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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600D] 러브 아카이빙 - W.뻣
[600D] 러브 아카이빙 - W.뻣
따땃한 기억들로 덥혔던 몸을 식힌다. 애정의 종점은 추락이었다. 꽤나 뜨거웠던 태양 아래 흘려댔던 땀이 하강하며 체온을 날렸고, 낙하산 없이 속절없이 내려가는 몸에 아려오는 눈을 꾸욱 감는다. 후각과 청각이 예민해진다. 그렇게 땀을 흘렸는데도 걔의 체취는 흘러나왔다. 끝까지 파고드는 복숭아향이 역겨웠다.



애정은 찬란했고 추락은 비참했다.

손 끝을 파고드는 검은 실은 팽팽했고 심장은 주름졌다.





*





- 러브 아카이빙 LOVE ARCHIVING







*



걔는 늘 복숭아향 섬유향수를 뿌렸다. 알레르기도 없는 주제에 복숭아는 입에도 대지 못하면서, 향수만큼은 꿋꿋이 복숭아향을 고집했다. 미친놈, 하고 고개를 젓다가도 금방 코를 걔한테 박았다. 순하게 생긴 얼굴에 꽤나 잘 어울리는 달콤함이었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아졌다. 한껏 향을 음미하다 눈을 뜨고 희멀건 얼굴을 흘끗 쳐다보곤 걔에게서 떨어졌다. 앞에 사람 하나 두고 한 손으로 휴대폰 하는 놈. 그게 걔였다. 일부러 틱틱대며 의자를 발로 차도 걘 곁눈질로 슬쩍 쳐다보곤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시선을 폰으로 돌렸다. 늘 하는 건 정해져 있었다. 유행지난 테트리스 게임. 집중해서 게임을 하는 녀석을 보곤 나도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SNS에 접속하곤 바로 옆에 있는 사람 계정을 찾아 메시지를 누른다. 2일 전 활동. 손가락으로 투둑투둑 타자치다 그만뒀다. 스크롤을 올리면 늘 나의 연락이 대화의 시작이었고, 단답 몇 번 오간 후 대화는 끝났다. 물론 끝도 나였다. 센스있게 하트라도 눌러줄 법 한데 늘 안 눌렀다. 그게 걔였다.







난 늘 애정을 갈구했고, 걘 늘 애정을 쳐냈다. 비록 가식일지언정 생글생글 웃으며 편을 만들고 다니던 나와 달리 걘 늘 혼자였다. 다가오는 이들, 다 쳐냈다. 내가 걔한테 이렇게 관심 가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오기였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자만심에서 비롯된 오기였다. 몇번이고 매달려서 SNS 아이디를 얻었다. 연락해도 며칠이고 읽지 않았다. 분명히 현활인데 답은 없었다.



"야, 너 왜 내 다렉 씹냐?"

"아. 미안."



그게 끝이었다. 다시 휴대폰에 고갤 처박곤 테트리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객기였다. 진득히 옆에 눌러앉아 계속 말 걸었다. 걔가 욕지거리라도 내뱉을 때까지, 계속. 질릴 때까지, 계속.



"야"

"야아"

"뭐해"



끊임없는 혼잣말. 근 한 달을 바쳐 가까워졌다. 아니, 나 혼자 착각하는 걸 수도. 그래도 이젠 무시하는 빈도가 줄었다. 손 붙잡고 매점도 끌고 가고, 공만 보면 미쳤던 내가 축구를 버리고 걜 선택했다. 옆에 털썩 주저 앉아 몇 번이고 같은 얘길 반복했다. 그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걘 레인보우 샤베트를 좋아한다는 것. 겨우 그게 다였다. 나름 장족의 발전이라 생각했다. 어느새 걔의 곁엔 내가 있었고, 내 곁엔 걔가 있었다. 한 때 같이 다녔던 애들이 몰려와 말을 걸면 걔는 나와 간신히 주고받던 몇 마디를 끝내 맺지 않은 채 다시 휴대폰을 쳐다봤다. 나는 또 생글생글 웃으며 애교부렸다. 또 등짝 맞으며 무리에 휩쓸려 나갔다. 슬쩍 고개를 돌려 뒤돌아본 끝에 눈이 마주쳤다. 몇 초가 지났을까, 걔가 먼저 고개 돌렸다.









*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날이었다. 헛구역질은 목끝까지 차올랐고 눌러 담은 숨은 눅진하게 습기를 머금었다. 억지로 끌고 간 매점에서 포카리 하나 산 걔는 체육 시간에 멀쩡한 다리가 아프다며 스탠드에 앉았다. 한심하게 쳐다보던 선생님을 조금이라도 신경 쓰지 않는 듯 앉아 책을 꺼냈다. 습기에 눅눅해진 책장을 넘기며 집중하는 모습이 마치 겨울 같았다. 고개를 돌려 공을 굴린다. 땀 뻘뻘 흘리며 공 찬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듯 폐가 쪼그라든다. 먹먹해지는 목을 붙잡고 스탠드 위로 올라선다. 인기척에 눈을 위로 올린 걔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포카리를 내게 건넨다.



