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친구에게 장난치기 꿀팁
방탄빙의글 [작당글] 형은 잠식했다 - W.의현
[작당글] 형은 잠식했다 - W.의현









김태형

김석진


ㅇㅡㅣㅎㅕㄴ 씀








부산스러웠던 소리들이 멎는다. 언젠가부터 시끄러운 자동차의 경적은 물론이거니와 옆집 개의 울음도 씻은 듯이 사라져 미칠 듯 고요하다. 저가 내는 자잘한 소음들은 귀에 자꾸만 거슬린다. 목울대가 물 넘김에 따라 움직이는 소리와, 심장 박동이 일정히 온몸으로 울린다. 이 증상이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묻는다면 대충 17일 정도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손가락을 열 번 접고 일곱 번을 폈다. 천장을 보다 다시 제 발바닥을 보았다. 슬슬 대는 걸음 소리가 신경 쓰였다.







미칠 듯 조용하면 쓸모없는 기억 회상 시간만 늘어난다. 거의 귀머거리가 된 상태라 밖에 나갈 수도 없다. 어제도 나갔다가 경적 소리 못 듣고 차에 치일 뻔했다.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살살 쓸었다. 어머니가 밥을 차리고 저를 부르던 따스한 음성, 제가 좋아하던 가수들이 부르던 낯간지러운 가사들, 그리고 그 낯간지러운 가사를 좋아해 흥얼거리던 제 친형. 또, 제 친구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병문안을 와주었던 소리들. 내 소리는 이리 또렷이도 들리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소리들은 도려낸 듯, 이어폰을 낀 듯, 한 줌도 들리지 않는다. 뭐가 잘못된 거지?







똑, 똑. 누군가 문을 두드려 급히 옷을 입으며 금방 나간다며 소리를 질렀다. ... 잠시만. 나 못 듣는 거 아니었나? 벌써 17일 째였는데. 소름 돋은 팔뚝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저랑 비슷한 키의 남정네가 저를 보고 있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내가 뱉은 말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놈이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아래층 사는 사람인데 너무 소리를 크게 내셔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조금 조용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남의 소리가 오랜만이라는 듯 귓속에서 울리고 다시 한번 메아리쳤다. 와, 진짜 들려. 태형이 기쁜 마음으로 입꼬리를 살살 올리며 웃었다. "그럼요. 폐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래도 초면에 내가 귀가 안 들린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진 않았다.







침대에 얌전히 앉은 태형이 머리를 긁었다.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왜, 어째서 이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는 것인지. 무의식중에 놈의 얼굴과 목소리를 곱씹어 방금 전의 그 상황을 되풀이하며 검토했다. 자신이 큰 소리를 내어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다. 내가 소리를 크게 내었던가? 내가 들리지 않아 심술부릴 때에 조금 크게 낸 것 같기도 했다. 어쩌지? 정말 죄송하네... 태형이 머리를 긁으며 살포시 웃었다. 자꾸 웃음만 나오는 게 병이라도 걸린 듯싶었다.







