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방탄빙의글 [전정국] 20살의 복학생 - W.연짱
[전정국] 20살의 복학생 - W.연짱
 
20살복학생



 

"선생님, 왜 제 카톡 안 읽어요?"

".... 사사로운 연락하라고 알려준 번호 아니야. 반으로 돌아가."

"에이, 읽지도 않아놓고. 사사로운 연락인지 쌤이 어떻게 알아요?"

"...... 미리 보기."

"오... 미리 보기로 보긴 보는구나? 역시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선생님도 궁금하죠."




애써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 아이에 한마디에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가 버렸다. 눈가가 휘어지게 웃는 모습이 참 예쁘면서도 장난기가 가득하다. 



"시끄러, 전정국. 수업 시작해. 교실로 돌아가."

"네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이만!"



정국이는 다시 한번 싱긋 웃으며 웬일로 쉽게 물러났다. 내 나이 25살, 한 번의 낙방이 있었지만 그래도 남들에 비해서는 꽤 쉽게 내 목표를 이룬 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하고 싶었고, 생각보다 빨리 이루게 돼서 참 기쁜데도 선생님이 된 첫 연도부터 참으로 순탄하지 않았다. 바로, 지금까지 내 옆에 서성이며 장난스레 웃던 전정국 그 아이 때문에...

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나는 허둥지둥 노트북을 챙겨서 다음 수업이 있는 반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왜 정국이가 순순히 물러났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음 수업은 다름 아닌 우리 반이었으니까.



"하, 돌겠네 진짜.........."



나는 챙기던 짐을 내려놓고 마른 세수를 한 번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업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다시금 짐을 챙겨 반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자마자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다. 애써 정국이의 시선을 무시했다. 

수업을 시작하자 정국이가 열심히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선뜻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 수업 시간에 그 점은 참으로 고마웠지만 그 의도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마냥 기쁠 수 없었다. 


정국이는 나를 노골적으로 좋아한다고 표현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선생님이 아닌 절대적인 이성으로.....
그게 참 곤란했다. 아무리 정국이가 20살인 고등학생이어도 그래도 내 학생임은 변함없었다.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지는 날에는 내가 그토록 바라고 쌓아왔던 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결국 정국이에게는 더더욱 쌀쌀맞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해도 정국이는 기죽는 법이 없었다. 



"선생님, 노트북 들어드릴게요."

"됐어. 네가 왜."

"왜긴요~ 선생님의 애제자니까요!"

"누, 누가 멋대로 애제자야?!"

"와~ 아니었어요? 그럼 좀 서운한데 저만 선생님 반 아닌가 봐요? 언제는 우리 반 학생들을 제일 아낀다면서..."



갑작스럽게 정국이에게 튀어나온 애제자라는 소리에 기겁해 그만 귓가를 붉히며 소리를 빽 지르자 정국이가 낄낄 웃어대기 시작했다. 

또 당했다. 또 당했어.




"선생님, 죄송한데 진짜 귀여운 거 알아요?"


이어서 귓가에 속삭이며 말하는 정국이에게 화낼 틈도 없이 정국이는 벌써 저만치 내 노트북을 들고 앞서 간지 오래였다. 이 와중에 정직하게 뛰고 있는 내 심장이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어쩔 줄을 모르고 서있는 꼴을 한 나에게 조금은 화가 났다. 미쳤어 백설희 정신 차려. 뭐 하는 거야. 쟤 그냥 네 학생이야. 아무리 20살 복학생이라지 만 5살 차이면 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1학년인 거고! 쟤가 중2병 걸려있을 때 난 어엿한 성인인 거라고!

그런 존재한테 지금 화를 못 낼망정 심장이 뛴다고? 그래 잘 생긴 건 인정. 근데 너 고작 잘 생기면 다 오케이 하는 그런 사람이야?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정국이는 안된다고, 난 선생이고 쟤는 학생이야. 그런 어디서 많이 들어온 고리타분한 말을 되뇌며 자리로 돌아가니 정국이가 먼저 노트북을 내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걸음이 늦네요?"

"......"

"다리가 짧아서 그런가?"

"까분다 또."

"괜찮아요. 내가 선생님한테 맞추면 되니까"

"노트북 가져다준 건 고마운데 이제 좀 돌아갈래?"




또 웃음을 치며 장난을 치려는 정국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짧은 손 짓으로 이제 그만 가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제발 좀, 가."

"아 맞다 선생님 이거요."


