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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민윤기] 별을 따다 줄게 - W.깔깔마녀
[민윤기] 별을 따다 줄게 - W.깔깔마녀
00

기어코 원하는 자리를 찾았구나.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자리를.​












별을 따다 줄게












01

소녀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였던가.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탓에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장소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긴 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는 아마 폐건물 옥상이었던가.

우리의 첫 만남은 남들에 비해 조금은 색달랐다. 여느 때와 같이 갑갑한 마음을 뚫기 위해서 사람이 없는 폐건물 옥상의 한 가운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와중에 문이 열렸다. 처음엔 폐건물이니만큼 마지막으로 검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경비원일 줄 알고 자리를 옮기기 위해 한 번 깊게 들이키고서 불을 끄려고 했건만. 나의 예상과 달리 턱까지 오는 키를 가진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저런 여자애가 왜 이 옥상에 홀로 올라왔을까,보다도. 아, 아직 집에 돌아가기 싫었는데 경비는 아니라서 다행이다,였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어린 소녀가 안 좋은 생각을 하고서 이 옥상에 올라온 것일 수도 있는데. 말릴 생각보다도 경비가 아니라는 것에 안심을 하다니. 나는 생각보다 더 이기적인 놈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소녀를 눈에 들였다. 여전히 담배는 타들어갔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발밑으로 횟빛의 담뱃재가 투둑 떨어진다. 아까운 담배가 타들어간다는 것보다 소녀의 몸상태가 더욱 눈에 들어왔다. 몸엔 누군가에게 맞기라도 한 듯 푸른 멍과 새빨간 잔상처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상처들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려는 듯한 소녀의 모습에 나는 생각보다 담담히 그녀에게 물었다.



"너 맞고 다니냐."



소녀는 처음부터 나의 손가락 사이에 꽂혀 있는 담배에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냄새나."



그것이 우리의 첫 대화였다.












02

나는 그날 이후로 폐건물 옥상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가끔 가다가 속이 갑갑할 때만 그 옥상을 찾아가곤 했는데. 소녀는 매일 이곳에 찾아오는 듯했다. 소녀가 하는 건 미성년자가 하면 안 될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 옥상의 가장자리를 걸어 다니면서 바닥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마치 자신이 죽을 자리를 알아보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 건물이 있는 주변엔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장소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함부로 죽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도 진심으로 죽을 생각은 없었는지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하늘이 어스름해지기 시작할 때쯤 옥상을 찾아갔다. 소녀를 만나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담배를 피우기 위함도 아니었다. 음, 왜일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소녀가 죽을까 봐?



"요즘 매일 오네."
"답답해서."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소녀가 죽을까 봐.



손끝으로 톡 건드리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난간에 소녀가 바닥을 자세히 내려다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기댈 때면 괜스레 불안해져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떨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외칠 수도 없었다. 말이 씨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별 쓸데없는 불안한 느낌이었지만.




"죽을 자리라도 찾는 거냐."
"응, 나중에 죽으려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여전히 난간에 기대어 몇몇 길고양이와 오토바이 몇 대, 그리고 담배를 피우며 가래침을 뱉어버리는 행인 한 명이 있는 좁고 어두운 탓에 께름칙한 골목을 내려다보며 소녀는 말했다. 나는 거기서 왜 죽을 거냐는 물음보다 왜 나중이냐고 물었다. 소녀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나의 물음에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어둠이 자리 잡은 작은 동산이 그녀의 정면에 자리했다.



"그 인간에게 욕지거리 한 번 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 인간이라고 함은 아마 소녀의 몸에 손을 댄 사람을 칭하는 것이겠지. 여전히 상처들은 자리했고, 여전히 그 상처들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드러내고 다니는 소녀였다. 그런 몸을 만든 그 인간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그건 아마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더 깊은 상처를 만들어내는 짓이 분명할 테니.



"그리고 그 인간 곁에서 도망쳐 나올 거야."



