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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시집에는사랑과사랑,그리고사랑만이 - W.화가
시집에는사랑과사랑,그리고사랑만이 - W.화가






시집에는사랑과사랑,그리고사랑만이
作 화가




사랑이 우습대
사랑보다 우스운 건 없대
내가 언니를 사랑하는 걸 알면서도 언니는 사랑이 우습대. 그러는 언니도 사실 우스운 사랑을 하고 있었던 거지. 나는 다 알아. 나이가 어려서 더 많은 것을 알지. 동심을 버리려 하는 언니보다 나는 나이가 어려 잃은 것이 적으니까. 아니, 동심을 버리려 한 적 없으니까. 언니는 사랑도 싫대. 그런 걸 해서 무얼 하냐고. 언니는 거짓말을 못 해. 내 앞에서만 못하는 건지. 모퉁이가 해어진 시집과 너덜한 페이지의 가장자리. 그 모든 게 사랑의 증언인데. 언니, 우스운 사랑을 하자. 더할 나위 없이 우스운 것을 하자.

우리 모두 정신없이 쏟아지는 사랑을 줍자
허벅지에 파고든 날카로운 별조각을
새 구두를 신고 발을 구르며 땅속에 묻혀있는
오랜 사랑을 들깨워보자


기억해?
나의 연인이었던 적 없는, 그러나 나의 옛사랑에게 묻는다.
우리의 어린 날과 오랜 날들을. 그건 더 크지도 않고 영영 살아있는 것들. 포르말린에 대하여, 언니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으니까 포르말린에 대해서도 알겠지. 우리의 어림은 아마 포르말린 없이도 영원히 부패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지? 언니, 언니! 제발 포르말린 속에서 우리를 숨 쉬게 하지 마. 우린 죽지 않아. 배를 가르고 염을 해도, 언제나 사랑을 외칠 거야. 바짝 깎은 손톱을 포르말린 수조에 벅벅 긁으면서도 나는 사랑을 할 거야.

언젠가 동심이 죽어도 기억까지 죽는 건 아니라는 말도 할 줄 알았던 언니는 바싹 메마른 사람으로 자랐다. 그리고 별 기별도 없이 어디론가 시집을 갔다. 삿포로라고 했나.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 했다. 언니는 분명 의사가 되고 싶어 했는데. 분명 사랑 같은 건 아주 지긋지긋하다고. 그래서 버리는 거라고. 절대 네가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했는데. 근데 언니 사랑해 본 적 없잖아. 해보지도 않고서, 언니는 새 사랑을 버리기 일쑤네. 그래서 나는 죽지도 않고 버려진 새 사랑들을 주워 보살펴. 언젠가 이 사랑들을 기억하고 돌아오는 이가 있을까 싶어서. 약간의 사명감도 들고 꽤 보람차. 그러니 언니, 새 사랑을 버려줘서 고마워. 덕분에 내 사랑이 죽지도 않아.

세상은 사랑을 지나칠 때 유성을 보낸다더라
그러면 나는 위로하듯 내려오는 유성에 소원을 빈 다음
그새 가득 차버린 사랑을 꺼내 보여
사랑을 양껏 흘려보내면
그제야 언니를 다시 품을 공간이 생긴다고



역병처럼 퍼져 나간 사랑은 언니도 고칠 수 없어. 언니는 문학 대신 의학을 배웠지. 펜 대신 칼을 드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사랑을 가르쳐주는 문학 대신 사람을 살리는 법을 알려주는 의학이 배우고 싶다고. 살아야 사랑도 할 수 있는 거라면서. 그러면 있잖아, 언니. 나도 살려줄래? 언니는 이제 시도 쓸 수 없고 사랑도 고칠 수 없지만, 나는 살릴 수 있어. 그래줄래? 언니가 나 좀 살려줄래?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언니보다 잃은 게 적다는 말, 기억해?
우리의 나이가 몇이던지 별들 아래서 우리는 항상 어려. 무지한 어린애야. 난 분명 잃은 게 적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동심과 사랑을, 그리고 언니를 버리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잃은 게 많아. 어쩌면 모든 것을 잃었는지도 모르지. 분명 동심과 사랑은 언니가 버렸는데. 나는 정말이지 버리지 않았는데. 언니가 떠나니까 내 동심과 사랑은 숨을 쉬지 않아. 언니를 따라 삿포로에 갔나? 나는 여전히 언니를 사랑하는데. 나의 해맑고 때묻지 않은 동심도, 투명하게 떠있는 어리숙한 반쪽 달과 항상 속죄를 빌었던 불상 아래 벗어놓은 고무신까지도. 나는 아직 사랑하는데. 도대체 왜지? 사랑하는 것은 어디에 있어?