"저, 안녕하세요. 윗집에 사는 김태형이라고 합니다. 25살이구요, 요 앞에 대학 다닙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얼마 전부터 이유 모르게 귀가 들리지 않는데 그쪽 목소리는 뚜렷이 들리더라고요. 실례 안된다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3일 만에 나타나선 구구절절 제 신세 읊던 태형이 말이 끝난 듯 크게 웃어 보였다. 태형을 보던 석진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태형이 점짓 떨어져 석진을 쳐다보았다. `이유 모르게 귀가 안 들린다느니, 게다가 더 이상한 건 내 목소리만 들린데. 이걸 믿어, 말아?` 안 물어봐도 석진의 생각이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태형이 쿡쿡거리며 석진의 반응을 혼자 예상했다. 그 와중에 석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시간 많이 안 잡아먹으면요." 태형이 그 말에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마음속으로는 집 앞 놀이터에서 5바퀴는 뛰었더랬다. 귀머거리 생활은 이제 청산이다! 신난 태형을 석진이 차분히 잡아세웠다. "저도 여기 대학 다닙니다. 전 28살이고 김석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러니까, 그쪽이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했었다구요?" 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그렇게 안 생겼습니까?" "아, 아녀아녀!" 태형이 놀라서 크게 벌린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읍읍 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난 정말 행운아야. 아니지, 저분이랑 난 운명이 아닐까? 전생에 형제였다든지. 딱 봐도 정신이 이상한 곳으로 가는 게 보여 석진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 ! "자자, 집중하세요. 태형 씨." 태형이 웃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뭘 하면 될까요!" 석진이 검사 표를 내밀었다. "우선 이것부터 작성해주실래요?" 태형이 금세 코를 박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석진이 턱을 괴고 태형을 빤히 봤다.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얼굴이며, 성격이며, 습관까지. 석진이 무릇 생각에 잠기다 태형의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다 풀었어요!" 태형이 뿌듯하다는 듯 입술로 혀를 옅게 쓸고 검사 표를 내밀었다. 석진이 받아들며 태형에게 이만 가보라며 현관에서 배웅해줬다. "내일은 언제 올까요?" 태형이 계단으로 향하며 물었다. "내일은 제가 찾아갈게요. 집에 꼭 붙어계세요, 위험하니까." 석진이 느릿이 눈을 껌뻑이며 손을 흔들었다.







"옷 입어요, 얼른." "네?" 석진이 아침 10시에 찾아와선 문을 부실 듯이 두드려 태형을 깨우더니 이젠 갑자기 옷을 입으랜다. 귀를 굳이 아침부터 고쳐야 할까 하는 말이 목구멍 맨위까지 올라왔지만 다시 삼켰다. 눈곱도 못 뗀 태형과 대조되게 멀끔히 차려입은 석진이 차 키를 빙빙 돌리며 태형에게 집에 굴러다니는 옷가지를 주워 입혔다. "아, 아침부터 어디 가게요." 태형이 귀찮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질문했다. 석진이 폰을 두드리다 태형에게 말했다. "한강이요." 그게 내 귀랑 뭔 상관... 태형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와중에 석진의 폰에서 내비게이션 앱이 울렸다. 목적지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안전 운전하세요. "갑시다." 석진이 빙긋 웃었다.