그런 내 모습에도 굴하지 않고 제 교복 주머니를 구석구석 뒤지길래 나도 모르게 눈길을 주었더니 자신의 주머니에서 손하트를 만들어 꺼낸다. 


"사랑한다고요."



이런 장난치지 말라고 따끔하게 혼내야 하는데 갑자기 훅 들어온 사랑고백에 그만 얼빠진 표정으로 정국이만 꿈벅꿈벅 쳐다보게 되었다.맑은 정국이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오고 심장이 쿵쿵 요동을 친다.

아, 미쳤다. 백설희.


/


"어우~ 술 냄새. 백설희 그래서 오늘 왜 불렀는데?"

"아미야.... 나 어떻게 할까?"

"왜, 또 뭔데?"




토요일 늦은 저녁 핫플레이스의 한 호프집 안. 어지러운 마음 이기지 못하고 나의 절친 아미를 불러버렸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 지금 그게 고민이라고 부른 거야...?"



나름 어렵게 꺼낸 한마디에 아미의 표정이 경멸로 물들었다. 아니, 그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왜 문제이겠냐마는 그래도 나한텐 큰 문제란 말이다.



"근데 그게 우리 반 학생이야."

"아니 그게 도대체 뭐가 문젠데? 어린 마음에 충분히 그럴 수 있지."

".. 그럼 내가 걔를 좋아해버리면?"

".. 뭐?! 그건 안되지!! 미쳤어?"

"그래, 미쳤지. 미친 거지? 진짜 단단히 돌았나 봐 나."

"그래서, 뭐 지금 그 학생을 좋아한다는 거야 뭐야?"

"그걸..! 모르겠어. 좋아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막... 심장이..."

"얘가, 얘가. 진짜 큰일 날 소리 하네. 안되겠어. 내가 그동안 너 공부하느냐고 모쏠인걸 참아줬다 해도 이건 안되지. 

어차피 이제 선생님도 됐고, 나 이제 못 참아. 나 지금 남자 부를 거야 말리지 마."

"야, 야! 김아미!"

"네가 남자를 못 만나봐서 그러는 거라고, 그런 아가한테보다는 농염한 오빠가 심장 뛰게 하는 건 제격이지."



아미는 황급히 자기 핸드폰을 들고서 어디론가 전화를 시작했다. 그런 아미를 제지하려고 달려들어 봤지만 이 계집애가 도대체 뭘 삶아 먹었는지 힘은 더럽게 세서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결국 용건을 끝낸 아미가 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한 사람이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와서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저 술 한 잔만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제가 벌칙에 걸려서. 이 테이블에서 술 한잔 얻어 마셔오기가 벌칙이라. 이거 실패하면 어마어마한 벌칙 주거든요."

"어머, 당연히 되죠?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이 곤란하면 도와줘야지. 안 그래 설희?"

  

아미는 잘 됐다는 듯이 들고 있던 폰을 내려놓고 활짝 웃으며 그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미와 대화중에 갑자기 끼어든 남자 목소리에 나는 확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 선생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정국이였기 때문이다.급하게 한 손으로 내 오른 얼굴을 가려봤지만 정국이는 이미 나를 제대로 본 듯했다.공중에서 아미와 눈이 마주치고 아미는 황당한 표정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듯했다.


"뭐야, 너 고등학생이에요?"


나만큼이나 아미도 당황했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말로 정국이에게 물었다.


"음.. 고등학생은 맞는데, 미성년자는 아니랄까?"



그런 아미에게 정국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와 토요일이라 선생님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런 곳에서 다 보네요?"

"헙! 혹시 얘가 걔야?"



오, 마이 갓. 
아미도 놀라서 그런 거겠지만 폭탄 발언에 어쩔 줄 모르고 어느새 손은 내 입으로 내린 채 눈알만 도륵도륵 굴려버렸다. 




"선생님, 제 얘기 했죠? 그렇죠?"

"나... 나!! 화장실 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이 난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 정국이를 애써 무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국이가 화장실을 가는 내내 본인 얘기를 한 거냐며 역시 자기를 신경 쓰고 있는 거 아니냐고 대답을 유도하며 쫄쫄 따라왔다.



"ㅇ,, 왜 따라와. 화장실 간다니까?"

"따라가는 거 아닌데, 나도 화장실 가는 거예요."

"너, 그리고 그래도 명색이 학생인데 이런 곳 와도 되는 거야?"

"안 들키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미성년자도 아니고."




