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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우리의 소우주 - W.찔깃
우리의 소우주 - W.찔깃









1.


내가 널 사랑하는 만큼 눈이 내린다면, 봄은 오지 않을거야.








2.


정이 많은 동네 촌구석에서 몸 부대끼며 자란 우리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제 나이 또래라곤 둘 밖에 없는 탓이 컸다.
어릴적부터 온갖 꼴 다 비추며 자라온 우리는 서로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학교는 동네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우리는 학교를 마치면 몇 분이고 걸어야 하는 길을 두 손 꼭 잡고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 김태형

왜애

너 자꾸 남을래? 하교시간 맨날 늦어지잖아.

여주야

... 왜

뽀뽀해줘

뭐가 예쁘다고?



쪽.








3.


서로의 연인이다.








4.


태형은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원하는 건 꼭 손에 넣어야 했고 자신의 품으로 들어온 것은 함부로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태형이 겉으로 집착이 심한 건 아니었다.
그냥, 저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그런 태형의 소유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여주였다.


여주는 웃음이 헤픈 아이였다.
늘 웃었고 웃으면 보이는 가지런한 이는 보기 좋았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 웃음을 매일같이 보여주던 여주는
태형과 함께할 때 비로소 진실된 감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를 캐치한 태형은 그런 여주가 사랑스러워 미치는 줄 알았댄다.








5.


나와 태형은 좁은 시골마을에서 알콩달콩 잘도 사귀었다.
최고로 더웠던 여름날 태형이 좋아한다 고백해온 날에는
덥다는 핑계로 볼을 붉힌 채 혼자 마당 평상에 드러누워 한참을 뒹굴거렸고
사귀기 시작하고 첫 데이트 날에는 무슨 옷을 입을까 몇 번을 고민하다
약속시간에 늦어 태형에게 꾸중을 들었다.



아무렴 좋았다.



몇 십년을 붙어먹고도 태형과 함께 있으면 정말 행복했다.








6.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태형과 두 손 꼭 맞잡고 돌아오는 이 시간이 난 제일 좋았다.
하루를 공유하며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


이제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이라 해가 빨리 지면 간간히 보이는 예쁜 노을은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예쁜 배경이었다.


두 손 마주잡고 노을을 배경삼아 돌 섞인 비포장 길을 가볍게 걸으면 우리는 행복했다.



여주야.

응.

우리 오늘 쩌어기 이장님 댁 풀밭에 쫌 누워 있다 가자.

지금?

웅.

그래 그러자.








7.


그래, 오늘은 조금 달랐다.
하교할 때면 어디로 새지 않고 꼭 바로 집으로 향하던 우리였는데.
오늘은 네가 나를 이장님 댁 풀밭으로 이끌었다.

불안했다.



태형아.

응?

어디가?

.. 풀밭 가잖아 우리.

.... 응.



맞닿은 손에 땀이 찼다.
코 끝에 싸하게 스치는 바람은 너무 차가운데 마주한 두 손은 너무 뜨거웠다.








8.




여주야, 오늘 노을 진짜 예쁘다.
여주랑 이렇게 있으니까 진짜 천국 같아.
여주는 어때?


풀밭에 나란히 드러누워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태형이 가만히 입을 연다. 예뻤다. 노을도 예뻤지만 붉게 타는 노을 밑에서 붉은 빛을 받아 붉게 물들어 보이는 태형의 입술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예뻤다.



쪽.








9.


태형의 말에 대한 나의 대답이자 홧김이었다.








10.


태형이가 이사를 간댄다.
눈을 꿈벅였다.
어머니께 암만 되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서울로 이사를 간다고, 태형이가.








11.


태형이는 어릴적부터 텔레비전 속 연예인들을 동경해오며 꿈을 키웠다.
화려한 무대에서 수많은 팬들의 쏟아지는 사랑을 받으며
좋아하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는게 참 부럽다고 생각했단다.


