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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06. 마음 정리 - W.세상을누비는고래
06. 마음 정리 - W.세상을누비는고래


추천 BGM : Neal K - 소중한 기억



06. 마음 정리















“네가 여기까지 날 모셔왔냐?”
“그래, 이 자식아.”


기억 따위는 나지 않는 건지 석진은 태연한 얼굴이었다. 어젯밤 황당했던 입맞춤이 떠오른 건지 여주는 금세 얼굴이 빨개져 욕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석진은 이상한 표정으로 여주를 바라보다가 식탁에 놓인 꿀물을 보고 내심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집안에는 사람을 잘 둬야 한다고 했었지. 이여주는 우리 집에 굴러들어온 복덩어리쯤 되려나.



“야, 밥 줘!”
“......”
“이여주!”
“가스레인지 위에 콩나물국 끓여놨으니까 그거 먹고 입 다물어.”


또 새침한 척 내뱉는 저 말투 좀 보게. 전날에 무슨 일이 일어난 지도 모르는 석진은 그렇게 평범한 아침을 시작했다. 여주는 달아오르는 얼굴을 가라앉히려, 물 튀기게 세수를 하기 시작했고 거품이 사라질 때 즈음 거울을 보는데 자신이 여간 한심한 게 아니었다. 왜 나만 고민을 하는 거야, 저 망할 놈의 자식은 태연한데.


“나쁜 새끼.”


나쁘고 또 나쁜 새끼. 사람 마음은 이상하게 만들어 놓고.





**





“이 선생님? 이 선생님!”


턱을 괴고 있다가 계속 소리를 지르는 태형으로 인해 정신이 번쩍 든 여주가 태형을 바라봤다.



“종 쳤어요.”


여주는 급히 일어나 교과서를 챙겼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놓고 다니는지. 이건 다 김석진 때문이다. 왜 그 새끼는 어제 쓸데없이 입술을 들이밀어서 내 마음을 이렇게 심란하게 하는 거야.


“자, 교과서 펴자.”


알고 있다. 수업을 듣는 학생이 반도 안 된다는 것을. 이 학교가 그렇지 뭐.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앞자리를 매일 고집하는 동훈은 여주를 향해 똘망한 눈동자를 내비친다. 여주는 웃으며 동훈과 시선을 마주했고, 곧 페이지 수를 알려주는 동훈의 목소리로 여주는 책을 폈다.


“자, 그럼 잠깐 살펴보자.”
“네!”
“이 글은 염상섭 님이 쓰신 글로.”


‘최아미.’


“선생님?”
“아, 미안. 그러니까 앞 내용을 살펴보면 교장 선생님이 이자를.”


‘최아미.’


망할 김석진! 얼른 내 머릿속에서 나가! 우연히 잠에서 깬 윤기는 그런 여주를 이상한 눈치로 쳐다보았다. 여주는 괴로운 듯 머리를 살짝 헝클이다가 교과서를 자신의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래, 수업하자. 그리고 곧 침착한 목소리로 수업을 진행했다.


엄청 길게 느껴진 수업이 간신히 끝났다. 종이 치기 1분 전부터 급식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거세게 들려왔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참 무언가를 향한 욕망이 뛰어나지. 여주가 교탁에 놓인 자료를 간단히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곧 윤기의 손길에 의해 가려는 길의 반대쪽으로 끌려갔다.


“넌 무슨 시도 때도 없이 잡아 당기냐?”
“......”


별말 없이 매점 뒤쪽으로 향하던 윤기는 여주를 벽으로 밀치더니 얼굴을 들이민다. 여주가 깜짝 놀라서 최대한 고개를 뒤로 뺐는데 곧 윤기의 손이 여주의 이마에 닿았다. 책을 놓칠 뻔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윤기는 고개를 갸웃한다.



“아픈 건 아니고.”
“......”
“뭐냐? 수업 시간 내내 거슬렸거든?”


