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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김태형/전정국] 숲이 짙으면 범이 든다 - W.깔깔마녀
[김태형/전정국] 숲이 짙으면 범이 든다 - W.깔깔마녀


!!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챕터마다 시점 변화 일어납니다
그러니 모두 헷갈리지 않게 주의 !!












게 누구없소?
내 말 좀 들어주오
가긍스런 내 말 좀 들어주오​













깊고 으슥한 곳에는 위험이 숨어 있기 마련
깔깔마녀






















Chapter 1. 곡두​​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



여주는 가만히 있는 걸 참지 못하는 소녀였다. 땅에 끌리도록 긴 한복을 입었음에도 달리기 편하도록 폭넓은 치마를 한 손에 움켜쥐고서 집 주변을 뛰어다니기 바빴고, 어머니의 심부름에도 머리에 짐을 이고서 커다란 호기심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결국 제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심부름을 해내는 바람에 간혹 제발 다른 길로 새지 말라며 어머니께 혼이 나기도 했었다.



이런 여주를 탐탁지 않아 하던 아버지는 여주에게 조신하게 지내라고 엄격히 혼을 내도 쉽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여주가 9살이 되어서야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깨달은 이후에는 그런 여주를 포기하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닌. 오히려 여주의 손을 붙잡고 산속에 들어가 사냥을 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물론, 심히 활발하고 활동적인 여주는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의 뒤를 잘만 따라다녔고. 더 나아가 사냥의 감을 익혔을 때엔 아버지와 동행을 하지 않더라도 홀로 산속에 들어가서는 사냥을 하고 돌아온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사냥에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활발한 만큼 욕심도 많았던 여주는 사슴이나 토끼와는 달리 멧돼지나 곰, 범과 같은 힘이 센 동물들도 사냥하고픈 마음에 엽총을 들고 커다란 바위 뒤에 숨어있다가 산속을 헤매는 멧돼지를 발견하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은 멧돼지를 향하지 않고 아쉽게 멧돼지를 빗겨 지나가는 바람에 총소리를 들은 멧돼지는 자연스레 여주를 향해 달려왔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멧돼지를 향해 엽총의 방아쇠를 몇 번 더 당겼지만. 당황해서 그런지 총알은 모두 빗겨나갔고. 빗겨나가는 만큼 멧돼지와 여주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만 갔다.



결국 그대로 가만히 서서 방아쇠만 당기고 있다간 그대로 멧돼지한테 들이받혀서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여주는 급히 사냥을 위한 짐들이 담겨있는 보자기를 품에 대충 껴안고 산을 내려왔지만. 내려가던 도중 발목을 삐끗하는 바람에 산에서 구르고 말았다. 워낙 튼튼한 몸을 소유하던 여주였던지라. 구른 것치고는 생각보다 심히 다치지 않았던 덕에 발목에 약초를 바르고 붕대를 감은 정도로 끝났지만. 한동안 여주가 그렇게 좋아하고 즐거워하던 사냥은 못 하게 되었다. 그저 매일같이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발목에 부상을 입은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자, 아주 조금은 절뚝거려도 걷는 것에 지장은 없을 만큼 여주의 발목은 눈에 띄게 많이 호전되었다. 아버지는 여주의 발목 상태를 보고서 조금 더 나아지면 그때 어릴 적처럼 산에 같이 올라가 사냥을 하자며 약속을 했다. 당연히 그 약속에 절로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고서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여주였다.



하지만 그날 아버지는 노을이 지고, 해가 완전히 몸을 숨기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라면 늦어도 노을이 지기 직전에는 빈손이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였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밝은 달과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워도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심히 걱정을 하던 여주는 절뚝이는 발목을 붙잡고 집을 나섰다. 뒤에서 늦었으니 가지 말라는 어머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여주는 산속에서 돌아오지 않을 아버지를 두고서는 편히 자리에 누워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산 주변에 굴러다니는 두꺼운 나뭇가지를 지팡이로 삼고 작은 양초를 들고서 산을 올랐다. 부엉이가 울고, 산짐승이 어슬렁 돌아다니는 어두운 하늘 아래 희미한 빛을 뽐내는 양초 하나 들고서 아버지를 찾기 위해 가만두지 못하고 빠르게 움직이던 여주의 두 눈동자는 불안함에도 안심으로 바뀌었다. 집을 나설 때 보았던 옷차림 그대로 크게 다치지 않은 아버지가 여주의 이름을 작게 부르며 다가왔다.






"이 밤에 산속엔 왜 온 것이냐?"

"... 아버지."