멈춰 선 나를 바라보며 나에게로 훅 고개를 숙이는 정국이. 



"예쁘네요, 밖에서 보니까 더."


나보다 5살이나 적은 이 아이가 자꾸만 나를 홀린다. 나는 그런 그에게 맥없이 홀려버린다. 그게 자존심도 상하고 무섭기도 했다. 게다가 난 그의 선생님이니까. 이대로는 안된다. 위험하다. 선을 긋지 않으면 안 된다.



"좋은 말로 할 때 선 넘는 것도 작작해. 전정국. 나 네 선생님이야."



어차피 화장실을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아까 아미가 저지른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일어났던 자리기 때문에 나는 다시 정국이를 지나쳐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싸늘하게 말했는데도 정국이는 굴하지 않고 다시 나를 졸졸 따라왔다. 그래도 더 이상 귀찮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걸로 됐지 하며 자리에 거의 도착했을 땐 아미가 부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합류해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낯익었다. 그 사람의 모습에 나를 따라오던 정국이의 발걸음도 멈추었다.



"누구예요?"



정국이는 원래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 있는 그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아주아주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로써 정국이가 더 이상 나를 선생님 그 이상으로 보지 않기를 빌면서 일을 저질렀다.



"남자친구."



나의 입에서 남자친구라는 말이 나오자 처음으로 정국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항상 웃는 낯만 봤었는데 진지하게 굳은 표정이 낯설었다. 정국이는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도 시선이 내게 머물러 있음을 직감하고 성큼성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기야!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어색한 나의 연기에 아미와, 앞에 있던 남자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미가 곧 나의 의도를 알아채고 나보다 더 오버를 하면서 그 사람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그런 아미의 사인에 놀랍게도 그 사람이 금방 네게 정말 연인에게 보내듯 그런 눈빛을 보내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춤 주춤 손을 내밀자 그런 내 손에 깍지를 끼며 자신에게로 훅 잡아당겨 나를 앉혔다. 그 상황에서도 정국이가 자꾸 신경 쓰였다. 그래서 슬쩍 쳐다보니 아직도 아까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게 바라던 일인데도 참 기분이 통쾌하진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졌다.



"곤란한 일이 있나 보네요. "



나의 옆에 앉은 사람이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을 보내면서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로 작게 소곤거렸다.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표정은 왜 아까보다 안 좋아졌을까요? 내가 잘못 대처해준 거예요?"

"아, 그런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와, 김석진...... 진짜 개 느끼한 거 알아?"

"이게 진짜 오빠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어디에서 많이 봤다 싶었는데 그는 아미의 친오빠라고 했다.어쨌든 그렇게 해서 3명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도 취하긴 취했지만 제일 신난 것은 아미였다.연신 술을 들이켜더니 금방 혀 꼬인 모습이 되고서는 깔깔거렸다. 그런 아미를 보고 석진 오빠는 극혐의 표정을 지으며 혀를 끌끌거렸다. 


"안되겠다. 야, 김아미 정신 차려 집에 가자."



싫다고 뻐팅기는 아미를 석진 오빠는 억지로 일으켰다. 나도 술자리가 끝나는 분위기에 조심히 일어났다. 석진 오빠와 같이 아미를 부축하다가 다시금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다. 정국이의 일행도 일어나는 듯 보였다. 눈을 먼저 피한 건 정국이였다. 나도 다시 아미에게로 눈을 돌렸다. 




"미안해요, 혼자 갈 수 있겠어요?"

"괜찮아요. 끄떡없어요."



석진 오빠에게 싱긋 웃어 보이자 그는 안심하는 표정으로 아미를 잡은 택시에 구겨 넣었다.




"아, 그리고. 누구를 좋아할 때 너무 많은 걸 신경 써도 안 좋아요."

"네?"

"그냥, 이런 조언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 말을 끝으로 석진 오빠도 택시에 올라타고 택시는 점점 멀어졌다. 후, 이럴 때가 아니라 나도 가야지.. 잠시 택시를 보며 멍을 때리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다리를 움직였는데 나도 취한 게 분명했는지 그만 몸이 휘청거리며 차도 쪽으로 넘어질 뻔했다. 그런 나를 누군가 휙 잡아당겨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보니 정국이였다. 화들짝 놀라서 그에게 붙은 몸을 떨어트렸다. 




"나였으면, 동생이 아니라 여자친구부터 챙겼을 거야. 이런 취급받고 사귀는 거예요?"  