"오니까 좋죠? 바람도 불고." 아뇨. 귀 낫기 전에 얼어 죽어서 쓰러질 것 같은데요. 태형이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하하." 그런 태형이 웃기다는 듯 석진이 쿡쿡 되었다. "저기 앉아서 바람 좀 맞을까요?" "네, 그래요." 석진이 벤치에 털썩 앉았다. 이젠 겨울인지 강바람이 낮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쌀쌀했다. 얇게 입고 나온 태형이 몸을 춥다는 듯이 웅크렸다. "추워요?" "네, 좀." "그러게 내가 따듯하게 입으라 했잖아요." "난데없이 한강 온건 그쪽이거든요?" "갑자기 왜 한강 왔는지 안 궁금해요?" "궁금해요. 난데없이 여긴 왜 왔어요?" 석진이 태형을 보던 고개를 하늘 쪽으로 슬쩍 돌렸다. "한강 좋아하죠?" 느릿한 석진의 음성이 태형의 귓가를 맴돌다 안착했다. "네, 뭐 좀.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태형이 주머니에 넣어놨던 손을 빼 차가운 제 뺨을 녹였다. "그냥 그래 보여요." ... 뭔 소리야. "하하,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사실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그쪽 안 들리는 것에 대해서." 태형이 납득한다는 듯이 고개를 느릿이 끄덕였다. "한강 오면 무슨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태형이 눈을 깜빡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강... 한강이라... "음... 형이랑 엄마랑 손잡고 소풍 왔었던 거요." 석진이 말해보라는 듯 태형을 나른히 쳐다보았다. "그때 정말 재밌었어요. 형이랑 꽃 따서 엄마한테 팔찌도 만들어주고, 들꽃 이름 맞추기하고. 그러고 보면 저희 엄마가 아파서인지 얌전하게 잘 놀았던 것 같아요. 아빠도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도 고생 많이 하시다가 병 얻으시고... 저도 많이 힘들었는데 형이 아마 제일 힘들었을 거예요. 아무리 엄마가 계셔도 가장 노릇은 형이 다 했거든요." 석진이 태형을 빤히 보았다. 그제서야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이웃에게 너무 많이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란 태형이 제 입을 막아 석진의 눈치를 슬그머니 보았다. 석진이 바닥을 보다 느긋이 입을 열었다. "혹시 그 형이랑 어머니 분 이름 기억하세요?" 순간 태형의 입이 턱 막혔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흔들리는 동공이 석진의 눈에 비쳤다. "검사한 걸 보니까, 당신이 귀가 안 들리는 건 기억 상실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기억상실이라니. 정말 상상도 못한 이유였다. 집에 들어온 태형이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만 기억나지 엄마와 형의 얼굴도 기억나질 않았다. 태형이 허겁지겁 제 집에 있는 가족사진을 찾으려 소파에 뉘었던 몸을 일으켰다. 아 맞다, 집에 앨범 없었지. 태형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기억하고 있는 게 뭐지? 언제부터 이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지? 설마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게 망상이었다면? 달콤했던 내 꿈들과 인연들, 추억 모두 내가 잊고 새로이 만들어 낸 상상이라면, 나는, 나는, 뭐, 어떡해야 하지? 일단, 우리 가족 얼굴을 기억해내야 해. 허겁지겁 옷을 추스르고 집 밖을 나섰다. 안 들려서 위험하고 자시고 할 것 없었다. 그러다 저를 잡아세우는 단단한 손. "어디 가요, 위험하게." 석진이 놀란 얼굴로 태형에게 꾸짖었다. 태형의 뺨에서 눈물이 타고 내렸다. "당신도 내가 만들어 낸 망상인가요?" 석진이 당황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태형이 눈물을 소매로 거칠게 닦아내며 울음을 토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다 거짓 같아."







"마셔요, 일단 진정해요." 태형이 석진의 집 탁자 앞에 앉아 석진이 내준 따듯한 커피를 조금 들이켰다. 제가 좋아하는 카푸치노였다. 석진이 팔을 괴고 태형을 바라보았다. "이럴 거였으면 이렇게 성급하게 얘기하는 게 아닌데." 석진이 곤란하다는 듯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태형이 따듯한 머그잔을 쥐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죄송해요. 너무 복잡해요, 제 머리가." 다 그만두고 싶어요. 뒷말은 어거지로 삼켰다. 도와주신다는 분한테 뭔 행패인가 싶어서. "괜찮아요. 금방 기억 찾고 괜찮아질 거예요. 그랬던 적은 없는 것처럼 말끔히 나을걸요?" 석진이 되려 웃었다. 저 아이 우는 걸 바라보는 건 여전히 마음 아팠다. 일부로 제가 고통스러워 날 잊었으면 편히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기어코 날 끌어들여, 또.







그날 그 사건 이후로 석진은 툭하면 태형과 붙어 다녔다. 부담스럽다고, 할 것도 없으시냐며 밀어내도 능청스럽게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그쪽 기억 찾아주려고 정보 수집하는 중이거든요 하며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석진이었다. 시벌... 다 큰 남정네가 위험할 일이 뭐가 있다고. 구시렁 대면서도 기분 좋은 티 못 감추는 태형에 석진은 빙그레 웃으며 넉살 좋게 대답할 뿐이었다. 단순한 놈.







