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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정호석] 안녕 - W.깔깔마녀
[정호석] 안녕 - W.깔깔마녀


낯선 하늘, 낯선 바닥, 낯선 냄새.
무릎 언저리까지 올라오는 꽃들 사이에 나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커다란 뭉게구름도 두둥실 떠다닌다. 위화감이 물밀듯 밀려왔지만,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듯한 신비로움 때문일까. 아니면 신비로움은 단지 핑계일 뿐 그저 단순히 나가고 싶지 않다는 나의 작은 욕심 때문일까. 나는 더욱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무릎 주변을 간지럽히는 꽃들 사이를 조심조심 걸어갔다. 커다란 나무도, 새들의 지저귐도, 선선한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곳에는 꽃들밖에 없는 걸까. 계곡도, 사람도. 아무도 없는 걸까. 정차 없이 무작정 앞만 보고 걸은 지 체감상 10분 정도 되어가는 듯싶더니 공허함이 사무치게 몰려왔다. 이런 기분을 느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안녕, 여주야."






나와 또래처럼 보이는 한 남성이 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나와 남성의 사이의 거리는 꽤 됐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내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남자의 정체를 모른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하지만 왜일까.






"응, 안녕. 호석아."






나는 공허하디 공허한 이 공간에서 밝게 웃고 있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듯했다.











안녕
깔깔마녀












내가 서 있는 공간은 아주 신기한 공간이었다. 조금만 상상하면 그것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꽃반지를 만들고 싶어서 발밑에 있는 꽃을 꺾어 들면 어느새 나의 손바닥 위에는 작고 아기자기한 꽃반지가 만들어져 있었고, 어딘가에 등을 기대어 앉고 싶어서 커다란 나무 한 그루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언제 생긴 것인지 우람하고 파릇파릇한 나무 한 그루가 놓여있었다.



나무에 기대어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새어들어왔다. 눈이 부셔서 눈을 찌푸리고 올려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내 앞에 온 것인지 나의 시야를 가로막고 서서 내려다보는 호석의 얼굴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호석은 아이처럼 개구지게 웃더니 나처럼 나무에 기대어 앉아 굳은살 하나 박히지 않아 깨끗하고 고운 손을 허공에 뻗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작은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호석의 손바닥에 위에 앉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다시 날개를 펼치며 나무 위로 올라갔다. 호석은 참새를 따라서 시선을 따라가다가 나무 위로 올라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 시선을 돌려 나에게 향했다.






"신기하지 않아?"

"뭐가?"

"생각만 하면 이 모든 것이 눈앞에 나타난다는 게."






이 공간에 떨어지고 처음에야 신기했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러한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건조하게 그렇네, 하고 대답해 주면. 호석은 나를 놀랜 눈으로 의외의 반응이라며 놀라더니, 다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여기는 행복만이 가득한 공간이야."

"... ..."

"동시에 쓸쓸하기도 하지."






호석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쓸쓸한 듯해 보였다. 호석을 만난 이래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말에 왜냐는 물음이 나가버렸고 호석은 나를 힐끗 보았다가 작게 숨을 내쉬며 끝없이 펼쳐진 꽃밭을 바라봄과 동시에 언제 쓸쓸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활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왜인지 생기를 잃은 듯해 보였다.






"... 너도 알다시피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가질 수 있어. 정말 마음만 먹으면."

"... ..."


"그런데 마음을 먹어도 가질 수 없는 게 딱 한 가지 있더라."

"... 뭔데?"






나의 물음에 호석은 입을 닫고 그저 눈만 깜빡이며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들을 구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입꼬리를 올려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람."



한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는데. 그때 마침 네가 나타나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호석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치고서는 활짝 웃었다.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맑은 미소를 얼마 만에 보는 걸까. 나까지 마음이 따듯해지는 듯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또 나도 모르게 그만.






"그럼, 질릴 때까지 나랑 놀래?"






