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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365D] 순하리 - W.람요미
[365D] 순하리 - W.람요미


결여된 사랑의 종착지에서
비로서
하직하리




순하리
|
하람




ᅠ어스름한 달빛이 광활한 대지를 집어삼키는, 어둠이 빛을 옥죄이는 고요한 밤. 바스락이는 단풍 하나 하나의 잡음에 지나지 않는 어두운 밤.

ᅠ눈동자에 달빛을 입히고, 사랑을 실어 하늘 위로 띄운 날에, 밤 사이를 유영하며 꿈을 꾸던 날에 박지민은 비로서 세상에서 하직했다. 끝끝내 맺지 못한 사랑의 결실로 제 목에 씌워진 족쇄를 풀지 못하고. 박지민을 태운 지하철이 슬슬 종착역에 달하고 있었다. 결여된 사랑은, 부족한 애정은 수면 위를 꽉 채웠으며 그 속에 갇혀 버둥거리는. 그런 한 마리의 미개한 물고기 한 마리가 파닥파닥.


ᅠ김여주는 박지민의 여친인가. 박지민은 실로 김여주를 사랑하고 아꼈다. 지하철의 XX점은 그녀가 떠난 이후의 피폐한 하루하루를 살았던 그로부터. 물고기는 아가미로 부패한 공기의 틈을 비집이며 24시간을 영명한다. 낱낱이 공중으로 퍼지는 시계 초침 소리는 이상하리만치 귓가에 눌러붙어 고막을 뒤흔들었다. 박지민은 온 몸에 힘이 없어 자지러지기 일수였다. 술은 입에 대지 않았건만 몸에선 이미 담배 누릿내와 꼬장이 묻었다. 아가페적 사랑으로 그녀를 사랑했었나. 당연하게도 사랑과 애정을 줬던 말로 형용 불가한 관계. 사랑을 주고받음이 아닌 일방적으로 주던 관계. 그 관계에서의 을은 박지민이었다.

ᅠ그녀는 애정결핍이 있었다. 되려 박지민은 귀한 집 자식으로 오냐오냐 사랑을 듬뿍 받았고. 그러니까, 곱씹어 보면 김여주는 애정을 갈구했다. 사랑이란 쇠사슬을 목이며 발이며 아무 데든 다 걸고 열쇠를 탐했다. 그냥 1차원적으로 저의 결여된 부분을 채워줄 사랑이 필요했을 뿐,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다. 박지민은 그 결핍을 채워주고 그 이상의 것을 해줬을 뿐. 당연하게 자리잡은 갑을 관계에서 그녀는 빈틈을 메운 뒤엔 홀연히 사라져 있었다. 입가에 여전히 스며든 속삭임이 샅샅이 김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곤, 사랑해. 미치도록 사랑해. 사랑 한 번 해본 적 없는 남녀의 사랑은 극도로 치밀었다.


ᅠ밤은 불빛으로 환한, 달이 그림자를 지는 그런 때다. 도시의 난잡한 소음이 귓바퀴를 퉁퉁 치는가 하면 그 소리마저도 공기의 일부분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옥탑방에서 어스럼히 지는 달빛을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쭉 들이키던 박지민이 나지막히 야경을 바라보던 차였다. 허한 마음이 부스러기를 긁어내 빈틈을 만들고 이내 흐르는 별똥별 마냥 눈물을 뚝뚝. 되돌릴 수가 없었다. 정교하게 파진 구덩이에 사랑을 집어넣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해는 감쪽히 정체를 숨겼다. 독을 수리하긴 커녕 대체품 마저도 없었다.

ᅠ홀연히 사라진 그녀를 처음엔 찾아 헤매었다. 그러곤 포기했다. 갈구하던 애정이 목을 죄이고 열망하던 사랑이 숨통을 끊어놓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박지민은 김여주에게 집착함으로써 제 욕구를 내뿜었고, 김여주는 제 이익을 채우기 위해 그것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은 떠난 김여주와 찾는 박지민. 박지민은 아무리 수면 위를 주먹으로 올려쳐도 수압에, 그니까 사랑이건 뭐건 간에 그 틀을 깰 수 없다. 반복되는 상황은 발목에 추를 매달고 심해로 이끌곤 한다. 꺾인 기세로 해저의 식인귀들이 그를 잡아먹고 낭떠러지로 떨어진 껍데기는 그렇게 사랑을 헤매고.


ᅠ진심으로 사랑했느냐고 묻는다면. 정답은, 맞다. 수리되지 않은 채로 질질 끌려다니는 테이프 선은 여전히 돌려진다. 그 상태로. 진심이 1이라면 가식은 0이다. 제 목숨을 떠받쳐 제 몸 속의 뼈까지 갖다바칠만큼. 절박하면서도 고귀했던 사랑을 했다. 부패한 아가미를 겨우겨우 뻐금이며 숨을 붙일랬던 사랑마냥. 다시는 하지 않을 짓임을 알지만 번복할 수도 없었다. 뻐금일 때면 뽀글거리며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볼을 톡톡 두드리면 그제서야 박지민이 정신을 차렸다. 이미 그땐, 김여주는 없었다.


