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방탄빙의글 Ep.12 초여름이 지나간 자리(完) - W.혜다
Ep.12 초여름이 지나간 자리(完) - W.혜다
그 해, 여름
w. 혜다







“아니면...”

“아니면?”

“귀 가까이 대봐.”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기대하는 지민의 표정. 태형은 그런 그를 반신반의하며 한쪽 귀를 가져다 대는데.




“왜, 뭔데?”

“너희 둘, 집에 항상 같이 가지?”

“응.”

“오늘만 따로 가라.”

“왜? 같이 갈 건데.”

“에이, 네가 뭘 좀 모르네. 서프라이즈 몰라? 서프라이즈?”

“무슨 서프라이즈?”

“자, 들어봐...”




기지를 발휘하듯 빛나는 지민의 눈. 민여주랑 집 가깝다며. 네가 먼저 집 앞에 도착해서... 케이크 들고 있으면 걔가 얼마나 감동을 먹겠냐고. 지민이 한껏 낮춘 목소리가 태형의 귓가에 웅웅 울렸다. 오... 너 천재구나. 태형이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 민여주 좋아하잖아.”

“...”

“고백해. 걔도 너 안 싫어하는 것 같던데.”







주마등처럼 짧게 스쳐 지나가는 낮의 기억. 그리고... 태형의 눈앞 여주의 얼굴.




“야, 선물. 그거 열어 봐.”




여주에게 이야기하는 태형의 목소리. 조금 떨리는 것도 같았다. 마음을 다잡고 심장을 부둥켜도 잔잔하게 울리는 떨림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게 뭔데.”

“...”




여주의 물음으로 잠시 정적이 흐르고. 생각보다 시원찮은 반응에 신발 뒤창만 바닥에 벅벅 긁어대는 태형.




“목걸이잖아.”

“어. 목걸이야.”

“뭐야... 비싼 거잖아... 너 왜 나한테 이런 거 주냐... 왜”




태형의 눈에 비친 여주의 놀란 얼굴. 그리고 잔뜩 붉어진 태형의 귀. 여주에게 고백하라던 지민의 말이 떠오르고. 침을 꿀꺽 삼키는 그. 눈을 질끈 감고 가벼운 한숨을 내뱉었다. 만약 지금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너무 늦어버릴지도 몰라. 돌연 떠오른 생각에 태형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왜 주는 줄 알아?”

“...”

“... 좋아하니까.”

“...”

“나, 너 좋아해.”




좋아한다니. 여주의 얼굴이 붉어짐과 함께 심장에서부터 조금씩 스며들어 그녀를 잠식하는 열기. 정국에게 고백을 들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심장의 떨림. 그리고 정적.




“...”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도, 그 누군가에게 수줍은 고백을 받는 것도 처음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한편 막막했다. 무어라 답을 내어 놓아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여주의 입술은 달싹거릴 뿐 아무런 말도 내어놓지 않는데.




“아니... 그게...”




태형의 말 한마디. 정적이 깨어졌다.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태형을 응시하고. 허공에서 다시 마주한 두 눈.




“...”

“그... 혹시 불편하면 대답 안 해도 돼. 그냥 나는...”




아. 망했다. 용기 내어 내뱉은 고백인데. 이렇게 대충 얼버무리다니. 역시 지민의 말은 듣는 것이 아니었다. 태형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는데...




“아니... 나도 너...”




여주가 입술을 떼었다. 태형의 귓가에 작게 울리는 여주의 목소리.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 마치 성적표를 받기 전처럼. 아니 어쩌면 성적표를 받을 때보다 더. 기대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불안한 심장.




“... 응?”

“나도 너 좋아한다고!”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고함을 지르듯이 내어놓은 대답.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뜨거운 귀. 홧홧한 얼굴. 여주가 고개를 푹 숙였다. 세상에 이런 고백이 대체 어디 있어. 조막만한 손으로 가린 얼굴이 한껏 달아올라있고.




