말과 함께 학생들은 한숨만 푹푹 내쉬며 영혼 반 정도 나간 얼굴로 가방을 쌌다. 가뜩이나 과제에 치여 사는데 민윤기 과제까지 추가 되니 참 반가운 소식아닐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박물관이 거기서 다 거기인데 왜 하필 집과 거리가 먼 국립중앙박물관이야. 아무튼 민윤기 교수는 박물관 초이스부터 스케일이 다르다. 주말에 해야할 과제가 늘었다는 생각에 속으로 민윤기를 곱씹으며 영혼이 가출한 나머지 가방문만 열었다 닫았다를 무한 반복하며 옆에 앉아서 짐을 싸는 수정이에게 말을 걸었다.





"수정아. 이번 주말에 과제하러 박물관이나 같이 갔다오자."





"야. 나 주말에 알바하는거 모름? 가더라도 평일에 가야지."





"아 존나 너무해. 너는 금요일에 학교 안 가도 되지만 나는 금요일에도 학교를 간다니까!!"





맞다. 최근에 정수정이 주말에만 영화관 알바를 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유일하게 강의가 없는 금요일 공강이 있는 정수정은 아마 그 날에 박물관을 갔다올거라고 생각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대체 누구랑 박물관에 가야한단 말인가. 혼자 가기는 민망하고 민윤기 교수님 수업 같이 듣는 친구중에서 유일하게 수정이만 친하다. 여러가지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박물관이 뭐라고 가는 요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하지 하고 고민하는 그때 잠자코 듣고만 있던 정국이는 가방을 메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자리를 지나치는 도중에 내 한쪽 팔을 툭- 하고 쳤다.







"여주야. 그럼 나랑 같이 이번주 주말에 갈래? 나도 같이 갈 친구가 마땅히 없어서."





"같이 가자고?.."







"아 그래 딱 좋네!! 잘됐다. 전정국, 너 우리 여주 좀 데려가라. 애가 친구가 없어서 같이 갈 사람이 없다고 하잖아."






옆에서 수정이가 맞장구를 치며 나 좀 데려가라고 정국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먼저 부탁을 했다. 정국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핸드폰에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직접 찍어주었다. 자기 번호 저장하고 시간 맞춰서 같이 가자는 의미로. 정국이가 내 번호를 저장하고 있다는 생각에 느낌이 뭔가 묘했다. 남자가 내 번호를 따다니. 그것도 상대는 우리 학과 인기탑 전정국이라는 사실에 느낌이 묘했다.





"그럼 주말에 나랑 같이 가기로 약속하는거다?"





"어?..그래!!!"





"그럼 좀 있다 카톡할게."





"응응!!"





정국이와의 박물관 탐방이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두둥실 들떠 있었다.











"여주야. 오늘 나 조별 모임 때문에 너랑 같이 밥 못 먹을 것 같다."





"여주야. 나 오늘 남자친구와 점심 약속 있어. 진짜 미안하다. 우리 여주 혼자 먹게 냅둬서."





혼밥이라고 아는가. 대학교에 오면 다들 한번씩 경험하고 싶지 않아도 경험하게 된다는 혼자서 외로이 밥 먹기. 그저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한 그 혼밥을 나는 지금 경험하고 있었다. 조별과제 때문에 점심을 먹지 못한다는 정수정과 남자친구와 시내에서 밥을 먹기로 약속했다는 배주현 이 두명이 나를 배신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학식당에서 외롭게 돈가스를 썰고 있었다. 아무도 없어서 외로워 죽겠는데 내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은 저 멀리서 배식을 받고 있는 민윤기의 모습이었다. 오늘은 교직원 식당에서 밥 안 먹나. 왜 여기서 먹는거지. 배식을 받은 민윤기가 몸을 틀자 마자 나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고 혼밥 하고 있다는 것을 민윤기에게 들켰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눈길을 피했다.







"김여주 학생은 과에서 왕따인가. 친구도 없어?"





"......."





"불쌍하게 왜 혼자서 밥을 먹어."





"........"





"같이 먹어주고 싶게."





아니나 다를까. 내 허락도 없이 자연스럽게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쪽으로 와 착석했다. 앉으라는 말 없었는데 멋대로 앉네. 급기야 수저를 들고 밥을 비비며 고작 하는 말이 왕따냐고 묻는 민윤기의 한마디로 인해 한순간에 나는 친구 없는 아싸가 되었다. 보다 못한 나는 같잖은 얼굴로 민윤기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물고있던 포크를 탁- 소리나게 테이블로 내리쳤다.