"너 주려고 샀어."



한 마디를 곁들여 건넨 그 포카리가, 왠지 모르게 소중했다.





꺼져가는 태양의 불이 산에 닿았다. 학습실에 앉아 펜만 돌리고 있다. 문제집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앞 장만 손때가 묻은 문제집을 풀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넘긴다. 넘어가는 수학 문제에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간다. 넘어가는 문제수 만큼 끊임없이 파고드는 불안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보같이 한숨만 푹푹 내쉬며 계단에 주저 앉아 져가는 미래를 관찰했다. 저어기 있는 태양이 지면 나도 지겠지, 이런 시답잖은 상념에 휩싸여 생각만 늘어져 갔다. 그때 차가운 무언가가 볼에 닿았다. 아, 하고 소리를 내면 누군가 옆에 앉는다. 그리도 차갑던 걔였다. 그런 걔가 건넨 건 복숭아 라떼였다. 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늘 쿨워터향 날 것 같은 놈이 분홍분홍한 복숭아 라떼 들고 와 건네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고마웠다. 뚜껑을 따고 들이켰다. 평소엔 입에 대도 않던 복숭아 주스였지만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료인 마냥 쉬지 않고 들이켰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목울대에 계속 쳐다보던 걘 시선을 자신의 발로 내렸다.



"왜 그러는데."

"그냥, 다 불안해서."

"다 던져버려. 그게 제일 편해."



어찌 보면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괜찮게 들렸다. 그렇게 스며들었다. 그날부터였다. 내가 복숭아 라떼만 마시게 된 날이. 매점 갈 때마다 내 손엔 복숭아 라떼가 들려있었고, 가끔은 걔 손에도 들려있었다. 복숭아에 미쳐살던 시절이었다.

걔가 복숭아향 섬유향수를 뿌리기 시작했던 것은 그맘때였다.









*









걔는 무책임했다. 웬일인지 한 번 날 끌어안아주더니 떠났다. 목이 탔다. 그 자리엔 걔가 없었다. 하얀 와이셔츠 목 끝까지 다 잠그고 앉아 테트리스 하고 있어야 할 걔가 없었다. 사람이 달라지는 것엔 이유가 있었다. 낮게 욕을 내뱉었다. 무정하게 떠났고, 심장을 갈가리 찢고 떠났고, 아프게 떠났다. 끝까지 그랬다. 이유는 꾸욱 넣어둔 채 행동만 옮기고 갔다. 차라리 말을 했더라면, 말이라도 하고 갔더라면. 끊임없이 원망하며 가슴에 추억들을 욱여넣었다. 얼마 되도 않는 추억이었지만 아팠다. 쓰리도록 아팠다. 추락이었다. 절멸한 세상은 움직일 가치가 없었다.



- 애정 때문이었어.



남은 것이라곤 그 다음날 보낸 고작 한 문장의 메시지. 뭣같은 애정 때문에 떠났단다. 고작 우정 때문에 떠났단다. 각설하고 본질만 적어 놓은 그 문장은 걔를 대변했다. 끝까지 무책임했다.






걔가 가끔 덮었던 담요에서 복숭아향이 가시질 않는다.
여름이 끝나고 돌아온 9월에도,
복숭아향은 코 끝을 맴돈다.











***



600일, 정확히는 628일동안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글에 도움을 주신 한련 님, 규탄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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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유선비  64일 전  
 축하드려요.

 유선비님께 댓글 로또 1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유백랑  65일 전  
 언제나 응원해요 벗님 600일 너무나 축하드려요♥

 유백랑님께 댓글 로또 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엥어쩌라고  66일 전  
 항상 건필하시고 600일 너무너무 축하드려요 ❤❤

 엥어쩌라고님께 댓글 로또 2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션령  66일 전  
 션령님께서 작가님에게 60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달시°  66일 전  
 달시°님께서 작가님에게 5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달시°  66일 전  
 벗밈,,진짜 천재ㅜㅜಢ‸ಢಢ‸ಢ
 여운이 너무 길게 남아서 1분 동안 멍 때린 것 같아요 곱씹어 볼수록 좋구 또 좋아요 ლ(´ ❥ `ლ)

 달시°님께 댓글 로또 1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고세히  66일 전  
 고세히님께서 작가님에게 20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라임맛아리  66일 전  
 라임맛아리님께서 작가님에게 1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라임맛아리  66일 전  
 너무 좋아ㅠㅠㅠ 너무 좋아요ㅠ작가님♥

 라임맛아리님께 댓글 로또 1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북부대공유중혁  66일 전  
 북부대공유중혁님께서 작가님에게 39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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