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방탄빙의글 06. 엇갈리는 감정 - W.한음
06. 엇갈리는 감정 - W.한음












ㄴ 재생해주세요!











Copyright ⓒ 2020. 한 음 All rights reserved









그날 여주는 윤기와 함께 등교를 하지 않았다. 그의 체육복을 빼앗아 가지도 않았고, 급식을 함께 먹어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이제는 연이와도 완전히 틀어져 버렸는데, 윤기까지 없으니 여주는 외로움에 시달렸다.

물론 윤기는 평소처럼 지냈다. 평소처럼 공부하고, 평소처럼 놀고. 윤기는 여주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여주가 자발적으로 윤기를 피했을 때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다. 하지만 여주는 윤기의 삶에 좁쌀만큼도 스며들어있지 않았던 걸까. 여주는 문득 서러워졌다.

윤기야, 난 정말로 네게 없어도 되는 존재였니? 이 모든 것의 처음부터, 넌 내가 필요 없었던 거니?

여주의 마음속 깊은 질문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야, 민여주 봐. 어제 하연이랑 싸우더니 완전 창백해졌는데?"

"설마 민윤기 두고 싸우는 거 아냐? 쟤 민윤기랑 친남매 아니라며."




귀를 틀어막아도 머릿속에서 웅웅 맴도는 그 목소리들이 싫증 났다. 여주가 제 입으로 제 비밀을 토로한 것을 후회할 틈도 없이 아이들은 여주만 보면 수군거렸다. 강여주, 민윤기. 이제는 무슨 트라우마라도 되는 마냥 여주는 그런 단어를 들을 때마다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아, 아아."




여주는 이내 정말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책상에 엎드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물 한 잔만 마시면 정말 나아질 것 같은데. 딱 한 잔만. 아니, 한 모금이라도.

식은땀을 흘리며 힘들어하는 여주가 윤기의 눈에 띄었다. 아침에 밥을 그렇게 급하게 먹고 먼저 나가더니, 윤기는 단순히 그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고백은 못 들은 걸로 하겠다는 한 마디에 마음을 접었을 줄로만 알았고, 여주가 저를 일부러 피한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여주가 아팠던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윤기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고, 결국 오늘도 어김없이 급하게 물을 찾아 꺼냈다. 그러나 여주에게 가려던 윤기는 그 급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민여주,"



"여주야, 괜찮아?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윤기가 동작을 멈추고, 여주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태형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여주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물, 물......"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알아들은 건지 태형이 금방 생수를 꺼내서 여주에게 건넸다. 물이 입가로 흐르도록 급하게 마시던 여주가 가쁘게 쉬던 숨을 점차 가라앉혔다. 윤기는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태형아. 나 진짜 너 아니었으면 여기서 토했을 거야."

"너 진짜 괜찮아? 얼굴이 엄청 창백해."

"아, 괜찮아."

"괜찮긴, 보건실부터 가는 게 안 나을까? 쌤한테는 내가 말해놓을게."

"... 아, 응."



"데려다줘?"

"... 응."

"알았어, 내 손 잡아 봐."




태형이 한 손으로는 여주의 손을 받치고 한 손으로는 여주의 어깨를 감싸 부축했다. 거의 안기다시피 한 여주가 태형에 의존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지탱했다. 제 어깨를 감싼 커다란 손이 따뜻했다.




"야, 저거 김태형이랑 민여주 아냐?"

"헐, 쟤네 둘이 사귀나?"

"에이. 민여주는 민윤기 좋아할걸?"

"아, 맞아. 걔네 친남매 아니랬지? 뭐야, 그럼 민여주가 꼬리라도 친다는 말이야?"




태형이 여주를 부축해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 똑똑히 봐버린 윤기에게 여학생들의 근거 없는 뒷담이 거슬렸다. 윤기가 여주를 처음 만나고 그녀에게 점차 적응하기 시작한 언젠가부터 여주의 거의 모든 것을 윤기가 챙겨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여주를 신경 쓴다는 것이 매우 어색하게 느껴졌다. 왠지 모를 무안함도 들었다. 제 역할을 미처 다 하지 못했다는 느낌과 비슷도 했다.




"민여주, 완전 여우였네."

"에이, 설마 진짜일까?"

