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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조금 많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 W.신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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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많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trigger Warning: 피부를 긋는 등, 잔인한 묘사 포함




태형이가 사람을 죽였다. 내가 말릴 틈도 없었다. 모텔 유리컵 조각을 쥔 태형이를 뜯어 말리기도 전에 태형이는 나한테 발길질을 퍼붓던 장남호의 등을 그었다. 장남호의 갈라진 등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손으로 등을 매만지면서 장남호가 태형이를 돌아보자 태형이는 그대로 손을 뻗어서 장남호의 목을 찔렀다. 등을 만지던 손으로 목을 움켜진 장남호는 맥도 추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고대로 쓰러졌다. 장남호의 등과 목에서 붉은 선혈이 쉴 새없이 쏟아졌고 모텔 바닥은 금세 장남호의 핏물로 번져갔다.

장남호한테 맞은 내 눈이 시퍼랬다. 유리 조각을 꽉 움켜쥔 태형이의 손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빨갰다. 나는 짓밟힌 배를 움켜쥐고 내 앞에 선 태형이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태형이를 보는 내 눈은 미친듯이 떨렸는데, 정작 장남호를 쓰러뜨린 태형이는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해보였다. 온갖 것들로 똘똘 뭉친 태형이에게 공포심같은 건 없었다. 어떻게든 살고자하는 구질구질한 마음만 있었다.


유리조각을 바닥에다 아무렇게나 던진 태형이는 화장실로 들어가서 핏물에 절여진 손을 빡빡 비벼 씻었다. 한참 후에 태형이는 핏물이 아닌 수돗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피가 스며든 손은 주황빛이었지만 손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투명했다. 꼭 태형이의 상황같았다. 홧김에 저질러버린 살인이었지만 그 살인의 이유는 엄청난 이유도 아닌 투명한 감정 뿐이었다는 게, 꼭 태형이가 세워진 극한의 상황같았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사람을 나쁘게 만든 나쁜 상황만 있을 뿐이라고. 어디에 써먹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쥐고만 있던 말을 이제야 써먹게 됐다. 상황이 참, 태형이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 넣었어.


태형이는 축축한 손으로 내 손을 끌어 잡았다. 나도 덩달아 태형이의 손을 꼭 쥐고 태형이를 따라 비틀비틀 모텔을 나섰다. 모텔 입구에 달린 구슬발을 지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 둘을 반기는 건 태형이의 낡은 스쿠터였다. 태형이가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모아 겨우 산 중고 스쿠터이자, 나를 데리고 어디든 돌아다니기 위해 샀다고한 태형이의 하나 밖에 없는 재산. 지금은 우리가 이곳에서 달아나기 위한 도망의 수단. 키를 꽂아 시동을 건 태형이는 평소 때보다 더 거칠게 스쿠터를 몰았다. 나는 태형이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등에 얼굴을 묻었다. 모텔이 늘어선 거리를 미친듯이 달려 벗어났다.

빠르게 스쳐가는 바람에서 쓴 냄새가 났다. 불쾌한 냄새를 피해 파묻은 태형이의 등에서는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안 그럴려고 계속 다른 생각을 하는데, 불안한 것들은 머릿 속에 아예 담지도 않으려 하는데 계속 좋지 않은 것들이 머릿 속에서 피어올랐다. 모텔 주인이 죽인 장남호를 발견하면 태형이는 어떻게 되는거지. 나올 때 씨씨티브이라도 부시고 나왔어야 했나? 태형이가 쥐었던 유리 조각을 변기에 내려 보냈어야 했던건가? 주인이 경찰에다 신고를 하면 태형이는 그대로 잡혀가겠지. 사람을 죽인거니까 감옥도 가야겠지? 그럼 몇 년? 몇 년동안 난 혼자여야하는거지? 일 년? 이 년? 삼 년? 죽도록? 우린 영영 못 보게 되는걸까. 숨을 들이쉬고 뱉을 때마다 심장이 덜덜 떨렸다.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이건 늪이었다. 헤어나오려 하면 할 수록 더 깊이 빠져들기만하는 괴로움의 늪.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에 사로잡힌 나는 죽을 것만 같았다. 태형이가 죽인 게 나인 것만 같았다.


“여주야 뭐 먹고 싶어.”
“······.”
“다 사줄게, 너가 먹고 싶은 것 다. 나 그 동안 돈 많이 모았어. 그러니까 뭐든 말해.”
“···너가 해준 짜파게티 먹고 싶어. 너랑 내가 사는 우리 집에서.”


그렇게만 답하고 태형이의 등에 입을 묻었다. 조그맣게 웃음을 뱉은 태형이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머리가 어질할 정도로 진한 태형이의 나프탈렌 냄새에 눈을 내려 감으며 팔로 태형이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머릿 속으로는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든 짜파게티를 집어 먹는 걸 상상하는데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카세트 플레이어로 옛노래를 들으면서 태형이와 나란히 눕는 걸 떠올리는데 거기서 현실감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원히 오지 않을 먼 세상의 일같았다. 빠르게 달리는 스쿠터만큼이나 태형이에게서 내가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태형이도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집으로 가서 함께 짜파게티를 끓여먹을 수 없다는 걸. 이제 우리가 함께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아서 더 모르는 척을 했다. 태형이도 알면서 더 모르는 척, 아무 일 없는 척했다. 그게 우리가 서로 조금, 아니 많이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이게 우리의 사는 방식이니까.

우리는 앞으로도 당장의 상황이 눈 앞까지 닥쳐오기 전까지 그렇게 모를 것이다. 영원히 모르길 바라면서, 영원히 안 보이길 바라면서. 나는, 우리는. 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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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흑화ᅠᅠ  30일 전  
 흑화ᅠᅠ님께서 작가님에게 8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rlacofls11230*  30일 전  
 굳..!!!!

 답글 0
  ming_zi  30일 전  
 우호ㅏ 드라마 보는줄 알앜ㅅ어요 ... 그만큼 몰입력 대박

 ming_zi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공전선  30일 전  
 공전선님께서 작가님에게 138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뷔를사랑하는다솜이  30일 전  
 대...대박....글 완전 잘 쓰시네요..

 뷔를사랑하는다솜이님께 댓글 로또 2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초보ARMY  30일 전  
 필력이...대단하십니다....

 초보ARMY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강하루  30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0
  °•°•께껍질•°•°  31일 전  
 °•°•께껍질•°•°님께서 작가님에게 9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께껍질•°•°  31일 전  
 알파님 맞으시죠ㅠㅠㅜ? 작가님 글 보고싶었어요ㅜㅜ

 °•°•께껍질•°•°님께 댓글 로또 1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삼립  31일 전  
 진짜 분위기 잇는 단편은 자까님이 단연 최고이신 듯 합니다 으앙 ㅠㅜㅜㅜㅜ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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