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방탄빙의글 [작당글] 미성년의 열병 - W.삼십오
[작당글] 미성년의 열병 - W.삼십오





전정국은 원체 몸이 약했다. 새벽이면 길게 늘어진 말꼬리에서 잉태하는 낱말들을 토해내곤 했다. 입안에서만 굴릴 수밖에 없었던 낱말들은 모난 곳 없이 매끄러워 몇 번이나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전정국은 고개를 푹 숙이고 낱말들을 삼키기에 바빴다. 쓰리고 아린 목구멍 속으로 겨우 낱말을 삼키자, 무딘 얼굴은 미소를 지었다. 벌써 네 번의 계절을 넘었다. 전정국은 더 이상 그 낱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꽃 향기 지독한 단어들을 머금으니 어지러운 머리에 피가 빠르게 통했다. 그렇게 밤낮을 외로이 보냈다. 외사랑••• 그보다도 외로운 사랑은, 사랑을 사랑이라 지칭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목을 잔뜩 졸라도 튀어나오는 사랑을, 전정국은 애석하게도 뜨거운 열이라 칭했다. 사랑과 열병 사이는 빌어먹게도 거리가 매우 짧아서, 열여덟 미성년이 헤아리기엔 너무나도 어려웠다. 열여덟은 달이 뜨면 홀로 심장과 교감했다. 쓰린 마음에 잃어버린 낱말들을 손에 쥐자,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전정국은 불어 터진 눈가를 더듬지도 못한 채 홀로 잠이 들었다. 신이시여, 보고 계신다면 이 어리숙한 미성년을 구원해주소서.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 뜨거운 숨을 내쉬는 소년을 꺼내주소서. 이 열을 좀 내리게 해주소서. 잔뜩 토해낸 낱말들엔 주어가 없었으나 굳이 미사여구 붙여 배설하지 않아도 모두 한곳을 바라보았다. 함부로 정의 내리기엔, 그 전정국은 아주 어리고 약했다. 심연의 부름은 전정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아주 정의로운 죽음이었다. 그렇게, 그렇게. 정의는 미성년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정의되었다. 돋아난 가시에 찔린 상처가 아려왔다. 바람에 스치니 온 몸이 떨렸다. 동정의 상처였다.




사랑을 연민하지 말라 했던가. 미성년이란 단어를 붙여 함부로 오르내리는 그 단어는 흔한 시의 주제가 되곤 했다. 함께 마주보는 미래를 꿈꾸도록 한 업보였다. 그 빌어먹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질병은 토해낸 낱말에 따라 표면적으로 비치는 형상이 너무나도 달라져서, 전정국은 더욱 웅크렸다. 개화 시기를 기다리는 꽃봉오리처럼, 스스로를 자꾸 가두려 했다. 외로움의 결말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무뎌졌다 생각했음에도 그의 몸엔 조그마한 가시 하나 돋지 않았다. 새 생명을 잉태하는 봄에도, 싱그럽게 반짝이는 여름에도. 그 어리숙하고 쓰린 사랑은 여린 살조차 뚫지 못했다. 모노톤의 영화처럼 전정국의 사랑은 일 년 내내 하이얀 풍경이었다. 피어나는 꽃 한송이 없이, 지저귀는 새 한 마리 없이....... 가둬진 풍경 속을 유영하는 사랑이란 감정을, 전정국은 끝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지독한 열병을 앓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열여덟의 치부로만 정의 내릴 뿐이었다. 김여주는 전정국의 전부이자 치부였고, 미처 피어나지 못한 꽃봉오리를 약탈했다. 마구 떠다니는 뜨거운 열에, 꽃송이는 도저히 피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봄은 꽃향기 하나 머물지 못하고 끝을 맞았다. 적어도 전정국에게는.




