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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上 : 양아치 전정국 - W.세상을누비는고래
上 : 양아치 전정국 - W.세상을누비는고래


양아치는 뭘 해도 양아치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복이 되어 돌아온다고 했다. 나 김여주, 18년째 그 말만 믿고 정의감 백 퍼센트인 오지랖을 실현 중인데,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다 뻥이다. 뻥이 아니고서야 내가 한 좋은 일의 대가가 인생의 불행으로 다가올 리가 없다. 뻥이다. 이건 절대적으로 뻥이어야만 해.



“못난이, 내 우유 가져와.”


우리 학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저 양아치 새끼가 내 인생의 불행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뻥이어야만 한다. 꿈이다. 제발 이건 누가 꿈이라고 말해줘.


“아침에 보니까 더 못생겼어.”


하지만 내 발은 멋대로 움직인다. 그리고 손에 우유를 들고 양아치 새끼한테 다가가 멋쩍게 웃으며 우유를 건넨다. 아, 이건 꿈이 아니구나.


“얼굴 치워. 나까지 못생겨질라.”


꿈이 아니었어!











나는 그냥 그때 그 아이가 너무 불쌍했을 뿐이다. 평소 같았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바로 도와줬겠지만, 그 아이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우리 학교 넘버원 양아치 전정국이었다. 나도 무서운 건 가릴 줄 아는지라 선뜻 도울 수가 없었다. 내 신변과 안전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라도 눈을 딱 감고 지나치려는 그때, 빌어먹게도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눈으로 제발 살려달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치겠냐고. 병신같이 바로 뛰어들어서 전정국에게 대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진짜 난 상등신이었구나.


아직도 생생하다. 찌질하게 그만하라면서 말을 더듬는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비굴하고 웃긴데 그 양아치 놈이 보기에는 얼마나 웃겼을까. 내가 그러는 사이 그 아이는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없었고 나 혼자서 병신 같은 포즈를 하며 전정국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결국 내가 대신 맞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 눈을 꼭 감자 양아치 새끼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넌 이제 죽었어.’


이건 떠올릴 때마다 간담이 서늘하다. 그날 이후 전정국은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때리지는 않았지만 평소 나에게 하는 짓을 보면 차라리 몇 대 맞고 싶을 정도였다. 매일 아침 우유배달에, 숙제에, 가방 들기에, 급식 대신 받아주기에, 빵 셔틀까지. 더 나열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그만둔다. 전정국이 나를 괴롭히는데 전력을 다해서 그런지 최근 학교에서 전정국이 일으키는 사고가 줄었다고 좋아하던 학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거 제가 다 받고 있거든요? 엉엉 울며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혼자서 아주 지랄을 해라. 쇼하냐?”
“또 뭐. 빵 아까 사다 줬잖아.”
“어쭈, 덤빈다?”
“덤비는 거 아니거든!”


찌질해, 진짜. 난 왜 저 새끼 앞에만 서면 세상에서 제일 비굴한 인간이 되는 거지?


“학교 끝나고 어디 가지 말고 남아.”
“왜.”
“남으라면 남아. 무슨 말이 많아.”
“안 돼! 오늘 집에 가서 할 것도 있고.”
“할 거 뭐.”
“공부해야 돼.”
“속일 사람을 속여. 너 공부 안 하는 거 다 알거든? 성적도 나랑 비슷하더구먼. 깝죽거리지 말고 남으랄 때 남아라?”


저 양아치와 내 성적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니 진짜 자존심이 상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질 지경이다. 내가 너 때문이라도 공부한다. 욕을 중얼거리며 째려보았으나 어느새 싸가지 전정국은 지 할 말만 하고 쌩하니 가버렸다. 남으라니. 또 뭘 어떻게 괴롭히려고. 한숨이 쉴 새 없이 나왔다. 아버지. 나는 그냥 엄마 말 잘 듣고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준 것뿐인데 왜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걸까요.


