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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전정국] 네가 있던 미래에서 - W.깔깔마녀
[전정국] 네가 있던 미래에서 - W.깔깔마녀












네가 있던 미래에서
깔깔마녀












겨울 이래로 가장 추운 겨울이란다. 한파가 금방 찾아왔다. 강한 추위 덕에 12월을 향해 달려갈 때쯤 어느 순간 집 근처에 있는 하천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하천 아래로 추위를 이겨내지 못해 죽어버린 물고기 몇 마리가 배를 뒤집어 깐 채로 얼음 아래에서 동동 떠다녔다. 다리 위에서 그런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누군가가 쉽게 구해줄 수 없는, 반대로 쉽게 나올 수도 없는 얼음 밑에서 서서히 숨이 멎었으면 했다. 그래, 너는 그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고통스럽게 숨이 멎어갔다면. 나는 차디찬 얼음 밑에서 고통스럽게 숨이 멎도록 노력해볼게.



무작정 집으로 돌아와 교통카드와 현금 몇 장만 패딩 주머니에 구겨 넣고서 나왔다. 핸드폰으로 기차표를 예약하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창문 너머로 건물들과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필터라도 씌운 듯. 겨울 특유의 흐리멍덩한 풍경이었다.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도착한 건지 캐리어와 커다란 배낭을 메고 기차표를 끊는 사람들과, 끊은 기차표를 들고 어느 기차를 타야 하는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금액에 맞춰 기사분께 현금 몇 장을 쥐어드리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자동차에서 내렸다.



차갑디 차가운 겨울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몸이 저절로 웅크려지는 추위였다. 롱패딩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넣고 핸드폰으로 미리 예약해두었던 표를 매표소에서 찾아 받고 금방 기차에 올라타기 위해 어느 기차에 탑승을 해야 하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걷다 보면. 어느 할머니와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기차표만 보면서 걷던 터라 내가 앞을 잘 못 보고 걸어서 부딪친 것 같아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려던 찰나. 할머니는 나의 주머니 안으로 무언가를 우악스럽게 쑤셔 넣고서 제 갈 길 가셨다.



주머니를 뒤져서 꺼내 보면 동그란 회중시계였다. 손바닥에 딱 들어맞는 아기자기한 크기면서도 햇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햇빛을 받지 않으면 은빛으로 빛나는 오묘한 느낌을 주는 시계였다. 이걸 왜 줬나 하는 궁금증 때문에 뒤를 돌아보면 그새 할머니는 온 데 간 데 안 보였다. 찜찜하지만, 상관있을까. 어차피 곧 있으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텐데.



손님들을 위해 난방을 틀어놓은 기차 안으로 들어섰다. 얼굴이 금세 건조해져 쩍쩍 갈라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내부가 따듯했다. 표에 적혀있는 숫자에 맞게 좌석에 앉아 창문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고 사람들 구경을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출발한다는 안내 음성과 동시에 문이 닫히고 기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 택시를 탔을 때 보다 창밖은 빠르게 움직였다. 다리 위를 달리다가도 금방 터널 안으로 들어와 기내가 깜깜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도. 몇 초만 있다 보면 다시 또 창밖이 환해지면서 작고 커다란 건물들을 재빠르게 지나갔다. 더워서 벗은 롱패딩의 겉표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다가 문득 방금 전 할머니가 주머니에 쑤셔 넣고 가셨던 회중시계가 떠올라 주머니를 뒤적여 시계를 꺼냈다.






"... ..."






뚜껑이 덮여있는 시계를 엄지손가락으로 한 번 쓸어내리다가 열어보았다. 1초, 2초, 3초. 멍하니 초침이 돌아가는 걸 구경했다. 60초가 지나 분침이 째깍 움직였다. 이 시계를 돌려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번엔 내가 너를 구해줄 자신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고개를 푹 숙이며 작게 웃었다. 나이 먹고 이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원. 순수한 아이들이 할만한 상상을 하다가도, 기차를 내리면 이제 정말 마지막 인생이니 그전에 재미 삼아 시침을 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중시계 옆면에 톡 튀어나온 것을 돌려 시간을 조절했다. 3에 위치해 있던 시침이 나의 손짓으로 인해 2로, 1로, 12로 빠르게 돌아감과 동시에 기차는 다시 한번 더 또 다른 터널로 들어갔고 기차의 내부가 어둡게 변하자마자 나는 정신을 잃었다.











