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방탄빙의글 [김태형] 디오니소스에게 죽음을 - W.동백
[김태형] 디오니소스에게 죽음을 - W.동백



에게 죽음을,
─Death to Dionysus,





ⓒ뷔밤



※본 글은 `뷔밤`이라는 작가명으로 개인공간에 동시연재 됩니다. 움짤과 함께 읽고 싶으신 분들은 개인공간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본 글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등은 모두 픽션으로 작성되었으며, 사실과 무관합니다.
※마약, 죽음 등 부정적인 단어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 그곳에는 모든 백성들이 행복에 젖은 채 살아가는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를 지배하는 황제의 이름은……」


「……
디오니소스




“황제시여, ‘불사’들을 잡아왔습니다.”




북쪽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의 통치자, 즉, 황제라 하는 자의 이름은 태형이었다. 태형은 왕좌에 앉아 병사 옆에 무릎을 꿇은 세 남자들을 바라봤다. 흥미를 잃으면서도, 분노에 찬 남성들의 눈빛에 약간의 생기가 도는 태형의 눈빛. 눈썹을 찌푸리지 않았음에도 그의 눈빛에 남성들은, 그러니까, 불사라고 하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태형은 이제 ‘불사’의 존재들이 지겨웠다. 제 명을 거부하는 반항자가 처음 눈앞에 나타났을 때에는 그에게 차 한 잔을 내어주거나, 반항의 이유를 물어보는 등 흥미롭기라도 한 듯 불사에게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사들이 제 눈앞에 나타나자 태형은 그들에게 진물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흥미를 위해 만든 명을 거부한 흥미로운 존재들. 그들의 존재들이 반복되었을 때, 태형은 마침내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라.”




흥미를 잃은 자들을 죽여라,라고.

태형은 옛적부터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 것들이라면 없애는 편이었다. 그래야 제 속이 편안하다고 느꼈던 까닭이었다. 태형의 행동에 이유가 없던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태형은 제 어미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왕위를 물려받아 이 나라의 황제가 될 것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지 않아도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의 흐름대로 태형은 태어나고, 자랐다. 태형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태형의 뜻대로 흘러갔고, 아무리 고된 일이라고 한들 이것도 운명인 것 마냥 순순히 무뎌지는 것이었다. 태형은 정해진 운명 속에서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제 뜻대로 이루어지는 운명의 흐름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형은 결심했다. 익숙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운명 속에서 자신의 흥미를 끌 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태형이 그 결심을 품었을 때가, 태형이 왕위에 오를 적이었다. 태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빠른 속도로 나라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후에 역사 속 인물로 남을 정도로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 태형의 명령을 따라 나라는 과학이 발전했고, 백성들의 삶의 질을 올리는 그런, 혁신 말이다. 그러나 역사에 남길만한 위대한 업적을 쌓아가던 황제, 태형은 나라의 큰 변화에도 금세 흥미를 잃었다. 태형은 곰곰이 생각했다. 이 흥미를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고 그 생각은 뒤이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것을 탐닉하자고.




“백성들에게 향과 술을 더 내어라.”




인간을 향한 탐닉. 태형은 그 탐닉에 대해 연구를 하던 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향과 술이 있다면 인간은 제 이성을 잃는 것, 이성을 잃은 인간은 제 본능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인간의 본능은 제법 추악하다는 것. 태형은 인간에 대해 연구할수록 흥미가 가중되어 연구에 더욱 열중했다. 흥미가 떨어지는 것을 바로 제거하는 태형이었지만, 흥미가 있는 것들은 오히려 더욱 열중하는 태형이었다. 태형은 연구 끝에 백성들에게 향과 술을 건네었다. 그리고 하나의 법을 제정했다. 행복하지 않는 자는 사형. 그것이 태형이 만들어낸 개혁이자, 제 흥미를 만족시키기 위한 욕심이었다.

백성들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향과 술을 끊임없이 마셨고 항상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들에게 고통과 불행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통과 불행은 이 나라에서 범죄일뿐더러, 애초에 향과 술을 마신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으니 말이다. 향과 술이 존재하는 한 낮과 밤은 축제의 현장이었고, 축제는 영원히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태형의 흥미가 지속될수록 태형에게 반항하고자 하는 자들이 생겼다. 향과 술에 포장된 행복을 거부하려는 자들. 모두가 그들을 ‘불사’라 불렀다. 불사는 사람들을 향과 술에서 깨운 뒤, 태형을 죽이고자 했다. 태형의 몰락. 그것이 그들이 최종적으로 추구하고자 한 목표였다.




