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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01. 미련 - W.세상을누비는고래
01. 미련 - W.세상을누비는고래


01. 미련











연애는 했지만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논리냐고 할지는 몰라도 사실이 그랬다. 사랑인 줄 알고 덤볐고, 그래서 연애를 하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사랑이 아닌 것 같아서 헤어지게 되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랬다. 그러나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것이 일방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함께 나누었던 감정이 진짜가 아니라는 상실감이라든지 허탈감은 석진이나 여주에게 공평하게 와닿았고, 두 사람은 자연스레 헤어지는 쪽을 택했다.



“쪽팔려.”
“뭐?”
“아, 쪽팔려!”


어떤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싫어지기 마련이라고, 여주와 만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이제는 제 앞에 앉아 한가롭게 기타 줄이나 퉁겨대고 있는 태형마저 짜증이 나고 꼴 보기가 싫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쉬울 것이 없는 건 도리어 태형 쪽이었고, 아쉬움이 많은 것은 역시나 석진이었다. 복학을 하고 두루두루 아는 인사들이기는 했어도 딱히 마음 두고 발걸음을 할 만한 친구라고는 태형밖에 없는 것이 서글펐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에 두 말 않고 그가 있을 밴드부 연습실로 왔던 것이 대충 한 시간 전 즈음이었다.


딱히 특별한 대화 없이 줄곧 제 앞에 앉아 있는 태형을 보며 내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떠나가지 않는 여주와의 마주침으로 인해 석진은 차라리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 올랐다. 그리고 급기야 마음속으로만 외친다는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린 탓에 제게 관심이 있는 둥 마는 둥 하던 태형이 눈썹을 찡그리며 그제야 기타에서 시선을 떼고 석진을 보았다.


“드디어 미쳤냐.”
“억울해.”


기어이 마음은 억울하다고까지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모양새인가 했지만 그 또한 석진의 가장 사실적인 마음이기도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만남이 있을 수도 있고, 만남이 길어지면 연애를 할 수도 있고, 연애를 하다 보면 그게 아니다 싶어져서 헤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기에 아무리 감정이 없어서 헤어졌다 한들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태연하게 지나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억울해져 왔다. 분명 똑같이 연애했고, 똑같은 마음으로 헤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저는 인사조차 못하는 얼뜨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냥 뭐든 다 떠나서,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리고 넘기기에는 억울하고 창피했다.


“병신.”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꼭 못난 놈들이 지가 뭐 하다가 안 되면 남 탓하더라.”
“꺼져.”


하필이면 개강 첫날부터 여주와 마주쳐서 가뜩이나 심란해 죽겠는데, 기어이 석진에게 꼬치꼬치 따져 물은 태형이 혀를 끌끌 차며 기름을 들이붓는다. 차라리 묻지나 말지. 석진은 굳이 제 입에 담고 싶지 않은 그 창피함을 기껏 주절주절 얘기해 주었더니 이제는 또 모두 네 탓이라고 고개를 내젓는 태형의 말에 울컥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던데. 그것도 말짱 헛말인 모양이었나. 제 편을 들어주고 위로는 못해줄망정 태형은 되려 저를 탓하고 있으니 여간 짜증이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너는 대체 누구 친구냐고 유치하지만 따져 묻고 싶었다.



“너 혹시 미련 남냐?”
“뭐?”
“여주한테 미련이라도 남았냐고.”
“내가 그딴 게 어디 있다고.”
“아니면 말고.”


석진은 짧게 인상을 썼다. 무심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기타와 악보에 시선을 돌리는 태형의 얼굴이 오늘만큼 얄미워 보인 적도 없었던 듯싶었다. 그러나 뜬금없이 미련이라도 남았냐고 묻는 태형의 말에, 석진은 미쳤냐고 칼같이 정색을 표하기는 했지만 사실 어디에선가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던 건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글쎄, 미련이라. 이미 헤어 진지 2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더구나 석진은 헤어지고 난 후 곧장 군대를 갔고, 후에 여주가 한 번 정도 면회를 하러 왔다고 해도 전혀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짧아진 머리를 보여주기 싫은 마음에 그 더운 한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군모를 절대 벗지 않는 미련함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미련이 남아있었다고 치더라도 그때였으면 모를까, 벌써 2년이다. 이제 와서 미련이 생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석진이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뜨거웠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헤어지게 된 것은.