그 순간, 여주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는 태형. 나 방금 되게 불안했어. 너랑 멀어질까 봐. 네 곁에 친구로조차 남을 수 없을까 봐. 가슴속 조용히 묻어두는 말. 여주의 등을 토닥이는 태형의 손길.




“사귀자. 우리.”




여주가 밴드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어쩌면... 여주가 버스에 올라 태형 대신 카드를 찍어주던 바로 그 순간부터 이어져오던 마음. 드디어 마침표를 찍듯 토해내는 태형의 한 마디. 그리고... 여주의 대답. 좋아. 가로등 아래 영화처럼 서 있는 두 사람의 인영이 그 무엇보다 따뜻했다. 여름날의 햇살처럼 안온하고 포근한 품이 넓었다.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오늘 밤엔... 잠에 들지 못할 것 같아. 여주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악몽으로 끝날 것 같던 생일날에 나타난 태형. 그리고 뜻밖의 고백. 울상 짓던 입꼬리가 미소를 되찾았다.




그렇게 가로등 아래서부터 아파트 앞까지. 같은 자리를 몇 바퀴씩이나 뱅뱅 돌았는지 모를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걸었다. 헤어지기 싫어. 언제부터였을까. 꼭 붙잡은 손. 그리고...




“이제 들어가.”

“으... 으응. 내일 아침에 보자.”




조곤조곤. 어린아이가 단어를 만들어내듯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 태형과 헤어진 여주. 그리고...




“어이, 찡찡.”




태형과 갈라서기 무섭게 여주의 눈앞에 나타난 윤기. 뭐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화들짝 놀라는 것도 잠시. 조금 전의 기억이 문득 여주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그녀의 표정. 아, 나 계단으로 갈래. 여주가 윤기를 피했다. 두근대던 심장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오빠 미워. 내 생일도 잊어먹고... 조용히 투덜대는 여주의 목소리.




“아냐. 안 잊어먹었어.”

“거짓말.”




거짓말 아냐. 태형이 준 케이크를 들고 있는 여주의 왼손. 그리고 텅 빈 오른손. 민여주. 손 줘봐. 어린아이를 달래듯. 사근사근한 말투. 잔잔한 표정.




“뭔데.”




분명 윤기에게 화가 났는데... 손을 내어 보라는 그의 말이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하고. 여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목을 긁어 헛기침을 만들어내며 윤기의 앞에 손을 내어주는데.




“선물.”




뭘 좋아할지 몰라서. 윤기가 내민 틴트. 그냥... 점원이 추천하는 거 골라왔어. 입술을 꾹꾹 깨물며 대충 머리를 터는 윤기.




“...”

“미안해.”

“뭐가.”

“네 생각 못 한 거. 생일인데... 축하도 못 해주고. 아빠도 못 오시고. 속상했겠네.”




여주의 등을 가볍게 감싸며 이야기하는 윤기. 따뜻한 그의 손길에 어쩌면... 화가 누그러진 것도 같은데.




“몰라, 진짜 짜증 나.”

“아, 민여주 또 찡찡댄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그럼 뭐라 불러. 네가 맨날 찡찡대는데.”

“민윤기 나랑 화해하기 싫어? 대체 왜 그래?”




여주의 목소리. 막내가 된 탓에 조금의 칭얼거림과 애교가 섞여있고.




“앞으로 찡찡이라고 안 할 테니까 화 풀어.”

“...”




오빠가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줄게. 싱긋 웃어 보이는 윤기. 이번에도 뻥이기만 해봐. 너랑은 영원히 손절이야. 윤기를 노려보며 답하는 여주. 너, 오빠한테 네가 뭐야. 피식. 웃음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윤기. 아마도... 장난치는 것을 보니 가슴속 응어리가 부드럽게 녹아내린 모양.




“근데... 아까 걘 누구야?”

“어? 누구?”

“남자친구야?”

“에, 에이... 남자친구는 무슨... 그, 그냥 친구야. 신경 꺼.”




