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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13.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完 - W.세상을누비는고래
13.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完 - W.세상을누비는고래




추천 BGM : 레브 (Reve) - 화 (華)



13.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完


1.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는 글입니다.
2. 학교폭력 장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3. 교통사고 장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권장하지 않습니다.















지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했는지 무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돌려 김진수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눈이 마주친 김진수가 담배를 입에 물고는 어쩌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이자 그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누가 이딴 짓 하고 다니라고 가르쳤냐.”


지민이 여주의 앞에 섰다. 여주의 주위를 둘러싼 녀석들을 향해서 싸늘한 표정을 지어 보인 지민은 그들을 향해서 낮은 목소리를 겨우겨우 뱉어냈다. 사실 지금 지민은 목이 잠겨버려 말을 하기도 힘이 들었다. 지민은 이윽고 별다른 말없이 한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다. 얼굴을 맞은 그 녀석은 형편없이 나동그라졌다. 그런 지민을 본 주위의 다른 녀석들이 여주를 둘러싸고 있던 모양새를 바꾸고는 지민을 향했지만, 이미 눈에서 이성이 사라진 지민은 고개를 들어 올려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가만히 지민을 보고 있던 윤기가 작은 목소리를 툭하고 뱉어냈다. 태형은 여주를 흘깃 보고는 뭐,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미적지근한 태형의 반응에 윤기가 고개를 들어 올려 태형을 쳐다보았고, 태형은 제 교복 마이를 벗으며 작게 답했다.


“죽기 직전까지는 좀 맞아도 되겠는데.”


태형은 두어 걸음 앞으로 걸어가 여주의 어깨 위에 제 교복 마이를 턱하고 내려놓았다. 그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눈가로 눈물을 뚝뚝 떨구던 여주가 태형의 방향을 향해서 시선을 들어 올렸고, 태형이 작은 목소리로 여주를 향해서 말했다.



“그러고 있지 말고 이리로 와.”


여주는 목소리의 주인이 태형임을 눈치채자 안심한 듯 더욱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커다란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윤기는 그 모습을 찝찝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너무 늦은 것만 같아서 자꾸만 마음 한구석이 쿡쿡 쑤셔왔다. 여주는 자리에서 일어서고자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에 태형이 여주의 팔을 잡고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윤기는 여주의 발치에 떨어진 흰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여기.”


여주가 윤기의 목소리에 움찔하고 어깨를 떨었고, 그런 여주를 알아챈 태형이 여주의 머리 위로 제 손을 얹었다.


“겁먹지 마.”


태형이 여주의 손에 지팡이를 쥐여 주다 말고 슬쩍 인상을 썼다. 여주의 손이 여기저기 까지고 찢긴 탓이었다. 흘깃 시선을 지민에게로 돌리니 지민은 이미 이성을 놓은 듯 녀석들을 향해서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저런 새끼들은 좀 맞아도 싸지. 태형이 쯧 혀를 차며 여주를 옥상 밖으로 내보냈다.


“진짜 미쳤네.”


윤기가 툭하니 가볍게 말했다. 태형은 윤기의 말에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저렇게까지 화가 난 지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새삼 여주의 존재가 지민에게 어떤 만큼의 크기인지를 깨달아, 태형은 놀라운 기분이 되었다. 지민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사실 말을 할 만한 정신이 남아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이곳이 교실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태형은 생각했다. 무언가 집어던질 수 있는 물건이 있었다면 지민은 당장 그것을 집어 들고 저놈들을 향해서 찍어 내렸을 것이다.



“아!”


문득 등 뒤에서 커다랗게 울리는 윤기의 비명소리에 태형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등 뒤에 서있는 윤기의 뒷덜미를 낚아챈 녀석을 확인했다. 태형은 그에 윤기의 뒷덜미를 잡아챈 그 손을 꾹 쥐었다. 그 녀석은 태형에게 손목을 잡히자 미간을 찌푸린 채 태형을 쳐다보았고, 태형은 그 녀석의 정강이를 냅다 걷어찼다. 그로 인해 녀석은 윤기의 뒷덜미를 놓쳤다.


“어디다가 손을 대냐.”