윤기의 말에 여주는 시선이 흔들렸다. 그리고 무심코 말이 내뱉어졌다.


“넌 술김에 한 키스가 계속 생각나면 무슨 마음이라고 생각해?”
“그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거네. 왜, 어떤 새끼가 키스했어?”
“아니야!”


저 새끼는 왜 이렇게 꿰뚫고 있지? 차마 겁나서 건들지도 못했던 부분을 거침없이 건드려버리는 윤기로 인해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윤기는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저렇게 발끈하는 걸 보면 백프로 누군가와 키스를 했다는 건데. 생각 이상으로 단순한 이여주가 저렇게 반응한다는 건 확실했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그 뒷말이었다. 이여주가 그 키스를 잊지 못했다는 것.


“갈게.”
“......”
“밥 많이 먹어라. 청소년의 체력은 국력!”
“지랄.”


여주는 윤기를 스쳐 지나갔다. 정말 마음이 있는 걸까.





**





“왜 그렇게 많이 못 먹어?”
“......”
“석진아?”


아미의 말에도 불구하고 석진은 묵묵히 밥을 먹었다. 아미의 인상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저 녀석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뭔가 일이 있다는 거다. 그것도 나에 대해. 아미는 석진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뺏어버리고 고개를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 석진은 무표정을 일관한 채 아미를 바라본다. 아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한테 화나는 일 있어?”


도리도리. 고개를 대충 돌려버리는 석진을 보자 괜히 화가 샘솟았다.


“말을 해야 내가 알 거 아냐. 왜 또 어린애처럼 굴어.”
“어린애?”
“......”
“넌 매번 날 그런 식으로 밖에 취급 안 하지.”


석진의 삐뚤어진 어조에 아미는 찌푸려진 인상을 풀지 못했다. 안 그래도 이 녀석이 여주 씨와 있는 걸 보면 괜히 마음이 쓰였는데, 자신에게 이렇게 삐뚤게 대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네 말대로 그 싱거운 사랑 그만하려고.”
“... 김석진.”
“이제 정말 친구하자. 내가 그동안 병신이었어.”


석진의 말에 아미는 놀란 얼굴이었다. 석진은 싱겁게 웃어버렸다.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올 것을 알고 있었어. 넌 나를 남한테 주기 아까워하잖아. 그 장단에 나는 놀아준 것뿐이고. 그래도 널 좋아하니까 그 정도쯤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쳤다. 혼자서 그 유부남을 보며 혼자 별 상상을 다 하는 것도, 안 봐주는 것을 알면서 발버둥 치는 것도 질렸다.


“석진아.”
“왜, 아까워?”
“......”
“아니다. 입맛이 별로 없네. 먹고 들어가라.”


석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미는 당황한 듯 따라 일어났고, 석진은 아미를 조용히 다시 앉혔다.


“그럴 거 없어. 이제 익숙하니까.”
“......”
“넌 네 사랑 찾았으니 된 거고, 난 새 사랑 찾으면 되는 거잖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저런 얼굴을 하면 괴롭다. 알고 있다. 내 마음이 얼마나 영악한 지. 그래서 석진이를 얼마나 이용했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도 빛나는 나에게는 함께 빛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남자도 그랬고 석진이도 그랬다.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냥 모르는 척, 가만히 있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했는데.


“그래, 알겠어.”


마음 정리를 하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그 이후에 남은 미련을 버리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





김석진은 참 멋있는 사람이다.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크다. 능력도 좋고 아닌 척하면서 참 잘 챙겨준다. 고로 그 녀석은 정말 멋있다. 설거지를 하던 여주는 지금껏 감정을 차차 정리해보기로 결심했다. 제대로 된 정의를 내려야 했다. 내가 김석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처음에는 완전 개싸가지 엄친아였지. 고등학교 때 벌청소로 복도를 쓸고 있는 데 어떤 망할 놈이 쓰레기를 버리는 바람에, 화가 나서 잔뜩 야리니 당시에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 녀석이 친구들과 서 있었다. 같이 쓸어주면 덧나냐는 그 싸가지 없는 말투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다시 재회했다. 훨씬 근사해진 인상의 녀석은 세월이 덧붙여져 훨씬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 있었다.