나는 위로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위로라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다. 도망치면 도망치는 거지, 어째서 죽을 생각까지 하는 걸까. 안 봐도 그 인간이라 칭하는 놈은 소녀에게 손찌검을 하며 자신감과 자존감이라곤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갔을 텐데, 그놈에게 더욱 보란 듯이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어찌 보면 하나의 복수의 수단이 아닐까.



"해방감 때문에."
"... 어?"
"해방되고 싶어서 죽는 거라고. 내가 아무리 그 인간으로부터 도망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지옥 같은 기억에 사로잡혀 살아갈 거니까."



소녀는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달, 좋아해?"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내던지는 소녀에 나는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두운 밤하늘, 별 하나 없이 밝은 달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원래 달이 저리 뚜렷이 잘 보였던가. 달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냥 그렇다고 답했다. 동산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풀벌레의 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서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흐릿하게 들린다.



"나는 지금도 달보다 별을 더 좋아해."



솔직히 어쩌라는 건가의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옛날엔 별을 따고 싶었어."


별 하나를 가지면 어느 때보다도 행복할 것 같았어.
별을 매일 내 몸에 지고 다니면 내가 별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그러면 조금은 해방감 따위의 엇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소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꼭 나에게 구조 요청을 하는 것 같았다. 해방되도록 도와달라고.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소녀에 대해서 어느 무엇도 아는 것이 없었다. 몸에 상처가 있다는 것과 가끔씩이면 상처가 몇 개씩 더 늘어서 나타난다는 것뿐. 그밖엔 그저 상대가 하고 있는 생각을 잘 꿰뚫어 본다는 것 정도랄까.



"내가 해방되고 싶다고 해서 굳이 신고해 줄 필요는 없어. 이미 신고는 여럿 해봤거든."
"... 내가 신고할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아는데."
"그냥, 느낌이 오던데. 내가 눈치 하나는 좋아서."



괜한 오기가 생겼다.



"네가 틀렸네."



공허한 눈으로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던 소녀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별이나 따다 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3초간의 정적이 흐르다가 소녀는 어이없다는 듯 힘없이 웃었다.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다가 이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 거의 경멸하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 요즘 삼류 드라마에서도 그런 대사는 안 해."



곧이어 뒤늦게 나 또한 나에 대해 경멸감이 느껴졌다. 바보같이 그냥 인정이나 하고 말걸, 왜 굳이 오기가 생긴다고 해서 그런 오글거리는 문장이나 내뱉어버린 걸까.



"있잖아. 만약에 내가 따다 줄 수 있냐고 물으면 정말 따다 줄 생각이었어?"
"왜, 갖고 싶어?"



나의 물음에 소녀는 생각하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한 사람은 처음 봐서 그냥 물어본 거라고 하더라. 이 또한 은근히 신경을 긁어내리는 말에 무시하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나는 또다시 입밖으로 말을 내뱉었다.



"까짓것 따다 줄게."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그때 당시엔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정말 가져오면 죽을 생각하지 마."
"뭐야, 내가 죽든 말든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소녀는 의외라는 듯 놀란 얼굴이었다. 놀란 얼굴이라고 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가식적인 얼굴이었지만. 아마 그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매일 같이 이 옥상에 올라와서 자신의 행동만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까, 불안함에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정말 내게 별을 가져오면, 내가 죽지 않겠다고 하면."
"... ..."
"그냥 그걸로 끝낼 거야?"



소녀의 물음에 나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자살할 생각을 가지던 사람을 억지로 붙잡아 살려놓고선 그대로 손을 떼어버리기도 이상했다. 정곡이 찔렸다. 그러게, 내가 너를 살려놓고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한참 고민의 끝자락에 다다를 때쯤.