태형이 고개를 돌려 지민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히어로라도 된 마냥 모두를 넘어뜨리고 김진수의 앞에 선 지민을 보며, 저 녀석도 진짜 독종이긴 독종이네, 하는 생각을 했다. 제가 낄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서지는 않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되면 지민을 말릴 요량으로 태형은 그들의 뒤에 서있었다. 지민 역시 싸우면서 제법 맞았는지 지민의 교복이 먼지투성이였다. 지민의 앞에 선 김진수는 담배를 질근 씹으며 제법 여유작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늦었네. 더 늦게 오지 그랬어. 그러면 좋은 구경 할 수 있었을 텐데.”


김진수의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가 입새로 흘러나왔다. 지민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면서, 태형은 저저 미친놈 하고 김진수를 향해서 중얼거렸다. 입만 살아있는 새끼가. 태형은 지민이 정도를 지나치면 언제든지 말릴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여주 잘못되면 네가 죽어.”


지민이 겨우겨우 씹어 뱉어낸 말에 김진수의 입가가 비릿하게 틀어 올라갔다. 그리고 지민의 부들부들 떨리던 손이 허공을 향해서 올라갔다.





**





윤기는 옥상 밖으로 나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은 여주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무런 말없이 그런 여주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윤기가 여주를 향해서 작은 목소리를 뱉어냈다.


“너 미쳤어? 여기를 왜 혼자 올라와.”


윤기의 질타하는 말에 여주의 고개가 더욱더 아래를 향해서 내려갔다. 여주의 동그란 뒤통수를 보며, 윤기는 혀를 찼다. 몸을 웅크린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여주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민이 힘들게 하기 싫어서.”


윤기는 여주의 말에 허, 하고 헛웃음을 뱉어내었다.


“병신아, 그게 더 힘들게 하는 거야. 네가 잘못되는 거.”


윤기의 욕설이 섞인 말에 여주는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윤기는 여주의 동그란 뒤통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휙 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괜찮아?”


여주는 윤기의 말에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윤기는 저를 향해서 닿아 있는 듯한 여주의 시선에 눈을 굴려서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여주는 눈가를 형편없이 일그러뜨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응.”


윤기는 여주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양새를 보며 여주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있었을까. 덜컹하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여주는 갑작스레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랐는지 어깨를 움찔 떨었고, 윤기는 문을 향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먼저 문밖으로 나온 것은 태형이었다. 그런데 어째 태형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윤기는 눈가를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하며 옥상 안을 흘깃 들여다본 윤기는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사람이라고 말을 하지 않으면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의 몰골로 김진수가 쓰러져있었다. 그리고 박지민의 꼴 역시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한쪽 팔이 퉁퉁 부어올라서는 험하게 인상을 쓴 지민을 보며 윤기는 입을 다물었다.


“먼저 가자.”


그렇게 중얼거리는 태형의 목소리에 윤기는 여주와 지민을 차례로 시선에 담았다. 잔뜩 화가 나있는 지민을 보고, 윤기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과 윤기는 재빠르게 계단을 따라서 내려갔다. 그리고 지민은 옥상을 걸어 나와 여주의 앞에 뚝 멈추어 섰다. 여주는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제 눈앞에 선 이가 지민임을 알아차렸다.


흰 지팡이를 짚고서 겨우겨우 일어선 여주가 흰 지팡이를 바닥에 떨구었다. 깁스를 한 팔 때문에 흰 지팡이를 짚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여주는 허공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더듬더듬 허공을 휘젓던 손이 조용히 지민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지민은 부드럽게 제 얼굴을 향해서 내려앉는 여주의 손끝에 인상을 썼다. 지민의 얼굴을 손으로 천천히 더듬으며 여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손끝에 피가 묻어난다.


“많이 안 다쳤어?”


여주의 목소리에 지민의 표정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그게 문제야?”


다소 날선 지민의 목소리에 여주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제게 이렇게까지 화가 난 지민이 처음이라, 여주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나한테는 중요해. 많이 다친 거 아니지?”


고민을 거듭하던 여주가 작게 중얼거리며 눈가를 찌푸렸다. 피가 묻어나는 지민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으려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지민은 여주의 앞에 서서 여주를 노려보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채 사그라들지 않은 분노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주를 향해서 쏟아져 내렸다.


“미쳤다고 여기를 올라와? 왜 왔는데 여기를.”


날이 선 지민의 말투가 여주에게는 너무도 낯설었다. 여주는 지민의 질타하는 말에 눈가를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나는, 그냥 네가 걱정돼서.”
“너만 나 걱정해? 나는 너 걱정 안 해?”