“그들의 시체는 중앙에 내놓아라. 그럼 백성들이 알아서 그들의 목을 잘라 사냥에 성공했다며 좋아할 테니. 아마 그들은 그게 사람 머리인 줄도 모르고 시내 길거리를 돌아다닐 거다.”

“머리를 보고 환각에 깨어나는 자가 생기는 불상사가 발생할 것을 알고 계시면서, 어찌하여 그런 무리한 명령을 내리십니까?”

“이미 향과 술에 잔뜩 취한 자들이다. 그것이 사람 머리라는 것을 아는 자는 아직 잡히지 않은 불사들이겠지. 불사들이 사람 머리를 들고 돌아다니는 자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으냐?”

“황제의 명을 거부하면 자신의 머리도 저렇게 잘리겠다고…….”

“그래. 그렇다면 그들도 불사에서 벗어나 충격을 잊기 위해 다시 향과 술에 젖어 들겠지. 향과 술에 두 번 빠진 자들은 더 이상 벗어나오지 못한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그래. 그것이 이 향과 술의 기특한 점이지.”




태형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옆에 놓인 술병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술병의 굴곡을 따라 파고드는 태형의 손가락. 감정 없는 손가락은 온기가 없는 술병과 조화를 이뤘다. 감정 없는 손가락이 술병에 작은 변화를 주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은 변화에 못 이겨 중심을 잃더니 결국 바닥으로 떨어져 제 원래의 형태를 잃었다. 산산이 부서져 유리조각으로 변해버린 술병. 태형은 자리에 일어나 유리조각을 짓밟았고, 연민의 눈빛 따위 없이 그 자리를 무심하게 지나갔다.



*





“새로운 향과 술은 완성되어 가는가?”




태형의 발걸음을 멈춘 곳은 왕국의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방이었다. 문을 열자 태형의 코를 찌르는 향과 술 냄새. 더군다나, 방 안을 메우는 묘한 안개들이 방의 신비로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태형은 냄새를 거부하기는커녕 오히려 냄새를 더욱 들이켰다. 향이 태형과 닿자 그것은 더욱 제힘을 부풀리는 것이었다. 태형은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불사들에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방금까지 가슴속에 쌓여 있던 답답함이 향을 만나자 내려가는 것을 느낀 태형은 여전히 향에 흥미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태형은 자욱한 안갯속으로 들어가 가운으로 몸을 뒤덮은 여인에게 물었다. 새로운 향과 술. 불사들의 존재를 완벽히 없애기 위한 태형의 마지막 계획이었다. 태형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아궁이를 바라보며 여인에게 물었다.




“황제시여, 이제 곧 새로운 향과 술이 완성됩니다.”




여인은 태형의 질문에 천천히 가운을 벗으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하관을 뒤덮고 있던 두건을 벗자, 그제야 가녀린 턱과 붉은 입술이 드러나 여인의 완벽한 얼굴을 맞춰졌다. 여인의 피부는 오랜 시간 동안 방 안에만 있던 탓에 창백할 정도였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았지만, 오히려 태형은 여인의 그런 부분을 사랑했다.




“마침내 새로운 향과 술을 완성하다니... 참으로 매력적인 손을 가지고 있구나.”

“저는 황제, 당신을 위해 존재하며, 당신의 목표와 이상을 따르고자 합니다. 그러니 저에게 모든 명령을 내려주소서.”

“그러니 내가 여주, 너를 사랑할 수밖에.”

“황제께서 절 사랑해 주신다면, 저는 더욱이 당신을 탐닉할 수밖에요.”




