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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12. 겨울 : 괴롭힘의 이유(2) - W.세상을누비는고래
12. 겨울 : 괴롭힘의 이유(2) - W.세상을누비는고래




추천 BGM : Yiruma - Time Forgets



12. 괴롭힘의 이유(2)


1.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는 글입니다.
2. 학교폭력 장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권장하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지민은 여주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제부터. 요 근래 내도록 불안함에 떨던 여주가 갑작스럽게 아무렇지 않아졌다. 어깨를 쭉 펴고 걷는 모양새는 제법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런 모습이 이전의 모습보다는 더더욱 마음에 들었지만 왠지 여주의 행동에서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들었다. 지민은 여주의 곧게 뻗은 등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침부터 점심을 먹으면서도 여주는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일이 끝나기라도 한 듯 후련한 표정이었다. 지민은 그것이 못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스멀스멀 저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불안감에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졸려?”


여주가 책상 위에 앉아있는 지민을 향해서 말했다. 지민은 사실 숨기려고 하고 있었지만 제 말의 끝에 졸음이 뚝뚝 묻어남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여주는 지민의 책상에 팔을 올린 채 턱을 괴고는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민은 여주의 새까만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을 흐렸다.


“졸린 것 같은데.”


여주가 푸스스 웃었다. 여주의 웃음을 보면서, 지민은 그제서야 제가 아는 여주를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응, 졸려.”


그래서 일부러 약간 투정 섞인 말을 뱉어냈다. 지민의 목소리에 교실 안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약간 놀란 표정으로 지민을 쳐다보았다. 여주는 지민의 등 위로 제 손을 올려 토닥였다.


“조금만 자 둬.”


지민은 여주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느릿하게 감기는 눈을 이겨내지 못했다. 여주의 손바닥은 부드러운 속도로 지민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한겨울이라 교실 안에 틀어놓은 히터 아래에 있으니 더더욱 노곤노곤하게 눈이 감기는 기분이었다.


“안 잘 거야.”


지민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여주는 고집스럽게 말하는 지민의 목소리에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느릿느릿하게 이어지는 목소리는 충분히 잠에 젖어있었다. 여주는 아무런 말 없이 지민의 등을 토닥여 줄 뿐이었다. 지민의 눈이 스르륵 감기고, 숨소리가 차차 고르게 느껴질 때쯤, 여주는 작은 목소리로 지민에게 속삭였다.


“잘 자.”


지민의 등에 올려놓았던 손을 거두고, 여주는 제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의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시계에서는 익숙한 기계음으로 시간을 알려주었다. 여주는 점심시간이 약 30분 정도 남아있음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지민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흰 지팡이를 찾기 위해 조용히 지민의 책상 위를 더듬었다. 그러다가 지민의 손과 제 손이 툭 하고 닿았다. 잠시 지민이 깨기라도 할까 멈칫했던 여주는 이윽고 지민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보았다. 따뜻하고 단단한 손에 여주는 조용히 쥐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손을 움직여 흰 지팡이를 찾아내고는 탁탁 경쾌한 소리를 내며 펼쳐들었다.


여주가 흰 지팡이로 바닥을 짚어가면서 교실을 나섰다. 지민과 함께 가지 않고 혼자서 나서는 여주를 본 몇몇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흘깃 여주를 쳐다보았다. 그간 여주의 주위를 본 결과 여주가 혼자 다니는 것은 썩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대다수는 김진수의 반쯤은 미친 듯한 행동에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여주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민이 난폭한 언행을 종종 해서 지민에 대해서 무서워하기도 했지만 김진수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기에, 저마다 아이들은 김진수의 표적이 된 여주를 불쌍히 여기고 있던 것이었다. 여주는 그런 이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당한 속도의 발걸음으로 교실을 벗어났다.


여주는 흰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윤기는 식후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올라오다가 그런 여주를 발견했다. 윤기의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같이 올라오던 몇몇 아이들이 여주를 보고는 윤기를 향해서 흘깃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들을 모르는 윤기는 여주의 뒷모습을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여주가 어디를 가든 자신에게 알 바가 아니었다. 윤기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채 여주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아이들과 계속해서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조잘조잘 떠들면서도, 등 뒤의 여주가 내심 신경 쓰이는 바람에 윤기는 자리에 우뚝하니 멈추어 섰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 윤기를 뒤돌아서 가만히 쳐다보았고, 윤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엮이기 싫었는데, 이제는 멀리하기에 너무도 많이 엮여들어 버렸다. 윤기는 저를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슬쩍 웃으며 입을 뗐다.