지민의 목소리에 여주의 고개가 더더욱 아래를 향해서 내려갔다. 지민은 여주의 뒤통수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물론 여주가 화를 입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죄를 지은 것은 여주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제게 말 한마디 없이 옥상까지 올라온 여주에게 너무도 화가 났다. 요 근래의 여주는 지민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여주가 저들에게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어떤 꼴을 보였는지 모든 것들은 여주가 아닌 다른 이의 입을 통해서 전해들은 것들이었다. 여주가 지민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여주가 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저를 배려해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꾸만 제게 사실을 숨기려는 여주에게 너무도 화가 났다.


무슨 일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고 저와 함께 이야기를 했으면 됐을 텐데, 여주는 자꾸만 일을 저 혼자 감당하려고 했다. 지민이 아무런 말이 없자 여주는 조용히 팔을 내렸다. 그러다가 지민의 팔이 퉁퉁 부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너 팔 왜 이래, 부러졌어?”


지민의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또 제 몸 걱정은 않고 내 걱정이나 하지. 지민은 여주에게서 두어 걸음 떨어져서 여주를 내려다보았다. 여주는 대뜸 제게서 멀어지는 지민을 느끼고는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그런 표정 하지 마, 화가 나는 것은 나니까. 지민은 여주를 가만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내가 지금 좀 많이 화가 나거든. 그러니까 오늘은 얘기하지 말자, 우리. 나 너한테 화풀이할 거 같아.”


지민이 겨우겨우 참는 말을 뱉어내었다. 여주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제 발끝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





지민은 집을 향해서 돌아가면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여주는 지민의 뒤를 따라서 조용히 걸어갈 뿐이었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병원에 가라고 말하는 여주의 말에도 지민은 묵묵부답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지민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제게 말을 걸지 않는 지민이 너무 낯설어서 여주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학교에서의 시간을 흐지부지하게 보내고,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서 말없이 제 옆을 지나쳐 가는 것을 느낀 여주는 벌떡 일어나 지민의 뒤를 따라갔다. 지민은 항상 여주를 위해서 여주의 손을 꾹 쥐고는 걸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만치 앞서서 걸어가는 지민의 뒤를 여주가 바쁘게 따라야 했다.


흰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짚어가며 여주는 지민의 걸음에 맞추어 빠르게 걸었다. 지민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이어지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터질 것만 같았다. 여주는 그런 지민의 마음을 아는 듯 조용히 입을 다물고 뒤를 따라서 걸었다. 태형은 여주와 지민의 상태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오늘은 따로 떨어져서 가겠노라고 말했다. 아마도 두 사람의 화해를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여주는 태형이 저와 함께 가주기를 원했다. 제게 차가운 지민은 너무도 낯선 것이어서, 여주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를 몰랐으니까.


지민은 사실 아까부터 퉁퉁 부어오른 팔이 아팠다. 하지만 지민의 정신은 제 팔이 아닌 다른 곳으로 빠져 있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이토록 화가 난 것은 처음이어서, 지민 역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제 부어오른 팔을 흘깃 내려다보았다. 여주가 계속 재촉을 한 것처럼 병원에 들러야 할 터였다. 그러나 여주를 생각하니 다시 뱃속 깊은 곳부터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분이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주는 어느덧 제 집 앞까지 다다르자 눈가를 찌푸렸다. 집까지의 거리가 너무도 가까웠다. 조금만 더 멀었다면, 거리가 조금만 더 멀었다면 지민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아가면서 사과하고 용서받을 수 있었을 텐데. 여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흰 지팡이를 손에 꼭 쥐었다. 흰 지팡이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우뚝 멈춰 선 지민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등을 돌려 여주를 내려다보았다. 툭하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뚝뚝 눈물을 떨굴 듯한 여주의 표정에, 지민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들어가서 쉬어. 생각 좀 정리하고 내일 만나자.”


여주는 지민의 나지막하게 떨어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지민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라도 전하고 싶어 입을 열었지만, 지민이 등을 돌리는 소리가 들리자 입을 다물었다. 여주는 집 앞에 못 박힌 듯이 서서 지민이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었다. 여주의 눈가가 울상을 지으며 일그러졌다.