화가 났는지 매서운 표정으로 쏘아보며 말하는 정국이에게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다.그래도 내가 선생님인데, 이런 취급을 받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경 쓰지 마."

"집 어디에요. 데려다줄게."

"야, 전정국. 내 말이 우스워? 선 넘지 말랬지."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상하는 것이지만 자꾸만 기어코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이 아이가 나는 너무 무섭다. 혹시나 내가 지키고 오던 것이 무너질까. 그게 두려웠다. 그래서 또 나는 이렇게 선을 그어본다.


".... 선생님이야말로 내가 얼마나 우스웠어요? 남자친구 있다고 말이라도 해주지. 그럼 안 그랬을 텐데."

"어...??그... 그건...."

"하... 오늘만 데려다주게 해주면 앞으로 신경 쓰라고 해도 안 쓸게요. 장난도 아니었지만 선생님이 싫어하는 행동도 안 할 테니까 지금은 데려다주게 해줘요. 지금 이 상태로 어딜 혼자 간다는 거예요. 어차피 남자친구 있는 사람한테 더 그럴 생각도 없고."


단호한 정국이의 눈빛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집에 가는 무서운 골목이 생각났다. 그게 혹시 너와 같이 가고 싶은 마음에 생각난 것이라고 해도 그 핑계를 대고 싶었다. 그래, 지금은 어차피 학교도 아니니까. 정국이도 성인이니까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

오늘 하루만 너에게 다시 홀려본다. 



"여기에요?"

"응... 고마워."

"..... 남자친구.... 많이 좋아해요?"

"................."

"아, 아니다. 대답 안 해도 돼요.  또 선 넘을뻔했네요. 그렇죠? 들어가요. 선생님."



그 말을 끝으로 정국이는 휙 돌아섰다. 그래도 데려다줬는데 이렇게 보내도 될까 싶었다.


"고, 고마워! 조심해서 들어가. 학교에서 보자!"


내가 소리치는 소리에 정국이는 뒷모습 그대로 손을 휘휘 저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정국이는 더 이상 내 자리에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거나 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목례만 꾸벅 할 뿐 예전처럼 능글맞게 장난을 친다거나 하지 않았고,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참여하긴 했지만 전처럼 열의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하진 않았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정국이 자리 쪽을 쳐다봤지만 예전과는 달리 차가운 눈동자가 잠시 내게 머물렀다가 관심 없다는 듯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게 그럴 때마다 마음이 울적했다. 


"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잠시 잡생각을 하고 있으니 금방 청소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청소 확인차 반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 사실 청소시간은 청소하는 애들보다는 수다를 떨며 농땡이 부리는 애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반에 가까이 가고 있었는데 우리 반이 복도 끝이라 그런지 계단에서부터 우리 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우리 담임 개 싫어."

"그러니까. 진짜 초임이라 그런지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애초에 중요한 고3 반에 초임을 배치하면 어떻게 해?"

"그리고 생긴 것도 여우같이 생기지 않았어?"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도 반에서 한 둘은 담임 선생님을 욕했으니까. 그렇지만 나의 두 귀로 실제로 듣는 소리는 생각 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어쨌든 중요한 것은 꺾기만 하면 우리 반인데도 발이 떨어질 생각을 못 했다.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내 욕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 질문 있어서요."


언제 온 건지 정국이가 내 팔 옷깃을 잡고 이끌었다. 질문이 있다고 했던 정국이는 교무실 쪽으로는 발걸음도 하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이 잘 오지 않는 구석진 빈 교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 정국이에게 끌려가듯 멍하니 그를 따랐다. 빈 교실에 밀어 넣더니 정국이가 입을 열었다. 




"진짜 바본가?"

"질문이나 말해...."

"왜 거기서 그걸 그냥 듣고만 있어요?"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화를 내는 정국이를 쳐다봤다. 언제나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정국이었는데 화가 잔뜩 담겨 차가운 눈동자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게 아이들에게 쓴소리를 들었을 때 보다 더 마음이 아프고 서러웠다. 그걸 이 아이에게 강요할 때는 언제고... 이러면 안 되는데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나보다 5살이나 어린 이 아이 앞에서 결국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아 정말 최악이야 백설희. 진짜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아, 미안해요..... 나는 그냥..."

"진짜 짜증 나..."

"울지 마요. 제가 잘못 했어요. 네?"

"흐윽.... 흐읍..!흑..."