여주는 산바람에 위태롭게 생명을 이어가는 양초로 아버지의 모습을 비추자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집을 나설 때 입었던 옷에는 커다란 생채기는 없지만 흙으로 얼룩이 졌고, 항상 강해 보이기만 하던 아버지의 듬직한 표정은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약하게 보였다. 금방이라도 작은 눈물 한 방울을 흘릴 것처럼 서글픈 목소리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냐는 아버지의 물음을 부정할 수 없던 여주는 홀리듯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절뚝이는 발목을 가지고서 다시 산에 올랐다.



하지만 아버지의 뒤를 따라 오른 산언덕에는 커다란 나무 뒤에서 사나운 눈을 하고 으르렁거리며 나타나는 범의 모습이 보였다. 여주는 범의 매서운 울음소리를 듣고 붙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을 잡아당겼지만. 아버지는 여주의 부름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여주는 앞에 범이 있다고 크게 소리를 쳤음에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온몸이 덜덜 떨려오기만 했다.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다가오는 범을 바라보기만 하는 아버지의 넓은 등에 커다란 위화감을 느낀 여주는 아버지의 손을 놓으려 했지만. 여주의 손을 놓지 않으려 꾹 붙잡고 있는 아버지의 손힘을 여주는 이겨낼 수 없었다.



결국 여유롭게 여주와 아버지의 주변에 어슬렁어슬렁 다가온 범은 맛있는 사냥감을 찾았다는 듯이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로 뜨거운 입김이 뿜어져 나왔지만. 식전에 눈으로 구경이라도 하는 듯 기다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날카로운 눈동자를 여주에게 고정하기만 했다.



여주는 살기 위해 발버둥이라도 치기 위해서 금방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어버릴 것 같은 아우라를 뽐내는 범을 공격할 수 있을만한 무기 같은 것이 없을까,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급하고 불안한 여주의 눈동자가 정착한 곳은 운 좋게 산길에 버려져 있는 낡은 창살도, 아무 짓도 안 하고 그저 주변만 맴돌면서 입맛만 다시는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범도 아니었다.



송곳니 사이로 침을 흘리며 입맛을 다시는 커다란 범의 뒤로 보이는,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동그란 무언가에 정착했다. 그것을 자세히 보았다. 처음엔 그저 커다란 돌멩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두 눈동자에 초점이 맞춰질수록 주변이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동그란 무언가의 정체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 아, 아아..."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는 아버지의 머리였다. 몸은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고 잔인하게 뜯겨져 나간 아버지의 머리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걸 봐버린 여주에게 혼란이 찾아왔다.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아버지가 진짜일까, 아니면 자신의 눈앞에 등장한 범 때문에 정신력이 흔들려서 보이는 그저 환각일 뿐인 걸까. 여주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범은 매섭게 으르렁 소리를 내면서 입을 크게 벌렸고, 두려움에 여주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아드득, 아드득.



잔인하고도 불쾌한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미치도록 고통스러웠고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힘겹게 뜬 눈에는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여전히 굴러다니는 원망스러운 아버지의 머리였고,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이곳까지 데리고 온, 굵은 눈물방울들을 뚝뚝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이었다. 여주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지금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힘없이 굴러다니는 저 머리가 진짜 아버지라는 것을. 그리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운 좋게 구조가 된 걸까, 싶었다. 고통스럽지도 않아서 이게 뭔 일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가히 평범하지는 않았다.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여전히 여유로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범은, 아니 폭넓은 짙은 남색의 두루마기를 입은 한 남성이 입가에 묻은 붉은 피를 엄지로 훑어내며 힐끗 여주를 바라보고서 다시 입가의 붉은 피를 닦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네 아비가 한 걸 봤겠지."

"... ..."


"이제 네가 나의 시중을 들 거라."



새 먹이를 찾기 전까지.​






















Chapter 2. 걸견폐요​
: 선악을 가리지 않고 자기 주인에게 충성함을 이르는 말​


처음엔 이 모든 게 믿기지 않았다. 갑자기 멀쩡해진 발목과 대뜸 자신의 시중을 들라는 인간의 모습을 한 범과 마치 아버지와 내가 역할을 교대한 것처럼 아주 조금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아버지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이 믿기지 않았다. 때문에 범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곡하기도 하고, 바닥을 내리치면서 안타까운 아버지와 나의 죽음에 서러움이 북받쳐서 서글프게 통곡을 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짜증스럽기만 했는지. 나무에 기대어 앉아 나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던 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울기만 하면, 네 아비의 곁으로 쉽게 돌아가진 못 할 거다."