그를 따라 활짝 웃으며 말했다. 호석에게는 이 작은 한 마디에도 진심으로 좋아해 주었다. 정말 외로웠구나. 넓디넓은 이 공간에 아무도 없었으니, 외로울만한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호석은 갑자기 내 손을 붙잡더니 일으켜 세우고는 앞서 걸어가며 나를 끌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이곳에는 꽃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조금 더 걸어가다 보니 저 멀리에 흐릿하게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그를 따라 걸어가면 어느 정도 형체가 잡혀서 집인 듯해 보였고. 아주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작은 오두막이 나타났다.






"친구가 생기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어."






호석은 이 한 마디를 끝으로 오두막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갔다. 어린아이가 제 엄마에게 학교에서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여주기 전처럼. 그는 그만큼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표정으로 내게 어서 들어오라며 외쳤다.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설렘으로 가득한 그의 부름에 나도 덩달아 설레는 마음으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면.






"... 텅텅 비었는데?"






흔한 탁자도, 책상도, 꽃병도. 어느 무엇 하나 있지 않았다. 그저 곰팡이 하나 없이 깨끗한 나무로 만들어진 벽과 바닥, 천장, 그리고 작은 창문뿐. 그 외에는 정말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오두막의 내부에 당황한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보이는 건 먼지 한 톨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오두막이었다. 호석은 이런 나의 반응을 예상한 것인지 당황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이며 허리에 손을 올려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이곳을 꾸밀 거야!"






그의 말이 자세히 이해가 가지 않아 약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호석은 나를 슬쩍 보더니 대뜸 나에게 이 공간에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의 물음에 텅 빈 오두막의 내부를 크게 훑어보며 고민을 하다가 어떤 공간으로 활용할 것인지 되려 물었다. 호석 또한 나의 물음에 고민에 빠진 듯해 보였다. 턱을 메만지던 그는 이내 떠올랐다는 듯 아, 하고 작게 내뱉더니 대답했다.






"집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 됐으면 해."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라. 그 두 단어를 모두 충족시킬만한 것은 당연히 침대이지 않을까. 호석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창문이 달린 벽과 아무것도 없는 맨 벽 사이의 구석을 가리키면서 외쳤다.






"저기에 폭신한 침대를 두자!"






외침과 동시에 내가 가리킨 곳에는 두 명이 누워도 거뜬할 만큼 크고 포근한 침대가 생겼다. 그리고 또? 호석의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가운데에 커다란 벽을 가리키며 있으면 하는 걸 말했다. 호석은 내가 더 이상 떠오르는 것이 없다고 말할 때까지 집안에 내가 말하는 모든 걸 만들어내면서 계속해서 더 필요한 건 없냐며 물었다. 그러다 문득 뒤늦게 너무 내가 바라는 것만 만들어낸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 저기, 호석아."

"응?"

"너는 여기에 있으면 하는 거 없어?"






늦어도 너무 늦은 걱정이라는 걸 나도 알아서. 머쓱하지만 그래도 호석이 내심 불편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눈치를 보며 묻자. 호석은 미간을 찌푸리고 아주 잠깐의 고민에 빠지더니 해맑게 대답했다.






"응, 없어."






그의 대답을 듣고 나서 머릿속에 단 한가지만이 떠올랐다.


어째서?


호석은 내 표정을 읽은 듯 해맑은 표정을 잃지 않은 채로 텅텅 비었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내가 말한 것들이 가득해진 오두막의 내부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훑어보고서 다시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의 머리를 손으로 푹 누르더니 헤집어 놓는 듯이 강하게 쓰다듬었다. 그의 행동에 왜 이러나 싶다가도 머리가 저들끼리 엉킬라 그만하라며 부루퉁하게 말하면 호석은 손을 내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여주가 원하는 거면 나도 좋아."






호석은 의미 모를 말들만 나열하는 걸 참 잘하는 듯싶었다.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 같으면서도,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가 생각해 보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애매한 말들.






"... 그게 무슨 소리야?"

"문자 그대로. 여주가 좋아하면 나도 좋고, 여주가 싫어하면 나도 싫어."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고서 침대 위로 몸을 던져 누워버리는 호석이었다. 그러더니 이불 속으로 주섬주섬 들어가 제 옆을 팡팡 치면서 이리 오라고 말한다. 평소의 나였으면, 원래의 나였으면 외간 남자와 한 침대에 눕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왜인지 호석은 괜찮았다.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뭐랄까.