ᅠ나뭇가지에 눈이 쌓였다. 소복히 쌓인 눈덩이가 세상을 희게 물들였다. 극도로 치민 감정이 서서히 누그러지는 듯했다. 김여주는 요즘 몸을 숨겼다. 한 번은 하루 동안 연락이 없는가 하면 어쩔 땐 한 달을, 요번엔 세 달을 훌쩍 넘기었다. 박지민은 술을 달고 살았다. 꿀꺽이며 넘어가는 알코올은 목구멍을 톡 쏘이며 식도를 잘만 통과했다. 심장에 퍼진 짜릿함은 독에 생긴 구멍을 키웠다. 허했다. 박지민은 말 그대로 사는 것에 의미가 없었으며, 제가 한 짓은 애정결핍인 사람 하나에게 다 떠다 바친 것임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애써 부정했다. 떠났을 리 없어. 점차 텀을 길게 잡아 모습을 감추는 꼴을 보면 애타게 속이 탔다. 숯 검댕이가 져선 골골 거리는 걸 보자면. 참.

ᅠ실연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실연이긴 한 건지. 알 수 없는 감정과 이유 모를 상처. 나뭇가지에 쌓인 눈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뀜에도, 꽃이 핌에도 심장은 다시 붉게 물들지 않았다. 그 상태로 뻥 뚫린 독에 줄줄 새는 사랑을 붓고만 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가 밉지는 않았다. 어차피 처음 봤을 때부터 계절이 바뀌고 마음이 변하면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하는 짓은 호구짓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사랑하니까. 이런 미친 소리가 형용되는 데에는 사랑밖에 없었다.



ᅠ오랜만의 홀로 여행이었다. 박지민은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대충 옷을 갈아입고 곧장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동이 막 트기 시작해 붉은 빛을 마구 뽐내고 있었다. 해가 어느새 달을 가렸는지. 가버린 달은 자취를 완벽히 숨겼다. 해가 그림자를 삼키는 새벽. 그리고 그 새벽의 중간에 선 박지민. 박지민은 제일 멀리 가는 편으로 표를 사 역에 서 있었다. 표정엔 근심 하나 없는 되려 후련함이 묻어 있었다. 술 찌든내도 나지 않았다. 깨끗하게 씻어 묻어난 섬유유연제 향이 코끝을 겉돌았다. 손에 들고 있는 건 없었다. 역 바깥 창문에 꽃이 핀 나뭇가지에 눈에 띄었다.

ᅠ우직하게 자리잡은 사랑은 점차 부식되고 있었다. 소복히 쌓인 눈이 녹아내리니 심장 밑에 깔아논 바가지에 눈이 쌓였다. 김여주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었다. 박지민은 한 결심을 했는지 제가 모르는 길임에도 어디론가 걸어나갔다. 당찬 움직임에 흔들리는 바람이 꽃을 휘날리고, 눈을 녹이고, 그러곤 빛이 그를 비추었다. 날씨가 아직 추웠다. 입에서 솔솔 녹아나는 입김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ᅠ눈 떠보니 박지민은 아예 모르는 곳에 당도해 있었다. 모든 게 처음인, 자연이 세상을 감싼 곳. 그곳은 과연 절벽이었나, 아니면 평지였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 어둠에 쳐박힌 사랑이 그녀를 노래하고 떨궈진 몸뚱아리는 허우적거리네. 수면 아래를 유영하던 물고기는 떨어지길 자처한다. 썩어가는 아가미를 뻐금이고 지느러미로 얼어버린 수면을 건드려 보지만 끝내 깨지지 않는. 견고한. 침식되어 심해로 가라앉는다.

ᅠ박지민은 비로서 세상의 끝에서 세상에서 하직했다. 썩어문드러진 폐 혈관이 노폐물을 달고 혈액을 움직인다. 누구 하나 그의 죽음을 관망하는 이는 없으며 누구 하나 그의 사랑을 확인한 자는 없다. 김여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 위에 동동 떠선, 그제서야 수면 위를 탈출. 지금은 떠돌아 다니는 우스갯소리나 될 법한 이야기다. 애정결핍 있는 여자에 사랑을 듬뿍 주고 여자가 떠나자 견디다 못해 생을 놓는. 그런 애연가의 요소로 쓰이며. 후회는 없었더란다. 앳된 사랑이 김여주에게 꽂혔을 뿐이며 그녀는 그것을 놓쳤을 뿐이라며. 애써 정해진 답안을 우회하며.




수면을 뚫으니
나의 심장을 좀먹던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이
비로서 하직하리라





*
방빙 1주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움짤 도움 단멸 님 감사합니다(♡)

참고로 순하리는 순순히 이 세상에서 하직하리의 줄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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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임떡  49일 전  
 1주년 축하드려요!!

 임떡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권출세  49일 전  
 권출세님께서 작가님에게 26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나먀먀  50일 전  
 우아 1주년추카드려용

 답글 0
  방탄사랑  50일 전  
 1주년 축하드려요~~앞으로도 화이팅 하세요!!

 방탄사랑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다원늘품  50일 전  
 내용이 진짜 좋은것 같아요ㅠㅠㅠ

 다원늘품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라햇님  50일 전  
 라햇님님께서 작가님에게 17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라햇님  50일 전  
 헉 1주년 너무 축하드립니댜 람 님 !!
 앞으로도 건필하세용 ♡♡

 라햇님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가화둥❤  50일 전  
 가화둥❤님께서 작가님에게 333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가화둥❤  50일 전  
 진짜..... 돌앗어?
 Q 왜이러케 존잘인거죠??하놔...
 ㅠㅠㅠ 젤 추카해 순하람(???)
 앞으로도
 화이팅...... 하투

 가화둥❤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흑묘  50일 전  
  흑묘 님께서 작가님에게 65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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