누구든 달래주면 더 울음이 나듯, 다시 예전처럼 다정한 말투로 나를 달래는 정국이 때문에 나는 더더욱 주체하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아... 아... 진짜 제발... 울지 마요..."




그런 나를 보고 안전부절 동동 발을 구르던 정국이는 기어코 나를 와락 껴안아버렸다. 정국이에게서 베이비파우더 향이 훅 풍겨오고, 심장은 다시금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안된다고 그렇게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 듯 항상 내가 선생이고 정국이가 학생인 것을 되뇌어 왔지만 이렇게 그런 정국이에게 안겨있는 지금 나는 결국 내 마음을 인정하게 되어버렸다. 나를 껴안고 있는 이 아이를 감히 좋아하고 있노라고. 



"흐윽... 진짜 어떡해..."

"왜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

"난 진짜 선생님 자격이 없는 거야... 미쳤어 진짜... 흐윽...."

"아... 아니에요 선생님... 진짜 걔네가 괜히 그러는 거예요.. 울지 말아 봐요. 뚝."

"흐어엉....아무리 성인이라고 해도... 흐읍... 학생을 좋아하다니 진짜 망했어어..흐어엉"

"..... 어?"

"어...??"



나도 모르게 울면서 그대로 속마음을 털어놔버렸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를 토닥이던 손길이 멈추고, 나도 내가 꺼낸 말에 놀라 눈물이 쏙 들어갔다. 



"방금.... 그거 제 얘기죠...?"

"... 아, 아니.. 그... 그게..."

"그러니까. 지금 나 좋아한다고 한 게 맞아요?"



정국이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내 어깨를 흔들며 고개를 숙여 내 눈을 맞추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입가가 바짝 마르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어제 석진 오빠가 해줬던 한마디가 생각났다.


`아, 그리고. 누구를 좋아할 때 너무 많은 걸 신경 써도 안 좋아요.`



그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자마자 용기가 샘솟았다. 그래서 두 눈을 꾹 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백설희. 선생이 학생 좋아할 수도 있지. 그러니까 한 번만 미쳐보자. 어차피 성인이잖아. 그런 생각들로 애써 불안함으로 휩싸인 내 마음을 다독였다. 슬쩍 눈을 떠보니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아직도 놀란 표정을 하고 있던 정국이가 보였다.




"와,.. 대박.. 그럼 남자친구.. 남자친구는요?"

"... 그런 거 있어 본 적 없어... 그땐, 그냥 너 떼어내려고.."

"저도, 저도 선생님 좋아해요."



정국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좋아한다고 다시금 고백했다. 유난히 맑은 정국이의 큼지막한 눈망울에 가득 내가 들어찼다. 그러더니 못 참겠는지 아까처럼 다시금 나를 꼭 끌어안았다. 

 


"선생님, 곤란하지 않게끔 들키지 않도록 할게요."


나는 그저 그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다시금 나를 품에서 꺼내 벅차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내 이마에 살짝 입을 붙였다가 떨어졌다.



"그럼, 이제 내 카톡 봐주는 거죠?"



 
나는 대답 대신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내 앞에 예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20살의 복학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누군가는 미쳤다고 할지라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재밌게 봐주세영 ㅎㅎ
 


추천하기 10   즐겨찾기 등록
글이 재미있었다면 작가님에게 포인트 선물을 해주세요.
나의 Point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작가님에게
추천수와 선물받은 포인트 합산을 기준으로 글의 순위가 결정됩니다.




연짱 작가님의 다른글 보기       전체보기
    로그인 후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댓글
  휴지퐁퐁  14일 전  
 헐ㄹㄹㄹ단편인데 이렇게 집중해서 본적은 없는거 같아요!!!!

 답글 0
  강하루  14일 전  
 재밌네요

 답글 0
  로즈마리이온  14일 전  
 연짜ㅏㅇ밈 제가 왓더요!!

 로즈마리이온님께 댓글 로또 1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2
  데미소다.  14일 전  
 철컹철컹이지만 찬성입니다!!

 데미소다.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박찜.  14일 전  
 ..ㅠ

 답글 0
  ~이엠~  14일 전  
 사랑할 수 있지... 있어...

 ~이엠~님께 댓글 로또 1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봄륨  14일 전  
 봄륨님께서 작가님에게 1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봄륨  14일 전  
 꿀잼이라고 머릿속에서 웅웅 거리고 있습니다...!!
 너무 재밌어요!!

 답글 0

친구에게 장난치기 꿀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