"정호석도 쟤한테 관심 보이던데? 그럼 빼박 아냐?"

"미친, 빼박이네. 걔네 다 인기 많은 애들 아냐?"

"아, 진짜 꼴 보기 싫어. 꾀병 부리는 것 봐."

"야."




그게 아니라면,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




다른 의미의 감정이라도 있었던 걸까.
















"좀 쉬고 있어."




간이침대에 눕히고는 담요까지 꼼꼼히 덮어준 태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선의 초점이 흐려 태형의 얼굴이나마 겨우 보이는 여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태형이 미소를 지으며 잠시간 여주를 바라보다 쭈그려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잠시만."




그렇게 돌아서려는 찰나 여주가 떠나가는 태형의 손목을 있는 힘껏 붙잡았다. 태형의 손목에서 여주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태형이 여주에게 잡힌 손목을 보더니, 또 여주와 눈을 마주했다.




"조금만, 같이 있어주면 안 돼?"




태형이 큼지막한 눈을 깜빡였다. 그 눈으로 마주 본 여주의 눈은 젖어있었다. 보건실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여주가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보건실에 올 때마다 항상 함께했던 윤기가 같이 있어달라는 말에 매정하게 떠났던 것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아니, 저, 윤기야...

`...`

`보건 선생님 오실 때까지만 같이 있어주면 안 돼?`

`... 내가 니 단짝이냐.`

`...`





당시에는 함께 있기 부끄러웠던 그저 귀여운 아이로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태형도 그렇게 저를 혼자 두고 갈까 봐 여주는 두려웠다.

여주가 태형의 손목을 붙잡고, 태형이 아무 말 않던 그 몇 초 간은 여주에겐 너무나도 힘겨운 순간이었다. 제발 옆에 있겠다고, 함께 있어주겠다고 말해달라는 그 간절한 바람이 여주의 슬픈 눈동자에 그대로 드러났다. 순간 여주의 눈에 태형이 윤기와 겹쳐 보이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태형이 제 손목을 잡고 있는 여주의 손을 떼어냈다. 문득 밀려오는 절망감에 여주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데, 순간 제 얼굴 앞으로 훅- 하고 열기가 다가온 게 느껴졌다.






"알았어. 나 여기 있을게."




태형이 제 팔에서 떼어낸 여주의 손을 그의 두 손으로 감쌌다. 가볍게 지은 미소가 따뜻했다. 여주도 태형이 감싸 쥔 손을 힘주어 잡았다. 고마웠다.




"좀 자. 너 잠드는 거 보고 갈게."

"응. 고마워."




태형이 여주가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한 손으로 여주의 머리칼을 정리하더니 여주를 재우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둑어둑한 보건실이 오늘따라 유독 환하고 따뜻했다. 옆에 누군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여주는 금방 잠들었다. 다행히 태형은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자리에 앉으려는데, 누군가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야, 김태형."

"민윤기?"

"민여주, 지금 어디 있어?"




여주가 어딨냐고 묻는 윤기에 태형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이야기들도 그렇고, 여주가 그렇게 아파하는 이유의 상당한 부분을 윤기가 차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딨냐고."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되는데?"

"뭐?"




결국 태형은 여주가 윤기를 만나게 두지 않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가뜩이나 몸 져 누운 여주를 울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 만났던 날 제가 건네주었던 포스트잇에 대해 고맙다며 예쁘게 웃는 여주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왠지, 꼭 지켜주고픈 아이였다.




"내가 알려주면 뭐, 가보기라도 하게?"

"그러려고 물어보는 거잖아. 민여주 어딨어."

"넌 알 자격 없다고 생각하는데."

"..."

"..."

"그럼 넌. 자격 있어?"

"..."

"네가 여주 가족이라도 돼? 아니면,"

"..."



"민여주, 좋아하기라도 해?"




윤기의 마지막 물음에 태형이 뜨끔했다. 여주와 일상을 함께하는 녀석 앞에서 제가 정말 무슨 자격으로 여주를 지키려고 하는지. 정말로, 여주를 좋아하기라도 하는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태형은 제 자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도대체 왜?




"난 민여주 오빠야."

"..."

"그 자격으로 가는 거야."