"나를 고아원에서 꺼내줘."
"... 널 입양해달라는 거야?"
"입양까진 안 바라. 도망 나오는 것만 도와줘. 그다음은 나 알아서 할게. 그냥 그 지옥에서 꺼내줘."
"... ..."
"별도 가지고, 지옥에서 빠져도 나오고. 이보다 더 완벽한 해방이 어디에 있어?"



나는 소녀의 말에서 모순을 느꼈어야 했다.












03

결국 소녀와 게임을 하게 되었다. 기한은 한 달. 한 달 안에 내가 그녀에게 별을 들고 오면 되는 것이었다. 소녀는 기한을 정할 때에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옥상에서 내려갈 때까지도.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매번 공허한 얼굴이었던 소녀였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단순히 좋은 의미만이 담긴 미소가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소녀는 안 봐도 자신이 이긴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별을 따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

그리고 나는 후회했다. 왜 그 게임에 응하고 말았을까. 아니, 애초에 별을 따다 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것을 왜 입밖으로 꺼내서는. 알바를 하다가도 한숨을 내쉬고, 과제를 하다가도, 담배를 피우다가도, 술을 먹다가도. 무슨 짓거리를 해도 무거운 한숨만 푹푹 쉬어댈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눈을 감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한 달을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소녀의 자살에 나는 그저 방관을 한 사람이 될 뿐일 테니까. 소녀가 죽지 말았으면 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가질 테다. 어느 누구든 눈앞에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일단 구원의 손길을 내어주니까. 미친 사람이 아닌 이상,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등을 밀어버리진 않을 것이니까.

내기를 한 이후로도 나는 매일 같이 옥상 위로 올라갔다. 소녀가 미소를 짓는 날이 더욱 늘었다. 이따금씩 묻기도 했다.



"잘 돼 가?"



놀리는 듯한 어투에 한숨만 푹 내쉬었다. 소녀는 나의 반응에 미소만 지었다. 저 웃음이 어찌나 얄밉던지. 저리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얼굴을 당혹감으로 바꿔버리고 싶은 오기가 미친 듯이 피어났다. 그래서 온종일 고민했다.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만 해댔다. 핸드폰을 볼 때에도 평소라면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주변 사람들은 뭐하고 지내는지, 가끔씩 연락이 닿으면 시시콜콜 안부를 묻는 정도로만 사용했는데. 게임을 시작한 이래로 내기에 관한 검색만 했다.

시간 낭비였다. 그래, 엄청난 시간 낭비였다. 조금의 생계를 유지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었고, 과제를 할 때에도 그 생각. 그러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생각을 지우고 싶은 마음에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골목길 입구에 가만히 서서 담배를 피울 때조차도 그 생각. 심지어 꿈에서도 별을 따오는 꿈을 꿨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꿈에서 보았던 가장 비슷한 별, 수정이었다. 흐릿하지만 생각보다 꽤나 생생한 기억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간신히 떠올린 별을 잊어버릴라. 곧장 핸드폰으로 검색해 해외 직구로 사 들었다.

참으로 웃겼다. 나 하나 생계유지하는 것도 간신히 하는 중인데. 그 소녀를 위해서, 별을 따다 주겠다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해외 직구라도 상관없이 카드를 긁어버리는 나의 모습이. 안전하게 결제가 되었다는 내역이 메시지로 날아온 것을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 뒤늦은 현타가 찾아왔다. 잠긴 목으로 헛웃음만 내뱉었다.












04

해외 직구는 오래 걸렸다.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소녀의 얼굴엔 가식적인 미소가 더욱 짙어져만 갔고 나는 매일 같이 송장번호만 인터넷에 검색해 현재 구입했던 수정은 현재 어디쯤에 있는지 확인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채워지기 전날. 그날도 하늘이 어스름해질 무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담배를 신발로 짓눌러 불을 껐다.



"내일이 마지막이네."



왜인지 소녀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준비는 해뒀어?"



답답함에 담배를 하나 더 피우고 싶어졌다. 소녀의 물음에 나는 짙은 한숨만 내뱉었다. 담배 대신이었다. 입안에 흐릿하게 남아있는 그 담배의 향으로만 짙은 한숨을 푸욱─.

