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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Park Lee 1 - W.프록시마
Park Lee 1 - W.프록시마







김남준이 사라졌다. 철심 박고 굳게 자리를 지킬 것만 같던 김남준이 사라졌다. 달콤과 징계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김남준이, 사라졌다. 배우자도 약혼자도 없다고 했고 애인도 친구도 지인도 가족도 없었다. 국정원이 소인간의 작은 관계성조차 찾아내지 못한 건 퇴사감이 맞았지만 김남준은 정말 없었다. 김남준이 키운다던 식물 종류 하나조차 아는 바가 없었다. 히아신스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확신이 없다. 그가 한 번이라도 봤던 영화 제목도 알지 못했고 그가 한 장이라도 넘겼던 페이지의 책 제목조차 알 길이 없었다.













팀장님, 그러니까 윤기 형.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김남준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밥은 처드셨는지 누구랑 입술은 부볐는지 저는 정말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해고만은 삼가주세요 아니, 해고하면 김남준과 연락하던 휴대폰 반납 안 할 겁니다. 저 그냥 한강 가서 뛰어내릴 거예요. 제 휴대폰 여러 개인 거 아시죠? 형을 포함한 국정원은 그 휴대폰을 죽어도 찾지 못할 거라 장담합니다. 김남준은 소리 소문 없는 놈이 맞고 무서운 놈인 것도 맞아요. 그래서 저는 죽을 때까지 김남준을 볼 수 없을 겁니다. 그 무서운 김남준이 마약을 날랐든 장기를 팔았든 저는 이제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아, 혹시 몰라 말해두는데 방조는 아닙니다. 아직 그 정도의 파렴치한은 아녜요. 어찌 됐든 저는 우리 국가정보원을 응원합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요. 다만 저는 부서를 옮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마약 수사부가 안 맞아요. 제가 민윤기 팀장님처럼 마약을 해본 것도 아니고 인생이 스펙터클 했던 것도 아니라서요. 아, 물론 저는 팀장님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저도 제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고 조만간 짐 싸 들고 7층으로 가렵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저는 진짜 형 응원해요. 철민이 형도 강 대리님도요. 러시아 팀도 중국 팀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그럼 안녕히.





"박지민 이 새끼 이거, 야 철민아 휴대폰 진짜 못 봤냐?"



"못 봤다고 스무 번은 말씀드렸어요. 그냥 박지민 찾아가시라니까요?"



"쪽팔리게 내가 어떻게 가 거길. 아, 네가 갔다 와라."



"예? 팀장님 정말 왜 그러세요? 김남준 때문에 미치신 겁니까?"



"미치신 겁니까 이 지랄. 존댓말을 할 거면 똑바로 해라 새끼야."



"정 간절하시면 막내 시키시죠. 저 봐요. 강 대리 뚫리겠네, 뚫리겠어."





저 막내가 내 막내도 아니고. 윤기의 시선이 정국에 향했다. 저놈이 러시아 말을 그렇게 잘한다 이거지. 윤기는 언젠가 들었던 블라디미르 푸틴의 연설을 떠올렸다. 말 존나 어렵던데.





팀장 명패 달린 책상에 걸터앉아 입술을 물던 윤기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도 지랄 났네. 중국에서 시작된 신유형 마약의 뿌리는 누구인가. 중국 팀이 불쌍하다고 여긴 한국 팀 팀장 민윤기는 러시아 팀 막내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뚱한 표정으로 정국을 노려보던 윤기의 시선에 정국이 들고 있던 서류가 닿았다.





"······ 야."



"... 혹시 저 말씀 하시는 거예요?"



"··· 어, 너. 전정국 너. 너 그거 뭐냐."





이거요? 정국이 팔뚝을 어정쩡하게 들었다. 정국에 손에 들린 A4 용지가 팔랑거렸다. 종이에 맞춰 윤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니, 그거 말고.









네? 어떤 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윤기는 직감했다. 숙련된 감이었다. 철민이 윤기를 불렀다. 윤기의 어깨가 철민에 의해 흔들렸다. 뒷걸음질 치던 윤기가 큰 침을 삼켰다. 윤기의 손이 진동으로 흔들렸다. 지민의 전화였다. 문자 메시지가 연이어 오고 있었다. 전화를 거절한 윤기가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여러 장의 사진이 전송됐다. 스크롤을 내리던 윤기는 알 수 있었다. 철민아, 7층이라고? 지민을 찾아가야만 했다. 지민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 지민은 전부 알고 있다.





윤기는 달렸다. 지민이 보낸 문자 메시지는 근 몇 년 중 가장 다급했다. 몇 명의 목숨이 달린 건지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윤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않았으면 했다. 윤기는 스물둘의 자신을 끝없이 되새겼다. 입사 초 국가정보원이 천직이라 믿은 자신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민이 근무한다는 해외 정보부는 국정원의 핵이었다. 마약 수사부와도 공조할 때가 있었지만 엄연히 결이 달랐다. 마약 수사부가 중국, 러시아를 발로 뛴다면 해외 정보부는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컬러 요원들이 긴밀히 잠입해 업무를 처리했다. 그런 해외 정보부에 지민이 있다. 흐르는 땀을 훔친 윤기의 눈동자가 바빠졌다. 그런 윤기 앞으로 웬 여자가 다가왔다.





"민윤기?"