가수가 되고 싶어요.


스치듯 툭 뱉은 말을 나도 아직 기억한다.
태형의 말을 맘 속에 품고 계셨던 태형의 부모님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며
서울로 이사를 가자고 하셨단다.


이럴 시간이 없었다.
빨리 태형에게로 가야했다.


마음이 급했다.








12.


그렁그렁 눈에 투명한 눈물이 맺혔다.
좁은 비탈길따라 조금만 쭉 올라가면 태형의 집이 나온다.
오늘은 그 길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신발 구겨신고 뛰어가다 그만 돌부리에 발이 걸려 무릎이 까졌다.
쓰라림을 느끼고 아파할 시간이 없었다.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눈에서는 눈물이 났다.


속상했다.








13.


쓰라린 무릎 절뚝이며 도착한 태형의 집 파란 대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평소라면 망설임 없이 두드리고 봤을 문이건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14.


결국 용기를 내지 못했다.








15.


그때 그 풀밭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이거였을까.
어디가냐는 내 물음에 답했을 때.
그 답에 조금의 망설임이 있었단걸 조금 일찍 깨달았어야 했는데.

끝까지 추궁을 했어야 했는데.



그 공백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이제와서 후회가 됐다.








16.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태형이 서울로 이사를 가기까지 이제 오늘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조급해졌다.



이제는 정말, 용기를 내야했다.


용기가 필요하다.








17.


결국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하필이면 금요일 늦은 저녁에 이사 소식을 들어서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 내내 용기 하나 내지 못했다.








18.


심란한 마음에 태형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처럼 평상위에 드러누워 뒹굴었다.

태형에게 고백받았던 날, 그 날엔 이렇게 뒹굴고 있으면
태형이 우리집 하얀 대문 밀고 들어와 내 옆에 나란히 누워
반짝이는 밤하늘을 같이 봤었는데.


짧은 생각을 마치고 허공에 웃음을 흐뜨렸다.




끼익-








19.


실없는 생각이었나 싶었는데
갑자기 우리집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민 사람은 태형이었다.
태형은 평상에 누워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웃겼는지
내가 참으로 좋아했던 네모난 웃음을 함박 지어보이며
평상 빈 자리를 찾아 나란히 누웠다.

말없이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었다.


용기가 없어서,
고개를 들고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눈 깜빡하면 멀어져 있을까봐 너무 겁이나서,


차마 찾아가지 못했던 태형이 옆에 나란히 누워있다.


꿈만 같았다.








20.


태형이 고백해왔던 날과 별로 다를게 없었다.
우린 여전히 서로에게 설레었고 함께라면 행복했다.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 있는 태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심란했던 마음은 곱게 접혀 날아간지 오래였다.



여주야.

응?

우리 너무 행복하다 그지.

... 응.

여주랑 함께하는 시간이 난 제일 좋다. 알아?

..... 몰랐네. 근데 나도 좋아.



태형이 입을 열었다. 여주야, 나 이사가. 자신이 이사를 간다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태형에게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가슴이 다시 쿵 떨어졌다.

우리는 그렇게 이별을 마주하고 있었다.








21.


여주야. 나 꿈 이루러 가려고.

...

내가 멋지게 꿈 이뤄서 너랑 결혼하겠다고 약속했잖아. 기억나?

.... 응.

...

잘 다녀와. 응원할게.

... 응. 여주야, 사랑해. 나 꿈 이루면 바로 너부터 찾아갈거다.

... 그래.

정말이야. 지금도 너가 너무 좋아서 손에 쥔 거, 나 꿈 이룰 기회고 뭐고 다 놓고 너만 사랑할 자신도 있어.





손에 쥔걸 놔주겠다고. 저 욕심 많은 애가. 하지만 그건 내가 용납할 수 없다.





아냐. 그건 안돼. 암만 해도 너가 동경해온 꿈이 있는데.