소녀는 뭐든 간에 당연히 이 승부는 자신이 이긴 승부라는 것에 자신이 넘쳐 있었다. 나는 소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이 갑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소녀는 옥상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지 않았으나. 오늘은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시금 자신이 떨어졌을 때 아무도 없을만한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헝클였다. 이 또한 갑갑함에서부터 나온 행동이었다.

하늘에 어둠이 자리 잡고 웬일인지 오늘 밤하늘에 떠 있는 달 옆에 옅게 반짝이는 별이 자리한 것을 발견했을 때, 바지 뒷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누구에게서부터 온 연락일까, 혹시라도 택배가 도착했다는 연락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한 번에 휘몰아쳤다. 화면을 켰다.



"야, 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라고 말한 적은 처음이었던 지라 적잖게 놀란 반응을 보이던 소녀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이 끝나기 직전, 택배가 현관 앞으로 도착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낡은 현관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작은 상자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 커터칼로 상자를 뜯어버리고서 수정을 꺼냈다. 진짜 수정 보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봐줄만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옅은 달빛을 향해 유리 수정을 들이밀었다. 수정을 들고 있는 집게손가락 주변으로 오묘한 빛들이 생겨났다. 어두운 내 방안에 수정을 중심으로 별들이 흩뿌려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05

손에 꼭 수정을 들고서 다시 옥상으로 향했다. 기다리랬다고 정말 낡은 옥상 난간에 기대어 가만히 기다려준 소녀였다. 내 예상과 달리 기다리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어서 조금은 의외였으나, 그래도 그 말을 무시하고서 돌아가버리지 않은 것에 대한 다행이 더 크게 밀려왔다.

소녀는 턱을 괴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무심하게 돌아서서 정말 별이라도 주워 온 것이냐는 듯 시큰둥하게 물었다. 만일 여기서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어떻게 정말 별을 주워 온 것이냐는 반응보다도 자신이 예상하던 승부의 결과가 아니게 될 것에 대한 실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할 것 같았다. 그만큼 시큰둥한 어투였다.

하지만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녀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가볍게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을 내밀었다. 소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리 와 봐."



소녀는 입을 삐죽 내밀고 털레털레 걸어왔다. 손을 내밀어 보라는 말에 그녀는 작게 숨을 폭 내쉬며 손을 펼쳤다. 눈으로만 봐도 작고 얇은 손바닥 위로 나의 주먹을 겹쳐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펼쳐 수정을 넘겼다.



"... 꽤 별 같지 않냐."
"... ..."
"그래도 나름 고민한 건데."



개미가 기어갈 듯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그날 기억으로는 정말 별 같았는데. 막상 주인이 될 사람에게 건네주고나니 미친 듯이 유치해 보이기만 했다. 애들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소녀를 구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해방을 선물하지 못했다.

갑갑함은 더욱 쌓여만 갔다. 머리를 거세게 헝클이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타들어가는 담배의 끝으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머릿속이 맑아짐과 동시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런 나의 등 뒤에서 아무 말도 없던 소녀는 나의 예상처럼 무덤덤한 목소리가 아닌, 조금은 생기가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별 같긴 하네."



담배를 피우던 행동이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깊게 숨을 내뱉으면서 다행이라고 작게 속삭였다. 소녀는 계속해서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수정을 집어 달을 향해 들어 보였다. 그녀의 맑고도 공허한 눈동자엔 형형색색 빛나는 수정이 비쳐 보였다.



"... 가져도 돼?"
"애초에 가지라고 주는 거 아니었냐."



반의반밖에 피우지 않은 담배를 발로 짓눌렀다. 소녀는 마음에 드는 것처럼 보였다. 높게 들고 있는 팔이 아프지도 않은지 오랫동안 수정을 이리저리 굴려가면서 구경했다. 수정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그녀의 얼굴에 반사되는 빛들 또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방향을 바꿔댔다. 이 정도면 내가 게임에서 이겼다고 해도 되는 것 아닐까.