아, 돌아가고 싶어
사랑하는 것들이 떠나지 않은 그때로


언니는 부지런하고 내 사랑은 너무 게으른 여름이지.
다음에는 내 사랑도 기다려줄래? 언니, 여름도 기다려볼래? 언니는 더운 게 싫다면서 바다 건너 삿포로로 떠났지만 난 언니가 추위를 많이 타는 걸 알아. 그러니 따뜻한 여름으로 와. 우리의 심장은 여전히 일백의 온도계에서 빨갛게 타고 있어.

유성우로부터 수백의 위로를 받으며 합장하고 빌었던 것은
도둑맞은 여름날도 사랑해달라고
이 어리고 여린 순정에게도 눈길 한 번 달라고
우리는 아직, 별보다 어리지 않느냐고


언니는 거짓말을 못 해.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언니도 결국엔 별보다 어려. 언니는 겨울을 좋아하니까, 더운 걸 싫어하니까 삿포로로 간다는 말도 다 거짓말이야. 그래서 삿포로로 간 거 아니잖아. 언니는 삿포로를 사랑하지도 않았잖아. 그 남자도 사랑한 거 아니잖아. 사실은 언니도 사랑하고 싶었던 거 알아. 누군가를, 그 무언가를 말이야. 그러면서도 언니는 펜을 들었어. 문학을 쓰기 위한 펜이 아니라, 의사가 되기 위해. 도희야, 사실 심장은 왼쪽에 있는 게 아니야. 가운데에 있어. 그리고 하트 모양도 아니야. 언니는 심장을 설명해 줄 때 그나마 행복해 보여. 그럼 내가 묻지. 언니, 사랑은 심장으로 하는 거야? 그럼 언니는 그냥 슬프게 웃어 보여. 아, 아직도 문학을 사랑하는구나.

사랑하기를 한심히 여겼던 사람이 어째서 시집을 들고 있었어
시집에는 사랑과 사랑, 그리고 사랑만이 가득한데




언니, 잘 살고 있어? 삿포로는 어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느냐는 말이야
의사가 되고 싶다더니, 언니는 시인이 되었더라
찢어진 사랑 이야기만 쓰는 시인이 되었더라
사랑은 심장으로 하는 거라 슬프게 외치는 그런 시인이
언니의 시에는 내 이름도 자주 나온다던데

언니, 삿포로는 어때
이건 언니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냐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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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김.잔디  477일 전  
 우아ㅠㅠㅠ진짜 글이 너무너무 좋아요ㅠㅠㅠ 진짜 뭔가 울컥했구ㅠㅠㅠ 즐찾하구가요ㅠㅠㅠㅠ

 김.잔디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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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선비  477일 전  
 헐.. 입이 떠억 벌어집니다.

 유선비님께 댓글 로또 1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나는야케이팝팬♡♡  477일 전  
 글 넘 좋아여!!!

 나는야케이팝팬♡♡님께 댓글 로또 3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히로인   477일 전  
 보구 싶으다 말랑깜쮜기
 저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그녀 가혜이에요

 답글 0
  히로인   477일 전  
 히로인 님께서 작가님에게 100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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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이쁨  498일 전  
 천이쁨님께서 작가님에게 273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시터  794일 전  
 시터님께서 작가님에게 17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민윤기  798일 전  
 민윤기님께서 작가님에게 10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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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학  798일 전  
 화가님ㅠㅠ 글 진짜 짱이에요ㅠㅠ
 제가 많이많이 애정합니다♥♥♥

 김문학님께 댓글 로또 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윤또예  798일 전  
 엄허,,, 작가님 진짜 천재신거 같아요ㅠㅠ

 윤또예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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