“......”


그리고 티격태격하며 생활한지도 한참 되었다. 그만큼 녀석의 소소한 습관이나 버릇 따위를 감지할 수 있었고, 서로 조율해나가며 이해하는 마음을 가졌다. 아, 물론 이건 나에게만 해당된다. 그래도 녀석은 내가 위험할 때마다 짠 하고 등장해주는 슈퍼맨 노릇을 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이 무서울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리고 키스라고 하기도 그런 입술박치기. 그래, 사람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떨리게 만들었던 그 문제의 키스. 떨려? 어째서? 그 녀석이랑 키스하는 데 왜 떨리는 거야?


‘그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거네.’


그래, 인정해야 했다. 빌어먹게도 난 김석진을 좋아하는 거다. 개싸가지 일지언정 퍽 잘생긴 그 녀석을 이미 좋아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아미 씨를 볼 때 이상한 마음을 느끼는 거다. 그건 분명 열등감이었다. 특히나 김석진이 아미 씨에 대한 마음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안 후에는 열등감이 더욱 심했었다.



“나 왔어. 배고파.”


어김없이 배고프다며 징징거리는 김석진이 웃으면서 들어왔다. 오버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웃으며.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있다면 있지.”
“그만 좀 실실 거려. 안 어울려.”


여주의 말에 석진은 정수기 쪽에서 물을 떠 마시다가 여주를 지그시 바라보며 다시 웃는다. 그렇게 웃지 마. 이제는 내 마음이 확실해져서 떨리거든? 짜증나게.


“오늘은 뭐 해줄 거야?”
“김치찌개.”
“......”
“싫어?”
“싫다고 그러면 또 잔소리할 거면서. 나는 씻고 나올게.”


석진은 방으로 들어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어깨에 수건 하나를 걸친 채 욕실로 들어갔는데 여주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자식이 또 등판이 끝내주게 넓네? 어깨는 왜 저렇게 넓은데? 사람이 시각을 다르게 보면 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던가. 저 녀석을 곱게 보니까 좋은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드디어 미쳤나봐.


여주는 석진이 샤워를 마치고 나올 시간일 때 즈음 상을 제대로 차렸다. 석진이 집에서 가지고 왔다며 냉장고에 넣어놨던 밑반찬도 이것저것 꺼내보고 야심작으로 끓인 김치찌개도 중앙에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서 만든 계란말이도 예쁘게 썰어 식탁에 놓았다. 수저를 놓자 석진이 문을 열고 걸어 나왔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바라보는데, 이 자식은 또 왜 이렇게 섹시한 거야.


“야, 물 제대로 닦고 나와!”
“평소에는 안 그러더니 이제는 별걸 다 트집이냐?”
“몰라! 바닥에 물 네가 다 닦아!”


석진은 괜히 성질을 부리는 여주를 보며 밖에서 또 무슨 고초를 겪고 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혀를 내둘렀다. 역시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집에서 푼다고 했던가. 석진은 이여주는 이런 대한민국의 철칙 아닌 철칙을 철저히 다 지키고 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네, 죄송합니다.”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는 여주를 바라보니 석진은 괜히 마음이 쓰였다. 통화를 끊고 침대에 누워 골골대는 꼴이 영 여주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여주가 때 아닌 감기에 걸려 버린 것이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던데.”


석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대충 고개를 끄덕이던 여주는 콜록 거리며 기침을 하더니 눈을 다시 감는다.


“......”


말없이 여주에게 다가와 이마에 손을 얹던 석진은 생각보다 높은 열에 놀란 듯했다. 이불을 턱까지 끌어다 덮어주고 방 밖을 나왔다. 오늘은 금방 집에 와야 할 것 같았다. 하여튼 신경 쓰이는 일 밖에 안 하지.