"나 이거 목걸이로 만들어주면 안 돼?"



소녀는 대뜸 부탁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마음에 드는 것을 눈앞에 가지고 왔음에도 아직 부족한 듯해 보였다.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소녀였다.



"몸에 지니고 다니고 싶어서 그래."
"줘, 내일 목걸이로 만들어서 다시 줄게."



만난 이래로 가장 행복하게 웃는 소녀였다.



"기다릴게."



안심이 되면서도 이상하게 찝찝했다.












06

집으로 돌아가면서 잡다하고도 쓸데없는 것까지 다 파는 가게에 들어섰다. 집과 거리가 꽤 되는 가게였지만, 지금 갈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으니 귀찮음을 무릅쓰고 들어섰다. 크게 한 바퀴 둘러보면서 목걸이 끈을 찾자마자 망설임 없이 주워서 카드를 긁고 나왔다. 낱개로 팔면 얼마나 좋을까. 싸구려 비닐 안에 세 줄 정도 가지런히 포장되어 있는 은목걸이 끈을 바라보며 알림창에 떡하니 자리 잡은 결제 내역이 적힌 메세지창을 밀어서 지워냈다. 이까짓게 거의 만 원이나 하다니.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얇은 인두기를 꺼내어 수정의 끝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뚫린 구멍 사이로 끈을 넣었다. 끈 조절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만들어주는 게 어디야. 그러면서도 머릿속 한곳에 만난 이래로 가장 행복한 얼굴을 보여주었던 소녀의 모습이 자리 잡았다. 안심이 되지만, 여전히 찝찝한 건 가시지 않았다.












07

아침부터 눈이 떠졌다. 공강이었고 출근도 하지 않는 최고의 날이었다. 거의 매주 이 날마다 간단하게 술을 마시곤 했는데. 오늘은 괜스레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오후 때부터 폐건물의 옥상을 향해 걸어갔다. 조금 높은 곳에 있으니 선선한 바람이 볼을 스쳤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수정을 꺼내 들어 태양을 향해 들어 보였다.

어두운 밤 달빛을 향해 보았을 때보다 덜 오묘했지만. 그럼에도 수정의 주변은 오묘한 색으로 반짝였다. 분홍색, 하얀색, 하늘색, 노란색, 초록색, 등등. 햇빛이 넓게 분포되는 만큼이나 나의 발밑까지 오묘한 색들로 칠해졌다. 햇빛이 조금만 옅었다면 더욱 선명했을 텐데.

무의식중에 피어나는 아쉬움을 삼켜내며 목걸이 끈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수정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째서인지 밝은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을 시각에 옥상 출입문이 열렸다. 우리 둘 다 서로의 존재에 의아해 하는 걸 굳이 숨기지 않았다.



"웬일로 일찍 왔네."
"아, 응. 오늘은 옥상에 오래 있고 싶어서."



소녀의 말에 의심이 피어올랐다. 남들이 들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왜인지 소녀의 입에서 `오늘은`이라는 말이 나오니 낯설었다. 오늘이 내기의 마지막 날이라서 괜히 이런 찝찝함이 드는 걸까. 아, 그래. 확답을 얻으면 찝찝함이 조금은 가시지 않을까.



"그러면 게임은 내가,"
"이건 별이 아니잖아."



소녀는 내 손에 들려있던 수정을 가져가 목에 걸었다. 그녀에게는 조금 긴 목걸이였다. 명치 부근까지 길게 내려온 수정 주변으로 오묘한 색들이 퍼져나갔다. 소녀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오묘한 색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소녀의 말에 망치라도 얻어맞은 듯 멍하니 그녀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슴께에서 수정이 움직일 때마다 색들의 자리가 바뀌든 말든.