축 처진 어깨를 들어 올릴 틈도 없이 다음 교시 교과서를 꺼냈다. 따분함의 절정 물리니까 이 시간에는 좀 자 둬야지. 조심스레 책상에 머리를 박는 그때, 책상이 진동에 의해 드르르 떨렸다. 기막힌 타이밍에 어떤 빌어먹을 놈이 카톡질이야. 타이밍 진짜 전정국 같네. 어디 보자, 발신인이 양아치 새끼.





엄마, 딸 좀 살려주세요.











“왜, 왜.”


남으라는 양아치 새끼의 말에 나는 또 순순히 남아 전정국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다행히 무서운 친구들 없이 전정국 혼자였다. 껄렁하게 걸어와서는 가까이 오라며 검지를 위아래로 움직인다. 작게나마 반항해봤지만 전정국이 눈썹을 일그러뜨리는 순간 냉큼 전정국에게로 걸어갔다.



“너 공포영화 잘 보냐.”
“뭐라고?”
“공포영화 잘 보냐고.”


뭔 개똥같은 소리일까 싶어 한참을 생각했다. 저 말을 하는 의도부터 내가 적당히 말해야 하는 대답까지.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공포영화를 싫어하다 못해 극혐하는 데다가 저 양아치 놈이랑 영화를 보는 건 상상만 해도 싫다. 그러니까 전정국+공포영화는 거의 사망선고나 다름이 없다.


“못 보는데.”
“됐어. 따라와.”


그럴 거면 왜 물어, 상놈아.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말씀드려.”
“누구한테?”
“척하면 척하고 못 알아듣냐? 진짜 귀까지 못났어, 이건.”


이거 진짜 개새끼네?


“부모님한테 말씀드리라고. 늦게 간다고.”
“나 오늘 늦게 가? 왜?”
“친구랑 오붓하게 영화 본다고.”


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되어 다가오는 느낌이다. 파랗게 질린 내 안색은 신경도 안 쓰는 전정국이 향하는 곳은 정말로 영화관이었다. 오, 신이시여.


“저기 나 공포영화도 못 보고 그냥 집에.”
“빨리 말씀드려. 친구랑 오붓하게 영화 본다고.”


나는 전정국이 저렇게 웃으며 말할 때가 백 배 천 배 더 무서웠다. 결국 병신 같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만히 뒤를 따르자 전정국이 또다시 눈썹을 찡그리며 내 볼을 툭툭 쳤다.


“말씀 안드리냐.”
“지금 드릴 거야!”
“굼벵이같이 느려터져서는. 빨리 연락해.”
“말할 사람 없는데.”
“뭐라고?”
“아니야!”


바보같이 헤실 거리며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치는 척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연락드릴 가족도, 걱정할 가족도 없다. 내가 폰을 꺼내들자 전정국은 표를 예매한다며 매표소로 향했다. 이건 신종 괴롭힘인가. 저 새끼와 단둘이 그것도 공포영화라니, 생각만 해도 내가 불쌍해졌다. 어쩌다 이렇게 꼬인 걸까. 그날, 그냥 두 눈 딱 감고 튀는 거였는데. 쓸데없는 망할 정의감을 물려준 엄마가 밉고 또 미운 순간이었다.


표를 예매하고 돌아온 전정국의 손에는 팝콘과 콜라 두 잔도 함께였다. 나 맛있게 먹으라고 사줬을 리는 없고 독살은 아니겠지? 의심의 눈초리를 하자 전정국이 딱밤을 먹였다. 콩도 아니고 쿵이다. 쿵.


“또 왜 때려! 자꾸 머리만 때려, 진짜.”
“뭐. 불만 있냐?”


있지. 존나 많아. 나쁜 새끼야.


“독 같은 거 안 넣었거든? 사람을 쓰레기로 몰아가네, 이게.”
“그, 그런 생각 안 했거든?”
“말 더듬는 순간 들켰어. 야, 들어.”