"... ..."

"돌아가고 싶다면 가만있지 말고 어서 네 아비가 했던 것처럼 내 시중을 들어라."






하루 온종일 울기만 해서 부운 눈가가 점점 아파질 때쯤 뒷짐을 지고 어슬렁 돌아다니며 여유로이 입을 열던 범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느긋하게 움직이던 발을 멈춰 세워서는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시원하면서도 차가운 산바람이 나와 범의 볼을 스쳐 지나간다. 잔머리가 나의 볼을 간지럽혔지만, 그건 안중에 조금도 들어오지 못했다. 여유로운 표정은 가졌어도 한 번도 미소 따위 짓지 않던 범은 바람에 살랑이는 두루마기의 옷무새를 여매면서 내게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어 작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나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 아니면 혹시 내 옆에 더 오래 있고 싶어서 일부러 시중을 들으려 하지 않고 울기만 하는 것이냐."

"... ..."

"그런 거라면 칭찬을 해줘야 할지, 혼을 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구나."






일부러 나의 신경을 긁으려는 듯한 어투로 말하는 범의 모습에 나는 악에 받쳐 눈물이 차올라도 울지 않으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주먹을 꽉 쥐고 범의 두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하지만 오히려 나의 이런 반응이 만족스럽기라도 한 듯. 범의 입꼬리는 더욱 올라갔다. 곧이어 나와 시선을 맞추느라 굽히고 있던 몸을 일으키면서 그게 아니라면, 어서 새 먹이를 찾아오거라. 라고 말하는 범의 말을 들은 이후부터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서글피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범과 내가 있는 산에 누군가가 올라올 때면 서글피 눈물을 흘리면서 낯선 이에게 동정을 얻다가 범에게 인도를 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으나. 생각처럼 쉽게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위화감이 가득한 낌새를 금방 알아차렸고, 그 낌새를 단순하게 넘기지 않았다. 지레 겁을 먹고 재빠르게 산에서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범은 능글스러운 말로 나의 신경을 긁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항상 악에 받쳐서 더 서글피 눈물을 흘리며 나의 존재를 발견하고 동정을 해주기 위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범의 먹이가 되도록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범의 시중을 들면 들수록 아버지처럼 범에게 충성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나와 아버지의 사체를 찾고서 위태로운 모습으로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곡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서도 마음을 아파하는 것이 아닌. 반대로 범의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 서글프게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에게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다가가는 나의 모습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에. 그걸 알면서도 범을 향한 나의 충성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일까. 어머니는 나의 서글픈 노랫소리에 금방 저의 눈에 보이는 눈에서 작은 눈물들을 흘려보내는 나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고, 위화감을 크게 느낀 어머니는 나와 아버지의 사체가 정리되자마자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어내면서 눈물을 삼키고 산을 내려가셨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신 건지.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이셨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여주야. 이런 어미를 죽도록 원망하며 용서하지 말아다오..."






긴 치맛자락을 말아올리고 다급히 산을 뛰어내려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범에게 충성을 다 하기 위해서, 인간을 홀리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 두 눈에서 진심으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왜일까, 왜 눈물이 나는 걸까.
범에게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새 먹이가 될 줄 알았던 어머니가 도망가서 그런 걸까. 아니면 어머니의 구슬픈 사과에 마음이 찢어질도록 아파서 그런 걸까.
아아, 왜 눈물이 흐르는지조차 모르는 걸 보면. 나의 마음은 이미 범을 향한 충성으로 사로잡히고 말았구나.



힘없이 터덜터덜 산을 돌아다녔다. 이런 나를 발견한 범은 뒷짐을 지고 나에게 다가와 왜 빈손으로 오냐며 물었다. 아마 어머니에게 동정을 얻어내기 위한 나의 발버둥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더러워진 나의 발만 내려다볼 뿐이었고, 범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의심하는 듯 말했다.






"이 정도면 일부러 나의 시중을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나를 굶어죽이려는 셈이냐."






범의 말에 나의 충성이 한순간에 짓밟히는 것 같았다. 억울한 마음에 흙으로 얼룩덜룩하게 더러워진 나의 발밑만 내려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번뜩 들어올리면서 범을 올려다보면. 범은 화난 표정도, 배신감을 가득 느낀 듯한 표정도 아니었다. 여전하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낸다.






"그런 생각도 할 줄 알고, 장하구나. 네 아비는 그런 생각조차 가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 ..."


"그게 아니라면, 네 아비만큼도 못하는 자식이구나."