"저는 교수님 보고 여기 앉으라는 말 하지도 않았는데 왜 멋대로 앉으시는거에요. 밥 먹다가 체할 일이라도 있나요?"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김여주 학생 때문에 여기 앉은게 아니야."





"........"





"돈가스가 먹고 싶어서 여기 앉은거야."





뻔뻔한 표정과 뻔뻔한 말투로 썰어놓은 내 돈가스 한점을 젓가락으로 집어가는 민윤기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다. 그러니까 나 때문이 아닌 고작 이 돈가스 한점 때문에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이 말인거네. 내가 돈가스보다도 못한 천민급 사람이라는거야 뭐야. 밥맛이 확 떨어지는 바람에 먹다만 돈가스 접시를 통째로 민윤기 앞으로 스윽- 밀었다. 그래요. 그렇게 드시고 싶은 돈가스 여기 있으니까 많이 드세요. 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시고요. 친히 샐러드까지 포함하여 친절하게 돈가스를 건네자 민윤기는 밥을 먹다 말고 자신의 앞에 놓여진 돈가스를 보며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김여주, 자신의 감정에 좀 솔직해지지?"





"......."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오죽하면 오지도 않은 카톡 보면서 밥 먹는거. 그거 되게 짠해보여."





"........"





"솔직히 말해봐. 내가 이 테이블에 앉았을 때 내심 좋았지. 혼자 먹는거 안쓰러워보여서 같이 먹어주는건데 왜 그렇게 생색을 내는거야. 나한테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저는 혼자 먹는게 편해요. 그래서 혼자 먹는거에요."





"딱하네. 혼자 밥 먹을 정도로 친구가 없어? 하긴 뭐. 김여주 학생과 친구하려면 기본적으로 그 요상하고 야한 술주정은 받아줘야되니까."





"어이구야. 손나은 교수님은 고상하게 술을 드시나보네요. 미안해요. 제 술주정이 워낙 푼수 같아서."





"잘 아네. 그래서 네 주위에 친구가 없나봐."





"웃기는 소리 하지마요. 누가 누구 보고 친구가 없데. 저 친구 되게 많거든요!!"





"그래? 많이 의외네. 그럼 박물관은 누구랑 가는데."





"정국이요. 그것도 정국이가 먼저 같이 가자고 제안했어요. 교수님, 보세요. 저 학과에서 이런 대접 받는 사람이에요~훗."





우리 학과 인기 절정남 정국이와 같이 박물관에 간다는 생각에 나를 친구 없는 왕따로 함부로 얕잡아보지 말라는 경고로 정국이를 끌어들였다. 물론, 악용은 아니다. 어디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다 맞는 말인데 뭐. 괜히 우쭐해져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러나 잠자코 내 주저리를 듣고만 있던 민윤기는 정국이의 이름이 내 입에서 언급되자 순간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누구랑 간다고?"





"......."





"너가 전정국이랑 왜 가."





"아. 김여주와는 동급이 아닌 너무 뜻밖의 인물이 나와서 당황하셨구나. 그럴 수 있죠. 이해해요. 제 주제에 감히 정국이와 박물관에 갈까요."






"......."





"그런데 정국이가 먼저 같이 가자고 한거에요. 제가 먼저 가자고 한게 아니고."





"......."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이번주 토요일 오후 한시에 저는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로 인해 정국이와 즐거운 역사 탐방을 하고 돌아올 예정이라서요."





"......."





"아주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유익한 시간을 보내려고 우리를 박물관까지 갔다오게 하는건지 두고보자구요 교수님. 정국이와 함께 역사 공부를 불태우고 돌아오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엄청 빠른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돈가스 접시를 들고는 잔반 버리는 곳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테이블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점점 굳어져만 가는 민윤기의 얼굴을 전혀 보지 못한채 말이다.











이틀 후





평화로웠던 금요일이 지나고 (민윤기를 마주치지 않은 날) 드디어 토요일이 다가왔다. 박물관 정문 앞에서 팜플렛 하나를 손에 들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정국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옷차림은 평범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튀지도 않은 간만에 서울 구경이라고 생각하고 옷장 속에 두었던 치마를 꺼내입기는 했다. 옷차림은 상큼발랄한 여대생의 모습이었지만 정작 표정에서는 과제 하러 나오기 귀찮은 대학생의 귀차니즘을 폴폴 풍기고 있었다. 황금 같은 주말에는 집에서 방콕하는게 최고인데. 불만 가득한 얼굴로 넓은 광장의 정 중앙에서 뻘쭘하게 서있었다. 한강 주변에 있어서 그런지 비둘기들이 여기저기서 푸드덕 대며 날개짓을 하고 있자 나도 모르게 뒤로 한발 짝 물러났다.