그러곤 팝콘과 콜라를 무슨 짐짝 던지듯 내게 던진다. 내가 그런 생각 하는 건 또 어떻게 알았대. 차마 전정국의 앞에서 하지 못한 말을 중얼거리며 뒤를 따랐다. 자기 거만 사 올 줄 알았는데 두 잔의 콜라를 보고 놀라기는 했다. 애초에 전정국이 내게 영화값을 요구하지 않은 것에 더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팝콘이랑 콜라는 맛있게 먹어주지. 자리에 앉으니 딱 광고가 끝나 상영관이 깜깜해졌다. 아, 나 진짜 공포영화 못 보는데.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영화가 시작되었다. 첫 장면부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첫 장면부터 귀신이 갑툭튀하면 뭐 어쩌자고? 이건 정말 전정국의 신종 괴롭힘이라는 걸 뼈저리게 확신한 순간이었다. 물론 전정국은 내 옆에서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팝콘까지 먹으며 잘 보고 있었다. 화면을 좀체 쳐다볼 수 없었던 나는 그냥 영화 보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잠이나 자야지. 내가 무슨 배짱으로 공포영화를 봐.



“자냐?”


귓가에는 영화 속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관객들의 놀라는 소리가 전부였다. 그 틈새를 갑자기 전정국이 비집고 들어왔다. 또 무슨 시비를 걸지 몰라서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눈 움찔거리거든? 눈 떠라. 맞기 전에.”


얘는 진짜 천성이 양아치다.


“왜. 나 무서운 거 진짜 못 본단 말이야.”


공포영화 못 본다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는데 무시한 건 네 새끼였다.


“알아.”
“근데 왜.”
“그래서 데려온 건데.”


역시 이건 신종 괴롭힘이었어. 엄마, 천국에서 보고 계신다면 얘 좀 어떻게 해주세요.


“눈 떠라. 돈 아까워.”


그러니까 애초에 못 본다고 말했었거든? 진짜 전정국은 남의 말을 더럽게 안 듣는 놈이었다. 놈의 반 협박에 게슴츠레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얼굴에 잔뜩 피를 흘린 귀신 얼굴이 스크린에서 튀어나왔다. 진짜 여러모로 타이밍이 전정국 같았다. 비명을 필사적으로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내가 우스웠다. 무서울 때마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을 꼭 감았다. 어둡고 무서운 건 정말 딱 질색이다. 그러니까 이런 곳에 이런 걸 보자고 데려온 전정국은 정말 질색이다.


“쫄보냐. 뭐가 무섭다고.”


닥쳐. 난 무섭거든? 전정국을 노려보며 슬쩍 삐져나온 눈물을 닦았다.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막말하기는.


“내가 돈 아깝다고 했지. 눈 감지 말고 입도 틀어막지 마.”


난 정말 전정국이 싫다. 나쁜 짓만 해대고, 사람들 괴롭히기나 하고, 엄마가 말했던 정의감의 신조와 전혀 반대에 서있는 양아치. 그래서 나는 네가 정말 싫다. 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전정국이 재빠르게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낚아챘다. 꼼짝없이 한 손이 전정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손도 크면서 힘은 더 세다. 남은 한 손으로 비명이 나오려는 걸 틀어막으려 했지만 전정국이 옆에서 계속 째려봐서 그럴 수도 없었다.



“손 놓으면 뒤진다.”


차라리 패는 게 훨씬 낫겠다. 공포영화답게 무서운 장면이 끊임없이 나왔다. 무서운데 눈도 못 감게 하고 손도 못쓰게 하면 뭐 어쩌라고. 진짜 쪽팔린데 눈물이 삐죽삐죽 튀어나올 것 같았다. 공포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왠지 이쯤 귀신이 나올 것 같은데. 전정국이 내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나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렸다. 이윽고 음악소리가 커지는 순간, 전정국의 말을 새까맣게 잊은 채 눈을 꼭 감았다. 저거 봤으면 난 기절했을지도 몰라.