문제가 있다면 태형이 술이라도 마시면 아주 엿 된다는 거다. 김석진 바짓가랑이 잡고 지 괴롭다고 아주 아파트 떠나갈 듯이 애새끼마냥 울어 젖히는데, 길 가다 꼬로박지 않은 거로도 감사히 여겨야 할 상황이다. 황당함에 석진이 눈썹을 찌푸렸다. "뭐, 뭐가 그리 슬픕니까?" 태형이 그 말에 올망졸망한 눈빛으로 빤히 보다 자몽 맛 소주 두 손으로 옴팡지게 잡고선 운다. "아니이... 기억 찾는 거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쪽 맨날 나 따라댕김서 실제로 노력하는 건 하나두 없는 것 같구우..." 석진이 허-, 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제가 그냥 노는 것 같아 보여요?" 소주 두 병 놓인 탁자를 검지로 슬슬 쓸었다. 필시 화가 났다는 암묵적 신호였다. "내가 태형, 아니 그쪽 때문에 마음고생을 얼마나 하는데. 그런 헛짓거리 같은." 석진이 어금니를 꽉 씹었다. 태형이 제 소맷자락 얼룩덜룩이 묻히고선 훌쩍댔다. "아니, 제 말은, 석진 씨... 가 대학 다니신다면서 저만 쫓아댕기시고, 저 나가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시는데, 저만 조급한 것 같고... 물론 제가 부탁드리는 입장이고 일상생활도 하셔야 하니 이해는 하는데, 하, 뭐라는 거야." 태형이 나지막이 중얼대다 석진의 눈치를 힐끔 보았다. 태형을 보던 석진이 화난 것도 잊고 느릿이 웃었다. "아, 네." 태형이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던 소주 병을 내려놓고 석진에게 물었다. "대학 다니신다면서요. 원래 그쪽 정도 나이 되면 할 일이 별로 없나요...?" 그럴 리가 있나. 석진이 헛웃음을 지었다. 대학도 다녔다는 놈이 물을 소리냐. "전 다니고 싶어도 못 다녀요." 고개를 갸웃했다. 못 다닌다고? "왜요?" "전 죽었거든요." "네?" "저 귀신이라구요, 태형 씨."







헉, 헉, 헉. 걸치고 있던 흰 가디건이 펄럭였다. 귀신? 진짜 죽었다고? 뭐야. 뭐가 이래. 말도 안 되는 거잖아. 태형이 달음박질에 속력을 더 올렸다. 허억, 헉. 술이 다 깨는 충격 발언에 태형이 정신줄을 못 잡았다. 애초에 나는 이걸 왜 믿어. 딱 봐도 구라잖아. 이걸 믿냐, 김태형 븅신새끼야.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뭐야. 너무 아다리가 맞아. 안 맞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말이 되는 것 같아. 김석진, 그 귀신 새끼 목소리만 들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병신처럼 좋다고 뛰댕기는게 아니라 의심부터 했어야 했다고. 이거 다 그 자식이 꾸민 거 아니야? 귀 병신 만든 거도 그 새끼 아니냐고! 바닥을 보며 뛰던 태형을 석진이 잡아세웠다. "땅 보고 뛰면 다쳐요. 게다가 내리막이잖아." 태형이 눈물 그렁한 눈으로 석진을 올려다봤다. "안 믿어, 아니 못 믿어 씨발. 이렇게 진짜 같은데, 어떻게 귀신이야. 당신이 어떻게 죽은 사람이냐고." 석진이 눈썹을 꿈틀댔다. "진정해요. 내가 다 말해줄게요. 내가 말할 타이밍 잘못 쟀다고 확신시키지 말아줘요." 태형이 이를 뿌득 갈았다. "타이밍 잘못 쟀어, 당신. 애초에 이 짓거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어."







빠앙-.







횡단보도의 차는 멈출 기미 없이 돌진했고, 태형의 몸은 중력을 거스르듯 공중으로 붕 떴다.







"일어나, 김태형." 태형이 부스스한 머리를 털고 일어났다. "학교 가야 되는데 아직까지 자고 있으면 어떡해?" 가방을 챙기며 한 남자가 태형을 깨웠다. 어... 익숙해. 누군지 모르겠는데 존재만으로 편안할 정도로 익숙하다. 태형이 남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돌려세웠다. 이윽고 나타나는 석진의 얼굴. "왜, 뭐. 할 말 있으면 빨리해. 형 바쁘다." 태형이 숨을 멈춘다. "... 아니에요." "웬 존댓말." 석진이 능글맞게 웃었다.