스스로에게서 대답을 얻지 못한 질문이 윤기의 한마디에 사로잡혔다. 그래, 너에겐 자격이 있다. 나와는 다르게 넌, 떼려야 뗄 수 없는 여주에 대한 타이틀이 있다.

알려주지 않아도 윤기는 곧장 여주를 찾아갈 거란 걸 태형도 알고 있었다.

그 앞에서 태형은, 한없이 무력함을 느낄 뿐이었다.














어둡고 삭막한 분위기의 공간 속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누군가 탁- 하고 불을 켜자 어둠에 적응되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또 다른 누군가가 드러났다.




"... 하린."

"..."

"너 왜 학교 안 가?"

"... 너도 안 가잖아. 피곤하니까 나가."

"내 이름표, 그거 달고,"

"..."

"그거 달고 여주한테 갔었어?"




린이 눈을 가리던 손을 떼고 인상을 팍 쓴 눈으로 연을 노려봤다. 마치 그래서 뭐 어쩌냐는 듯이, 그게 무슨 일이라도 되냐는 마냥 가늘게 뜬 눈이 초췌했다. 도대체 몇 시간을 이러고 있었던 건지, 몸을 가누는 몸짓조차 버벅댄다.




"대답해. 여주한테 가서 뭐라고 했어?"

"네가 뭔 상관이야."

"강여주는, 걔네 집안 사정은 또 어떻게 안 거야?"

"..."

"대답하라고, 하린...!!"




린이 답답한 듯 누워있던 침대에서 상체를 완전히 일으켰다. 신경질적으로 덮여있는 이불을 홱- 하고 걷어내고는 금세 연의 앞에 섰다. 서로 저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짜증 났다.




"네가 흘린 말이라고는 생각도 안 하지?"

"... 뭐?"

"있잖아, 연아. 네가 잊었나 본데, 우리 쌍둥이야."

"..."

"한낱 여고생이랑 통화하는 것쯤은 다 들을 수 있는 사이라고, 우리는."

"..."

"최민준도 그렇게 죽인 거 아냐?"

"야, 하린!!!"




`최민준`이라는 이름에 연이 발끈했다. 여주에게도 숨기고픈 과거가 있듯, 연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그 사고는 이른바 `하연이 주도한 교통사고`라고 불렸으며, 이 시점으로부터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 사람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연은 이성적인 마음으로 민준이라는 아이를 좋아했고, 민준은 린을 좋아했으며, 그 마음을 안 린 역시 민준을 마음에 두기 시작하던 때였다. 오랜 시간 동안 민준을 지켜봐 온, 그리고 좋아해 온 연은 자신과 별반 차이가 없는 린을 좋아하는 민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간 수없이 해 온 고백들이 그의 한 마디에 가루처럼 부서져 갈 때마다 주저앉았지만, 연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람을 끝까지 이기적인 쪽으로 내몰았으며 그때마다 상처를 받는 건 연의 몫이었다.




`도대체 왜 걔를 좋아해? 나랑 다를 게 없는 애잖아...!`

`아니. 너랑 린이는 달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나 좋아하지 마.`

`... 어째서? 어째서 내가 하린이랑 다른 건데? 그냥 날 좋아해 줄 수는 없는 거야?`

`... 미안해.`

`최민준!!`

`근데, 네가 하린이랑 다른 사람이라는 건 좀 알았으면 좋겠다.`





민준의 말은 연의 마지막 희망마저 주저 없이 잘라버렸고, 연은 절망했다. 결국 연에게 남아있던 민준에 대한 마음은 점점 집착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고, 연은 아무 잘못이 없던 린에게 찾아가 화를 내고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나 연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린과 민준의 말은 모두 진실이었고, 또 진심이었기에.

하지만 연은 끝까지 민준을 쫓았다. 다음 날 연은 린과 민준의 통화를 엿들어 린이 민준과 만나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름표를 훔쳐 린으로 위장하고 민준을 만났다. 하지만 민준은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린이 아닌 연이 제 앞에 있다는 것을 일찍이도 알아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고, 우산 하나 쓰지 않은 채 극도의 말싸움으로 서로를 몰아붙이던 둘은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도로 한복판에서 민준은 자꾸만 다가오는 연을 밀쳤고, 연은 힘없이 뒤로 고꾸라졌다. 연은 아파했고, 당황함에 뒷걸음치다 미처 옆에서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사고 이후로 학교에서는 연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고 연은 그 모든 죄책감과 불안함을 혼자 견뎌내야 했다. 울고 있으면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웃고 있으면 함께 웃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연을 피해 다니기 바빴다. 그들 사이에서 `간접 살인자`라고 불리는 이었으니.




