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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Park Lee 2 - W.프록시마
Park Lee 2 - W.프록시마


* 범법 행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긴 복도를 지나 신발장에 다다른 지민이 구두의 앞 코에 약을 얹었다. 이내 슈즈 클리너를 쥔 지민이 야무진 손으로 약을 넓게 펴 발랐다. 구두약의 역한 냄새에 코를 찡긋거렸지만 다시금 광택을 내는데 열중했다. 슈즈 클리너의 브러쉬를 교체한 지민이 다시 광택을 내려 할 때에, 열세 번째로 울리던 전화가 그에 항복했다.







지민은 종종 생각했다. 그건 지민의 오랜 꿈이자 동경이었고, 이브의 사과이자 이카루스의 날개였으며 결국 삼키지 못한 침 덩어리이자 반질거리는 구두였다. 그가 동경해온 선은 그런 것이었다. 가장 상스럽고 악착같으면서도 끝내 모두가 무릎 꿇는. 오물 범벅의 금덩어리도 여기서는 금이었다. 어차피 과정은 중요치 못하단 걸 지민은 알고 있었다.





지민은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속옷은 늘 빨간색이어야만 하고 키도 좀 작았지만서도, 여자에게 늘 차였고 뺨도 맞아본 전적이 있었지만서도, 지민은 엘리트로 불려야 마땅한 대한민국의 건실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Park Lee













김남준입니다.



그래요. 김남준 씨. 오랜만에 있어 보이는 행색을 만난 지민의 말투가 들떴다. 구멍가게 수준의 사무소는 아니라 어디 기업의 사장님이나 어느 조직의 행동대장이라는 인간들도 찾아온 적이 있었으나 이쪽은 엄연히 결이 달랐다. 어느 대기업의 손자쯤은 되어 보이는 멀끔한 행색이 지민을 반겼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어울리던 동창을 만난 기분까지 느껴졌다. 지민은 이 도련님의 가여운 인생사를 찬찬히 들어주고 정신적 지지까지 제공해 준 다음 가격을 협상해야겠다 생각했다. 어느 정도로 공을 들였냐면 몇 년 전 학력을 위장하려 찾아 읽던 책의 내용까지 떠올렸다. 상담의 원칙 첫 번째, 경청. 지민은 오로지 들었으며, 적었다. 남준이 자신의 11년을 이야기하는 내내.



시장 골목 어귀를 지나 갈림길의 오른 방향으로 빠진 뒤, 다시 걷고 걸어 도착지에 다다른 여인이 `전집`이라 크게 적혀진 가게의 문을 열었다. 여인의 빨간 앞치마와 더 벌건 그녀의 얼굴이 잘 어울렸다. 쉴 틈 없이 움직이던 여인이 드디어 넉넉하게 기름을 둘렀다. 그리고는 헤벌레 벌어진 아이의 책가방 지퍼를 잠가 주었다. 이내 뒤집개를 쥔 여인이 반죽을 넓게 퍼뜨렸다. 아이가 고소한 반죽 냄새에 코를 찡긋거렸지만 여인은 아이 따위 살필 여유가 없다는 듯 다시금 전의 모양을 잡는데 열중했다. 어느새 기름에 쩐 뒤집개를 교체한 여인이 다시 전의 모양을 잡으려 할 때에, 열두 살의 아이가 빠르게 가게를 나섰다.





남준이 학교에 발길을 끊게 된 건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어쩌면 자연의 이치, 인생의 순리였을 지도 모른다고. 아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 츠쿠바 대학교. 아버지, 다니엘 브라운. 어머니, 제니퍼 브라운. 하늘에 구멍 뚫린 듯 눈이 내리던 크리스마스 날, 남준이 처음 자신의 일을 끝마쳤을 때 존은 아이에게 신분을 선물했다. 남준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그 세상의 가치와 크기는 중요치 않았다. 두 팔이 소름 돋게 깔끔했던, 모든 것이 완벽한 밤이었다.



"그래서, 조직에 있는 그 아가씨를 죽여 버리고 싶다 이겁니까?“



1월의 시작이 좋다 기뻤건만, 월 말은 지옥이구나. 지민이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두둑 거리며 물었다. 피곤한 의뢰인을 상대할 것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몰려왔다. 지민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경로는 대게 비슷했다. 전문직 아닌 일용직이 대다수였고 공돌이, 공순이 역시 많았다. 흥신소에서 자신을 소개받아 왔으면서 지민이 조물주라도 되는 양 질질 짜며 들어오는 태도와 표정, 말투까지 소름 돋게 유사했다. 죽여 달라는 건 흥신소에 부탁하면 될 일인데 굳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것부터가. `박지민 검사`라는 표딱지가 검찰의 보호를 받는 기분일 것이라 지민은 확신했다. 정작 그분들은 술 마시고 신입들의 장기 자랑이나 구경하며 시시덕거릴 것이 뻔하지만 말이다.





일개 지방 검찰청이지만 어찌 되었든 법조계 현장에서 검사로 근무했던 지민이 봐줄 만한 일은 아니었으나 지민은 아무렴 괜찮았다. 일전에 찾아왔던 남준이 있었기에 지민은 웃을 수 있었다. 그래요. 비소 말씀이시죠. 비소, 비소···. 지민의 입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비소 라는 기업에도 윤지아 라는 여자에도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관심은 죽어라 없었으나 지민은 남자의 말을 전부 받아 적어야만 했다. 의뢰인이 윤지아 라는 여자의 신상정보와 화언의 위치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대략 마쳐갈 때쯤, 지민의 한컴오피스 1010번째 파일이 한 번의 클릭 실수로 백지화됐다.