“열녀 나셨네, 완전.”
“못난 놈 주제에 신경 꺼라?”


수업이 끝나고 일찌감치 학교 건물을 빠져나가는 길에 아미를 만났다.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과 건물 앞에 빨간 우산을 들고 서성이는 폼이 아무래도 갑작스레 내린 비에 제 남자친구를 마중 나온 모양이었다. 좋겠다. 애인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 살겠나. 그러나 괜히 부러운 마음을 들키기가 싫어서 심통을 부렸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황당했다. 원체 성격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미인 것은 진즉에 알았지만 무턱대고 못난 놈이라니. 석진은 여지없이 미간이 찌푸려졌다.


‘꼭 못난 놈들이 지가 뭐 하다가 안 되면 남 탓하더라.’


분명 못난 놈이라고 칭하고 아미에게 퍼뜨린 주범은 김태형이겠지. 석진은 더욱 짙은 인상을 썼다.


‘아미하고 나 사이에는 비밀 따위 없어.’


허구한 날 입을 놀리던 태형이 기어이 며칠 전 석진과 여주가 우연히 만났더라는 이야기까지 다 불어버린 모양이었다. 게다가 못난 놈이라는 말도 덧붙였겠지. 석진은 뒷목이 뻐근해졌다. 이럴 때면 이게 도대체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이 안 간다.



“야, 최아미. 김태형이 그랬다고 너까지 이러기냐?”
“태형아!”


이게 이제 내 말도 씹네. 누가 김태형 여자친구 아니랄까 봐, 석진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내내 건물 입구만 주시하던 아미의 무뚝뚝하던 얼굴이 환하게 풀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양반이 되기는 글러먹은 태형이 허겁지겁 비를 피해 아미의 우산으로 뛰어들었다.


“야, 김태형! 물 튀었잖아!”


물길을 피하기는커녕 막 뛰어온 덕에 옆에 서 있던 애꿎은 석진에게로 빗물이 튀었다. 하필이면 연한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온 터라 빗물이 튄 자리가 얼룩덜룩 해졌지만 석진의 바지에 물이 튀었거나 말거나, 석진이 저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거나 말거나, 이미 아미와 빨간 우산 안에서 딴 세상인 태형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는 눈을 하고 아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물론 태형만이 아닌 아미 또한 같은 눈을 하고 시선을 마주치는데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던 석진은 이상하게 그것이 꼭 닭살스럽다거나 소위 요즘 말하는 손발이 오글거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또 이상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이 오버랩 되어 기분이 묘해졌다.


“둘이 영화 찍냐?”


붙어 선채 여전히 딴 세상에 빠진 두 사람을 향해 볼멘소리를 해보아도 무용지물. 석진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 내저었다. 그래, 맞다. 이미 5년째 연애 중인 두 사람이었다. 만난 시기는 석진이 여주를 만났던 것보다 조금 늦었어도, 두 사람은 아직까지도 연애 중이고 열애 중이었다.


‘너네는 지겹지도 않냐?’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언젠가 한번 술에 취해서 그렇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미와의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이에게 끔찍하게 예민한 태형이었던지라 어쩌면 욕지기를 먹겠구나, 단단히 각오를 하고 물었던 말이기도 했지만 실은 너무 궁금했었다. 어떻게 그런 연애를 할 수 있는 건지. 1년,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록 언제나 그렇게 같을 수가 있는 게 맞는지.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하는 게 바로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는 거지.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태형은 너무도 쉽게 웃으며 대답했었다.



‘있었지. 나도 사람이고 걔도 사람인데 왜 없었겠어. 근데 가끔 지겹고 가끔 싸워도 내 옆에 없으면 안 되는 게 아미인데 어떡하냐.’


그때 그 말들을 여주와 헤어지기 전에 들었더라면 석진은 여주와의 헤어짐에 더 신중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여주와 헤어진 후였고, 석진은 저를 졸졸 쫓아다니고 자꾸만 가두어두려는 것 같이 느껴지던 연애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후였다. 물론 단호하게 제 사랑을 자신하는 태형이 순간 제가 알고 있는 태형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결코 그의 말이 석진의 마음에는 썩 와닿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말들이 왜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안 가냐?”
“어? 어어.”