싫어, 그렇게 멀어지지 마. 여주는 지민이 제게서 영영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다급히 움직였다. 흰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짚어가며 움직이려니 한계가 있어, 여주는 빠른 보폭으로 걸어가며 어느새 제법 떨어진 거리의 지민에게 다가가려 애썼다. 눈앞이 보이지 않아 지민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어 여주는 기분이 몹시도 가라앉았다. 순간, 땅을 짚은 흰 지팡이가 크게 흔들렸다.


“... 지민아.”


머릿속이 멍했다. 멍한 머릿속 저 멀리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를 들은 듯도 했다. 몸이 가볍게 떠오르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무겁게 쏟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여주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을 노려보았다. 팔에 쥐고 있던 흰 지팡이가 나동그라지고 붕 떠오르던 몸이 방향을 달리해 추락했다.


순식간에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가 된 것 마냥 가볍던 몸이 철근이라도 단 듯이 무거워졌다. 몸이 한 방향으로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에 든 것부터 모든 것들이 울컥하고 한쪽으로 몰리는 듯한 기분. 여주는 멍한 눈을 깜빡였다. 지금 제가 제대로 서 있는 것인지 누워있는 것 인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잠시간의 정적 끝에, 여주는 클락션 소리가 멎고 비명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것 을 느꼈다. 누군지 알지 못하는 여자의 비명이 귓가를 따갑게 울려댔다.


“사람, 사람이!”


여자의 비명을 필두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주는 이제는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린 지민의 발소리를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러한 여주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멍한 머릿속을 뚫고, 발끝부터 미칠 듯한 통증이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불에 덴 것 같기도 하고 몸 전체가 무언가에 갈리는듯하기도 했다. 머릿속을 잠식해버릴 정도의 고통에, 여주는 잘게 고통에 찬 소리를 낼 뿐이었다.


지민은 여주에게서 등을 돌리고 가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팔이 욱신욱신 아파왔다. 제 발끝을 멍하니 쳐다보던 지민은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제게 항상 괜찮다고만 말하던 여주가 떠올라 기분이 상했다. 항상 여주는 지민에게 가장 먼저였는데, 그런 지민을 여주가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지민은 뒤를 돌아 집안에 들어가고 있을 여주를 볼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지민은 여주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만 같아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여주는 눈앞에 멀어지는 지민의 뒷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여주의 손끝이 가볍게 움찔거렸다. 그 순간, 여주는 지민이 지독히도 보고 싶었다.













- 여주에게.

여주야, 오랜만이다. 이렇게 네 이름 불러 보는 거. 사실 그동안 너무도 불러보고 싶었어. 네 이름이 매번 머릿속을 맴도는데, 입 밖으로 내려고 하면 너무 아파서 꺼내지지가 않아서 네 이름을 부르지 못했어. 벌써 나는 스무 살이 되었어. 나와 헤어진 직후에 학교에서 네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나는 아직 그날을 후회하고 있어. 등을 돌리면, 한 번만 뒤를 돌아보았으면 되었을 텐데. 네가 그렇게 허망하게 내 곁을 떠나는 일도 없었을 테고 넌 지금도 내 옆에서 웃고 있겠지. 그런데 그러지 않아서 내가 너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낸 것 같아서 많이 아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한심해.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인공와우 수술을 했어. 생각보다 결과가 굉장히 성공적이어서 나는 지금 소리를 듣는데 큰 무리 없이 지내는 중이야. 사실 이건 부끄러워서 말 못 했는데, 나 너 그렇게 되고 난 이후에 차 클락션 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떨려. 찬 아스팔트 바닥 위에 쓰러져 있는 네가 자꾸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녀서 너무 힘들었어. 참 이상하지. 본 적도 없는데 죽어가고 있을 네가 자꾸만 생각나.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그날 이후로 거의 매일같이 네가 나오는 꿈을 꿨어. 이제는 네가 나오는 꿈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꾸고 있어. 그때는 네가 나오는 꿈이 그렇게 무서웠는데, 이제는 내 곁에 없는 네가 떠올라서 소름 끼치게 싫었는데. 이제는 너를 자주 보지 못해서 가슴이 아파.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너랑 보냈는데, 나는 너에게 그런 시절을 보여준 적이라도 있는가 싶은 생각에 요즘은 안쓰러운 기분도 들어. 사실 이거 네가 알면 엄청 화낼 거 같은데, 그래도 여기는 솔직하게 쓰고 싶어서 적을게. 나 너 그렇게 된 이후로 몇 번이고 죽으려고 했어. 너 따라서 죽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그러지 못하게 됐어. 김태형이 기겁을 하고 나를 하루 종일 감시해서. 그래서 널 따라가지 못했어. 사실 나는 아직도 네 옆으로 너무 가고 싶은데, 이제는 그러지 못할 거 같아. 나 김태형이 우는 거, 진짜 처음 봤어. 걔가 울면서 나한테 소리를 지르더라.