“먼저 가.”


윤기의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그중의 한 아이에게서 툭하니 튀어나왔다.


“쟤한테서 신경 꺼. 너 쟤 때문에 그렇게 다쳐놓고.”


윤기는 슬쩍 멋쩍은 표정으로 제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역시 윤기의 친구들은 윤기가 얼마 전에 다친 이유를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윤기는 제 볼을 손끝으로 긁적이며 가볍게 웃었다.


“별로 크게 얽힐 거는 없어. 간단히 얘기만 하고 올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들이 윤기를 쳐다보았다.


“몸도 성하지 않은 게.”


무리가 윤기를 향해서 질타 섞인 말을 뱉어내었다. 그러나 윤기는 그것이 저를 향한 걱정임을 알기에 별다른 대꾸 없이 웃을 뿐이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아이들이 윤기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윤기는 응, 하고는 아이스크림을 잘근 씹어 물었다. 방향을 틀어 여주가 가던 방향을 쳐다보니 어느덧 여주는 느릿느릿하고 신중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고 없었다. 윤기는 계단을 향해서 달음박질쳤다. 입에 물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달랑달랑 흔들려서 귀찮았던 윤기는 아이스크림 껍질을 손으로 옮겨 쥐었다.


내가 왜 예정에도 없이 너를 만나서 이렇게. 누군가의 일에 얽히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항상 너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평범한 성적을 유지하고 평범한 아이들과 놀고 평범하게 생활했다. 윤기는 뜀박질을 하면서도 일그러뜨린 눈가를 채 펴지 못했다.



“야!”


저만치서 보이는 여주의 뒷모습에 윤기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그에 순간적으로 놀란 듯 멈칫하고 멈춰 선 여주가 고개를 돌렸다. 깜빡이는 시선으로 제 뒤를 쳐다본 여주는 그 목소리가 누구에게 쏟아진 것인지 의문을 담은 표정이었다.


“그래 너, 최여주.”


여주는 제 이름이 불리자 눈가를 찌푸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늠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알듯 말듯 목소리가 떠다니는 기분에 여주가 어? 하고 작게 중얼거렸고. 그런 여주의 앞에 윤기가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섰다.


“민윤기?”


여주가 대뜸 윤기의 이름을 뱉어내었다. 윤기는 마냥 제게 관심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여주가 제 이름을 뱉어내자 약간 놀란 눈치였다. 덕분에 어, 어어, 하고는 말을 더듬기까지 한 것이었다. 여주는 뜬금없이 제게 다가온 윤기의 행동이 의아했던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윤기와 관련된 기억이라고는 윤기가 제게 화장실에서 기분이 나쁘도록 말했던 기억뿐이라, 여주는 내심 윤기가 불편했다. 윤기 역시 여주가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라서, 시선만을 데구루루 굴렸다. 여주는 어딘지 조급해 보이는 표정으로 윤기를 재촉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왜 그래?”
“어디 가는데.”


그것도 혼자. 윤기는 뒷말을 삼키고는 여주를 쳐다보았다. 여주는 윤기의 말에 눈가를 미묘하게 찌푸렸다. 대답 없이 조용한 여주를 보며 윤기는 그 표정을 읽어내기 위해서 힘썼다.


“그냥 뭐.”


여주가 말끝을 흐리며 슬쩍 웃음 지었다.


“날씨가 좋아서.”


별다른 말은 없었다. 윤기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들어 여주의 표정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여주는 흰 지팡이 끝을 만지작거렸다.


“뭐, 그래. 조심해서 가.”


윤기가 가벼이 말하자 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는 흰 지팡이를 탁탁 짚어가며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여주의 뒷모습을 보며 윤기는 옥상? 하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멀어져 가는 여주의 뒷모습을 보는데, 자꾸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금 여주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려던 윤기는 문득 귓가에 내려앉는 낮은 목소리에 뚝 멈추어 섰다.