"포근하지?"

"응, 엄청."






그가 함께하는 거라면 뭐든 좋을 것 같았다.



서로 아무 말 없이 누워만 있었다. 호석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발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고, 나는 창문을 통해 지금도 여전히 새파란 하늘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호석은 베고 누운 베개를 고쳐 자리 잡으면서 안정된다는 듯 편안한 목소리로 혼잣말하는 듯 중얼거렸다.






"드디어 돌아올 곳이 생겼네."

"돌아올 곳?"






역시나 나는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은 더더욱. 호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장만을 올려다보던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탓에 흐트러진 나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정리해 주면서 입을 다시 열었다.







"여긴 시간 개념이 없어. 노곤해지면 잠깐 눈을 감고 있으면 되는 거고, 심심하면 반지든 화관이든 옷이든 뭐든 만들면서 시간을 때우면 되고. 이처럼 내가 집과 같은 장소를 만들지 않으면 돌아갈 곳은 존재하지 않아."

"여기 오두막처럼 네가 원하는 집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뭐, 만들면 되는 거지. 하지만 나는 뭐랄까..."






호석은 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몸을 일으켜 양반다리를 하고는 앉았다. 나도 그를 따라서 몸을 일으켜 앉으면. 그는 대뜸 필름 카메라 하나를 꺼내더니 내 얼굴을 향해서 렌즈를 비췄다. 자, 하나아, 두울, 셋. 치이즈~ 갑작스러운 호석의 신호에 얼떨결에 손가락 브이를 하고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찰칵, 소리가 나더니 카메라에서 사진 한 장이 곧바로 인화가 되어 나왔다. 대충 다섯 번 정도 펄럭이면 처음엔 검기만 하던 필름 사진엔 곧 점차 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당황해서 얼빠진 표정 그대로 나온 사진에 다시 찍으라며, 왜 갑자기 찍는 거냐며 그의 등을 내리치면. 호석은 깔깔 웃으면서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사진을 한 번 보더니 내 말에 이해 못 하겠다는 듯.






"왜, 잘 나오기만 했구먼."

"이게 어딜 봐서 잘 나왔다는 거야. 바보 같잖아!"

"귀엽기만 한데, 뭘."






거짓말. 새하얀 거짓말임이 분명했다. 호석이 정말이라고 내 앞에서 울상인 표정으로 진심이니 믿어달라고 말해도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호석은 손에 들린 필름 사진을 내려다보면서 볼을 살살 긁적이더니 그럼 다시 한번 더 찍자며 내 옆으로 기어와 앉아 카메라 렌즈가 우리 둘을 향하게끔 높이 들었다.






"이번엔 잘 찍어야 돼."

"알았어, 알았어. 걱정 마셔."


자, 다시 한번 더. 하나, 둘, 셋!
치~즈!​







방금 전과 같이 찰칵 소리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화가 된 사진이 나왔다. 똑같이 사진을 다섯 번 정도 펄럭이면 필름 사진에 선명하게 나와 호석이 볼이 맞대고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호석은 침대에서 내려와 네임펜으로 사진에 무어라 적더니 스카치테이프에서 두 장을 뜯어 벽에 붙였다. 절대 떨어지지 않도록 엄지로 꾹꾹 누르고 나서야 다시 침대 위로 올라와 자리 잡아 눕는 그였다. 고개를 돌려 사진을 바라보니 왼쪽 하단에 작은 글씨로 `여주와 나`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문득 방금 전 갑자기 찍기 시작한 사진 때문에 끊겼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니, 그래서 갑자기 사진은 왜 찍었고 아까 말하던 거 이어서 말 좀 해봐. 찜찜하게 거기서 끊는 게 어디 있냐?"






내 말에 호석은 아차, 하더니 베개를 세워 등을 받치고 다리를 꼬아 팔짱을 껴고 누웠다. 허공을 보면서 입술을 살짝 내밀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우리가 방금 전까지 무슨 대화를 나눴었냐며 묻는다. 뭔가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파지는 것 같아 호석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가도 이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집은 네가 언제든 만들 수 있는데, 왜 굳이 안 만들었냐는 거에 말하고 있었어. 말이 친절한 설명이지, 사실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나의 설명에도 호석은 기똥차게 떠올랐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뭐랄까. 아무리 내가 꿈꾸던 집을 만들어낸다 한들, 정작 내가 원하는 건 없잖아."