아파트 계단. 밝지 않은 불빛임에도 붉어진 여주의 두 뺨이 눈에 띄고.




“엥? 아닌 것 같던데...”

“아... 그냥 친구라니까!”




윤기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수록 두 사람의 목소리 또한 잦아들고.




어둠 속 여주의 말간 얼굴을 바라보는 윤기. 여주처럼 쉽게 상처받는 사람의 상처는 참 빠르게 아물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렇게 자잘한 상처도 많이 겪다 보면 언젠간 무뎌지지 않을까. 입가에 미소를 걸치며. 윤기는 여주의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비록 여주가 기대했던 가족과의 식사는 전부 무너져 버렸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미안함을 담은 커다란 소포를 보내왔고, 엄마는 조잘거리는 여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단란한 세 가족의 모습. 케이크 위 꽂힌 초를 불기까지.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었던 것.




이불 속 여주의 발가락이 기분 좋게 꼼지락거렸다. 심장이 여전히 울렸다. 잠에 들지 못할 것처럼. 영원히 떨릴 것처럼.







그렇게 찾아온 다음 날 아침. 여주의 눈이 유난히 이르게 떠지고. 오랜만에 잘 잤네. 기지개를 켜는 여주. 전날 밤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그저 한여름 밤의 꿈을 꾸었던 것 아닐까. 교복 주머니를 뒤적이는 그녀의 손. 찾았다. 백조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 이 모든 것들이 꿈이 아니었음을 암시해 주는 작고 소중한 하나.




학교 가는 길이 이렇게 기대될 수 없었다. 교복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잠그고. 긴 생머리를 높이 질끈 묶고. 평소보다 공들인 외모. 너 학교 가는 거 맞아? 연신 거울만 쳐다보는 여주에게 묻는 윤기.




“그럼 내가 갈 데가 어디 있어?”

“음... 남친 집?”




자꾸만 은근히 떠보는 것이... 윤기는 이미 확신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두 눈. 붉어진 귀. 어... 민여주 너... 장난스러운 윤기의 말투. 굳이 여주와 눈을 똑바로 맞추려 몸을 배배 꼬는 그.




“몰라... 다녀오겠습니다.”




윤기가 불편했는지 그를 한 번 노려보고는 현관문을 후다닥 벗어나는 여주. 저거 저거... 연애하네. 윤기의 눈빛.







윤기의 추궁 아닌 추궁 때문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선 여주. 태형에게 고백을 받은 것을 윤기에게 아주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윤기의 반응 때문일까. 괜스레 부끄러운 것도 같고...




터덜터덜 놀이터까지 걷는 여주. 그런데...




“민여주!”




익숙한 목소리. 매일 아침 그녀와 함께 걷던 그 목소리. 그녀를 부르며 팔을 휘적이는 태형.




“뭐, 뭐야.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놀란 얼굴로 묻는 여주.




“일찍 나오면... 일찍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수줍은 목소리. 여주 못지않게 붉어진 얼굴.




“아...”




할 말이 없다. 해주고픈 말은 참 많은데... 입이 떨어지질 않아. 여태껏 다른 누군가와 연애 경험이 적은 것이 참 애달팠다. 그... 그렇구나. 민망한 정적에 고개를 떨구는 여주.




“여주야,”




정적을 깨는 태형의 목소리.




“응?”

“목걸이... 안 하고 왔네.”




아아... 그거. 서운함을 내비치는 태형에 여주가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곧 반짝이는 목걸이가 여주의 손에 들린 것이 보이고.




“학교서 하면 쌤한테 뺏겨.”

“아...”

“근데...”




말꼬리를 흐리며 싱긋 웃어 보이는 여주. 무언가 덧붙일 말이 있는 모양.


“근데?”

“안 들키게 잘 하고 있으면 되지.”




네가 해 줘. 나 이거 혼자 못해. 태형의 손에 목걸이를 넘기는 여주. 무슨 마음에서일까. 목을 가리던 머리카락을 들어 하얀 살결을 드러내는 그녀. 아... 응. 태형의 손이 따뜻했다. 촉촉한 손에 자박하게 물기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됐다. 씩 웃는 태형.