음악이 작아지고 이제 눈 떠도 괜찮겠지 싶어 눈을 뜨니 여전히 앞이 깜깜했다. 익숙하게 본 더럽게 큰 손이 내 눈앞을 떡하니 막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던 손이 내려가고 고개를 돌아 옆을 보니 전정국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 것 같다.


“가려도 내가 가려.”
“그게 무슨.”
“정 못 보겠으면 나 쳐다보던가.”


정말 무서운데 손도 꼼짝없이 붙잡혀 있고, 영화도 아직 한참 남았는데. 순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별로 무섭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정말 잠시.


“그걸로 영화값 받은 셈 쳐줄 테니까.”


정말, 잠시뿐인 생각이기를 바랐다.











“못난이. 너 집 어디냐.”


아마 난 이 양아치 놈에게서 김여주라는 내 이름을 절대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드디어 해방되나 싶었더니 아직도 내 옆에는 전정국이 있었다. 뜬금없이 내 집이 어디냐고 묻는 전정국의 말에 잠시 얼이 빠져있었다. 왜 묻는 걸까. 설마 또 괴롭히려고 그러는 걸까. 이제는 맞받아칠 기력조차 없다.


한숨을 내쉬며 집 위치를 말하자 전정국이 내 팔을 잡아당기며 걸음을 옮겼다. 아니, 잠시만 난 왜 잡고 왜 우리 집 방향으로 가는 거야?



“어디 가.”
“어디기는. 못난이 너네 집 가지.”
“우리 집은 왜.”
“너 집 안 갈 거냐?”


그러니까 네가 왜 같이 가냐고.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너 혼자 못 가잖아. 쫄보라서.”
“아니거든? 집 정도는 혼자 갈 수 있어!”
“됐어. 쫄보 말을 어떻게 믿냐.”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전정국은 정말 남 말을 안 듣는다. 할 수 없이 순순히 전정국과 함께 걸었다. 영화가 마치니 꽤 늦은 시간이라서 솔직히 혼자 돌아가는 것을 걱정하기는 했었다. 오늘 전정국은 좀 이상하다. 영화를 보여주지를 않나, 집에 데려다주지를 않나. 영화는 거의 나를 괴롭힌 거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말없이 걷기만 몇 분, 느닷없이 전정국이 입을 열었다.


“야, 쫄보.”
“왜.”
“......”
“왜 그러는데.”


불러놓고 이어지는 말이 없다. 이것도 신종 괴롭힘인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전정국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갑자기 이 타이밍에 나를 때리려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뭐 하는 거야.”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내게 온 것은 아픈 손찌검이 아니었다. 그냥 전정국의 손이 내 두 눈을 가린 것뿐이다. 덕분에 아까 영화관에서처럼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무슨 짓이냐고 물어도 놈은 대답이 없다.


“뭐 하는 건데, 진짜.”


그렇게 전정국은 한참을 내 눈을 가린 채로 서있었던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냥 말 그대로 그러고 서있었다. 전정국이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뭘 하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내 눈을 덮은 전정국의 손이 뜨겁다고 느낄 뿐이었다. 이윽고 전정국이 내 눈에서 손을 뗐다.


“넌 눈을 가려도 못생겼냐.”


그럼 그렇지. 역시 이건 신종 괴롭힘2 였나 보다. 맨날 못생겼대. 조금 잘생긴 걸로 우쭐대기는. 입을 삐죽이며 슬며시 전정국을 노려봤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손으로 아예 내 얼굴을 감싼다. 아까부터 여러모로 쇼크라서 이제는 충격받을 틈도 없다.


“아까부터 진짜 뭐 하는.”
“어떻게 해도 못생겼어, 너는.”
“나도 나 못생긴 거 아니까 이제 그만 좀 하지?”


전정국의 손이 그제야 제자리로 돌아갔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이유라도 알고 싶다. 정말 내가 그렇게 못생겨서 그랬던 걸까. 그런 거면 진짜 상처받을 것 같다.


집에 다다르니 벌써 시간은 열두 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밖에 나와있는 건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았다.