태형은 그런 창백한 여주의 얼굴을 큼지막한 손으로 감싸 안았다. 차가운 피부에 차가운 손길이 닿자 더욱 깊은 냉기를 뿜어냈다. 그러나 냉기와 달리, 그들의 눈빛은 무척이나 뜨거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태형을 바라보는 여주의 눈빛도, 여주를 바라보는 태형의 눈빛도 끈적하게 달라붙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태형과 여주. 여주와 태형. 태형은 이 나라의 황제였고, 여주는 이 나라에 뿌리를 깊게 박은 향과 술을 제조한 자, 그러니까, ‘향술사’였다. 한 마디로, 태형과 여주는 신분부터 달랐고, 태어나는 과정과 환경조차 달랐다는 것이었다. 둘은 사랑할 수 없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하면 안 될 사이였다. 천한 존재가 위대한 왕을 탐닉하는 것은 이 세상에 허락되지 않았다. 반대로, 위대한 왕이 천한 존재를 애민의 정신으로 감싸 안는 것이 아닌 진득한 사랑으로 감싸 안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태형과 여주는 그 금기를 깨뜨리고 서로를 탐닉하는 것이었다.




“황제시여, 제가 감히 당신의 품에 안겨도 되겠습니까?”

“내 품은 너를 위해 존재한다.”




태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주는 태형의 품에 안겼다. 온정 따위는 없었다. 서로의 몸이 진득하게 붙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공허함이 존재하던 것이었다.

그 공허함은 아마 둘 사이에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둘의 사이였으니. 태형과 여주는 서로 사랑했지만, 둘의 사이가 연인 사이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신분 탓도 있었지만, 애초에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하는 것은 여주와 태형이 추구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관계를 확실하게 만들면 그 틀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에 둘은 답답함을 느꼈다. 틀 안에 존재하지 않고, 광대한 범위에서 서로를 찾아가는 것이 그들에게는 제법 잘 어울리는 방식이자 그들이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태형과 여주는 살아온 환경은 달랐지만 서로가 추구하는 이상향과 사고는 같았다. 여주 또한 흥미가 없는 것들은 모두 없앴다. 태형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태형은 흥미가 없는 것은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없애는 반면에 여주는 흥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자신의 방식대로 완전히 망가뜨렸다. 그 부분에서는 태형과 여주의 차이점이 존재했지만, 다른 부분에서 태형과 여주는 마치 한 몸인 마냥 똑같았다. 여주는 태형을 만났을 때 생각했다. 황제만이 자신의 흥미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태형의 이상향을 들은 여주는 그때부터 태형을 존경하고 따랐다. 그리고 존경은 어느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번지고 말아, 서로를 탐닉하는 경계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황제시여, 당신의 입술을 탐닉해도 되겠습니까?”

“나 또한 너를 위해 존재하니, 너는 마음껏 나를 탐닉하라.”




서로의 이상향을 확인한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으며, 서로를 탐닉했다. 여주는 태형에게 천천히 다가가 깊고 진하게 입술을 맞췄다. 태형은 여주를 거부하지 않았다. 여주의 입맞춤을 한참 동안 받아주다 마침내 여주의 입에서 약간의 뜨거운 숨결이 번졌을 때, 태형은 그제서야 여주에게 깊게 파고 들어갔다. 태형은 한 손으로 여주의 머리를 받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주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렇게, 둘의 진한 입맞춤이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며 완성되어 갔다.




“이번 향과 술로 불사들이 사라진다면, 이제 황제께서는 무슨 일을 이어 나가실 겁니까?”




진한 입맞춤이 끝나고, 태형과 여주는 찬 바닥에 서로를 부둥켜 껴안은 채로 누웠다. 창백하던 여주의 얼굴이 태형을 만나자 제법 생기가 돌았다. 게다가, 방 안을 가득 메우는 향이 여주를 자극했고, 태형 또한 자극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정신이 피폐해지면서도, 긴장감이 풀리는 묘한 신기루에 태형과 여주의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여주는 오래전부터 의문을 품어왔다. 태형이 부탁한 새로운 향과 술을 제조하긴 했지만, 이 뒤에 이어질 일들을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여주가 태형을 믿고 따른다지만 여주는 태형의 속마음을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태형이 계획한 일들의 끝. 더군다나, 태형은 이번 계획을 ‘최후’라고 표현했기에 여주의 의문은 쌓여갔다.




“향과 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중독으로 빠지고, 제 몸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

“그렇다면…….”

“이제 백성들이 중독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것은 나의 흥미에 멀어진 지 오래다. 이제 부드러운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죽음 끝에 무엇이 남는지. 그것이 이제 나의 큰 흥미이다.”

