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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푸르게 타오르던 - W.신주쿠양키
푸르게 타오르던 - W.신주쿠양키


타오른 살갗이 완연 아문 봄이 눈가에 스민다. 많이 묻어도 보고, 돌아도 보았던 겨울이 갔다. 은교의 생에 처음 내려앉은 겨울이. 그런 계절이, 이제는 영영 안녕이다. 곧게 뻗은 빛은 굴곡진 일생에는 전연 들지 않는다. 마치 흐르는 색채를 한데 뭉쳐 놓은 것처럼. 그렇게 시들어가는 황혼빛의 꽃들이 밤이면 늘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담장에 물든 푸른 그림자는 언젠가부터 키가 커졌다. 짙은 푸름을 띄는 은교의 그을음을 먹고 자란 것일까. 겨울이면 목이 마른 바다는 굳게 언 얼음 조각 아래에서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마주 앉아 서로의 꿈을 자랑하던 영원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망가진 머리칼을 숨치던 손길도, 새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던 눈길도 따가운 볕에 녹아버리고 없다. 다시 무릎을 맞댈 수 있다면 가려진 시간들을 이어 사랑할 테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 심장이 멈추어도 해수를 찾아낼 테니까.

정말 나를 사랑해? 은교가 해수에게 이따금 건넨 시답잖은 질문. 그럴 때면 해수는 대답 대신 수줍은 웃음을 흘리고는 했다. 그들의 관계를 나타낸, 참 무겁고 뻣뻣한 반응. 벚꽃비가 만들어 낸 사랑을 나란히 서 걷던 것도, 그해 그쯤 해수의 마음에도 피어가던 어두운 바다를, 은교는 전혀 알지 못했다. 너는 알까. 사모하는 기분을. 네가 만들어내던 그을음에 대한, 무수한 나의 생각들을. 눈을 감으면 재생되고, 소리를 끄면 들려오는 굉음을. 눈가가 벌겋게 짓무르도록 보았던 해수의 편지. 오래 머무르리라 선견하던 행복에 무르익은 겨울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 버린 건, 어쩌면 해수의 죽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심장 부근이 미치도록 욱신거리더니 이제는 차게 식은 바닥에 나뒹군다.

이 밤의 새하얀 눈보라를 뚫고도 꿈에 찾아와 주신다니요. 유난히 붉게 물든 벚꽃이 만개합니다. 봄의 눈은 그만큼 따뜻하다지요?

해수야.
응, 은교야.
올해 겨울도 네 목소리에 따뜻해. 나는 이제 겨울로 가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데······ 네가 나를 불러준다면 아마 조금은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 약속할게.
뭐를?
더는 사라지지 않기로.

은교가 짧게 앓는 소리를 낸다. 목놓아 부르짖은 적이 없었다. 한시도 잠들 수 없어 내내 괴로워했다. 다만 소리 냈던 것은 늠렬하게 치고 올라오던 파도. 해수가 없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겨울과 봄의 간극이다. 무지개를 하나하나 펼쳐 놓는다면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까.

봄은 겨울을 밟고 비상한다. 높이 날며 푸른 하늘에 흐드러진다. 평생 나의 곁에 살던 연인도, 푸르게 타오르던 굳세고, 짙은 열정도, 다시 돌아오기로 약속했던 시절도, 그 사람의 마음이 버거워 바래고 만다. 죽음을 애도하던 눈물도, 그리고는 어떠한 사람도 사람에게 잊혀지며 찢기고, 다시 굳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굳어 자리 잡은 흉터는 타올라 재가 된다. 우리는 그것을 삶의 중앙에 심는데, 마침내 사랑이라고 발음한다. 오롯이 홀로 버텨내는 나날들을 버릴 수 없기에. 온기가 없는 하루도, 한 달도, 일 년도 버텨낸다. 내다 버린 수십 개의 노래 중 하나가 불쑥 어디에선가 튀어나온다면 일순 무너지겠지만. 늦저녁 걷던 길 위에 핀 노을이 진다면 다시금 나는 울겠지만. 푸르게 타오르는 계절을 빌려 묻고 싶다. 네가 꾸는 꿈에도 네가 사랑하던 내가 나오고는 하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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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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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화가  51일 전  
 ❤️

 답글 0
  민섀도  135일 전  
 잘 읽구가녀

 답글 0
  달푸º  138일 전  
 글좋아요ㅠㅠㅠㅠㅠ

 달푸º님께 댓글 로또 2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violet3  164일 전  
 조아요..

 violet3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궐끼  164일 전  
 ㅜㅜ글 너무 좋아요ㅠㅠ

 궐끼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강하루  168일 전  
 글 잘쓰시네요

 강하루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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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latjdus3  168일 전  
 너무 좋아요

 rlatjdus3님께 댓글 로또 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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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끼  169일 전  
 순끼님께서 작가님에게 104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