`저기.`

`...`

`그만 울고 나 좀 도와줄래?`

`...`

`보다시피 내가 심부름 중이라. 근데 보이는 게 너밖에 없어서.`





그때 처음으로, 또 유일하게 힘이 되어줬던 아이의 떼가 탄 이름표에는 `강여주`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연은 여주가 내미는 바구니를 냉큼 받아들었다. 연에게는 여주가 내민 바구니가 마치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

"내가 죽인 건 아니야."




연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괴로웠던 순간에 항상 생각나는 사람은 여주밖에 없었다. 물론 그때 여주는 연을 위로하기 위해 다가갔던 것은 아니지만, 연은 몇 번이고 속으로 여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런 아이에게 저는 되려 상처를 주고 말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살인을 했던 게 아니라는 작은 변명뿐이었다.




"아무렴."




역시 린은 상관하지 않았다.









보건실은 자주 자리가 비기 때문에 제대로 잠겨 있지도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둡고 침침하기 일쑤였다. 눈앞에 겨우 보이는 것들에 의존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는 윤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곳에 여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점점 사그라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과는 달리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하는 소리가 윤기의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다 그 희미한 소리를 따라 조금 더 움직이니 익숙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표정을 지닌 여주가 눈에 들어온다. 윤기는 한참을 서서 여주를 바라봤다. 평소에 잠도 잘 못 자던 아이였는데, 도대체 태형이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는 건지.




"하... 괜히 걱정했네."

"..."

"한동안 잘 안 보이더니, 아팠던 거였냐."

"..."



"아님 일부러 피했던 건가."




그러다 윤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을 졸여가며 오던 일이 헛수고가 되어 오히려 다행이었다. 윤기가 여주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간이침대 옆에 있는 조그만 의자에 앉아서 여주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제 얼굴과 닮은 곳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하나같이 닮지 않았다고 말하던 주변 사람들로 인한 인식이 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어두워지던 여주의 표정을 윤기는 알고 있었다. 저와 닮지 않은 것이 그렇게 속상하면서, 왜 저를 좋아했던 것인지.






"그냥 착각했던 거지?"




윤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주가 벌써 쉽게 마음을 접었을 거라고, 그래서 그 감정은 한낱 착각일 뿐이라고. 윤기는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여주가 괜찮은 것도 봤으니 이제 다시 돌아가려는 듯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민윤기."




나가는 문으로 향하려던 윤기의 발목을 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주에게 등을 돌린 채로 서 있는 윤기가 여주가 자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에 놀랐다. 제가 여주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던 것을 느꼈고 혼자서 중얼거렸던 말을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쉽사리 뒤돌아 여주를 마주칠 수 없었다.




"착각, 아니야."

"..."

"내가 마음 접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

"그래서, 너 혼자 속 편했던 거야? 진짜야?"

"..."

"나만... 나만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던 거야...?"




윤기의 두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윤기의 귀에 여주의 말이 제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여주는 진심이었다. 윤기는 처음부터 생판 모르는 남과 가족이 될 거란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때문에 여주가 제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란 것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윤기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여주는 어느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프지 않은 줄 알았던 그녀의 두 눈에 어느새 눈물이 가득 차 올라 있었다.




"윤기야,"

"그만."

"..."

"그만해, 이제."




가족이 날 사랑하는 이 뭣같은 기분, 더이상 느끼게 하지 말라고.

윤기는 아까보다 빠른 걸음으로 보건실을 빠져나갔다. 고작 밖으로 나가는 그 몇 걸음이 여주에게는 크나큰 상처였다. 여주는 덮여있던 담요를 치워내고 보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윤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눈물이 다 마르지 않은 채로 교실에 들어온 여주가 제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물건들을 화난 듯이 마구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아이들의 이목이 여주에게 집중되었고, 역시 그중에 윤기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파 보이는 여주를 발견한 태형이 황급히 여주에게 다가왔다.