"정국이가 늦게 오네."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니 시계는 벌써 1시 30분을 향해 있었고 정국이에게 수없이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음성소리만 들려왔다. 그럼 그렇지. 나 같은 부질없는 년한테 정국이와의 박물관 탐방은 무슨 얼어죽을 탐방이야. 그냥 나 년은 치마는 입지 말고 바지만 입고 다니라는 신의 계시임이 틀림 없다. 입고 온 치마를 내려다보며 꾸민 보람이 없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콘크리트 바닥만 쳐다보는 그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내 발 앞에 드리워졌다.





"이제는 하다하다 친구가 없어서 땅바닥이랑 접신중인가. 그토록 기다리던 네 친구 전정국은 어디에 있고 왜 혼자만 있어."





"헉. 누구야!!!!"





땅만 쳐다보다가 누군가의 인기척이 앞에서 느껴지자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이게 무슨 일인가. 정장만을 고집하는 평소의 그의 옷차림과는 다르게 편안하고 캐쥬얼한 모습으로 민윤기가 나타나 시큰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마터면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나자빠질 뻔한 나를 민윤기가 잽싸게 내 허리를 받쳐주어 간신히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역사 탐방하러 박물관에 왔다가 허리만 다치고 돌아갈뻔했네. 받쳐준 손을 탈탈 털며 내 허리에서 손을 슬며시 떼는 민윤기의 귀가 찬 바람 때문인지 약간 붉어져 있었다.





"아..아니!!!왜 교수님께서 여기에.."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꾸미고 왔을까. 못 보던 치마까지 다 입고."





"저 원래 이러고 다녀요."





"뻔뻔하기는. 평소 네 몰꼴과는 180도가 다른데 남자 한명 꼬시려고 작정하고 왔나. 치마는 뭐 이리 짧아. 박물관이 데이트 하는 장소인줄 아나. 경건한 자세로 와야지. 마인드부터 틀려먹었어. 넌 F야."





"아니. 남이사 무슨 참견이세요. 누가 보면 내가 댁 여자친구인지 알겠네. 관심 끄시죠. 이제 그딴 F 협박은 저한테 안 통해요!!!"





내가 치마를 입던 바지를 입던 민윤기가 참견할 일이 아닌데 괜히 오지랖이 쓸데 없이 넓다. 게다가 현재 정국이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민윤기는 나를 놀릴거리가 한가지 더 생겼다. 전정국은 어디에 있고 너만 혼자 있나. 그러므로 역시 너는 왕따. 아. 이건 정국이가 당장 필요하다. 정국아, 대체 어디에 있는거니. 빨리 와줘.





"그런데 교수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대한민국 땅 덩어리가 이렇게 좁았나. 여기서 교수님을 보게 되고 말이에요."





"여자친구와 데이트도 할 겸 학생들 감시하러 나왔어. 과제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대충 훑어보고 놀고 있는지."





"와. 손 교수님과 데이트 중이셨구나. 그런데 학생들을 감시하면서 데이트라..사랑과 직업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욕심 대단하시네요.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에요."





"........"





"역시 역사학과 교수님 아니랄까봐. 여자들은 데이트 장소로 영화관 혹은 분위기 있는 카페 이런 곳을 좋아하죠. 박물관에서 데이트라니. 너무 올드하신거 아니에요?"





"그 논리대로라면 김여주 학생은 평소에 남자친구와 영화를 본다던가 카페를 간다다던가. 그러고 다니나?"





아니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이 사람은 모태솔로한테 하는 말이 고작 이런 말 밖에 안되는 건가. 정곡을 찔러도 너무 깊게 찌른 민윤기 교수님의 의문의 팩트 폭력에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끓어오르는 화를 진정시켰다.





"정말 너무하시네요. 교수님. 저는 남자친구가 없어요."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





"뭐라고요?"