어투는 변함없이 여유로웠지만, 창귀가 되어버린 아버지에게 홀려 범의 먹이가 되기 직전에 마주했던 범의 사나운 눈빛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도저히 그 눈을 올곧게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채 치맛자락을 두 손에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꽉 쥐었다.






"... 아, 아닙니다."






범은 며칠이 지나도 인간을 데리고 오지 않는 나의 모습에 화가 난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싸한 눈으로 나를 주시하다가 뒤를 돌아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범의 뒷모습을 보고 충성을 다 하지 못했다는 마음에 눈에 불을 켜고 먹이가 될 인간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두꺼운 나뭇가지에 앉아 불을 켠 듯 노란 눈동자를 가진 부엉이가 노래를 부를 때. 나는 저 멀리서 천천히 지게를 메고 얇고 기다란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산을 내려가는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 나무에 기대어 앉아서 다리를 끌어안아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훌쩍였다.






"아아, 누구라도 좋으니 내 말 좀 들어주오."

"... ..."

"가긍스런 내 말 좀 들어주오."






구슬픈 목소리를 듣고 나를 바라본 지게를 멘 청년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나와 청년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구슬프게 말했고, 곧이어 청년은 나의 눈물을 굳은살이 가득 박힌 손끝으로 서투르게 나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 무슨 일 있으십니까?"






말하는 입 사이로 미소가 새어 나오려는 걸 애써 꾹꾹 눌러 삼켰다.
드디어 나의 충성을 몸소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Chapter 3. 창귀가 되다


어두운 밤 하늘에 빼곡한 별들의 곁에 밝은 달이 자리를 잡고 아름다운 빛을 자랑하는 밤. 평화로운 느낌이 들게 만들어주던 새들은 이미 잠자리에 들어갔고, 새들의 자리를 대신하여 풀벌레들과 산벌레들이 한창 활동하는 어두운 산속에서 자칫하면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깨를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는 느낌이 강하게 들 만큼 커다란 지게에 두꺼운 나무 통을 꽉꽉 채워서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의 달리다시피 산을 내려갔지만. 까슬까슬한 재질의 나무에 기대어 앉아 금방이라도 꺾이기 직전의 꽃처럼 가냘프게 우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대충 육안으로만 봐도 내 몸에서 반만 떼어내면 딱 저 덩치가 나올 것만 같을 정도로 작은 체구를 가진 여인의 모습은 위태롭고 서러워 보였다. 이 깊은 산속에서 길이라도 잃은 걸까. 어두워진 산속이라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오기 전에 동네 사람에게 얻었던 횃불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보는 나의 마음까지도 미어질 정도로 구슬프게 울었다. 아니, 곡하는 것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얼마나 울은 것인지.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 되었고, 눈가는 붉어진 상태였으며, 목소리까지 헐떡거리는 바람에 멀리서 볼 때보다 더욱이 위태로워 보였다. 아까는 꺾이기 직전의 한 송이의 꽃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이미 줄기가 뚝 끊겨서 호흡을 헐떡이는, 아름다우면서도 흐릿해져가는 생명줄을 이어가는 꽃 한 송이처럼 보였다.



그녀는 나무를 캐러 다니느라 더러워진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이 억울한 자신의 이야기 좀 들어달라며 곡했다. 미약하게나마 들리는, 오랫동안 울은 탓에 쇠약해져서 자그마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게를 바닥에 내려두고 그녀의 앞에 양반다리를 하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편히 이야기해 보십시오."






나의 말에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눈물로 범벅이 된 볼을 손바닥으로 벅벅 닦아내면서 숨을 헐떡였다. 바지춤에 걸어두었던, 산을 내려오면서 마실 마지막 남은 물이 담긴 호리병의 뚜껑을 열어서 소녀에게 건넸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이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던 것입니까? 내가 이토록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아량 넓은 사람이었던가. 지금 내 갈 길도 바쁜데, 낡고 좁은 집에서 불도 지피지 못하고 땔감을 기다리고 있을 어린 누이와 아우들, 그리고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텐데. 어째서 나는 이리도 구슬프게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앞에 앉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인가. 참으로 이런 나의 모습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어쩌면 이 여인에게 홀려버린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저절로 들기 시작한다.



여인은 흙으로 더러워진 나의 손을 그 작은 두 손으로 덥석 붙잡더니 정말 자신을 도와줄 수 있냐며 작은 희망에 가득 찬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여인은 나의 두 손 위에 포갠 자신의 손등 위로 이마를 대면서 엎드리고 앉아서는 또 눈물을 한 방울, 두 방울 흘리기 시작하는 것인지. 나의 손등 위로 뜨거운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떨려오는 가냘픈 목소리로 말한다.