“밥 꼭 챙겨 먹어.”
“......”
“약은 식탁에 있어. 듣고 있냐?”


듣고 있을 리가 없지. 석진은 메모를 간단하게 써서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녀석이 오래간만에 학교에 안 가고 쉬는 날이니까 쉴 때 많이 쉬었으면 했다. 석진은 마지막으로 여주의 방 안을 슬쩍 바라보다가 밖을 나섰다. 인사를 건네는 경비 아저씨에게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석진은 자신의 차로 향하는데, 여전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뭐야, 이 선생님 안 들어 왔다고 그런 표정 짓는 거야?”


태형이 슬쩍 웃으며 1반 학생들을 훑어보았다. 간단히 출석체크를 하고 보니 아니꼽게 느껴지는 시선이 있어 태형이 고개를 들었다. 윤기가 인상을 쓰고 태형을 바라보는데 태형이 싱겁게 웃는다.



“민윤기, 내 얼굴 뚫리겠다.”
“이여주는 어디 있어?”


예전에 자신에게만 선생님 호칭을 붙이지 않고 반말을 툭툭 내뱉는 녀석이 있다고 여주에게 들었다. 그게 민윤기 너였구나. 태형은 윤기의 말에 사실대로 얘기를 해주었다.


“이 선생님이 많이 아프셔서 오늘만 임시로 내가 너희 담임이니까, 제발 오늘은 사고 치지 마라, 어?”


다들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오늘은 귀염둥이 선생님 못 보겠네.”
“귀염둥이는 무슨.”
“넌 내가 담임 얘기만 하면 발끈이다?”


호석의 말에도 윤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역시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첫 시간이 국어인지라 자습시간이 주어졌다. 다들 자습시간이라기보다는 노는 시간에 가까운 듯했다. 옆 반에서 수업 중이었던 전공과목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주의를 준 뒤 다시 나갔다. 아이들은 조금 목소리가 가라앉는 듯싶다가 다시 떠들어대기 바빴다.


“민윤기, 너 오늘 무슨 일 있냐?”
“......”
“뭐 마려운 놈 마냥 왜 그렇게 안절부절이야?”
“시끄러워.”


윤기가 책상에 고개를 파묻자, 호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다가 옆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에게 슬쩍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윤기는 여전히 마음이 쓰여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저장된 번호를 꾹 눌러 통화를 시도했는데 몇 번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곧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오늘은 괴롭히지 마.


감기로 다 가라앉은 듯했지만 묘하게 매력있는 목소리였다. 윤기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라도 막상 들으니 안심이 되는 듯 웃었다.



“웬 꾀병이야.”
- 꾀병 아니거든?
“얼른 나와라. 나 심심해.”


소소하게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마냥 간질거렸다. 더 이상 말을 거는 건 무리인 것 같아서 윤기는 대충 말을 마무리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목소리를 들으려고 했던 자신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진짜 이여주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런 낯간지러운 생각까지 미치자 윤기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고개를 책상에 박았다. 주위가 시끄럽게 느껴져도 귓가에 맴도는 건 통화 속 여주의 목소리였다. 아, 진짜.





**





결국 석진은 이래저래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이런 핑계를 대며 빠지는 성격이 아닌지라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전히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미를 보며 석진은 마음이 쓰이기는 했지만, 머릿속에는 다 죽어가는 여주의 얼굴이 떠올라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대충 죽을 끓일 재료는 집에 있겠다 싶어서 과일 음료만 두둑이 사 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집안은 조용했다. 석진은 황급히 여주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주는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있었다. 석진이 커프스단추를 풀고 접은 뒤 급히 수건에 물을 적셔 방안으로 들어왔다. 끙끙 앓는 소리에 마음이 쓰였다. 석진은 수건을 살짝 여주의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여주는 찬 수건이 닿자 인상을 찌푸리는 듯하다가 이내 평온한 얼굴을 보였다.



“이래저래 걱정시키고 있어.”