"... ..."

"돌아올 곳을 아무리 만들어내도, 외로우면 다 소용없어."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외로움에 대하여 말할 때 호석은 눈동자에 쓸쓸함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득 채워진 오두막을 훑어보는 것이 안 질리는 것인지 다시 또 하나하나 훑어보면서 이 순간을 꽤나 만족하는 듯한 눈동자였다. 그런 호석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있으면.






"그래서 여주, 너라는 존재가 허상이 아니라 정말 내 앞에 나타났던 소중한 친구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을 뿐이야."

"... ..."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들 하잖아."






호석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내가 물었던 것들에 대하여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침대 위에서 내려와 나에게 손을 뻗는다.







"이제 나갈까?"






내 앞으로 내밀어진 호석의 손을 마주 잡지 않았다.






"... 어디로?"

"밖으로."






영 내키지 않았지만. 여전히 눈앞에 내밀은 호석의 손을 마주 잡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금방 나의 손을 놓고서 앞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이곳엔 시간 개념이라고는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이 공간에 있는 거라곤 무성한 꽃들과 끝이 없어 보이는 하늘. 예외로 나무 한 그루와 작은 계곡, 방금 전까지 함께 계속 있던 오두막만 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지. 세상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어버린 것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고개를 내려 다시 정면을 바라보면. 언제 생긴 것인지 커다란 문이 놓여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호석은 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자, 가자."






이 공간을 처음 접했을 때보다 왜인지 문 너머가 더욱 크게 위화감 있게 느껴졌다. 문 너머에 이상한 세계가 펼쳐진 것도, 으스스하게 온통 검은빛으로 가득한 것도 아니라 그저 온통 새하얗기만 한 공간이었지만,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은 공간이었지만. 문을 넘어가기 싫었다. 넘어가는 순간. 그 순간 호석과는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싫어."






나의 말에 호석은 처음으로 단호하게 답했다.






"안 돼."

"... ..."

"여주야, 가야 해."

"... 내가 가면 너는 다시 혼자가 될 거 아냐."






호석은 나의 걱정에 다시 마음이 따듯해지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괜찮아. 나에게 진짜 돌아갈 곳이 생겼으니까."

"그래도..."


"괜찮대도. 이젠 집에 가면 너로 가득 차 있어."


외로울 때면 집에 가면 되는 거야.​






쓸쓸함을 숨기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이제는 더 이상 쓸쓸하지 않은 것인지. 호석은 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어서 문을 넘어가라며 말했다. 나는 문을 넘어가기 전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호석은 이런 나를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더니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떼고 자신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은 나의 손등 위로 손을 포개었다.







"다시 또 만나자."






호석의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문을 넘어갔다.


























익숙한 천장, 익숙한 침대, 익숙한 냄새.
우리 집. 내 침대에 누워있음에도 왜인지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처럼 사무치게 외로웠다.

지금 다시 눈을 감으면,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제목이 중의적이었던 걸로 기억해용
만남인지, 이별인지, 다시 만남인지는 모두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노트에 적혀있더군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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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세ㄴ  76일 전  
 애매한 시간대 이리 따뜻하면서도 시린 글을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네요 다시 홀로 남겨진 호석이도, 보고 싶다고 볼 수 없게 된 여주도 나름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겠죠? 그래도 먼 훗날 서로를 추억하며 소박하게 미소기

 세ㄴ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강하루  76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0
  빈_bin  77일 전  
 헐 작가님 사랑합니다,,!!

 빈_bin님께 댓글 로또 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정호시기  77일 전  
 와우... 진짜 감탄밖에 안나온다구요ㅠㅠ
 행복하지만 외로운 공간....
 안타까우면서도 쪼매 부럽구만,,,ㅎㅎ

 정호시기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청포도피치  77일 전  
 청포도피치님께서 작가님에게 1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청포도피치  77일 전  
 선댓후 감상이요!

 청포도피치님께 댓글 로또 2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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