"그럼, 나 좀 따라와 주시게."






여인은 우느라 상기된 붉은 볼 언저리를 손등과 손바닥으로 벅벅 비비며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리도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일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지게를 지고 이곳까지 내려오기 위해서 지팡이로 쓰였던 얇은 나뭇가지를 한 손에,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서 앞을 밝혔다. 여인은 나의 옷깃을 작은 손으로 꾹 붙잡고 길을 안내했다.



처음에는 복잡하고 어두운 산속에서 길을 잃어 두려움에 우는 줄 알았건만. 여인과 대화를 나눌수록 왜인지 꺼림직했지만. 그건 단지 기분 탓이니라고 생각하며 뒤따라갔다. 그저, 누군가가 크게 다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끌림에 두려운 마음을 붙들고 따라가 보면. 보이는 건 나무 뒤에서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거리를 발견한 것마냥 흥분한 듯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여주고 뜨거운 입김을 내뱉으면서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오는 호랑이가 보였다. 횃불을 들고 있는 손과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손에 점차 땀이 차기 시작하면서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고, 이곳까지 나를 데리고 온 여인은 나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구슬프게 울던 위태로운 여인은 어디로 사라지고 안 보였다. 이미 눈물은 다 그치고 사악한 미소를 머금은, 품 안에 가시를 숨겨놓은 새빨간 장미와 같은 모습을 한 여인만이 남아있었다. 여인은 나지막이 말했다.






"그대가 정녕 나를 돕고 싶다면."

"... ..."

"내 부탁 좀 들어주시오."






한치의 망설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이미 그녀에게 홀려버리고 만 것일까.







"... 기꺼이."






횃불과 얇은 나뭇가지를 꽉 붙들다 못해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지고 팔뚝에 핏줄이 온갖 쏟아났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누이와 아우, 어머니는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단지 다가오는 죽음에 모든 걸 놓아버린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마냥 횃불과 나뭇가지를 힘없이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여인은 이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이 나에게 건네받았던 호리병에 담긴 물을 횃불 위로 쏟아부었다. 치이익, 기름을 묻힌 마른 수건 위로 활활 타오르던 불은 힘없이 꺼졌다.



그 누구 하나 몰랐다.
아니다, 어쩌면 이 여인만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면 안 될 것을 사랑해버리는 바람에.
바보같이 나의 목숨까지 내어주게 되리라고.












> 분량 폭발,,
어중간하게 끊어서 상하편으로 나누고 싶진 않아서 억지로 한 편으로 만들어내다 보니 홀홀..

그리고 몬가 애매하게 옛시대 단어를 써내는 것보다 아싸리 현대어의 비중을 더 크게 섞어 쓰는 게 그나마 몰입도가 덜 깨지지 않을 것 같았달까용,,
옛시대에 아주 약한 마녀임니다 ..

또 보다보면 `이게 가능하다고??` 하는 내용이 꽤나 보이실텐데(창귀의 눈에는 범이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거나, 홀려서가 아닌 제 발로 창귀가 된다거나...) 이건 단순히 퓍션이니까요 .
근데 사실 이렇게 우겨도(?) 제가 창귀로 돼 본 적이 없어서 이게 맞는 건지 아리까리합니다요,,



+) 괜히 찔려서 추가하는 거지만,

이게 잘 표현됐을런지 모르겠네용,, 잘 안 담긴 것 같기도 해서 구냥 이런 관계를 나타내고 싶었다~~ 이말임니다,, 허허

++) 글이 다 오른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다시 올림니다ㅠㅠ

+++) 컴맹은 결국 포기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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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유선비  62일 전  
 재밌어요.

 유선비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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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정  63일 전  
 우아.. 글 넘 좋아여ㅠㅠ 꾹이 넘 착하자나여ㅠㅠ 혹시 다음편도 있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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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닷!  64일 전  
 재밌어용

 니닷!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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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하루  64일 전  
 글 잘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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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시기  65일 전  
 이해력 부족인 저는 쵸큼 헷갈리지만 잘봤어용~~!!ㅋㅋㅋ 진짜 분량 폭발이네유ㅋㅋㅋㅋ♡

 정호시기님께 댓글 로또 2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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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포도피치  65일 전  
 알람울리자마자 왔습니다!

 청포도피치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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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우˚₊·—̳͟͞͞♡  65일 전  
 해⠀우˚₊·—̳͟͞͞♡님께서 작가님에게 3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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