그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고개를 돌려봤는데, 눈물로 푹 젖은 부모님의 왜소한 등이 보이는 거야. 분명 엄청 커다란 등이었는데, 어느 순간 작아져 버린 그 등이. 그래서 이제는 포기했어, 네 옆으로 가는 거.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아마 한참의 시간이 지나, 내가 엄청 늙고 나면. 그때에도 늦지 않았다면 나는 네 옆에 있고 싶어. 그때쯤 되면 할아버지라고 네가 날 싫어하려나. 너희 부모님은 너 그렇게 되고 난 이후에 한참을 울고 또 우셨어. 목 놓아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우시는데, 내가 그분들께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서 그냥 그분들 등을 두드려드리는 것 밖에 못했어. 그분들한테서 내가 널 빼앗은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아파. 너 그렇게 된 거 모두 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내 탓 같아. 그래서 아마 난 더 평생 너를 잊지 못하겠지.

계속 쓰다 보니까 또 눈물이 나와. 나 우는 거 싫어하는데. 그래서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쓸게. 사실 그동안은 이런 글 쓸 엄두도 못 냈는데, 이제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추스르고 있어서 이렇게 글 쓰는 거야. 앞으로도 종종 글을 쓸게.

마지막으로, 너한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사실 좀 부끄럽다. 내 생에 가장 빛났던 순간을 너와 함께 해서 정말로 행복했어. 네가 내 사람이라는 게 정말 가슴 저리도록 설레었어. 이제는 곁에 없지만, 그래도 넌 평생 내 속에 있을 거야. 사랑해, 여주야.




- 스무 살 봄의 지민으로부터.




















1~13화 포인트 명단입니다.
포인트는 총 포인트입니다.
많은 사랑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연 님(3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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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마무리를 하게 되었네요. 우선 이 글은 작년에 집필된 글이라 솔직하게 많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네요 ㅠㅠㅠㅠ 저는 양쪽 다 죽음을 맞는 것보다 한쪽이 죽음을 맞는게 더 슬픈 것 같아요. 어쨌든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야하니까 ㅠㅠㅠㅠㅠ 여러분이 지민이가 여주에게 화를 내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여주가 지민이한테 말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시는 분들도 계실테고,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제가 전공이 이런 계열이에요. 그래서 아마 작년에는 독자님들이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자극을 받기를 원해서 집필했었나 봐요. 어쨌든 지루한 글이었는데 많은 사랑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밝은 글로 돌아오도록 노력할게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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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김덜렁  11시간 전  
 수고하셨습니다!

 답글 0
  w.팔든  3일 전  
 흐어어어엉ㅠㅠㅠ 작가님 이런 엔딩이면 너무슬프지 않습니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엔딩이에요 이런 느낌..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글이 재미없으시다고 하시는데 그러시지마세요 저 서운합니다

 w.팔든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월링  4일 전  
 수고하셨습니다!

 월링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네버다인  4일 전  
 수고하셨어요

 네버다인님께 댓글 로또 1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Y.S.  4일 전  
 수고하셨습니다

 Y.S.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멜로디21  4일 전  
 슬퍼요

 멜로디21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열박  8일 전  
 아...슬프다...ㅜㅜ

 열박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르미ss  9일 전  
 ㅠㅠㅠ잔잔하고 따뜻한 엔딩이에요ㅠㅠ 너무 슬프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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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구힝구  9일 전  
 흐어어어 오랜만에 들어왔눈데ㅠㅠㅠㅠ이게뭐야ㅠㅠㅠㅠ
 ㅠㅠㅠ근데 또 작가님 필력이 너무 오져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어ㅠㅠㅠㅠ

 핑구힝구님께 댓글 로또 2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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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리리리  9일 전  
 ㅠㅠ

 파리리리리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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