정말 나를 집까지 바래다준 전정국에게 뭐라고 인사해야 하나. 고맙다고? 아니, 애초에 바래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잘 가고 내일 보자고? 아니, 무슨 친구냐. 나는 그냥 쟤 꼬붕인데. 도대체 전정국에게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들어가, 못난아. 가서 거울 좀 보고.”


그래, 그냥 꺼져주는 게 답인 것 같다.


“아, 그리고.”


제발 그냥 꺼지면 안 되겠니?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전정국이 뒤돌아 나를 보며 웃었다. 사악한 웃음이다. 진짜 날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재수 없다. 그런데 눈빛이 그게 아니었다. 사악한 미소와 반대되는 다정한 눈빛이다.


“오늘 재밌었다. 쫄보.”


역시 오늘의 전정국은 이상해.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먹한 하늘을 보며 우산을 폈다. 거리 곳곳에는 예기치 못한 비에 짜증을 내며 비를 피하는 사람이 보였다. 우산을 챙겨온 내가 뿌듯해졌다. 오늘은 웬일로 그 양아치 놈이 한 번도 부르지 않아서 기분은 쭉 좋은 상태였다. 생각해보니 그 공포영화 이후로 조금 괴롭힌 게 사그라들은 것 같기도 하다. 뭐 착각이라면 착각이지만. 이상한 놈이야, 진짜. 갑자기 잘해주면 당하는 사람은 환장하거든요.


비도 오겠다, 빨리 집에 가서 이불 덮고 자야지 하고 급히 발걸음을 옮기던 때에 맞은편 가게 처마 밑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껄렁한 자세 보면 딱 각 나오는데. 저건 어떻게 봐도 전정국이었다. 우산이 없는 모양인지 처마 밑에서 계속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설마 나한테 우산 심부름 시키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 상상에 서둘러 걸음을 옮기다 이내 멈추고 말았다. 우산이 혼자 쓰기에 조금 큰 것 같기도 하고.


“야.”


난 진짜 병신인가 보다. 그냥 지나치면 되지, 호랑이 굴에 내 발로 달려 들어왔다. 내 부름에 전정국이 고개를 들었다. 순간 가슴이 덜컹거렸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가슴이 덜컹거릴까.


“너 우산 없어?”
“보면 모르냐.”


이런 양아치 새끼를 내가 도와주려고 생각했었다니,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지나칠 수 없었다. 눈에 전정국이 보였고, 정말로 이 우산은 나 혼자 쓰기에 컸으니까.


“자, 이거 줄게.”


같이 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인 듯싶어 내 우산을 놈에게 건넸다. 난 진짜 왜 이럴까. 이 새끼한테 우산 주면 난 뭘 쓰고 갈 건데. 진짜 이 머저리야.



“필요 없어.”
“그냥 줄 때 받아.”
“필요 없다고. 내가 이거 받으면 넌.”
“난 하나 더 있어.”


엄마, 저 맛이 간 것 같아요. 이제는 저놈을 위해서 거짓말까지 해요. 끈질기게 내미니 전정국이 우산을 받아들었다. 그래, 그냥 빨리 우산 쓰고 내 시야에서 사라지렴. 뭔가 전정국이 옆에 있으면 잘 되던 생각까지 안 되는 기분이라서 어서 전정국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놈이 가지 않는다. 왜 안 가냐는 의문을 잔뜩 담아 쳐다보니 전정국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크다고 생각한 우산 안에 전정국과 나 두 명이 들어서자 확연히 작다고 느껴졌다.


“뻥치려면 제대로 치던가.”
“뭐가!”
“우산 없으면서. 그냥 같이 쓰자고 하면 되지, 부끄럼 타냐?”
“아니거든! 부끄럼은 무슨!”