“예뻐.”




입모양으로 이야기하는 태형. 여주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빛났다.







그렇게 여주의 반까지 여주를 데려다준 태형. 기다릴게. 태형의 목소리에 작게 끄덕이는 여주의 고개. 그리고...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던 윤서. 민여주, 너 나 좀 보자. 과장된 몸짓으로 여주의 팔목을 질질 끌고 자리로 걸어가는데.




“야, 너네 뭐냐.”

“뭐가.”

“시치미 떼는 것 보소. 둘이 손잡고 있는 거 내가 다 봤다.”

“아...”

“너네... 사귀냐?”

“아, 너한테 젤 먼저 말하려고 했어.”

“언제부터?”

"어젯밤에..."

“그걸 왜 이제 말해, 이년아! 바로 말해줬어야지...”




우리 우정이 그거 밖에 안 되는 거였니? 윤서의 목소리. 여주가 윤서의 손을 급히 붙잡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그건 아냐. 전교생 중에 딱 너랑 나랑 걔 말고는 아직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어.”

“뭐야, 비밀 연애야?”

“그건 아닌데... 뭐 굳이... 소문낼 필요가 있나.”

“두고 봐.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전교에 소문이 쫙 날 걸?”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김태형이 좀 유명하니?”




잘생겼지... 착하지... 드럼도 잘 치지... 우리 학교 여자애들 중 쟤 한 번이라도 안 좋아해 본 애가 없을 거다. 윤서의 과장된 목소리에 여주의 두 뺨이 붉어졌다. 구태여 귀가 붉게 타는 것도 같은데...




“에이... 걔가 그 정도는 아닐걸?”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여주의 대답. 그런 그녀에 고개를 젓는 윤서.




“야... 그래서 누가 고백했냐? 궁금하네.”




여주와 윤서 사이 흐르는 정적. 고작 몇 시간 전의 일이었는데...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태형의 고백. 입만 움찔거릴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여주. 뭐야... 혹시... 민여주 네가? 너처럼 소심한 애가? 놀란 윤서의 목소리. 여주가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아니. 걔가 했어. 나한테.”

“뭐라고?”

“뭐라고 했겠어. 좋아한다고 그랬지.”

“어머!”




마치 한 마리의 돌고래 곁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기다란 속눈썹을 끔뻑거리는 여주. 그런 그녀에 당사자인 여주 보다 더욱 흥분한 얼굴을 한 윤서. 내가 너네 언젠간 그럴 줄 알았다니까. 둘이 그렇게 붙어 다니더니... 윤서가 여주의 어깨를 손으로 찰싹찰싹 때리며 이야기하고. 아, 아파. 때리지 마. 여주의 조그마한 목소리.




“야, 안 보고 싶냐?”

“뭐가?”

“걔.”




벌써부터 막... 보고 싶어서 근질거려야 하는 거 아니야? 말을 마친 뒤 꺄르르 웃는 윤서. 그녀의 반응에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여주의 얼굴. 이미 붉어진 귀에 열기까지 더하니 불에 기름을 쏟아버린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던 윤서. 가자. 여주의 손을 붙잡고 끄는 그녀.







“형님 말대로 했냐?”




지민의 물음. 태형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고.




“어때...”

“뭐가,”

“내 말은... 어떻게 됐냐고!”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보는 시늉을 하더니 태형의 귓가에 속닥이는 지민.




“... 1일이다.”




그리고 씩 미소 짓는 태형. 거 봐. 넌 평생 나한테 감사해라. 지민의 신난 음성. 그리고...




“쟤냐?”




태형의 교실 뒷문.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서 있는 여주. 민여주, 얼른 인사해! 윤서의 목소리가 여주의 귓가에 웅웅 울렸다. 왜일까. 괜스레 부끄러운 것도 같은데...