네가 있던
/
미래에서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정신이 들었다. 뭐지, 터널 안에서 사고라도 났던 걸까. 큰 사고에 예상보다 빠르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걸까. 아니면 누군가 기차를 습격해서 불운하게 흉기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 걸까. 어떤 가정을 내세워도 결말은 죽음이었지만, 놀랍게도 미약하게 정신이 들은 나의 손가락은 꿈틀거릴 수 있는 상태였다. 검지를 두어 번 더 꿈틀거렸을까. 내 몸이 움직인다는 것에 용기를 얻어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 익숙한 책상, 이불, 창문, 블라인드, 냄새. 어느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사물들은 내가 아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가장 행복하기도 하고, 가장 끔찍하기도 했던 학창 시절의 그 모든 것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심지어 자취를 하던 나라서 평상시에는 절대 듣지 못하던 엄마의 아침 식사 준비 소리까지. 이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겠으면서도. 아주 조금의 기대를 하게 되었다.






"... 전정국."


내가 정말 과거로 돌아오게 된 거라면.
그런 거라면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본 건 핸드폰이었다. 이게 정말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이 과거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핸드폰 메인 화면에는 기차를 타고 나의 마지막을 장식하러 가던 날로부터 딱 3년 전. 동시에 사고가 일어나기 딱 일주일 전.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번엔 내가 너를 구해주리라고. 절대 다시 피를 보진 않을 거라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두 번은 보기 싫었다. 그 끔찍했던 기억을.



방 문을 거세게 열어젖히며 밥 먹으라고 외치는 엄마의 말에 늦었으니 대충 매점에서 때우겠다고 말하고서 방문에 걸려있던 교복으로 급히 갈아입고 학교를 향해 달려갔다. 오랜만에 맡는 새벽 냄새에 심장이 뻥 뚫리는 것 같으면서도. 3년 만에 너의 얼굴을 다시 볼 생각을 하니 저절로 미소가 띠어졌다.



교실을 박차고 들어갔다. 달려온 탓에 앞머리는 휘날리고 호흡은 가팔랐으며 심장은 크게 쿵쾅쿵쾅 뛰었다.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아무런 상관없었다. 그냥, 그냥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삐뚤은 자세로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둘러보는 너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으니까.



비어있는 너의 옆자리에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자리에 앉아 잘 지냈냐며 물었다. 몸은 건강하고,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속사포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 채, 그저 너무 반가운 탓에 나도 모르게 너에게 몇 년 만에 주인을 다시 만난 강아지처럼 행동하고 말았다. 그 덕에 당혹스러움과 위화감이 가득하다는 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나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아주 늦게 깨달았다.






"누가 보면 나 되게 오랜만에 만나는 줄 알겠다. 우리 어제도 봤잖아, 바보야."

"아, 맞다. 미안... 내가 너무 이상하게 굴었지. 그냥 오늘 잠자리가 험해서 그랬나봐."




"하기야 너는 해몽 같은 거 잘 믿곤 했으니까."






다행히 전정국은 나를 이상하게 보던 눈빛에서 금방 흥미를 잃고 아침이라 졸려운지 핸드폰을 보며 하품을 크게 쩍 했다. 과거에 해몽이나 사주 같은 것을 잘 믿었던 나에게 아주 조금의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편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후에는 끔찍한 과거가 다시 시작될 테니까.



아침 조례를 하면서 핸드폰을 반납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집에 두고 왔다는 거짓말을 하고는 주머니에 급하게 넣고 왔던 회중시계를 만지작거리면서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혹시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당연하게도 알 수 있는 건 없었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 역시 발견할 수 없었다. 뭐, 이게 당연한 결과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주머니에 있는 회중시계의 겉표면을 엄지로 쓸어내렸다. 일주일 후에 너를 구해내서 이대로 행복한 나날들이 반복됐으면 좋겠다. 마음속 깊이 희망했다.



과거의 시간과 똑같이 진행되었다. 과거와 같이 우리는 여전히 티격태격 장난도 치고 다투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소중한 친구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서로의 이름을 답하는 것이 당연하던 그 시절 그때처럼.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심심하면 상대방에게 사소한 시비를 걸고, 시비를 받은 한 사람은 웃으면서 그 시비를 되받아쳤다. 슬리퍼 한 짝에 모래알이 들어가서 훌훌 털어내고 있으면 뒤에서 놀래키는 바람에 흰 양말은 금세 더러워지기 마련이었고, 체육을 마치고 교실로 올라가는 도중에 전정국이 늦게 도착한 사람이 점심시간에 매점 쏘기 같은 내기를 갑자기 거는 바람에 나는 그때와 같이 역시나 내기에서 져서 지갑을 열게 되었다. 사소한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간간이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사소한 대화거리를 나누다가 잠에 드는 것의 반복이었지만. 현재는 잠들기 전 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인터넷으로 회중시계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 삼 일 정도는 밤마다 핸드폰이나 컴퓨터 화면만 뚫어져라 봤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인터넷을 돌아다녀도 조금도 발견되지 않자, 결국 익명 게시판에 회중시계에 대한 궁금증을 올려보기로 했다. 답변은 눈에 훤히 보였다. 망상 그만하고 현실을 살아가라는 둥, 어느 소설 내용 베껴 온 거냐는 둥. 그래도 이 회중시계를 아는 사람 한 명쯤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아주 조금의 희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적어내려갔지만. 등록 버튼을 누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결국 임시저장을 눌러두고 잠에 청했다.