호칭을 생략한 물음에 윤기가 눈살을 찌푸렸다. 윤기의 시선이 여자의 사원증에 향했다.





"아. 김민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와, 싸가지 없어!"



여자가 눈가를 접어가며 웃었다.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여자가 입을 열었다.





"시비 튼다는 건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마약 수사부가 여긴 웬일인가 해서. 알다시피 마약이랑 엮이면 우린 좋을 게 없어서요."



"박지민 씨 찾으러 왔습니다. 부서를 옮겼는데 볼일이 생겨서요."



"아! 안 그래도 누가 올 거라고 하긴 했어요. 4번 회의실 가보세요.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여자가 손가락으로 4를 그리며 말했다. 습관 같은 눈웃음은 덤이었다. 윤기는 그런 여자가 형언할 수없이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윤기는 4번 회의실로 가는 동안 자신이 무의식중 탕비실의 개수를 세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해외 정보부의 탕비실은 3개였다. 거 커피 마시면 얼마나 마신다고. 윤기는 이를 필히 건의해야겠다 생각하며 지민이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아이고, 형님."



지민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오랜 습관이었다. 5년 전의 지민도 그러했듯이. 수그리는 법이 없었지만 화를 내는 법도 몰랐다. 수려한 외모를 가진 배우 출신의 미술관 관장 아버지와 국립 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어머니를 둔 지민은 그랬다. 그리고 윤기는 그런 지민이 맘에 들었다. 지민은 수작이 없었으며 매사에 솔직했다. 뒤통수라면 신물이 났던 윤기는 지민이 자신의 진정한 파트너라 될 것이라 믿었다. 적어도 남준이 퇴사하기 전까지는.





"죽을래? 너 뭐야, 인마."



"아니. 그 여자한테 연락이 왔어요."



"··· 그 여자?"



"예. 김남준하고 사진 찍힌 그 여자요."



"······ 하, 참."



"행색이 많이 변했더라고요."





헛웃음 친 윤기가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근 두 달 만에 만난 지민은 여느 해외 정보부의 깔끔한 행색으로 윤기를 반겼다. 지민이 특유의 차분한 눈으로 윤기를 응시했다. 저 눈깔도 오랜만이네. 나오려는 말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윤기는 며칠 입었는지도 모를 슬랙스를 만지작거렸다. 지민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사진을 보낸 것도. 부서를 옮기고 나서야 여자와의 연락이 닿았다고 말하는 것도 어느 하나 구분할 수 없었다. 다급하다던 지민의 보송한 얼굴까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박지민은 원래 어떤 사람이었나. 이게 박지민이었나? 지금의 박지민은 박지민스러운가? 윤기는 심장께를 손으로 훑어 내렸다. 인간관계와 사건이 연결돼 있는 건 어렵다. 윤기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전정국을 막아야 해요 형.





전정국? 그래, 전정국. 윤기는 마지막으로 본 정국을 떠올렸다. 오징어를 씹으며 마시는 소주 때문인지 정국 때문인지 머리가 아팠다. 동그란 눈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돋은 소름이 다시금 올라오는 것 같았다.





정적 속 윤기의 전화가 울렸다. 놀란 윤기가 한쪽 다리를 잘게 절었다. 강 대리의 전화였다. 강수연이 웬일로. 빠르게 눈을 깜빡이던 윤기가 손을 겨우 뻗어 전화기를 귓구멍에 가져갔다.





"어엉. 강 대리."



"팀장님 술 드셨습니까?"



"어. 혼자 좀 깠다, 왜."



"나이가 몇인데 진짜······ 쪽팔리지도 않아요?"



"안 쪽팔리니까 본론만 얘기해라."



"아, 예. 별 건 아니고요. 팀장님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칠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윤기가 팔에 돋은 닭살을 쓸었다. 눈을 가늘게 뜬 윤기의 입이 달싹거렸다.





"너, 아주 위험한 질문이다 그거."





겨우 나온 말에 수연이 비웃었다.



"헐. 이 아저씨가 왜 이래. 그런 거 아니거든요? 곧 썸남 생일이란 말이에요. 뭐 받았을 때 제일 기분이 좋으셨어요? 구여친이라도요."





"아, 뭐야. 말을 똑바로 해라 이놈아. 사람을 막 놀래키구······."



"죄송한데 이 새벽에 팀장님 목소리가 막 듣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빨리 말해주실래요?"



"이하 동문. 이제 끊자 머리 아프다. 그리고, 난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제일 좋드라."



"와, 팀장님 이제 아저씬가 봐요. 진짜 왜 그래요?"





수연의 일침에 피식 웃은 윤기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윤기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진들을 확대하고 관찰했다. 2년 전까지 그래왔듯이. 지민과의 메시지. 재작년 12월이 마지막이었다. 윤기가 긴 한숨을 흘렸다. 지민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당당하게 따져 묻고 싶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수연일까 철민일까. 윤기는 답을 알고 있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늘 남준이었다. 그가 나타나야만 했다. 그는 이 세계를 벗어났다. 윤기는 자신의 세계에서 그를 찾아왔다. 지민이 두 세계 사이에서 망설였다. 윤기가 정국을 만났다. 윤기는 알고 있다. 이제 남준을 만날 수 있다. 인생의 2막은 이미 시작됐다고 생각했는데.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자꾸 마음이 다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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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강하루  257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0
  wendy0613  259일 전  
 재밌어요!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