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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정국이에게 - W.히끅
정국이에게 - W.히끅
정국이에게

정국아 너는 아니? 내가 항상 거절을 했던 이유는 너를 온전히 가지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걸. 너는 사계절 누리길 좋아하는데 네 1년에서 4분의 1밖에 안 되는 내가 널 가지면 넌 여름에서만 살 수 있잖아. 네가 내게 안길 때면 하는 소리나 그 분위기에 맞는 은은한 네 향이 좋아서 혼자 헛소리도 지껄이곤 했어. 넌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아이인데 주제넘은 것을 알면서도 나 같은 여름에 붙잡아두고 싶어서 그랬는지. 하얀 피부를 아끼긴커녕 되려 뙤약볕에 쬐이는 너를 보며 한숨을 쉬다가도 행복해 보이기에 나도 네 곁에 있고 싶었어. 되도록 오래오래, 네가 겨울의 매혹은 모두 잊게까지. 내 숨은 여름에만 머물 테야. 네가 보내는 가을과 겨울과 봄은 알 수 없어. 가끔 봄의 파편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면 나는 그저 짐작할 뿐이지. 봄의 은근한 향을 모두 훌훌 털어내고 여름에 도착한 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쉽게 바뀌지 않는 주변 풍경이 초록빛 물감으로 색칠되었을 때 낯섦에 두 눈을 끔뻑이고만 있었을까? 한여름에 널 처음 마주쳤지. 아직도 그 옷 입니? 흰 티와 검은 슬렉스와 청바지. 나는 늘 마음 졸이곤 해. 네가 나를 영영 잊어서 그 옷의 향을 맡아도 내 생각이 나질 않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해. 여름 바람에 날리는 향이 있잖아. 저 멀리 이름도 모를 바다 그 수평선에서 날아온 것만 같은 바다의 짭조름한 냄새라든가, 한산한 길거리 음식점에서 요리를 하는 냄새라든가, 나무가 많은 길을 홀로 걸을 때 코끝을 스치는 텁텁하고 신선한 향이라든가. 가끔 바람에 네 향이 스치면 혹 네가 온 걸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너를 아직도 기억해서 슬프다. 이제는 익숙해지고 싶은데 마냥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결국 네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에 적응하는 길이잖아. 네가 여름을 좋아했던 건지 날 좋아했던 건지 모르겠어. 난 매번 거절했었는데도 만약 네가 네 겨울에 날 초대한다면 새침데기처럼 난 또 거절하고 말겠지. 후회야 안 하겠지만 어두운 여름밤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조금 울다 잠들래. 네가 몹시 사랑하는 네 겨울에서 네가 언제쯤 올까 하면 넌 오지 않을 테니까. 내게 안겨 내 향을 들이마시고 이대로 잠들고 싶다며 웃었던 네가 생각 나. 난 네 웃음소리를 정말 좋아했는데. 정국아 난 평생 이 여름에서 살겠지? 사철이 기꺼이 오고 가는 너의 한 해에 나 같은 여름은 너무 짧았을까? 더워 죽겠는데 서로 온기 느끼겠다며 붙어 있던 게 실은 싫증이 났던 걸까? 벌써 두 번 지구가 완벽히 공전했어. 네 향과 네 웃음소리와 네 품이 기억 나는데 네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 정국아 너는 나무가 서서히 말라 가고 추위에 후들대는 그 겨울에 여전히 있겠지. 네가 여름에 왔으면 좋겠다. 여름은 참 신기한 계절이라 한껏 누릴 때는 짜증만 돋구었는데 다른 계절에 가면 다 저문 기억처럼 이상하리만치 아련해진다며. 제 입으로 말한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 나는 한철이 곧 사철이야. 내 모든 계절이 여름이라는 뜻이야. 그곳은 어때? 살 에는 추위에 혹 내가 뿜어내던 포근한 향들이 그립지는 않아? 여름의 높고 푸른 하늘과 눈이 부시게 빛나는 햇살과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은 여전해. 정오쯤 되면 노래를 부르는 이름 모를 새들과 길거리의 어수선한 소리들은 여전해. 너도 알다시피 나는 한여름이잖아. 네가 이곳에 와 덥다면서도 내 곁을 내어 달라고 가까이 붙었으면 좋겠다. 한여름을 모두 내어줄 수는 없지만 여름의 한 켠을 네게 내어줄게.

한여름이.

P.S. 그거 아니? 네가 있던 그해의 그 한여름은 다 네 거였어. 네 손아귀에 쥐고 있었으면서 너는 몰랐던 눈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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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최연준사랑해..  259일 전  
 으악끅님사랑해요ㅠㅠ
 저무뮤얼이에요ㅠㅠ

 최연준사랑해..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순끼  261일 전  
 순끼님께서 작가님에게 18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rlatjdus3  262일 전  
 너무 좋아요!

 rlatjdus3님께 댓글 로또 1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루미☽  262일 전  
 너무잘쓰세요!!♥

 ☾루미☽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송시윤  262일 전  
 송시윤님께서 작가님에게 1059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송시윤  262일 전  
 굉굉 님 글 진짜 언제 봐도 짱이에요ㅠㅠ 최근에 굉굉 님 글 잘 못 봤는데 오랜만에 보니 더 짱이에요♡♡

 송시윤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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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하루  262일 전  
 글 잘쓰시네요

 강하루님께 댓글 로또 1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익사  262일 전  
 천재아니냐며

 익사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