이제 그날까지 4일밖에 남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 도로 주변에 가서는 안 됐고, 어떻게든 전정국이 축구를 하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그래, 그날은 전정국이 축구를 하는 걸 막아야만 한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느낌상 과거의 나보다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 내가 더 자주 웃는 것 같았다. 전정국이 어떤 시비를 걸어도 미간은 찌푸리지만 입은 항상 웃고 있었고, 재미없는 그저 평범한 말을 해도 나의 입은 역시나 웃고 있었다.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너와 다시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날이 다가온 건지.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 일주일만은 조금만이라도, 1분 1초라도 느리게 흘러가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달력에 빨간 볼펜으로 크게 엑스 표시를 해두었던 날짜가 다가오자,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축구는 하지 말고 나랑 어디 놀러 가자는 나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축구를 하러 갈까봐. 그 생각에 머릿속에 떠오르고 말았다. 도로로 굴러간 축구공을 주우러 달려가다가 그만 커다란 트럭에 치이고 마는,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그 끔찍한 장면이.



모든 것은 그날처럼 똑같이 흘러갔다. 주말인 오늘, 나는 새벽까지 핸드폰과 컴퓨터를 보는 바람에 거의 12시가 되어야 눈을 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전정국에게 새벽에 카톡 하나가 와 있었다.




전정국
내일 4시쯤 축구할 건데
너 구경 올 거면 끝나고 밥 먹자​





과거였다면, 내가 과거를 몰랐다면 당연히 긍정의 답변을 보냈을 테지만. 오늘의 나는, 지금의 나는 달랐다. 나는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져만 갔다. 안 받는 건 아닐까. 벌써 운동장에 가서 축구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축이면서 이불을 쥐었다가 펴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보면. 너도 방금 일어난 것인지 잠긴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고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아, 아직 집이구나. 다행스러움에 저절로 한숨이 내쉬어졌다. 그것도 잠시 나는 다급히 말했다.






"오늘 축구 가지 마. 그냥 나랑 밥 먹자."

`뭐? 왜.`​

"나 4시 이후에 안 될 것 같아. 그러니까 그냥 나랑, 나랑 일찍 밥 먹자."






정말 형편없는 변명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지만. 너무 급한 나머지, 불안한 나머지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먼저 말이 튀어나갔다.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바보처럼 내 변명에 속아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너는 나의 변명에 밥은 나중에 먹어도 되는데 굳이 축구 약속을 취소해야 하냐면서 물을 줄 알았다. 정말 당연하게 그럴 줄 알았다. 나였어도 그랬을 테니까. 그러나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 말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응, 알았어.`​

"... 어?"






믿을 수 없었다. 되묻는 나의 말에 전정국은 알았다니까 왜,라며 되려 나를 이상하다는 듯한 말투로 물어봤다. 그의 물음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리고서 2시에 만나자는 나의 말에 전정국은 일어나는 듯 부스럭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알았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끊는다는 말에 그때 보자고 애써 당황한 걸 숨기며 대답하곤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전정국은 알고 있는 듯했다. 뭘 알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언가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이상한 회중시계를 가지고 있다는걸? 내가 이 시계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는걸? 사실은 내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 사람이라는걸?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냥 평소의 전정국과는 위화감이 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전정국이라면 이상한 소리 말라며, 벌써 잡은 약속을 무를 수는 없다고 끝까지 축구를 하러 갔을 텐데.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해졌지만. 이대로 계속해서 의심을 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불 속에서 부지런하게 나와 대충 준비를 했다.



아슬아슬하게 약속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나왔다. 집 앞에서는 전정국이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과거의 오늘 같이 갔던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날과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축구를 준비해야 했지만, 밥을 먹고 있었고. 축구를 한창 하고 있어야 했지만, 배부르게 밥을 다 먹고 나오는 우리였다. 하지만 벌써 너를 내가 살렸다고 생각하기엔 일렀다. 언제 갑자기 그때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그때는 내가 너를 제치고 달려가야 했으니까. 만만의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했다.