다른 생각에 빠져 멍해져 있던 석진은 태형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이내 그 시선 안으로 제 어깨가 젖어 들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아미에게로 우산을 기울인 채 나란히 발걸음을 맞추어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가득 찼다. 그리고.



“미쳤구나, 김석진.”


문득 여주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잠시나마 떠오른 여주의 기억조차 제게는 가당치 않은 것임에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시끌벅적한 술집에 귀가 울릴 지경이었다. 대학가 주변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장소가 겹치는 건 예사였다. 여기저기서 개강파티를 한답시고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탓에 가뜩이나 오르는 더운 술기운에 숨이 콱 막혀오는 것만 같았다.



“선배, 왜 나와 계세요.”
“나도 집에 갈까 해서.”
“아직 다 안 끝나지 않았어요?”


복학을 하고 여러 후배들과 신입생들을 겪고 있지만은 그래도 그나마 정이 가고 가깝게 지내는 것은 정국이었다. 석진은 처음에는 정국을 그리 달가워하지는 않았었다. 어린놈이 속에 능구렁이를 몇 마리나 키우고 있는 건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저를 대하는 통에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했었다. 사실 파릇파릇한 신입생들 사이에 복학한 선배를 늙은이 취급 안 해주고 껴주는 게 어디냐만.


“진짜 가시게요?”
“오냐.”
“다들 선배들이 찾으실 텐데?”
“협박이야?”


정국이 못내 아쉬웠는지 석진을 붙잡고 늘어진다. 그러나 석진은 이미 방향을 틀어 등을 돌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알아서 해, 늙은이가 마음대로 집에도 못 가냐.”


사실 석진이 사라져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선배! 아, 형!”
“죽는다.”


저놈이 술 먹었다고 맞먹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가던 길을 멈춰 돌아서서는 주먹까지 내보이며 위협했지만 정국은 샐샐 웃으며 에이, 진짜 가요? 하고 모른 척이다. 석진은 마지못해 픽 웃으며 다시 돌아섰다.


“진짜 간다.”


이미 다들 거하게 취해 난장판 개판이 되기 5분 전인 자리에 다시 껴봤자 뒷수습 밖에 할 일이 없지 싶었다. 제가 귀찮게 되는 건 곧 죽어도 싫은 석진은 그래도 괜히 미안한 마음에 정국에게 수고해라, 하고 짧은 카톡을 넣었다. 물론 술자리에 돌아간 정국은 그마저도 확인을 언제 할지 모르게 되겠지만.


그래도 집에 가는 길이라고,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제법 술기운이 들큰하게 올랐다. 석진은 뒷목이 화끈거리는 게, 아무래도 집에 도착하고 나면 그대로 골아 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술을 먹고 가장 기분이 좋은 때라면 지금과 같은 때가 아닐까. 그리 멀쩡하지도, 인사불성이지도 않게 적당히 취하는 때. 그러나 점점 오르는 더운 술기운에 꽃샘추위마저 그리 춥지 않은 걸 보니 오늘 제가 제법 마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술집이 즐비하던 골목을 빠져나와 큰 도로가에 나온 석진이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뻗다가 말았다. 얼핏 스친 눈에 익은 모습에 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멀지 않은 버스정류장 의자에 누군가 웅크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까딱하다가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이 위태위태한 게.



“채여주!”


아니나 다를까,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시멘트 바닥에 코를 깰 뻔했다. 다행히 그녀를 먼저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몸을 날린 석진의 덕에 바닥에 얼굴을 들이대는 사태는 면했지만, 가까이에서 풍겨오는 진한 술 냄새에 그녀가 인사불성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석진의 미간이 종잇장 구겨지듯 구겨졌다.


“정신 좀 차려라. 어?”
“으응.”
“야, 채여주.”
“응, 알았어. 나 들어간다고.”
“무슨 술을.”


이렇게 들이부었어. 욕지기가 절로 치민 석진은 마른 입술을 혀로 훑으며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여주의 어깨를 고쳐 잡았다.


“정신 좀 차려봐.”


몇 번이고 여주를 흔들어 보았지만 이미 취할 대로 취한 여주가 석진의 말귀를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가뜩이나 마르고 작은 여주의 체구가 더 부각되어 석진의 눈에 들어오자 짜증스러움에 화까지 치민다. 요령이 없는 건 예나 지금이 다를 게 없구나.