"왜, 맞잖아."
"그런데 네가 어제 말했잖아. 별 같다고."
"그랬지."
"... 그러면 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정도면 나름 인정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행복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내게 말했으면서.



"아까 말했잖아. 별 같다는 건 그저 나의 감상일 뿐이고 이게 진짜 별은 아니라고."



소녀의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다 맞는 말이라서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갈 정도로 답답했다.



"얼굴 구기고 다니면 주름 생기는 건 시간문제래."



할 말을 잃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얼굴을 구기게끔 만드는 놈이 누군데. 소녀의 말과는 반대로 보란 듯이 얼굴을 더더욱 구겼다. 소녀는 명치 부근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수정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걸 가만 내려다보며 진짠데, 하고 서운하다는 듯 말한다. 누가 그 말을 못 믿어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줄 아나. 답답함에 한숨만 푹 내쉬었다.



"그래도 걱정은 마."
"... ..."
"진짜 고마워."



소녀는 일찍이 옥상을 내려갔다. 여전히 가시지 않은 답답함에 푸르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분명 가을의 건조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쓸고 지나가지만. 그 시원한 바람만큼이나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지긴 커녕. 오히려 씁쓸해지기만 했다.

어제의 그 행복해하던 얼굴은 그저 게임에서 이겼다는 것에 대해 고대하던 해방감으로부터 피어오르던 행복한 얼굴이었던가. 그런 얼굴을 보이는 소녀의 모습에 안심이나 하고 있던 내가 한심하기만 하다. 그 자리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쓸어넘겼다. 머리를 쓸어넘기고 정수리 부근에 놓여있는 손끝이 잘게 떨렸다. 그래도, 그래도 걱정 말라고 했으니까.




"... 아."



정말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걸까.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가 껐다가를 반복했다. 그런 의미 없는 짓만 반복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꺼질락 말락 위태롭게 흔들리는 작은 불꽃 너머로 나의 손에서 소녀의 목으로 넘어간 작은 수정이 아른거렸다. 다시 한번 더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나지막이 욕만 읊을 뿐이었다. 고아원이 어딘지라도 물어볼걸. 반짝이던 수정의 빛들 대신 뒤늦은 후회만이 옥상 위로 넓게 흩뿌려졌다.












08

그날은 쉽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폐건물 주변만 돌아다녔다.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보이는 낡은 건물의 벽에 기대어 서서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그러다가도 허기가 지기 시작하면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배를 채우는 정도로만 끼니를 해결했고, 이후엔 아메리카노만 쪽쪽 빨아먹었다.

그대로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하늘이 노을을 맞이할 준비를 할 때쯤 빈 플라스틱 컵에 담배가 쏟아져내렸다. 원래 하루만에 이토록 많이 피우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지간히 불안하긴 한 것 같았다.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소녀가 해방감에 그토록 해맑게 웃던 모습이 떠나질 않았다.



부디 그 행복해하던 얼굴이 별처럼 보이던 수정을 받아서이길 바란다.

그 좆같은 해방감 때문이 아니라, 어릴 적 원하던 별을 얻어내서이길 바란다.



소녀를 고아원에서 꺼내주겠다는 것에 동의를 한 것이 빈말은 아니었는데. 어차피 밥도 잘 챙겨 먹지 않았으니, 내 밥을 먹을 돈으로 그녀의 끼니를 해결해 주면 되는 것이었고, 옷이든 뭐든 간에 돈이 부족하면 그것 또한 내가 더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었다. 아아, 불안해서 별 쓸데 없는 미래의 일까지 머릿속에 그려내고 말았다. 지금 이럴 때 소녀가 있는, 그 지옥 같다던, 그 좆같은 고아원을 찾아내는 게 더 빠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햇빛이 스며드는 골목길은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피우던 담배를 신발로 짓눌러 꺼버리고 다 피운 담배들로 3분의 1 정도 쌓여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골목길 전봇대 주변에 위치한 쓰레기봉투에 아무렇게나 내던지듯 버리고서 발을 움직였다.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자전거도 지나가고, 전동 킥보드도 지나간다.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른 사람들도 있었으며, 이른 저녁부터 술을 마시기 위해 한껏 꾸민 옷을 입고 본인 또래처럼 보이는 사람들끼리 웃어대며 식당으로 들어선다. 머리를 쓸어넘겼다. 불안함으로부터 오는 무의식적인 행동 중 하나였다.