"악, 씨발!“



단말마에 비명을 지른 지민이 두 손으로 머리통을 감싸 쥐었다. 남준에 눈이 멀어 재미만 쫓다 진정 쫓아야 할 돈을 잃게 생긴 자신이 한심했다. 그리고 입을 틀어막았다. 동공확장은 덤이었고 더불어 비참해졌다. 자책은 또 처음이었다. 돈 버는 게 세상 일 중 가장 어렵다는 말을 몸소 실감한 지민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의뢰인의 얼굴을 보려 고개를 들었을 때, 의뢰인이 마지막 할 말을 뱉었다.





"회장님께서 직접 요구하신 거라서요. 꼭 좀 부탁드릴게요, 검사님.“



...네. 라고 머릿속으로 대답했다. 말을 잃은 지민이 입술을 움찔거리는 사이 의뢰인이자 무역회사 비소에서 왔다는 남자는 허리를 접어 공손히 인사한 뒤 지민의 사무실을 떠났다. 어정쩡하게 서있던 지민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몸을 잔뜩 수그린 지민이 눈을 감았다. 정적 속 움직이는 시계 초침 소리가 꼭 쥐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우는 울음. 온갖 범법인 행위 속에서의 규칙. 매일 같이 돌아오는 일정한 외로움의 총량. 밤을 새워 1010번째 파일을 다시 정리한 지민이 파일명을 타이핑했다. 마지막 울음.



지민이 남준을 찾아간 건 순전한 사심이었다. 화언의 이름이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기를 바랐으나 남준의 덕인지 화언은 적이 많았다. 지금 지민의 앞에 있는 화언이 그랬다. 화언의 기세를 모르고 일을 맡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민은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기가 지민의 옷깃에 스며들었다. 머리를 정돈한 지민이 자신을 경계하는 경호원을 향해 미소 지었다.







"김남준 씨 만나러 왔는데요. 검사, 박지민입니다."





이제, 남준을 만날 시간이다.













Park Lee













“잘 찾아오셨네요. 죄송해요. 여기선 술밖에 안 해서.”





가볍게 미소 지은 남준이 와인 잔을 지민 쪽으로 밀었다. 고위 간부라는 말이 맞았는지 꽤 널찍한 장소가 지민을 반겼다. 비싼 것에 일가견이 있는 지민이 보기에도 화려한 내부가 호텔을 닮아있었다. 침구만 없지 침대만 한 소파와 눈 부시는 크리스털 테이블, 와인 바를 연상시키는 선반식 와인 냉장고 여러 대가 남준의 공간을 당당히 차지했다. 애써 미소 지은 지민이 목을 가다듬었다.





“잘나가는 거 맞네요. 근데 왜 싹 다 포기하시려구.”



“술은 거짓말 안 하거든요. 검사님도 술 많이 해보셨을 텐데.”



“글쎄, 그땐 술의 진심을 알 틈도 없이 마셔서.”



“그러시구나. 전 혼자, 여유롭게, 깊이 마셔서. 이제 손 씻으라고 하더군요. 술이.”





자존심 하고는. 지민은 사무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준의 얼굴을 떠올렸다. 운전사에게 USB를 받아든 지민이 노트북을 꺼내 영상을 재생 시켰다. 한참 동안 화면을 노려보던 지민이 140127이라고 적힌 영상을 중지했다. 2014년 1월 5일부터 2014년 1월 27일까지의 남준을 죄다 훑었지만 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없었다. 이거 어제까지 맞습니까? 왜 없어? 신경질적으로 물은 지민이 다시 영상을 재생시켰다. 28일··· 29일··· 30··· 31··· 어?





찾았다. 봉곳한 광대를 자랑하며 미소 지은 지민이 읊조렸다. 바로 어제인 140131 영상을 다시 처음으로 되돌린 지민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전 9시 39분. 남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임원실로 들어선다. 책상 위 잔뜩 쌓여 있는 결재 서류들을 죄다 바닥에 내동댕이친 남준이 급히 담배를 두 대 태운다. 저기, 나 담배 좀. 담배를 입에 문 지민이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담배로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방황하던 남준이 밖에 있던 직원을 소리쳐 부른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듯 직원이 들어온다. 굳은 얼굴의 직원이 입을 열었을 때, 지민이 앞 좌석에 팔을 걸치고 물었다.





“이거 소리는 안 들리나요? 설마. 설마 요즘 기계가 소리가 안 들리겠어?”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연락해볼까요.”



“연락해볼까요 가 아니라, 연락을 해야 하는 거예요. 지금 당장.”





급하게 여러 곳으로 전화를 건 운전사가 소리를 키우면 그나마 잘 들릴 것이라 설명했다. 대충 대답한 지민이 영상의 볼륨을 최대치로 키운 후 무선 이어폰을 연결했다. 자신이 예상한 전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설마. 그 여자가 그 여자일까? 여자와 남준? 근데 그 여자는 죽은... 아니. 죽진 않았지. 1010건은······







‘실장님 생사 확인했습니다. 가능한 꾸준히 연락 취하는 중입니다. 어떻게든 돌아오실 겁니다. 걱정 마세요, 이사님.’





내 이럴 줄 알았지. 지민이 화면 속 남준을 응시했다. 직원의 말을 들은 남준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잠시 멈추어 있던 남준이 선반으로 손을 뻗어 작은 액자를 집는다. 그리고 깊게 바라본다. 지민은 이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은 것 같았다. 화언. 여자. 비소. 온점 아닌 연결 고리가 있다. 돈을 좀 더 주셔야 할 것 같은데. 지민이 다시 1010번째 파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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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강하루  257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0
  wendy0613  259일 전  
 잘 읽었어요!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