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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HEAT WAVE - W.화가
HEAT WAVE - W.화가









HEAT WAVE
作 화가




야, 그거 들었어?
이번 여름, 사상 최대 폭염이래

모란이 꽃잎을 제 손으로 모두 자른 후에는 폭염 아래서 사랑이 죽어갈 차례였다. 적도 부근에서 날아온 사랑이 전멸했다는 소식은 한참 옛 것으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 올해도 역대급 폭염이 한반도를 덮칠 거라는 소식은 몇 없는 사랑을 가진 이들이 달무리에 목을 거는 신호탄이 되었다. 폭염은 재앙이었다. 그런데도 너는 폭염 소식에 웃기만 했다. 여름을 사랑하는 너. 폭염이 두렵지 않냐고 물었을 때에는 그까짓 게 뭐가 무섭냐며 다정히 어때만 툭 치고 지나간다. 그게 다 사랑이 없어서지, 폭염에 죽을 사랑이 없어서. 내 사랑은 불발이었다.

재앙이 오기 전, 사랑은 비좁은 심장 안에서 몸집을 한껏 부풀린다. 그리고 엄청난 뜀박질을 시작했다. 오늘도 몸집을 부풀린 사랑에 자비없이 찢어질 심장 언저리를 남몰래 테이핑한다. 수용할 수 없는 사랑은 불행이었고, 발설할 수 없는 고백의 순기능은 사무치는 외로움이었다. 나는 사실 네가 폭염을 두려워했으면 했다. 그건 역시나 못다할 고백이었다. 겨울을 지나 여름까지 꿋꿋이 살아온 사랑을 강타할 크나큰 폭염이 네게도 부디 재앙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 또한.

여름을 사랑하는 너를 사랑해
이 어색한 문장만큼
올해의 여름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없을 거야


여름 매미가 한낮의 시간을 삼킨다. 그동안 나는 고작 여름같은 게 네 사랑을 받는 것이 분했다. 그래서 여전히 미워했다. 내 미성숙에서 발췌한 사랑이 달디 달 거라는 것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여름을. 지금은 사랑이 죽어가는 기간이었다. 그러는 동안 개살구도 제 딴에는 과육이랍시고 영글었다. 그간 미워하는 것도 많아졌다. 마치 과육마냥 지나치게 달아 무른 내 사랑이 미웠다. 아직은 뗄 수 없는 미성숙의 꼬리표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 빌어먹을 여름을 사랑하는 너를 미워할 수 없는 내가 미웠다고. 미워하는 것도 많은 내가 여름 아래 무릎을 꿇는다. 사랑은 불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묻는다.

네 사랑도 폭염에 죽을 날이 있느냐고



“난 겨울이 무서워.”
“어째서?”
“겨울은 여름을 죽이잖아!”

너는 겨울이 무섭다고 했다. 겨울 때문에 여름이 죽는다면서. 너는 끝까지 여름밖에 몰랐다. 네가 여름을 사랑하는 만큼 나도 널 사랑해. 내 사랑을 증명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겨울을 삼키는 것. 여름을 죽이는 수십 년의 겨울을 이 보잘것없는 심장으로 모두 삼켜낼 테니, 너는 수십 년의 여름을 만끽하기를. 그 여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와 내가 살아나면 그때는, 그때는 내 사랑 알아줄 거지. 그때는 겨울을 사랑해 줄 수 있어?


여름을 사랑하는 너를 위해
겨울을 삼키고 돌아올게

꽤나 눈물겨운 약속 따위를 했다. 겨울을 삼키고 돌아오겠다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줄 이는 없다. 철없는 너는 그저 수십 년의 여름만을 맞게 해준다는 소리에 기뻐했다. 근거 없는 용기가 두려움을 모르는 오만한 순간을 맞아 무턱대고 한 약속이었다. 속에서는 나조차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내가 악에 받쳐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 멍청한 새끼. 너 미쳤어? 겨울을 삼켜?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알고 말하는 거야? 이 무지한 놈아, 어서 말해 봐!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여름이 피워낸 아지랑이는 지 주인을 사나웠다. 보잘 것 없는 육신으로 사납게 달려드는 아지랑이를 무시하고 교복을 입은 채 아스팔트 위에 누워버린다. 뜨거운 열기에 등이 익는 것만 같다. 탈색 따위는 모르고 살았던 부드러운 검정 머리카락이 햇빛에 달궈진다. 나는 노란빛으로 탈색도 하고 싶었는데. 네가 검정 머리가 좋다고 해서 나는 탈색 한 번 못 해봤다고. 너 그것도 모르지? 푸념해봤자 누가 알아주랴. 얕은 추억을 훑어내는 눈에서는 여름 내음을 맡고 태어난 애석한 사랑이 울멍진다. 참 구질구질한 여름이라고 생각했다. 지겨운 여름, 여름 여름. 그건 그 애가 사랑한 계절.