“황제께서 더욱 강한 향과 술을 제조하라고 명하신 이유가 그것이었군요.”

“더욱 깊은 중독 끝에 죽음을 맞이하겠지.”




태형은 말을 끝마친 뒤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숨결과 안개는 뒤엉켜 허공 위로 모습을 잃어갔다.

태형은 금단의 구역을 건드리고 말았다. 태형은 인간이 어떻게 해야 꽃을 피우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나 개화의 순간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자 태형은 또다시 흥미를 잃었다. 개화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은 고되었지만, 개화를 하는 순간은 고된 시간에 비해 너무나 짧았고 허무했다. 태형은 또다시 고된 길을 걷고자 했다. 고된 길을 걷는 것이 흥미를 자극했고, 태형에게 오감의 만족을 줬기에 더욱이 갈망했다.

태형은 이제 꽃이 저물 듯 인간이 저물어 가는 순간을 보고자 했다. 역시나 저물어 가는 순간에 다가가는 길은 고되었다. 태형에게 반항하는 불사의 존재들이 나타났고, 향과 술이 먹히지 않은 자들이 나타났으며, 새로운 향과 술을 제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최후의 향과 술이 제조되었으니, 이제는 고된 길을 끝마칠 때가 왔다. 인간이 저물어 가는 순간,




“아무도 존재하지 않은 무의 상태. 그것이 내가 바라는 이 세상의 최후이다.”




즉, 국가의 백성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황제시여, 만일 황제께서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해도 계획을 멈추지 않으실 겁니까?”

“나 또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니, 오히려 기대가 되는군.”




태형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최후, 자신의 죽음.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울지 기대가 됐다.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든 상관없었다. 태형은 자신의 죽음을 눈으로 지켜보는 것을 바랐다.




“만일 황제께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저도 황제를 따라 죽음을 맞이하겠습니다.”




그 옆에 여주가 있다면 그것 또한 완벽한 죽음일 테니.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면, 나는 너에게 하나의 명을 내리겠다.”




*




‘황제시여, 백성들이 성 앞에 도달했습니다.’




최후의 순간은 태형의 생각보다 빨리 도달했고, 태형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마지막 향과 술을 백성들에게 보급하기도 전에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태형의 바람과 달리 백성들은 저물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품고 있던 향과 술이 형태를 잃어갔다. 저물어야 할 꽃들이 오히려 제 모습을 잃지 않고 하나의 희망을 머금고 자라났다.

백성들은 점점 향과 술에서 깨어났다. 숨겨진 불사들이 태형의 눈을 피해 조금씩 백성들을 일깨웠던 것이었다. 불사들의 혁명, 향과 술에게서의 독립. 불사들이 바라던 세상이 좀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황제시여.”




태형은 불사들에게 도망치지 않았다. 성 밖으로 도피하라는 신하들의 말을 무시한 채 왕국의 꼭대기로 향했다. 태형은 여주를 만나고자 했다. 태형은 자신의 목숨 보다 여주가 더 중요했던 것이었다.




“이제 세상은 변했다. 향과 술이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 세상이 되겠지. 그럼 난 저들의 손에 잡혀 목이 잘리고 말 것이고 나의 죽음은 이 국가에 혁명을 이끌어 낼 것이다.”

“……”

“내가 저들의 손에 잡히지 않게 된다면 네가 잡히게 될 것이다. ‘황제와 손을 잡아 향과 술을 제조한 자’라며 너를 죽이겠지.”




태형의 말이 맞았다. 태형이 여주 대신 목이 잘린다면, 여주에게는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고, 여주가 태형 대신 목이 잘린다면, 태형에게도 기회가 생길 것이었다. 태형과 여주 중 한 명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러나 태형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도망치겠느냐, 함께 죽음을 맞이하겠느냐.”




여주에게 기회를 주고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거나, 혹은, 여주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거나. 태형은 자신이 도망을 간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 것만이 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태형의 선택지를 들은 여주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평소처럼 미소를 품은 입술에 차갑게 식은 눈빛이 여주의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은 평온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주는 대답했다.




“당연히 황제, 당신과 죽음을 맞이하겠나이다.”