지구의 기상은 네 몸짓으로부터 발생한다. 앙상한 가지 끝에 매화가 피어난 것을 보았다. 힘 없이 늘어진 겨울과 봄 사이의 선에 생기가 돌았다. 투박한 마디 사이로 돋아난 하이얀 꽃송이 하나. 마치 커다란 흑해를 가르며 헤엄치는 고래를 보는 듯했다. 전정국은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다. 꽃이 피어난 줄기 속 조그마한 틈 사이로 잡아먹힐 듯했다. 곱게 핀 다섯 장의 꽃잎이 행여나 떨어지기라도 할까,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앓는 것엔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얼굴에 울음이 맺혔다. 너무..., 너무 아름다워서. 애써 억눌렀던 낱말을 토할 것만 같았다. 이 빌어먹을 사랑 좀, 끝내게 해주라.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눈을 감고 김여주를 그렸다. 토했던 낱말들만으로도 김여주를 백 번도 넘게 그릴 수 있었다. 김여주의 옷깃 냄새가 코 끝에 스쳤다. 그러자 재채기가 계속 일었다. 알러지 증상 같기도 했다. 미처 다 자라지 못해 면역이 이기지 못한 증상들....... 애써 목을 졸라도 꾸역꾸역 올라오는 낱말에 토기가 느껴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김여주가 제 가슴을 짓밟는 듯 했다. 이 낱말을 토하고 나면, 까아만 바다에 가둬질 것이다. 아아, 내 열여덟과 맞바꾸었던 이 어리숙한 열을. 내 전부와 맞바꾼 치부를..., 토한다. 찬란하리만큼 뜨거운, 열병이었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봄이 이렇게도 찬란했던가. 고요한 바다에 거센 파도가 일었다. 전정국이 우두커니 서 있던 마을을 휩쓸어버릴 정도의 성마른 파도였다. 그에서 매화 향기가 났다. 쓰러진 전정국을 파도가 집어삼킬듯 덮쳤다. 텅 비워진 마음에 까만 물이 밀려와 채워졌다. 몸이 물에 절어진 건지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눈꺼풀을 들어 올릴 힘조차 나지 않았다. 목구멍이 따가웠다. 피 맛이 맴도는 듯 했다. 잔뜩 토해낸 낱말을 손에 쥐려 했으나, 쥐어지지 않았다. 봄은, 허상이었다. 외사랑의 계절이었다.

•••
그래도, 그래도 여주야. 손에 쥐면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것만 같은 내 심장만큼만이라도 나를 생각해주라. 어두운 물살 사이로 이따금씩 손 내밀어 주라. 너무 뜨거운 열병에 네가 화상이라도 입을까 맞잡을 용기는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 도대체 몇 번의 계절을 넘어야 네 곁을 유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내 봄으로 네 겨울을 살 수 있게 해주라. 이제 겨울은 아프지 않아. 무뎌졌을 뿐이야. 조금이라도 우리가 가까워 질 수 있게끔, 손 맞잡을 수 있게끔....... 온통 하이얀 눈이 내려앉은 풍경 속 매화나무 아래서 나와 함께 잠들어주라. 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라니까..., 날 미성년에서 벗어나게 해주라.

아직도 매화 가지를 쥐고 운다마는.




_
안녕하세요 삼십오입니당! 아직도 작당이 믿기지가 않네요... ㅠㅠ 응원해주시고 투표해주신 많은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쓴 글인 만큼 응원해주실 때마다 뿌듯함을 많이 느꼈어용! 앞으로 더 좋은 글로 보답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천하기 5   즐겨찾기 등록
글이 재미있었다면 작가님에게 포인트 선물을 해주세요.
나의 Point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작가님에게
추천수와 선물받은 포인트 합산을 기준으로 글의 순위가 결정됩니다.




삼십오 작가님의 다른글 보기       전체보기
소년은 아주 오래전에 죽었다고 한다.
[현재글] [작당글] 미성년의 열병
    로그인 후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댓글
  김단옝  285일 전  
 작당 축하드려요!!

 김단옝님께 댓글 로또 1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달륭  286일 전  
 글 진짜 좋아요!!

 달륭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뷔태석태  286일 전  
 글 너무너무 좋아요!! 정말 응원했는데 작당 되시니 제가 다 좋네요ㅠㅠ
 앞으로도 화이팅하시고 언제나 응원합니다♥

 답글 1
  최택철  286일 전  
 작당 축하드려요^^7

 최택철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정국아개사랑해  286일 전  
 따딸땅땀

 정국아개사랑해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김일병  286일 전  
 호곳 ㅠㅠㅠ 글 넘 좋고 예뻐요 ㅠㅠㅠ 건필하셔요
 축하두립니다

 김일병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실서론  286일 전  
 작당 축하드려요 :) 묘사 정말 예뻤어요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실서론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강하루  286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1
  아미<.>  286일 전  
 직당 정말로 축하드립니다!!좋아하는 글이여서 10번 넘게 다시 봤네요♥♥건필하세요♡

 답글 1
  _척애°  286일 전  
 작당 너무 축하드려요 건필 하세요

 _척애°님께 댓글 로또 1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16 개 댓글 전체보기


친구에게 장난치기 꿀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