겨울을 삼키고 맞는 것은 이팔청춘 허물 벗고 나온 사랑이 개살구가 되어 떨어지는 것이었다. 한입에 겨울을 삼킨 탓에 새하얗게 질린 내 반쪽 심장은 성한 곳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특별할 거라 생각했던 내 사랑 또한 빛 좋은 개살구와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내 사랑은 이제 너무 시고, 너무 떫어져서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아스팔트는 여전히 뜨겁고 이지랑이는 온순할 줄 몰랐다. 입고 있던 하복을 벗고 그 위에 나체로 엎드려 차가운 심장을 비벼본다. 누가 보면 그게 무슨 기괴한 짓이냐며 욕할 행위를 쉬지 않고 한다. 내 심장이 너무 차가워서 그래요, 완전 아이스박스야. 아니, 그거랑은 비교도 안 되지. 화성 가보셨어요? 거기만큼 차가워요. 아 참, 혹시 개살구 좋아하시는 분? 개살구처럼 엄청 시고 떫은 제 사랑 드실래요?

그래요, 모든 걸 인정할게요
내 사랑보다 여름이 뜨거워요




HEAT WAVE
作 화가


이 여름의 유일한 결점은 사랑이 없는 너야, 유일하게 생존하게 될 너야. 모두가 죽으면 넌 사랑을 하게 될까. 네 사랑도 폭염에 죽는 날이 있을까. 모두 죽어버린다면 누가 네게 사랑을 가르쳐주지? 제발 나를 살려줘. 나만이라도 살려줘. 폭염을 잉태하는 여름 같은 건 말도 못 하면서 사람은 잘만 죽여. 아주 미친놈, 나쁜 놈, 겨울에 얼어뒤질 놈. 아아, 지금은 여름의 겨울 학살중.

이왕이면 아주 뜨겁게 죽여주세요
여름을 공격한 겨울 마녀의 화형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거든요


다음 모란이 피는 날에 빈터에 나를 묻고 울어줄래? 고작 여름 같은 것에 죽는 나의 순결한 이팔청춘을 위해서 말이야. 겨울을 삼킨 덕에 내 심장은 녹지 않아. 네가 가여운 내 심장을 닦아주라. 녹슬지도 않게, 먼지 쌓이지도 않게. 수십 년의 여름이 내가 품은 겨울을 녹이고 심장을 해동시키면 그땐 내가 네게 사랑을 가르쳐 줄 수 있겠지. 수십 년의 여름을 데려와. 해동되지 못할 내 심장을 녹여줘.

역사상 가장 뜨거운 폭염이 맞았다
가장 뜨거운 사랑을 하고
가장 차가운 것을 삼켰던
불발의 연속에서 맞는 영면의 신호탄

사랑은 불발이고
죽는 것은 성공이고



안녕 나는 너의 재앙

내 이름은 겨울
화형당한 마녀
혹은 순애보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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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강서해  500일 전  
 강서해님께서 작가님에게 1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천이쁨  500일 전  
 천이쁨님께서 작가님에게 1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삼천원내놔  504일 전  
 미미ㅣ미쳤다악...

 답글 0
  강서해  504일 전  
 강서해님께서 작가님에게 58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썬!!  505일 전  
 썬!!님께서 작가님에게 205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藝術  850일 전  
 藝術님께서 작가님에게 3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사부작  934일 전  
 £사부작님께서 작가님에게 5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what2do  934일 전  
 미쳤나봐요 사랑합니다

 답글 0
  설춘향  938일 전  
 체고에여

 설춘향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의향  939일 전  
 의향님께서 작가님에게 4229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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