‘입 잘 간수해. 입 여기저기 함부로 털고 다니면, 알지?’



윤기의 등허리로 쭉 소름이 내달렸다. 윤기는 앞으로 내뻗으려던 다리를 뒤로 천천히 물렸다.





**





지민은 점심시간이 끝나기 10분쯤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반쯤은 나른하게 잠에 절은 눈으로 지민이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렸고, 시계를 확인하고는 생각보다 잠을 자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놀라워했다. 그리고 익숙하게 여주가 있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던 지민은 여주가 없이 텅 빈 교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지민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민이 일어나면서 뒤로 밀린 의자가 우당탕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저마다 아이들은 지민을 시선에 담았다. 그리고 드르륵 소리를 내며 뒷문이 열리더니 태형이 들어섰다. 태형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다가 들어왔는지 목에 수건을 두른 채 땀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 지민이 자리에 우뚝 서있음을 확인하고는 지민을 향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지민은 시계를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태형은 지민을 향해 걸어가려다가 여주의 자리에 여주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등허리를 타고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야, 박지민.”
“없어.”


지민이 작게 중얼거렸다. 태형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지민은 자리에 우두커니 선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디 갔지? 왜 없지.”


불안한 듯한 지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태형은 미간을 펴지 못한 채 지민의 앞에 섰다.


“박지민.”
“옥상.”


어느 틈에 지민과 제 사이로 걸어 들어온 윤기를 보며 태형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민을 마주 보고 선 윤기가 검지로 천장을 가리켰다.


“옥상에 가보라고.”


윤기의 입모양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지민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돌연 윤기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태형은 윤기의 시선이 닿은 방향을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김진수의 무리 한명이 서 있는 것을 알아챘다.


“따라가 봐야지. 박지민 걔 지금 정신 나가있어서 잘못했다가는 큰일 나.”


태형의 목소리에 윤기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은 윤기와 함께 교실을 나섰다.





**





여주는 옥상에 들어서자마자 덜컹 소리를 내며 닫히는 옥상 문에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갑자기 무서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만 지나면 이제는 이 불안하고 지긋지긋한 생활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어제오늘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렇게 일이 앞당겨지니 무섭기는 무서운 듯 여주가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물론 여주가 이렇게 불안하고 무서운 기분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각적인 것이었다. 여주에게는 모든 공간이 암흑이었다. 항상 눈앞이 보이지 않고 깜깜해서 더더욱 무서운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말 되게 잘 듣는다. 착하네.”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런 누군가의 말에 낄낄거리며 경박한 웃음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낯선 목소리들이라 여주는 조용히 제자리에 서있었다. 어디부터 말해야 하지. 무엇부터 말해야 할까. 여주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그러나 그런 여주에게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저마다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었다. 여주의 머릿속으로 빨간불이 번쩍 켜졌다. 한 번도 본 적은 없는 색이지만 항상 들어왔던 불안하고 초조하며 또 기분 나쁜 빛을 띠는 색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너무 착해도 좀 그런데.”


여주는 등 뒤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뭐가 그리도 좋은지 웃어대는 목소리가 심히 불쾌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웃음소리를 들으며 대충 짐작하기로 지금 여주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은 적어도 다섯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야, 닥쳐봐.”


문득 날아드는 목소리에 저마다 낄낄대던 녀석들의 목소리가 뚝 멈췄다. 여주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여기를 왜 올라왔지. 그래, 지민이, 지민이한테 찾아가겠다던 그 목소리다. 여주는 지민이 이들에게 그리 허무맹랑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렴풋하게나마 지민은 제가 알고 있는 것처럼 나약하지 않다고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지민이 머리 아플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주는 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지금쯤이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는데 갑작스레 코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훅 여주에게 얼굴을 들이민 것이었다. 여주는 그 자리에 굳어 선 채로 가만히 있었다. 저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내빼는 여주를 보며 주위에 둘러싼 녀석들의 입새로 웃음 비슷한 것이 흘렀다. 그러나 눈앞에 서있는 이에게서는 웃음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눈만 병신인 줄 알았는데 머리도 병신이야?”