엉겁결에 입은 교복과 구겨신은 밑창 닳은 신발이 이상하리만큼 꼭 맞았다. 뭐지? 꿈인건가? 석진이 대문 앞에서 태형을 불렀다. "너 진짜 지각하려고 그러냐. 어제 나랑 같이 정류장 가자며." 태형이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어어, 갈게!" 익숙한 담벼락과 오래된 보도블록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석진 씨는 아니, 아마 석진이 형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책에 눈을 박고 가고 있었다. 저러다 넘어 질라. "형, 앞에 봐." "어, 그래."







"잘 다녀와라." "응, 형도." 석진은 대학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고 태형은 마저 등교를 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이 꿈 되게... 쓸데없이 진짜 같아. 뭔 놈의 학교 옆에 큰 호수가 있어. 그나저나 학교 진짜 가야 하나. 태형이 제 학교 명찰을 손으로 끄집어 쳐다보았다. 김태형 이름 석 자에 노란 바탕. 어쩌다 6년 전 꿈을 꾸냐. 설마 수능까지 다시 쳐야 하는 건 아니겠지. 오소소 돋은 소름을 팔로 쓸다 마저 걸음을 재촉했다. 이크, 지각하겠다.







"어이, 인제 기어 오냐." 웬 시비조의 남학생에 태형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머리는 새까만 흑발에 저와 같은 노란 명찰. 박... 뭐시기... 기억 안 나는데. 누구지. "뭐." 태형도 덩달아 띠껍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왼손 처박고선 말했다. "씨발. 내가 어제 너 죽인다 했지." ... 쌈박질이라도 하기로 했나. 뭐야. "어제 애들 다보는 앞에서 어? 날 그렇게 쳐때리면 내가 뭐가 되냐고 새끼야." 태형이 코웃음쳤다. "네가 나보다 약했나 보지." 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박뭐시기를 재쳐 두고 손목시계를 보며 뛰었다. "야! 김태형!" 뭐라 뭐라 쫑알대는데 짜증 나 죽겠다. "아... 씨발 왜. 할 말 있으면 빨리해." "다 까발린다." "뭘." "너네 형 귀 병신인 거." "뭐?" "애초에 어제 싸운 것도 그것 때문이었잖아. 내가 이거 알게 돼서." 태형의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뭔. 석진형이 귀머거리야? 아닌데. 아까 잘만 대화했는데. 갑자기 석진이 제 입을 보며 대화하던 장면이 눈을 스쳐 지나간다. 같이 가자고 뒤에서 소리치며 뛰어가도 들은 척도 안 하며 책 보며 걷는 뒷모습이 떠다닌다. 태형의 눈앞을 손바닥 하나가 흔들거리며 채운다. "야야, 내 말 듣고 있냐?" 태형이 당황해 더듬었다. "어, 어." 놈이 씩 웃었다. "좀 있다 담배 세 곽 사 오면 입 안 털게. 딜?" 태형의 눈썹이 꿈틀댔다. "딜 같은 소리 하네. 좆까." 순간적으로 놈의 주먹이 뺨을 스쳤다. "여기서 서열 정리 다시 하자. 씨발 기회 준 건 나다." 태형이 놈의 말에 어금니를 깨물었다.







