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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잘 가, 내 사랑 - W.깔깔마녀
잘 가, 내 사랑 - W.깔깔마녀












「 GoodBye, My Love 」












01

미지근한 거실 바닥에 앉아 발목에 난 흉터를 손끝으로 쓸면서 창밖의 사람들을 구경했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인다. 구두를 신고, 가방을 메고, 늦었는지 달리기도 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은 느긋하게 한 손에 음료 또는 커피를 들고 걸어 다닌다. 갑자기 울컥, 속눈썹 아래에 맑은 눈물 한 방울이 매달리다가 이내 똑.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허벅지 위로 동그란 자국이 생겨났다. 갑자기 서럽네.


"뭐해?"


자상한 미소를 가진 네가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서 조금은 힘을 주는 소리를 내며 나를 휠체어 위로 올려주었다.


"사람 구경 했어."


너는 내 허벅지 위에 생긴 동그란 눈물 자국을 봤는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본인이 더 서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흘러내린 나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참으로 다정한 손길이었다.


"∙∙∙∙∙∙내가 꼭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너는 나의 볼에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02

덜그럭, 덜그럭.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위로 휠체어의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 혼자서도 바퀴를 굴려서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나보다도 걱정이 많던 너는 절대 나 혼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밖은 험난하고, 또 험난해서. 작은 사고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말에 오히려 미안해지는 나라서, 고작 산책하고 싶다는 나의 이기심 하나로 너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은 나라서 반박을 하려 했지만. 되려 너는 그런 쓸데없는 걱정 말라며 미치도록 다정하게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나와 함께 밖을 구경시켜주었다.

바깥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거리의 비중을 꽤나 크게 차지하는 나의 휠체어 크기 때문에 간혹 몇몇 소수의 사람들은 나를 걸리적거린다는 눈빛으로 보면서 지나다닌다. 그럴 때마다 휠체어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던 너는 사나운 눈빛으로 그딴 시선으로 보지 말라며 으르렁거린다. 그러면 항상 말리는 건 나였다. 싸움은 보기 싫었으니까.












03

집에서든 밖에서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다. 집에서 요리를 하고 싶어도 싱크대가 생각보다 높아서 위험했고. 청소를 하고 싶어도 휠체어가 걸리적거려서 담요로 덮어진,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경멸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다리 덕에 찾은 나의 취미는 딱 한 가지뿐이었다.


"이건 무슨 그림이야?"
"그냥, 건물들."


어두운 잿빛의 배경에 하얗고 노랗게 길쭉하고도 네모난 것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 캔버스 속의 야경이었다. 단순하고도 밋밋한 그림이었다. 본 것이 고작 이런 거밖에 없는 탓에 손이 가는 대로 그려봤자 대체로 이런 그림들뿐이다. 추상적인 걸 그리자니. 나는 화가가 아니니, 원. 그림에 재능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하지만 너는 이런 나의 못생긴 그림조차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은 정사각형 캔버스에 와이어를 걸어서 천장에 늘어뜨려 그림을 그리는 방안에 빠짐없이 걸어두었다. 이런 부족한 그림들이 방안에 듬성듬성 자리한 덕에 그림을 그린 나는 민망하고도 부끄러웠지만, 이런 나와 달리 너는 나의 모든 그림을 마치 본인이 그린 것처럼 뿌듯하게 봐주었다.

방안을 크게 둘러보았다. 빨간색이 들어간 그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빨간 물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04

빨간색만 보면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빨간색만 보면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집안에 가득 칠해진 끈적하고도 진득한 짙은 붉은색. 나를 제외한 모두가 온몸으로 색을 만들어내며 방바닥에 늘어져서 꿈틀거린다. 그리고 커다란 총성이 한 번 더 고요한 집안에 울려 퍼지면, 몸을 꿈틀거리던 아주 미세한 인기척조차 한순간에 멎어버린다.

거의 1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었다. 그날의 우리 아버지는, 위험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던 아버지는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는지 지금까지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저 몇 분 전까지 평화롭던 집안에 쳐들어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를 배반자라고 외칠뿐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한순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나에게 빨간색을 잔뜩 선물해 준 무섭게 생긴 사람들은 이 좁은 집안에서 조금이라도 반항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보인다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떨어진 화병이 깨져 튕겨진 커다란 조각이 나의 발목 신경에 박혔을 때. 나는 그저 새빨간 웅덩이를 뒤집어쓰고 목이 놓여라 울어젖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울고 있다 보면 뒤에서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나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누군가가 뭐라고 속삭였다. 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뭐라고 했더라.