“너라면 그 선택을 할 줄 알았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평소보다 더욱 여유를 가지는 그들이었다. 태형은 여주에게 미소를 지었다. 기특한 생각을 했다는 듯 여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태형. 죽음을 앞둔 탓인지 태형은 여주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씩 섬세하게 느꼈다.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황제께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저 또한 황제를 따라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그렇지. 말했지. 여주 너의 그 입으로 분명히 말했지.”




태형은 웃음을 터뜨렸다. 여주도 태형을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여주는 뒤이어 금빛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최후를 위해 만들었던 술이었다. 이 술을 마시게 된다면 태형과 여주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온몸에 퍼져 조용히 죽어가도록 하는 술. 여주는 술이 담긴 술잔을 태형에게 건네었고, 자신도 똑같은 술잔을 손에 들었다.




“저는 황제를 위해 존재하며, 황제를 위해 살아갑니다. 황제가 없다면 저의 존재 이유도 없죠. 존재가 없는 삶을 살 바에 저는 황제와 죽음을 맞이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명을 하나 내리겠다.”




태형은 묵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한 나라의 황제로 태어나 세상을 자유롭게 누비지 못했다. 그러니 나는 바람으로 태어나 세상을 마음껏 누빌 것이니, 너는 향기로 태어나거라. 바람과 향기가 만나면 더욱 멀리 뻗어 나갈 수 있을 테니, 나는 바람, 너는 향기가 되어 만나자꾸나.”




태형의 명령은 다음 생을 기약했다. 태형은 바람, 여주는 향기가 되어 만나는 것. 그것이 태형이 여주에게 황제로서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었다. 저 멀리서 불사들의 분노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분노 소리는 태형을 찾고 있었다. 황제를 몰아내라, 황제를 죽여라, 황제는 모습을 드러내라. 모두가 하나같이 태형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태형은 그 분노 소리를 들으면서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죽음이구나,라며 죽음의 순간을 음미했다.




“이제 최후를 맞이해야 할 순간이 왔군.”




태형과 여주는 옅은 미소에 술잔을 가까이 가져갔다. 술잔의 냉기가 입술에 퍼졌고, 동시에 차가운 술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매우 달콤하고, 매우 매력적이었다. 역시 최후를 위한 술이었던가. 태형은 그동안 마셔 왔던 술맛 보다 더욱 강렬한 맛에 감탄을 금치 못 했다. 완벽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보다 더 완벽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황제시여, 천천히 죽음을 탐닉하소서.”




여주는 천천히 태형에게 다가갔다. 이어지는 깊고 진한 입맞춤.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입맞춤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들의 접촉에 온기가 번졌다. 냉기로 가득했던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 자신들의 온기를 서로에게 전해주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진심이었고, 이루지 못 한 사랑이었다. 태형은 여주의 입맞춤에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처럼 한 손으로는 여주의 머리를 받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주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깊고 진하게 여주에게 스며 들었다.




“사랑한다, 여주야.”




여주의 눈은 점점 감겼다. 태형은 여주의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봤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눈으로 지켜보는 것. 태형은 여주의 눈을 통해 천천히 죽어가는 자신을 바라봤다. 점점 초점을 잃어가는 동공, 힘이 빠지는 몸, 그리고 사라져가는 온기. 태형은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이것이 죽음이구나.




“황제가 여기 있다!”




최후가 드디어 최후를 맞이했다.




‘디오니소스시여, 죽음을 맞이하소서.’




황제가 몰락한 날, 신이 죽었다.






Dionysus to the Emperor
Death to Dionysus




추천하기 5   즐겨찾기 등록
글이 재미있었다면 작가님에게 포인트 선물을 해주세요.
나의 Point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작가님에게
추천수와 선물받은 포인트 합산을 기준으로 글의 순위가 결정됩니다.




동백 작가님의 다른글 보기       전체보기
    로그인 후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댓글
  손갓:)  13일 전  
 제 취향인거 아시나요,,

 답글 0
  다이엔아미  13일 전  
 하..너무 잘쓰셔...

 답글 0
  강하루  16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0
  하늘하을  16일 전  
 와ㅏㅏ 빠져서 읽었어여 댑악..!!

 하늘하을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희한한배  16일 전  
 와우... 작가님 글 잘 쓰시네요... 필력 댑악... 잘 보고 갑니다!

 답글 0

친구에게 장난치기 꿀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