“... 여전한 건 너야.”


기어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제게로 푹 쓰러진 여주를 내려다보며 석진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군기가 잡혀 있던 이등병 때였다. 여름의 뜨거운 햇볕에 타들어갈 것 같이 더운 주말이라 할지라도 애인이다, 가족들이다, 해서 다들 면회를 나가거나 외박을 나갔기에 내무반은 다른 주말보다 훨씬 더 휑하고 썰렁했다. 그리고 또한 석진을 심심하면 갈궈대고 시비를 걸며 장난을 치던 분대장마저 오늘은 새로 사귄 애인을 만나러 나간다며 외박증을 끊어 나갔다. 군 입대를 하며 애인과 헤어지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인데, 분대장은 무려 저보다 두 살이나 어린 풋풋한 애인을 새로 만들었다며 자랑을 해댔다.


생긴 것도 불독 장군처럼 생긴 게 뭔 능력이래. 석진은 손발이 오그라 드려는 것을 꾹 참으며 아름다우십니다! 를 외치면서 속으로 그렇게 꿍얼거려야 했다. 어쨌든 다른 날보다는 마음이 여유로운 토요일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정말 뜻밖이었다.


“군복, 잘 어울려.”
“네가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그냥.”


그냥? 뭔가 할 말이 더 있어 보였지만 그저 배시시 웃고 마는 여주의 얼굴에 석진은 짧게 마른 입술을 훑었다. 푹푹 찌는 날씨가 여간 대단한 게 아니다. 게다가 저는 두꺼운 군복에 촌스럽고 짧은 머리를 보여주기 싫어서 꿋꿋하게 군모까지 쓰고 있는데 제 앞에서 배시시 웃고 있는 여주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괜히 마음이 삐뚤어지고 있는 석진은 부러 심술이라도 낼까 싶어졌다. 헤어진 애인을 목적도 없이 다시 마주하고 있는 건 불편한 일이었다.


“아픈 데는 없지?”


더운 건 딱 질색이었다. 덕분에 여주의 질문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덥다. 덥다. 덥다. 오직 찌는 듯한 이 더위를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게다가 굳이 군모를 쓰고 있어서 머리 위로 스팀이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물론 어차피 군대이고, 다 똑같은 머리 모양인데 모자를 확 벗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햇빛에 반사되어 더 반짝거리며 빛나는 여주의 머리카락에 다시 그 마음을 집어삼켰다.



“보시다시피. 넌?”


한 박자 느린 대답이었다.


“응, 괜찮아. 나도.”


연인 사이였던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는 것은 단순히 사랑의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관계의 끝임을 알리기도 하는 선포이기도 했다. 헤어지고 친구 사이로 지낸다는 말을 석진은 절대 믿지 않았다. 사랑이 어떻게 우정으로 변질된다는 말인가. 우정이 사랑으로 변질된다면 모를까, 사랑이 다시 우정이 될 수는 없다고 믿었다.


“석진아.”


때문에 여주와의 만남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
“응, 너도.”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인사는 하는 것이 2년간 우리가 했던 연애의 종지부를 찍는 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석진은 먼저 돌아서 나가는 여주의 마른 등을 잠시나마 안쓰럽게 여겼다.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석연찮았지만 이내 화르르 올라오는 더위에 그마저도 잊어버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푹푹 찌는 더위가 석진을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고 있던 한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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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늘해랑0515  14일 전  
 진짜 넘 조아..
 작가님 글 넘 예뻐

 늘해랑0515님께 댓글 로또 1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what2do  14일 전  
 아 정말 분위기도 그렇고 너무 좋네요

 what2do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볼빤간썬이  19일 전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

 답글 0
  ~이엠~  19일 전  
 ~이엠~님께서 작가님에게 35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깜찍아아  19일 전  
 ㅠㅠ

 깜찍아아님께 댓글 로또 2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수원잉⁷  19일 전  
 우아아.... 정말 연애하며 아무감정이 없었던 걸까용...ㅠ

 수원잉⁷님께 댓글 로또 1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댬닝  20일 전  
 댬닝님께서 작가님에게 42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김녜린  20일 전  
 김녜린님께서 작가님에게 51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니닷  20일 전  
 제목이랑 딱 맞는 말같네요.. 미련이 남아있는...

 답글 0
  강하루  20일 전  
 재밌네요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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