여주의 한쪽 팔을 대신 들고 바람인형처럼 마구 흔들며 인사하는 윤서. 아... 이런 거 하지 마... 여주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와중에 장난칠 궁리를 하는 지민의 음흉한 표정.




“으악!”




저의 곁에 가만히 서서 여주와 눈만 마주치고 있던 태형을 여주 쪽으로 확 밀치고. 자연스럽게 태형의 품에 안긴 여주. 뭐야, 쟤네. 지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이들의 시선은 전부 두 사람에게로 집중되고.




몰리는 시선에 귀가 새빨개진 여주. 도망치듯 태형의 품에서 빠져나오는데. 은근히 아쉽다는 얼굴을 한 태형에 윤서와 지민은 키득키득 웃기에 바쁘고.




두 사람의 웃음소리에 반에 가만히 앉아 공부를 하던 아이들까지 합세해 태형과 여주 주변을 맴돌았다. 쟤네 사귀어? 뭉게뭉게구름처럼 인파가 몰려들었다. 수많은 아이들 사이 동그란 뒤통수. 익숙한 몸집과 걸음걸이. 어라, 전정국인가. 고개를 기웃거리는 여주.




“너희들 모여서 뭐 하는 거야!”




아이들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있는 모습에 들고 있던 출석부를 마구 휘저으며 고함을 지르는 선생. 쌤! 얘네 연애해요! 바람 잡기를 좋아하는 한 남학생의 목소리. 꺄르르 웃는 아이들.




“연애?”




하룻밤만 지나면 전교에 소문이 날 것이라던 윤서의 말이 떠올랐다.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인 여주. 태형에게 대충 손만 흔들고는 윤서의 팔을 강하게 붙잡고 후다닥 자리를 피하는 그녀. 그에 흥미가 떨어진 아이들은 전부 뿔뿔이 흩어졌지만... 복도 한가운데 여전히 남아있는 한 남학생.




“태형이 형, 나랑 잠깐 얘기 좀 해요.”




정국의 목소리가 태형의 귀에 부딪혔다. 날카로운 눈빛에 잠시 고민하듯 눈을 깜빡이는 태형. 자꾸만 여주의 머리에 파란 우산을 씌워주던 정국이 떠올랐다.




“그래.”




결심한 듯한 눈빛. 태형이 정국의 팔목을 잡고 복도 구석으로 걸어갔다.




“형, 여주 누나랑 사귀어요?”




역시나. 정국의 물음에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태형. 그가 무어라 말하려 하는데... 그의 말문을 턱 막는 정국의 목소리. 적막한 복도 구석에 서 있는 두 사람. 한껏 낮춘 목소리에 먼 거리에서는 무어라 이야기하는지 들리지 않을 정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이야기하는 정국에 태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다시금 주억거리는데.







“거 봐. 내가 말했지. 너네는 이제 소문 다 났다.”

“그러니까... 선생님들도 아시고...”

“알면 뭐 어때.”

“말이 쉽지. 난 너처럼 그렇게... 당당하지가 못하다고... 내 말은,”

“네가 좋아서 사귀는 건데 당당하지 못할 건 뭐냐고.”

“...”

“... 으이그, 이 답답아.”




여주의 팔을 가볍게 밀치는 시늉을 하며 이야기하는 윤서. 너, 요새 점점 민윤기 닮아간다. 짜증 나... 여주의 작은 푸념이 윤서의 귓가를 바람처럼 간질였다. 여름날의 미풍. 여주를 지칭하기에 어울리는 단어였다.







흥미로운 가십거리에 폭풍이 몰아치듯 정신없는 학교. 소문의 당사자들의 얼굴은 하루 종일 붉어지기를 반복했다.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시곗바늘은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시계를 달리고. 그렇게 어느새 학교가 파할 시간. 사랑합니다. 종례를 마친 아이들의 해맑은 인사.




어김없이 여주의 반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태형. 가자. 여주의 손에 감긴 커다란 손. 어쩌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관계. 그리고 웃음.




“태형아,”

“응?”