석진은 몇 차례 수건을 간 뒤 부엌으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뽑아 죽을 끓이기는 했는데 자신이 봐도 허술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여주의 요리 솜씨가 얼마나 뛰어났는가는 여기서 드러났다. 방 안에는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석진은 얼추 다 끓여진 것 같아서 불을 끄고 그릇에 담았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 물까지 대령하자 마침 여주가 축 처진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왔다.


“일어났냐?”
“너 왜 여기 있어.”


너 때문에 왔으니까 감동이나 먹으라고 하기에는 너무 쪽팔린 것 같아서, 석진은 대충 핑계를 댔다.


“그냥, 오늘 일이 없어서 빨리 왔어.”


단순한 이여주는 속아버린다. 하긴 지금 정신머리로는 무슨 말이 안 먹힐까. 여주가 저벅저벅 거실을 맴도는 듯하다가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다. 석진은 빠른 속도로 달려가 여주를 잡았다.


“왜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녀.”


석진의 목소리에 여주는 말간 웃음을 내비친다. 짜증나게 다정하기는. 여주는 조금 더 아픈 시늉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하면 좀 알아봐 주려나. 석진은 여주를 이끌고 식탁에 앉혔다. 눈앞에 보이는 건 죽이고, 끓일 사람은 너일 텐데.


“내가 먹고 싶어서 끓인 거야.”
“......”
“또 무슨 널 위해 끓였다는 등, 그런 헛소리하지 마라. “


처음부터 좋게 말하면 어디 덧나나. 여주는 속아주는 척 고개를 끄덕거리며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한 입을 맛보는 데 살짝 인상이 찌푸려진다. 석진은 조금 긴장된 얼굴로 여주를 바라본다. 솔직히 조금 짜다. 조금 짠 게 아니라 많이 짜다. 게다가 너무 느끼하다. 기름을 얼마나 부어댄 거야. 너 지금 너희 집에서 기름 짜서 들고 왔다고 자랑하는 거니?


“맛없어?”
“네가 먹어 봐.”


여주가 자신이 먹던 숟가락에 한 가득 퍼서 석진에게 건넸다. 석진이 조금 겁먹은 얼굴로 받아먹는데, 왜 여주가 저런 표정을 지은 건지 알 것도 같았다. 솔직히 너무 맛이 없었다.


“분명 레시피대로 한 건데.”
“어련하시겠어요.”


여주는 짜고 느끼한 죽을 곧이곧대로 뚝딱 비웠다. 네 정성이 갸륵해서 먹어 준 거니까 고마워해. 석진은 약을 꺼내서 여주에게 건넸고, 너무 찬물은 부담될까 싶어 적당히 미지근한 물을 여주에게 건넸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렇게 다정하면 나 진짜 눈 콱 감고 너 안 놔주고 싶어지는데. 여주가 알약을 힘겹게 넘기고 작게 한숨을 쉰다. 석진은 손을 뻗어 여주의 이마에 얹었다. 손이 큰 건지 여주의 얼굴이 작은 건지 이마에 닿은 손이 눈까지 덮어버리는 것 같아서 여주는 그냥 눈을 슬쩍 감았다. 다정한 손길도 좋았고, 걱정하는 저 눈빛도 좋았다. 가끔 이런 모습을 보일 때면 내가 너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마음이 들거든.


“야.”
“왜.”
“고마워.”


여주의 말에 석진은 웃어버린다. 여주가 왜 웃냐며 다그치자 석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이 자식이. 여주는 석진에게 대롱대롱 매달려서 말하라며 다그치지만 석진은 안 말한다며 매달린 여주를 떨어뜨리려고 했다. 여주는 있는 힘을 다해 매달렸다.


“나 지금 약 먹어서 제정신 아니니까 건들지 마!”


그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석진은 성큼성큼 현관 쪽으로 향했다. 여주는 석진에게 매달린 채 떨어질 생각을 않고 있었다.


“민윤기?”