너와 같이 도로 주변만 간다면 나는 주변을 항상 경계했다. 무의식적으로 경계를 하게 됐다. 어디서 갑자기 트럭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하지만 금방 너와 같이 평상시처럼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하고. 인형 뽑기를 하면서 돈은 돈대로 다 날렸다고 화는 화대로 내고. 길거리에서 파는 간단한 먹거리를 사서 너의 손에는 컵 떡볶이를, 나의 손에는 피카츄 돈가스를 들고 해가 가장 높이 떠 있을 때보다 저녁이 되어서 한적해진 거리를 편하게 걸었다. 이때 사람들은 간혹 말하곤 한다. 방심은 금물이라고.



그렇다. 나는 방심하고 있었다. 너와 같이 있을 하루가 거의 다 끝나가니까. 오늘만 너를 살려두면 너는 이제 죽을 때까지 살아있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살렸다고 생각했다. 노을이 거의 져 가다 못해 하늘이 푸른색도, 붉은빛도 아닌 짙은 남색을 띠며 곧 어두워지게 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전정국이 마지막에 먹기 위해 남겨놓은 계란을 뺏어 먹으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다 먹은 피카츄 돈가스의 꼬치를 붕붕 돌리면서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를 하고 있다 보면. 한창 건물을 짓고 있던 것인지 얇은 벽과 대량의 철근들이 높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이 조금씩 흔들렸지만. 바보같이 나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해가 거의 다 져서 공사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퇴근하는 바람에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 사람이 단 한 명 없었기에 더욱이 조심해야 했다.



바보같이 그의 계란을 뺏어 먹었다고 놀리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 뺏어 먹은 게 뭐가 자랑이라고. 위에서 떨어지는 철근을 발견하지 못했다. 멍청한 나는 너를 죽음으로 이끄는 짓밖에 못 했다. 너의 손짓에 나는 뒤로 밀려나 엉덩방아를 찧었고 떨어진 철근 아래로 검붉은 피가 아스팔트 위에 흘러나올 때 나는 울부짖었다. 그렇게 너를 구해내겠다고 다짐을 해놓고서 나는 너를 죽이는 것밖에 못 했다.



무거운 철근을 낑낑거리면서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눈물 때문에 팔에 힘은 들어가지 않고, 절망적인 모습에 이 철근 아래에 깔려있는 사람이 네가 아니라 나였어야 했다는 또 다른 후회의 반복에 주저앉고 말았다. 저녁이기도 하고, 골목이기도 해서 아무도 없던 이 거리를 우연히 지나가던 한 사람이 다급히 구조대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정신없이 울고만 있다가 뒤늦게 나의 주머니에 있던 회중시계를 꺼내들었다.



그날, 회중시계를 받은 날, 호기심 삼아서 시침을 돌렸을 때 시간이 돌아갔던 것처럼. 그때처럼 시침을 돌리면 시간이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희망 줄이었다. 너를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방법, 최후의 방법이었다.






"... 왜, 왜 안 열리는 거야."






그러나 어젯밤까지만 해도 잘만 열리던 회중시계의 뚜껑이 열리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정신이 없어서 안 열리는 줄 알고 이 상황에 심호흡을 하면서 피 묻은 손으로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고 이성적인 마음으로 손톱을 세워 뚜껑을 열려고 했지만.






"제발, 제발 열려라. 제발..."






제발!!!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려대면서 회중시계를 부숴라 당겼다. 그렇게 여러 번 시도를 해보다가 나는 아주 작은 열쇠구멍의 존재를 뒤늦게 발견했다.






어울리는 움짤이 보이지 않아 이번 글은 사진이 표지 말고는 암것두 없내용,,
그나저나 지인짜 클리셰 범벅인 글이네역
거의 2010년대 초중반 빙의글 보는 늒임...

+) 외전있슴니당 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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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니닷!  72일 전  
 글 너무너무 좋아요

 니닷!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강하루  73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0
  유선비  74일 전  
 글이 예술이에요.

 유선비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정호시기  74일 전  
 헐.... 너무 슬퍼요ㅠㅜㅠㅠㅜㅠ 결국 못살리는 것인가....
 작가님 진짜 표현력 장난 아니에요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것들도 다 세세히 표현되있어서 몰입도를 더 올려주는거 같아용!!♥︎

 정호시기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청포도피치  74일 전  
 청포도피치님께서 작가님에게 2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청포도피치  74일 전  
 선댓후 감상이요.
 알람울리자마자 왔습니다.

 청포도피치님께 댓글 로또 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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