도저히 전정국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다. 쳐다보면 또 가슴이 덜컹거릴 것 같았다. 썩 좋은 느낌은 아니다. 난 진짜 엄마에게서 정의감만 옹골차게 물려받은 게 틀림없다. 그게 아니면 나를 괴롭히는데 안달이 난 이 양아치를 도와줄 리가 없으니까. 하나의 우산 아래 전정국과 내가 함께 걷고 있다. 우산은 작았다. 혼자 쓰니까 크다고 생각한 거였다.


“좀 더 붙어.”
“붙고 있어.”
“진짜 손 많이 가.”


혀를 차며 전정국이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순식간에 내가 전정국의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한 이상한 자세가 되었다. 가슴이 계속 덜컹거렸다. 크고 힘만 무식하게 센 손이 내 어깨를 단단하게 잡았다. 더 이상 전정국과 내 어깨가 비에 젖지 않았다. 아까는 시끄럽기만한 빗방울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건 아까부터 야단스럽게 덜컹거리는 어딘가 이상한 내 심장소리와 전정국의 작은 숨소리뿐이었다.


“너 그날 왜 뛰어들었냐.”
“그날 언제.”
“왜, 네가 병신같이 내 앞 막아선 날.”


아, 내가 내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한 그날.


“그냥 그 애가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서.”
“......”
“그래서 뛰어든 건데.”


아직도 그 일 때문에 화났나. 전정국이 말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내 어깨 위에는 전정국의 손이 있었다.


“너 진짜 네 인생 최대 실수한 거야. 멍청아.”


그건 나도 격하게 동의하는 바다. 너도 내가 불쌍한 걸 알긴 아나보다. 내 어깨 위에 올려져 있던 전정국의 손이 이내 내 머리 위에 안착했다. 또 딱밤을 먹이려나 싶어 움츠러들었으나, 전정국이 내게 먹인 건 딱밤이 아니었다. 차라리 딱밤이면 좋았을 거다. 그냥 욕을 하면서 자기 혼자 우산을 가지고 집에 갔으면 그게 더 나았을 텐데.



“내 앞에 나타난 실수.”


망할 전정국은 내 간절한 바람과 달리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한심하다는 눈빛도, 짜증 난다는 눈빛도 아닌 내가 소중하다는 눈빛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이제 집에 가. 못난이.”
“......”
“내일 내 숙제 잊지 말고.”


그렇게 전정국은 알 수 없는 감정들만 흩뿌려 놓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멍하니 우산을 잡아든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더 이상 전정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래, 난 정말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른 건지도 모른다. 전정국을 만났다. 진짜 최악의 실수다.


우산을 때리던 빗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비가 말끔히 개었다. 이제 가슴이 덜컹거리지 않았다. 덜컹거리는 게 아니라 쿵쿵 뛰었다. 평소 전정국이 내게 먹이던 딱밤처럼. 우산을 접고는 재빨리 엘리베이터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얼굴에 올라온 열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전정국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손으로 얼굴을 감쌀 수밖에 없었다. 전정국에 대한 열이 가라앉을 때까지 계속.



















제가 정국이 생일때 개인공간에 올렸던
상중하 단편글입니다.
항상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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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죋  1일 전  
 정주행이요!

 죋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rornfl  2일 전  
 그냥 평생 셔틀할게요 하게 해주세요ㅠㅠㅠ

 답글 0
  이보시게나  2일 전  
 미친 띵작이다..

 답글 0
  유리이야  2일 전  
 기대 되요ㅠㅠ 엄청 재밌어요!!

 유리이야님께 댓글 로또 1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벨류  2일 전  
 너무 잼있어요!!!!

 벨류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윤콩콩  2일 전  
 기대됩니다!!!!♡♡♡♡♡♡

 답글 0
  lsh061013  4일 전  
 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설레..정말...

 lsh061013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우빈별  5일 전  
 설레는듯~^^

 우빈별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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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빈별  5일 전  
 우빈별님께서 작가님에게 9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다이엔아미  7일 전  
 ...개인적으로 저렇게 싫다는데 뭘 하는건 좋아하지 않지만, 마지막에 뭔가 설레어요.//

 다이엔아미님께 댓글 로또 1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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