여주의 목소리에 석진은 꽤 경계하는 눈빛으로 윤기를 바라봤다. 여주는 석진에게 매달려 있던 몸을 풀고 윤기를 바라본다. 윤기는 석진과 여주를 빤히 바라보더니 헛웃음을 터뜨렸다. 석진은 마음에 안 드는 듯 여주를 끌어다가 방에 집어넣어 버렸다. 여주가 뭐 하는 짓이냐며 문을 쾅쾅 두드리는데 석진은 억지로 열려고 하는 문고리를 붙잡았다. 현관 바로 앞에 위치한 여주의 방인지라 석진은 손잡이를 붙잡고 밖에 서 있는 윤기를 바라볼 수 있었다.



“같이 계셨나 봐요.”
“무슨 일이지?”
“......”
“아, 담임 선생님이 아프다니까 걱정 돼서?”


충분히 가시가 박힌 말이었다. 윤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석진을 바라보았다. 석진은 여전히 어른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걱정할 거 없겠네.”
“......”
“꼬맹이가 괜한 거 신경 쓰지 마.”


윤기는 말없이 문을 닫았다. 그런가. 저 사람과 나는 역시 차이가 크다. 저 사람은 엄연한 어른이었고 난 고작 열여덟 살에 불구했다. 아무런 힘도 없고 번듯한 사람도 아니다. 윤기는 괜한 발걸음을 뻗은 듯했다. 순전히 걱정스러워서 찾아온 건 분명했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까 이유를 불문하고 뻗어진 발걸음이었다. 허탈감이 맴돌았다.




















민트차양♥ 님(200)
고양이천사 님(100)


모두 감사드립니다!




[1000포인트 이상]




데헷 케이 님 항상 넘넘 감사드림당! 관계정리를 위하셔서 대충 정리를...(???) ㅋㅋㅋㅋㅋ연말인데 마무리 잘 하시고 2020도 잘 부탁드립니닷! 사랑혀요!



휘소님 항상 재밌는 말로 웃겨주셔서 감사해여 헤헤ㅔㅎ 오늘도 광대가 올라가셨으려나요. 항상 너무 고맙고 그래요. 오래봐요 우리 사랑함다!



















목욕탕갔다가 온다고 조금 늦었네욤ㅋㅋㅋㅋㅋ내용은 만족하시려나 모르겠어용 헤헤헤ㅔㅎ 석진이가 드디어 이제 정리를 하기 시작하는군요. 어쨌든 많은 사랑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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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겨은  1일 전  
 윤기가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저는 이게 너와 나의 차이 이런 둘 사이의 범접할수없는 거? 라고 해야하나 이런거 너무 설레요 ㅠ 특히 김석진 ㅠㅠㅠ 잘보고 가요!

 겨은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쏘현쏘  3일 전  
 제발 이어주세요..

 쏘현쏘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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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진야  11일 전  
 아 가슴 아퍼ㅠㅠㅠ

 하진야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아니진짜로;;  12일 전  
 아 제발 석진이랑
 ....

 답글 0
  아니진짜로;;  12일 전  
 아 제발 석진이랑
 ....

 답글 0
  카페팝  15일 전  
 진짜 석진옵이랑 윤기옵 너무 좋은데 나만 태형옵이랑 여주랑 됐음 좋겠나 ㅠㅠ ......? 물론 될일은 없지망 ㅠ

 카페팝님께 댓글 로또 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깜찍아아  17일 전  
 융기 맘이 아프ㅠㅠ

 답글 1
  민트차양❤  18일 전  
 민트차양❤님께서 작가님에게 2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2
  노련_도령  19일 전  
 아니이이이이ㅣ 미치겠어요 윤기도 조코 석진이도 좋은데
 일처다부제는 안되나요ㅠㅠㅠㅠ 골애님ㅜㅜㅜㅠㅠㅠ 워우엉

 답글 1
  어련  19일 전  
 어련님께서 작가님에게 15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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