폐건물의 옥상을 매일 같이 찾아오는 걸 보면 아마 근방에 위치한 고아원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지금껏 고아원의 `고`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 마음이 급해서일까. 어디서부터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것이 더 진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돌아다녔다. 눈동자는 눈동자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바쁘게 움직이면서 해가 질 때까지 거의 동네의 끝까지 걸어 다녔음에도 소녀를 찾아내지 못했다.



어스름한 하늘. 소녀는 오늘을 제외하고 매일을 하늘이 어스름해지고 나서 옥상에 찾아왔다. 설마 그 옥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마지막 나의 희망 줄이었다. 부디 그 옥상에 올라가서, 일찍이 모습을 드러낸 달빛에 비추며 알록달록한 색을 보여주는 수정을 구경하고 있기를 바라면서. 빠른 발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되돌아가면서도 혹시 모르는 마음에 눈동자 또한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내가 이렇게 먼 곳까지 걸어 나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익숙한 폐건물이 눈에 들어왔고. 어느새 하늘은 이미 어두워지고 주변의 건물들엔 하나같이 불이 들어와 있었다. 어두운 저녁의 길거리를 걷고 익숙한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숨도 고르지 못하고 달렸다. 신발 밑창에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버린 비닐을 밟아 미끄러질 뻔해도, 길을 걷던 누군가의 어깨에 부딪치는 바람에 휘청여도 성의 없는 사과를 내뱉으며 달렸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를 시간 따위 없었다. 갈비뼈가 아파지고 말라비틀어진 목구멍 너머로 구역질이 올라와도 달려야만 했다.












09

오늘은 두 개의 별이 떠 있었다.

하나는 전과 같은 자리에서, 달의 옆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 하나.

다른 하나는 매일 같이 있던 자리가 아닌, 그 자리에서부터 조금은 동떨어져 다른 별보다 더 밝게 반짝이는 별 하나.












10

별똥별이 떨어졌다.
떨어지는 별똥별은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












잘... 지내셨으렵니까...?
그보다 저를 기억하실런지 모르겠네요잉..
저는 곧 복학할 예정인 복학생이면서 일도 하고 지내며 간단히 갠공에 글들도 올리며 소소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홀홀

뭣보다 내일모레가 벌써 설날이네요! 저는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 21살,,,,, 클럽도 못 가봤는덱.. 술집도 많이 못 가봤는덱..........ㅠㅁㅠ

근데 생각해보니 새해에 올리는 것 치고 우중충한 내용이긴 하네용..ㅎㅎ
요즘 이런 분위기에 꽂힌 바람에 가장 최근에 쓴 글 하나 올리구 사라지께요
언제 또 앱에 들어오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들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시고 작년보다 행복한 일들이 더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네요!!

새해 복 아아아주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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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드_림  232일 전  
 드_림님께서 작가님에게 92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드_림  232일 전  
 작가님 미쳤어요...

 드_림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AdultPaduck  245일 전  
 대박♥︎

 AdultPaduck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강하루  246일 전  
 글 잘쓰시네요

 강하루님께 댓글 로또 1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아무것도하기싫어  247일 전  
 ㅠㅠ글 좋아요ㅠㅠㅠ

 아무것도하기싫어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A.R.M.Y._07  247일 전  
 작가님 글이 너무 좋아요

 A.R.M.Y._07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청포도피치  247일 전  
 알람울리자마자 바로 왔습니다. 작가님!

 청포도피치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