"여주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좀 쉬어야 되는 거 아냐?"

"조퇴할 거야. 교무실도 들렀다가 갈 거니까 따로 안 말해도 되고."

"자, 잠깐만 여주야...!"

"태형아, 미안한데,"

"..."

"지금은 따라오지 말아 줘. 부탁이야."




간절히 부탁하는 여주의 얼굴이 창백했다. 그래서 태형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민여주나, 민윤기나, 저를 무력하게 만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가짜라도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봐.

가방을 메고 급히 복도를 걸어가는 여주의 반대편으로 호석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저 지나갈 뿐인데도 눈에 띌 만큼 창백해져있는 여주의 모습에 호석이 놀랐다. 여주는 제 정면에 서 있는 호석을 보지 못하고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부딪혀버렸다. 마주친 눈동자에 물기가 서려있었다.






"... 너 어디 가."




여주는 분명 호석의 물음을 들었지만 쥐고 있는 가방끈을 더욱 세게 붙잡고는 그냥 호석의 옆으로 지나가려 했다. 그리고 호석은 그런 여주의 앞을 다시 한 번 막아섰다.




"어디가냐니까?"

"보면 몰라? 조퇴하잖아."

"어디 아파?"

"신경쓰지 마.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무것도 아니긴...! 너 얼굴이 이렇게 창백한데,"

"야, 정호석,"

"민여주."

"..."

"어제 이후로 우리 어색한 거 아는데, 그래서 나도 지금 어색해 미치겠는데,"

"..."

"지금만큼은 네가 아는 그 정호석으로 들어주면 안될까."

"..."




여주가 아는 정호석. 여주는 그것에 가장 먼저 의문을 두었다. 그동안 여주에게 호석은 도대체 무슨 의미였는지. 여주와 호석은 정말 친한 친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좋은 사이였다. 자주 장난도 치고, 서로 티격태격 의미없는 말싸움을 하기도 하고. 하지만 여주와 호석이 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한 가지였다. 그들 사이엔 윤기가 있었다. 결국 호석도 여주에겐 윤기로 인한 인연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호석에게 여주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호석 역시 저와 친한 윤기의 쌍둥이 여동생이 여주였기 때문에 여주와 친할 수 있었던 것이고, 호석이 여주를 좋아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랬다. 윤기로 인해 저와 여주가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원인이 낳은 결과는 호석의 부탁을 더욱더 간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여주는 도무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항상 너만 혼자 묵혀두지 말고, 나한테라도 털어놓으면 안돼?"

"..."

"너만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그렇게 아프지도 말고."

"..."

"너 그렇게 아프게 하는 사람 때문에 고생도 하지 말고, 차라리 네 이야기 들어줄 수 있는 나한테 기대주면 안돼?"

"..."



"안 그러면 내가 했던 고백이... 너무 비참해지잖아."




저 혼자 끙끙 앓았던 거냐고 화를 내도 무시하던 윤기와는 다르게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그걸 또 알아준다. 그건 모두 그 사소한 감정 하나 때문이겠지.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 때문이겠지. 그깟 좋아한다는 감정이 뭔데, 그게 뭔데 우리를 울고 웃게 하는 건지. 여주나, 호석이나, 또 어쩌면 다른 이들이나, 그걸 알면서도 하는 바보같은 짝사랑. 정말 지겨웠다.

하지만 짝사랑에 규칙이라도 있는 건지 사람들은 제가 혼자서만 사랑하는 그 사람만을 매번 떠올린다. 제 앞에서 그 누가 저에 대한 감정을 쏟아낸다고 해도, 저는 그저 제 짝사랑만을 떠올리고, 생각할 뿐이다. 그 사랑이 혼자 하는 사랑이라서 상처를 받는다고 해도, 또 때로는 제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이라는 더 쉬운 길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람의 마음이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맞아. 나 진짜 혼자서만 끙끙 앓았고, 나 혼자서만 힘들었어."

"..."

"그걸 알아준 정호석 너도 참 고마워."

"..."

"근데 호석아,"

"..."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끈질기다. 그치?"