죽은 척해, 였던가.












05

밥을 먹자는 너의 외침에 나는 바퀴를 힘겹게 움직이면서 나를 위해 맞춤 제작된 작은 식탁 앞에 앉아 수저를 움직였다.


"오늘도 밤에 나가?"


매일 밤 나갔다가 아침에 돌아오던 너의 모습은 이제 나에게는 단순히 일상일 뿐이었다. 밤늦게 돌아오는, 해가 떠서야 돌아오는 너를 나는 딱히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고 해야 할까. 너는 항상 일을 나가기 전에 나를 들어 안아서 침대 위에 눕혀주고 이불을 목 끝까지 친히 덮어주어야 집 밖을 나섰으니. 아, 방문까지 꼭꼭 닫아서.

늦은 밤이 되어야 도어록이 열리고 네가 들어오면. 닫힌 방문 너머로 가끔은 둔탁하게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더라면 방문을 슬쩍 열어서 거실의 상황을 훔쳐보기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숟가락으로 한가득 새우볶음밥을 푸다가 밥 한 톨이 나의 허벅지 위로 떨어져 주워 먹고 있으면. 너는 밥을 얼마 먹지 않고 유리컵에 담긴 투명하고 이가 시려울 정도로 시원한 물을 홀짝였다.


"오늘은 안 나가."


의외의 대답이라 왜 안 나가냐는 눈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작게 미소를 짓고서 그냥, 이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 저마다의 사정이 있듯이 너에게도 사정이란 게 있으니 오늘은 밤에 일을 나가지 않는 거겠지. 그렇게 금방 신경을 끄고서 다시 숟가락을 움직였다.

네가 만들어준 볶음밥이 점점 바닥이 보일 때면 너는 어딘가 불안한 것처럼 보였다. 평소라면 나보다 밥 먹는 속도가 빨라서 이미 밥을 다 비운 그릇을 앞에 두고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던 너였는데. 오늘은 밥을 깨작깨작 주워 먹으면서 물로만 배를 채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입맛이 없어?"


나의 물음에 너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먹었으면 들어갈까?"
"∙∙∙∙∙∙벌써?"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창문 너머로 노랗고도 주황빛이 창문을 통해 길게 늘어져서 나른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시각이었다. 오늘따라 저녁을 이른 시간에 만들어주질 않나, 내가 가끔가다 즐겨서 읽는 판타지 소설책을 나의 손 위에 쥐여주곤 휠체어를 끌어 방으로 데려다주질 않나. 나에게 무언갈 숨기고 있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묻는다고 나에게 답을 해주기나 할까.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역시나.












06

잠을 자기 전 간단하게 씻고서 평소와 다름없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는 이불을 걷어냈다. 나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끼워서 손쉽게 들어 올리곤 나를 침대 위로 앉혀주었다. 베개를 쿠션 삼아 나의 등에 받쳐주고 이불을 배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네가 건네주는 책을 받아안아 들면. 너는 무드등을 켜주고 방불을 꺼주었다. 그리고 방문을 닫기 전, 찜찜한 말 한마디를 남기고 문을 닫아버린다.


"눈 꼭 감고 자."


나의 머리 뒤로 느릿느릿하게 해가 져 간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나의 머리 위로 쏟아져내리던 주황빛은 점점 짧아지고, 짧아지다가 어둠이 찾아왔다. 무드등 앞에 놓인 탁상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저녁 9시가 다 되어간다. 그리고 방 밖은 조용하다. 단순히 기분이 안 좋은 거겠지. 다시 책을 읽어나가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07

거의 100장을 넘어가고 있을 때쯤이면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정신이 비몽사몽하고 하품이 늘어지게 나올 때. 종이 책갈피로 책 사이에 끼워 넣고서 책을 덮었다. 탁상시계 옆에 두꺼운 책을 놓고 다시 한번 더 크게 하품을 하면. 방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거실이 소란스럽다기 보다, 나의 방 바로 앞이 소란스럽다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 그 소란스러운 소리는 다시금 거실로 이동된 듯했다. 소리가 점점 멀어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멀어진 건 아니었으니까.