눈앞에 선 누군가가, 그러니까 여주는 알지 못했지만 김진수가 여주에게 말했다. 여주는 코앞에서 느껴지는 말투에 저도 모르게 눈가를 찌푸렸다. 김진수는 가까운 거리에서 여주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새까만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지만 짙고 깊은 종류의 것이었다. 김진수가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아, 하긴 병신 같아서 다루기 쉬운 건 좋네.”


명백한 조롱의 뜻이 담긴 말에 여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여주는 눈을 꾹 감았다. 머릿속으로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만을 하릴없이 하고 있었다.


“난 그냥 대화하려고 온 거야.”


여주의 말에 주위를 둘러싼 녀석들이 무슨 개그 프로그램이라도 보는 마냥 웃어젖혔다. 낄낄거리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여주는 감았던 눈을 떴다. 웃음소리는 여주의 주위에서만 들려올 뿐 맞은편에서는 들려오지 않았다. 여주는 직감적으로 맞은편에 있는 녀석이 이 일의 주도자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대화하려고 부른 게 아닌데.”


김진수가 제 교복 앞부분을 더듬어서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이윽고 주머니도 뒤적여 라이터를 찾아내고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필터를 질근 씹으며 불을 붙인 김진수는 눈앞의 여주를 쳐다보았다. 선명한 눈매가 보기 좋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김진수는 고개를 돌려 여주의 얼굴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연기를 뱉어냈다.


“담배 싫어해?”


응, 하고 대답하는 짤막한 말에 김진수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여주는 제게서 조금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의외였는지 찌푸렸던 눈을 살짝 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담배를 입에 문 김진수는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쓸데없는 대화를 하느라 벌써 10분이 소비되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가기까지는 약 20분이 더 남아있었다. 물론 수업시간을 중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아는 박지민은 여주가 보이지 않으면 바로 뛰쳐나올 것이었다. 그러면 일이 또 도중에 심심하게 끊겨버리지. 김진수는 담배 필터를 잘근 씹어 물었다. 그리고는 눈앞의 여주를 시선에 담고 미묘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너 왜 이런 일 매번 겪는 건 줄 알아?”


김진수가 담배연기를 들이켜며 묻자 여주의 눈매가 미묘하게 틀어졌다.


“알면 이런 일이 없겠지.”


다소 까칠하게 느껴지는 날선 말투를 들으며 김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눈 병신인 건 나한테 별문제 안 돼.”


김진수의 말에 여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흰 지팡이를 짚고 선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것도 보였다. 김진수는 쯧 하고 가볍게 혀를 차며 다시금 연기를 들이켰다.


“다만 상대가 박지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박지민이랑 다니니까 네가 그런 꼴을 겪는 거 아니야.’



문득 여주의 머릿속으로 윤기가 툭하고 튀어나왔다, 얼굴은 알 수가 없어 새까만 형태로 점철된 누군가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어둠 속에 잠식당한 듯 흐릿한 머릿속으로 툭하고 익숙한 말을 뱉어냈다. 여주는 형편없이 일그러지는 입매를 차마 정돈하지 못했다. 입을 다물고 선 여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깁스를 한 손에도 힘이 들어가서 팔이 지끈 지끈거렸다. 그러나 여주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들이 떠다녔다. 대체 왜. 다들 왜.


“왜 다들 지민이 핑계를 대?”


김진수는 부들부들 떨려오는 여주의 목소리에 멈칫하고 멈춰 섰다. 부드럽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지며, 김진수는 자리에 우뚝하니 선채로 여주를 노려보았다.


“그건 너희들이 잘못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다들 지민이 탓이라고 하냐고.”


맞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 안 돼. 내가 정말 그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그게 왜 지민이 탓이야. 지민이에게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어쩔 수 없어. 지민이가 그동안 해왔던 일이 있으니까. 근데 왜 내 일까지 모조리 지민이 탓이 되는 거야? 잘못한 것은 너희들인데. 여주의 눈가가 제법 험했다. 김진수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은 여주의 표정에 바람 새는 듯한 웃음을 내뱉었다. 입에 질근 물었던 담배를 바닥에 퉤하고 뱉어내고, 그는 담배를 발로 비벼서 끌 뿐이었다.