... 응. 여주가 반대할 것 같아서 나 꿈 멋지게 이뤄서 그때,

...

.. 그때 다시 여주 만나러 오려고.

응. 기다릴게.




말하다 울컥했는지 큰 눈에 걸린 투명한 물방울이 달빛에 빛나보였다. 마음이 시렸다.

우리의 마지막 밤이었다.








22.


태형은 성공했다.
멋지게 꿈을 이뤘다.








23.


태형이 서울로 이사를 간 뒤 나는 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알아주는 4년제 대학을 갔다.
태형없는 하루하루는 늘 빠르게 지나갔다.
대학 4년도 훌쩍 지나버리고 이제는 반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알아주는 대학을 나왔지만
태형처럼 하고자 하는 꿈이 확고하게 없었던 나는 작은 카페를 차려 운영중이었다.


항상 사람이 북적일만큼 유명한 카페는 아니지만
단골이 제법 있는 아담하고 조용한 카페.



일부를 제외한 카페 천장은 투명한 유리로 마감해서 하늘이 시원하게 보이고
카페 한 구석에는 어릴 적 태형과의 추억이 깃든 평상을 가져다 비치해두었다.


카페 오픈을 위해 일찍 눈을 떠 커튼을 걷어보면 오늘은 날이 제법 좋다.




꼭,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24.


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던 오늘은 그저 무난하게 흘러갔다.
날이 어두워오고 자리를 꿋꿋이 지키던 단골 손님들도 카페를 나섰다.


이제는 마감 시간.

음료 기기들을 깨끗이 닦고 테이블 정리까지 마무리하고서
잠시 카페 한 켠에 비치해두었던 평상에 드러누웠다.



딸랑-



누군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지. 클로즈 걸어놨는데 못 보신건가.


의아함을 품은채 고개를 틀어 문쪽을 향하자 보이는 건,








25.


태형이었다.








26.


... 태형이?

.... 응. 여주야. 보고 싶었어.



너무나 기다렸다.
태형은 카페 한 구석에 놓인 평상을 보고 잠시 놀라는 듯 싶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내 옆에 나란히 누웠다.


벌써 3번째다.


고백 받았을 때,
이별을 하고 다음을 기약할 때,
그리고



다시 만나 다시 시작할 지금.


오늘 꼭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는데.
태형아, 널 보려고 그랬구나.








27.


우리는 평상에 나란히 누워 투명하게 보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가만히 꿈벅였다.








28.


우리는 서로에게 여전히 설레었고, 여전히 행복했다.








29.




도시의 불, 이 도시의 별
어릴 적 올려본 밤하늘을 난 떠올려
사람이란 불, 사람이란 별로
가득한 바로 이곳에서

We`re shine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에
Shine, dream, smile
Oh let us light up the night

우린 우리대로 빛나

Shine, dream, smile
Oh let us light up the night

Tonight.








30.




태형아.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한 말이 있다면 너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어.








31.


너와 함께하는 겨울이 길기를 바라는것보다
봄에도 함께이기를 바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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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꼮끼오  9일 전  
 분위기 조아요 ㅠㅠ

 답글 0
  징계  27일 전  
 글 잘 쓰시네요ㅠ

 답글 0
  삼립  33일 전  
 분위기 너무 조아용 8ㅁ8

 답글 0
  강하루  34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0
  민설05  34일 전  
 분위기도 좋고 글도 좋고 둘도 좋고!

 민설05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석잎새⁷  34일 전  
 석잎새⁷님께서 작가님에게 161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시은_SN  35일 전  
 으어...그 특유의 풋풋한 로맨스 느낌을
 잘살리신것같아요(๑و•̀Δ•́)و✧

 시은_SN님께 댓글 로또 1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김빌런  35일 전  
 여주 맘이 벅차오르는 게 여기까지 느껴져요 ㅠㅠㅠ
 예쁜 분위기가 몽글몽글 너무 조으네용

 김빌런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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