"뭐야, 넌." 어디선가 나타난 석진이 놈의 어깨를 쥐어잡았다. "뭔데 내 동생한테 손대." 놈이 화가 난 듯 석진의 팔을 한 손으로 떼어내고 석진을 가슴팍을 검지로 툭툭 쳤다. 석진의 화에 치민 눈동자가 놈의 입을 향했다. "귀 병신이 어디서 나대. 주제를 알아야지." 석진이 놈의 입을 하나하나 읽다 주먹을 쥐었다. 그걸 본 태형이 놈을 밀쳤다. "야, 아가리 간수 똑바로 안 해?" 일순간이었다. 놈이 분노에 못 이겨 태형의 뺨을 강타했다. 비틀거리던 태형이 호수 옆 난간에 부딪혔다. 끼익-. 무너진 난간에 태형이 기우뚱 쓰러졌다. 석진이 다급히 태형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그냥 저놈 무시하자." 태형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고였다. 반박 못 하는 제 형이 안타까웠고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가슴 아팠다. 멀리서 둘을 지켜보던 놈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석진이 놈을 막아 세웠다. "그만해." 놈이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말했지. 주제 파악하라고. 잘못한 건 내가 아니라 저 새끼야!"







​풍덩-.







놈이 온 힘을 다해 민 석진이 헐겁던 난간을 통과해 호수에 빠졌다. 태형이 벌떡 일어나 호수 표면에서 석진을 열심히 눈을 굴리며 찾았다. 어디야, 어디 갔어, 형. 눈물이 자꾸 시야를 가렸다. 옆에서 욕지거리를 해대는 놈을 보니 저도 당황한 듯싶었다. 이 깊은 호수에서 어떻게 무작정 찾아. 막막해서 숨이 턱턱 막혔다. 어떡해, 형.







커다란 파란 호수는 형을 집어삼켰다. 형은 큰 물웅덩이에서 잠식했다. 공기 방울이나 파동 하나 없이 고요했다. 일렁이는 아침 햇살이 눈 부셨다. 소매로 쓱쓱 닦던 눈물이 진득했다. 마음이 아파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병실 천장이었다.







온몸이 아파 손 까딱하기도 힘들었다. 아 드디어 꿈에서 깨어났나 봐. 너무 진짜 같아서 눈물도 났어. 태형이 눈을 옆으로 돌렸다. 석진이 지긋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형이 타들어 갈 것 같은 입을 열었다. "형..." 목소리가 아파서 안나왔다. 석진이 태형의 머리를 쓸었다. "괜찮아." 석진이 다정히 말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돌아왔던가. 수많은 시간을 건너 얼마나 많은 눈물을 소모해야 했던가. 욕심일 수 있었지만 욕심내고 싶었다. 이기적일 수 있었지만 이기적이고 싶었다.







아랫집 살던 석진은 그렇게 소나기처럼 왔다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 《형은 잠식했다》로 작당 된 의현입니다 ㅠ0ㅠ 총 3번의 작도 끝에 당선이 되었는데 응원해주시고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 넘넘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 ♡0♡ 열심히 하겠습니다 !!





추천하기 9   즐겨찾기 등록
글이 재미있었다면 작가님에게 포인트 선물을 해주세요.
나의 Point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작가님에게
추천수와 선물받은 포인트 합산을 기준으로 글의 순위가 결정됩니다.




의현 작가님의 다른글 보기       전체보기
    로그인 후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댓글
  필시  10일 전  
 축하드립니다! 응원했어요 ❤❤

 답글 1
  마앙개애_★  10일 전  
 작당 축하드려요!!건필하세요 작가님♡

 답글 1
  제인•_•  11일 전  
 작당 축하드려요! 글 너무 좋아요ㅜㅜ 분량도 끝없이 길고 넘 좋아요ㅜㅜㅜ 건필하세요♡♡

 제인•_•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만개님  11일 전  
 만개님님께서 작가님에게 3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만개님  11일 전  
 의현님 작당 축하드립니다 ❤ 건필 하세요!!!

 만개님님께 댓글 로또 1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라햇님  11일 전  
 작당 축하드립니다 의현 님 !! ♡0♡

 라햇님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한초롬  11일 전  
 작당 축하드립니다

 답글 1
  효셴  11일 전  
 작당축하드려용

 효셴님께 댓글 로또 1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김단옝  11일 전  
 헉 작당 축하드려요 ㅠㅠㅠ!!!

 김단옝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위대한전루살이  11일 전  
 축하드립니다 건필하세요!

 답글 1

24 개 댓글 전체보기


친구에게 장난치기 꿀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