그리고 김진수는 가까이 다가와 여주의 멱살을 쥐었다. 놀란 여주가 뒤로 뒷걸음질 치며, 등 뒤를 더듬어 옥상 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옥상 문은 덜컹거리는 소리만이 날뿐 열리지 못했다. 순간 여주의 손에 쥐여있던 흰 지팡이가 형편없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눈도 성치 않은 년이 뭘 그리 자꾸만 뒤로 가.”


여주는 허공을 향해서 팔을 휘저었다. 무언가가 잡을 것이 필요했다. 허공을 향해서 뻗은 여주의 팔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웃음소리, 그놈의 웃음소리 진짜. 여주의 눈매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듯이 흐려져 있었다. 귓가에 와닿는 웃음소리에 등 뒤로 소름이 내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거 놔.”


여주는 화를 내겠다고 뱉어낸 말이 울음을 담고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이를 악물었다.


“아!”


김진수가 손을 놓자마자 여주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향해서 굴렀다. 여주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팔을 더듬어서 일어서려 했다. 발치에서는 여주의 흰 지팡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저마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주의 입새로 울음이 흘러나왔다.


“하지, 마.”


머릿속에는 지민이 자꾸만 둥둥 떠다녔다. 그때,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옥상 위가 정적으로 물들었다. 여주의 울음소리만이 조용하게 내려앉던 그곳에, 김진수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왔냐?”


여주는 울음을 흘리면서도 김진수의 짤막한 말에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 시선을 들어 올려 더듬듯 문쯤을 향해서 옮겨갔다. 옥상 위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익숙한 지민의 향이 났다.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지민이 왔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여주의 울음소리가 커지자,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던 지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씨발.”


다른 말은 없었다. 꽉 깨문 입새로 욕만을 겨우겨우 뱉어낸 지민은 여주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넘어지면서 새빨갛게 부어오른 발목과 더럽혀진 교복. 여주의 뺨 위로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김미개 님(942) 민트차양♥ 님(200)
므훗므훗^^ 님(100) jechjl14 님(50)

모두 감사드립니다!




[1000포인트 이상]




예빈 님, 안녕하세요! 먼저 소중한 1111포인트 너무 감사드립니당!! 못난 작가가 드릴건 없고 제 사랑이라도 드세요 헤헤헤헤 항상 좋아해주셔서 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휘소 님! 포명에 빠지지 않는 울 휘소님 ㅠㅠㅠ 저 때문에 눈 수술하신건 괜찮으신가욬ㅋㅋㅋㅋㅋ댓글보고 빵 터졌네요. 넘 귀여우셩... 항상 감사해요. 알랍!



책방 님 안녕하세요! 제가 설명을 잘 못해서 움짤 올리는 방법이 잘 이해가 되셨나 모르겠어요 ㅠㅠㅠㅠㅠ 소중한 포인트 너무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오늘은 멜뮤하는 날 룰루라라라라라라라(????) 항상 감사합니당. 즐거운 주말 되세욥!!! 김진수 진짜 개짜증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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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김애옹  21시간 전  
 저... 저저!!!

 김애옹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ʚ물실ɞ❀  6일 전  
 김진수 네 이놈!!
 천벌을 받을 것이야!!

 답글 0
  061031  7일 전  
 여주 착한데 왜 자꾸 건드리징ㅠㅠ

 답글 0
  _마도씨  7일 전  
 아쒸 짱나네?? 짜증나

 답글 0
  핑구힝구  7일 전  
 우리 여주 괴롭히지 마라ㅠㅠㅠㅠㅠ김진수 나쁜노ㅁㅠㅠㅠㅠ
 

 핑구힝구님께 댓글 로또 1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므흣므흣^^  7일 전  
 므흣므흣^^님께서 작가님에게 1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jechjl14  8일 전  
 아니 진수 이 아놔 화가나네 여주건들지마라!!

 jechjl14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아미주주  8일 전  
 응^^ 진수? 나따라 잠깐 일로올래?

 아미주주님께 댓글 로또 2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김연탄이  8일 전  
 하이고....진수야^^

 김연탄이님께 댓글 로또 1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민윤지짱짱맨뿡뿡♡♡  8일 전  
 아....! 아니...하 진짜;; 아!!! 짜증나..

 민윤지짱짱맨뿡뿡♡♡님께 댓글 로또 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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