여주가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고개를 숙인 호석의 눈도 점점 벌개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라도 돌려서 말하면 좀 덜 상처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주는 호석과 제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거절하기 미안하고 힘들었지만, 여주의 마음이 가는 그 하나의 길에는 다른 사람이 놓여있다. 이 일로 여주는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혼자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렇지만. 하지만 결국엔,

짝사랑도 사랑이다.














**





안냐쎄요.. 오늘도 음임미다..!!

어때요.. 분량이 좀 많아졌나요..?ㅋㅋㅋㅋㅋ

음.. 일단 여주는 호석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ㅋㅋㅋㅋ
짝사랑 속 사람의 마음이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죠..
어떻게 좋아하는 마음을 그만 둘 수가 있겠어요ㅠㅠ((짝사랑을 경험해 본 듯한..?

솔직히 남주가 너무 매몰찬 나쁜 솨람으로 나오구 서브남이 남주같은 이런 두리뭉실하고(??) 이상한 기분...
저 솔직히 진지하게 어남홉으로 갈아탈까 고민했습니다.(미친건가)
후 이러면 안돼
저 이 글 쓰면서 제 자신한테 세뇌(??)를 엄청 많이 했다구요..


아 그리고

maybe 엄마야 시즌2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걸 시즌2로 할지 아님 걍 번외로 낼지는 모르겠어옹

아마 번외로 낼 가능성이 클 듯..?

시즌 2 원한다면 자유롭게 댓글 달아주세요!

고럼 전 이만 포명베댓 끌고 튀튀하겠습니당

















ㄴ 탄쒜는 내 솨랑 항상 고마버 우움마❤







ㄴ 공백 님 매번 이러케 포인트 주시구ㅠㅠ 너무 감솸다ㅠㅠㅠ







ㄴ 나비처럼 날아와 벌처럼 (포인트를) 쏘고 지나가셨습니다.

천포라니...............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전 이미 고래님한테 다 써먹은지 오래.....
암튼 넘넘 감사해용!❤❤

















ㄴ 벌써 베댓만 두 번째 올라오신 이 분...
이거 레전드 아임미꺼






ㄴ 이 분 도대체 정체가 뭐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천하기 17   즐겨찾기 등록
글이 재미있었다면 작가님에게 포인트 선물을 해주세요.
나의 Point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작가님에게
추천수와 선물받은 포인트 합산을 기준으로 글의 순위가 결정됩니다.




한음 작가님의 다른글 보기       전체보기
    로그인 후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댓글
  짱짱맨뿡뽱  29일 전  
 헐 ...

 짱짱맨뿡뽱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꾸꾸X망개사랑해  63일 전  
 짝사랑.. 진심 겪어본 사람만 아는 아픈사랑이죠..

 답글 1
  Shia•▽•  64일 전  
 시즌2원해요!그치만 작가님이 쓰신글은 모두좋으니 힘드시면 안쓰셔도 괜찮습니담!항상 글 잘보고 있어요!

 Shia•▽•님께 댓글 로또 1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애똘  64일 전  
 시즌2 원하지만 힘드시면 안 하셔도 되는ㄷ..ㅠㅠ

 애똘님께 댓글 로또 1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예똥이랍니다하~  64일 전  
 왛ㅎㅌㅎㅌㅎㅎㅌ여주야ㅠㅠㅠ의지더 좀 하고그래ㅠㅜ 그래야 윤기가 자각을 할거야냐ㅣ아으ㅜㅜㅜ

 답글 0
  예똥이랍니다하~  64일 전  
 왛ㅎㅌㅎㅌㅎㅎㅌ여주야ㅠㅠㅠ의지더 좀 하고그래ㅠㅜ 그래야 윤기가 자각을 할거야냐ㅣ아으ㅜㅜㅜ

 예똥이랍니다하~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삐리빠라뿅  64일 전  
 어이쿠 베댓이 두번째라니 감사하구만요(싸바싸바)
 시즌 2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시즌 20까지 볶아봅시다

 삐리빠라뿅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자야자야  64일 전  
 뭐가그리복잡해

 자야자야님께 댓글 로또 1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64일 전  
 시즌2 사랑하고 이번편도 늦게와서 제성합니다유ㅠㅠ

 답글 1
   64일 전  
 자까님이란 늪에 빠져드는중..☆

 답글 0

26 개 댓글 전체보기


친구에게 장난치기 꿀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