“넌 내가 처음이야?”

“응? 무슨 말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태형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털었다. 왠지 모를 수상함을 느낀 여주의 눈빛이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아, 넌 내가 처음 아니구나. 하긴... 그 잘생긴 얼굴로 몇 명이나...”




여주가 대충 뒷말을 흘리며 구시렁댔다. 좀처럼 원하는 답을 내어놓지 않는 태형에 조금... 삐진 것 같기도 한데.




“뭐? 방금 뭐라 그랬어?”




그런 그녀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태형. 놀라움이 꽤나 담긴 그의 표정에 여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왜 저런 반응이지?




“그... 내가 처음 아니냐고,”

“아니, 그거보다 조금 뒤에.”

“대체 몇 명이나 홀리고 다녔,”

“아니, 그거 말고.”

“잘생긴 얼굴?”

“잘생겼다고?”

“아니... 그럼 잘생긴걸... 잘생겼다고 하지... 뭐라 그래...”




당황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여주의 대답. 그리고... 그녀의 볼에 닿는 촉촉한 무언가. 순식간이었다. 고개를 돌린 여주의 눈에 보인 태형의 얼굴. 태형의 입술이 닿은 부위부터 아주 조금씩, 꽝꽝 얼었던 얼음이 녹는 것처럼 퍼져나가는 온기. 한껏 확장된 여주의 동공. 놀랐음이 드러나는 그녀의 표정.




“예쁘다.”




예쁘다는 말이 언제부터 이렇게 가슴 떨리는 말이었던가. 여주의 볼이 분홍빛 복숭아처럼 향기롭게 익어가고.




“응? 뭐?”

“예쁜 걸 예쁘다고 하지, 뭐라고 그래.”

"풋."




처음과 비슷한 듯 깊어진 태형의 눈빛. 이제는 당당히 마주칠 수 있는 두 눈. 깍지 낀 두 손 사이로 밝게 비추는 노란 햇살. 무더운 열기. 아마도 여름의 중반 즈음에 다다른 것 같았다.







나의 손을 따스히 감싸주는 사람. 예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속삭여주는 사람. 따사로운 여름의 햇살, 그리고 밴드부와 함께 만난 너. 그리고 첫사랑. 평생 이 소중한 순간을 잊지 못할지도 몰라. 작은 웃음 뒤에 삼킨 기다란 말.




만약에 내가 밴드부에 들지 않았더라면. 너와 같은 동네에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린 어쩌면... 필연적이었던 거야. 운명처럼.




그 해 여름, 너를 만나다.







Ohhh baby girl gon’ get faithful

ah oh

baby girl gon’ get faithful

and I love the way you pull me up and hold me

love the way you heart rolled up and chose me

oh baby girl gonna get faithful




널 보면 신앙을 가지게 돼

신앙을 가지게 되지

날 일으켜주고 안아주는 네 모습을 사랑해

드러난 네 마음이 날 선택해서 행복해

널 보면 신앙을 가지게 돼




KNOWN&Powfu-meant to be 中




-The End.-




작가 사담


드디어 여주와 태형이의 여름도 끝을 맺었네요.

담고픈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렇게 12화로 맺게 되어 시원섭섭하네요.

하지만 걱정은 마세요! 아직 외전이 한 편 남아있으니까요!(찡긋)

작품 초기 설정... 구도 등을 전부 털어놓고 싶지만... 꾹 참고 후기로 정리해서 찾아올게요!



긴 시간동안 제 글 기다려주신 독자분들, 사랑합니다!






추천하기 4   즐겨찾기 등록
글이 재미있었다면 작가님에게 포인트 선물을 해주세요.
나의 Point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작가님에게
추천수와 선물받은 포인트 합산을 기준으로 글의 순위가 결정됩니다.




    로그인 후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댓글
  꾹토끠  2일 전  
 풋풋..

 답글 0
  카와이문어소녀  13일 전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네요..!잘 봤습니당

 카와이문어소녀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친구에게 장난치기 꿀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