참나 내가 남자친구가 없게 생긴것도 아니고 들을수록 화가 나네. 오늘도 어김없이 교수님과의 투닥거림 때문에 뚜껑 열리기 일보직전, 핸드폰 벨소리와 함께 연락이 안 되던 정국이한테서 드디어 전화가 왔다. 액정화면에 쓰여있는 정국이라는 두 글자에 얼른 핸드폰 커버를 열고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여주야, 나 정국인데 연락 안 되서 미안해.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 지금 편의점에서 충전시키고 있어."





"무슨 일 있어?"





"엄마가 갑자기 아프시다 하셔서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야할 것 같아. 정말 미안해. 박물관 같이 가기로 약속했는데.."





불안한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정국이의 어머니가 아프신 관계로 지금 정국이는 박물관으로 오기에는 무리이고 준비된 오늘 일정들이 처참히 산산조각 났다. 정국이가 못 온다니. 울상인 얼굴로 핸드폰을 끊었다. 혼자서 박물관 탐방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매우 슬퍼서 차마 박물관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모습을 팔짱을 낀채 여유롭게 지켜만 보던 민윤기는 가소로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주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온다는 그 패기는 어디로 갔어. 전정국한테 실연이라도 당했어?"





"그런거 아니거든요!!정국이는 사정이 있어서 못 오는거에요!!아니..그럼 교수님은 여기서 왜 시간 아깝게 이러고 계세요."





"......."





"이왕 여자친구와 박물관 오신거면 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 방해 안 시킬테니까 저는 여기서 천천히 둘러보고 있을게요. 손 교수님과 데이트 잘 하시고요."





팔로 휘이휘이 저으며 내 앞에서 비키라고 손짓을 하였다. 누구 때문에 박물관에 못 들어가고 있으니까 좀 비켜달라. 여자친구가 있으면 있다고 진작에 말이라도 하든가. 왜 숨기고 있었데. 여기서 민윤기와 입씨름을 하고 있다가는 손나은 교수님에게 오해라도 삼게 될 수도 있어서 도리어 내가 이상한 여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윤기와의 상종을 피하기 위하여 그의 곁을 지나서 박물관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나 그런 나를 보며 교만하고도 아찔하게 불러오는 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김여주."





"......."





"나 지금"





"........"







"손나은이랑 하는거 아니야"





"......!!!!"





"내가 누구랑 하는지"





"......."





"잘 생각해봐."






아찔하고도 매혹스러운 그의 한 마디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건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가소로운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민윤기는 한손에 바지 주머니를 꼽으며 피식-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인사 한 마디도 없이 뒤를 돌아 반대 방향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민윤기가 던진 한 마디에 이상하게 묘한 기분이 들었다.





***



오늘의 핵심 포인트: 윤기의 마지막 대사 빨간 글씨

이런 식으로 여주에게 간접 고백을..ㅎㅎ




윤기는 되게 똑똑해요. 여주와 밥 먹으면서 여주는 박물관 언제 누구랑 가는지 은근히 사람 디스하면서 캐치해내고..

괜히 교수가 아니야..




*댓글 추천 포인트*

*표지는 nohha22 naver.com*




돌려서 말하는 윤기의 화법...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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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티리미슈가  8일 전  
 윤기 너랑 데이트 하잖아....
 여자친구랑 데이트한다는 말은 곧 여주 너랑 데이트 한다는말, 그 여자친구는 여주 너 라는말

 답글 0
  태보라  12일 전  
 와우 ㅋㅋ

 답글 0
  ٩꒰。•◡•。꒱۶  15일 전  
 윤기야 너무 귀여워 ㅋㅋㅋ

 답글 0
  그럴만도해  15일 전  
 윤기 귀 빨개진게 혹시 30분동안 여주 지켜보면서 기다려서..?ㅎ

 그럴만도해님께 댓글 로또 1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내닉없어ㅠ  15일 전  
 흐흐흑 정국이는 섭남이겠죠 그러니까 정국이는 내가 데려가겠어!!!(못함)

 답글 0
  유리조개  15일 전  
 앜ㅋㅋ 그러네용
 디스하면서도 알아내는ㅋㅋㅋ
 역시 교수야ㅋㅋ

 유리조개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sugalove12  59일 전  
 질투 하시는 교수님...

 답글 0
  민빠답민빠답  60일 전  
 사...사....사진한방?

 민빠답민빠답님께 댓글 로또 1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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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린보리  85일 전  
 돌려말하기 극혐하는데 이건 좋네요..ㅎㅎ

 보린보리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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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뉴아  106일 전  
 교수님 사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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