비몽사몽하던 머릿속이었는데.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눈앞이 또렷해지면서 흐리던 시야가 탁 트이고 말았다. 참을 수 없는 궁금증에 이불을 아무렇게나 걷어내고 힘겹게 낑낑거리며 휠체어로 몸을 옮기려고 할 때.


"∙∙∙∙∙∙."


거대한 총성이 울려 퍼진다. 이어서 방문 너머로 비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너 따위가 무슨 병신 같은 사랑 노릇을 하겠다고.












08

가슴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휠체어로 몸을 옮기려 했지만. 거대한 총성을 듣고 놀란 나는 커다란 소리를 만들어내면서 휠체어는 엎어지고 말았다. 바퀴가 빙빙 돌아간다.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휠체어와 박은 나의 옆구리를 부여잡고 이를 악물며 소리 없이 고통을 호소하다가 두 팔로 힘겹게 바닥을 기어 앞으로 나아갔다. 기고, 또 기어서. 그새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닦을 시간도 없다. 팔꿈치가 점점 빨갛게 부어오르다가 결국 방바닥에 쓸려서 살가죽이 까져도 나는 쉬지 않고 기어갔다.

굳게 닫혀있는 방문 앞으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내 기준으로 대충 다섯 걸음 정도 남아 보였을 때. 문고리가 돌아가고 느릿하게 문이 열렸다. 빛을 뽐내는 무드등 덕에 적당히 어두운 나의 방보다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더 어두운 거실 너머로 나의 방 문고리를 돌린 듯한 한 명은 삐딱하게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고, 다른 한 명은 온몸으로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검붉은 피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나는 다시 팔을 움직여 내 앞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빨간 건 보여주지 않던 너의 앞까지 열심히 기어갔다.

철컥∙∙∙∙∙∙.
철컥∙∙∙∙∙∙.


새까만 정장을 입었지만 속에 입은 하얀 와이셔츠는 짙은 붉은색으로 물들어버린 한 남자가 삐딱하게 서서 권총으로 본인의 허벅지 옆면을 탁탁 내리쳤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겹게 구역질을 참아가면서 피 웅덩이 속으로 나의 몸을 끌고 가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작게 기침을 하면 할수록 입 밖으로 진득한 피가 흘러나오는 너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빨간색, 싫어하잖아."


그런 너에게 나는 손을 뻗어서 붉은색이 묻어 나오는 어두운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여전히 목구멍으로 올라오려는 구역질을 꾸역꾸역 참아냈다.


"잘 가, 내 사랑."












09

나지막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는 나의 말을 들은 너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검붉은 색과 비릿한 향이 나의 코를 찌른다. 그럼에도 짧게 너의 볼에 입을 맞췄다. 네가 나에게 자주 해주던 행동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피는 울컥울컥 나오지만 꿈틀거리던 너의 몸짓은 멎었다.

삐딱하게 서서 나와 너를 지루하다는 듯 내려다보던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허벅지 옆쪽을 권총으로 탁탁 내리치는 걸 멈추고 쭈그리고 앉아 네가 완전히 죽었는지 확인하려는 듯 권총으로 너의 턱 끝을 툭툭 친다. 그대로 숨도 쉬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너를 확인하고서 총 끝에 묻은 피를 자신의 소매로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거 치워드려, 말아."
"뒷정리는 당신이 알아서 하셔야죠."


누가 죽여달랬나요.












10

네가 나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고 온갖 욕을 붓고 증오를 해도 상관없다. 너는 그저 우리 아버지와 같은 죽음을 맞이한 것일 뿐이다.

지옥 같던 날 너도 한통속이었던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니.













개인만족으로 써봤슴니당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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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에이셉  15일 전  
 헐 대박

 답글 0
  니닷!  43일 전  
 글 좋아용

 니닷!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jiwoo10101018  43일 전  
 필력 짱짱 이시다 ..

 jiwoo10101018님께 댓글 로또 1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유선비  44일 전  
 헐... 글 너무 좋아요 ㅜㅜ

 유선비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강하루  44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0
  정호시기  45일 전  
 헐 완전 대박대박~~~!!!!! 글 너무 조아용
 개인 만족아니구 전체 만족으로 바꿔야합니다!!

 정호시기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청포도피치  45일 전  
 청포도피치님께서 작가님에게 2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청포도피치  45일 전  
 알람울리자마자 왔습니다~!

 청포도피치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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