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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1. 새로운 출발 - W.탄명
1. 새로운 출발 - W.탄명


Glittering stars​
글리터링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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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whw7136 naver.com)​​









01



어릴 적에는 TV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도 멋있어 보였는지 모르겠다. 방송에 나와 웃고 떠들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그들을 보며 하랑은 한 번쯤 네모난 화면 속에 들어가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생판 모르는 또 다른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또래 아이들이 시험을 앞두고 문제집을 풀며 공부할 때 하랑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으며, 그들이 컴퓨터로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 하랑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안무 영상을 복습했다. 공부와는 일찍이 담을 쌓고 사는 하랑을 보며 부모는 혀를 찼지만, 말린다고 쉽게 그만둘 그녀가 아니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들은 묵묵히 뒤에서 힘을 실어주었다.


부모의 지지 끝에 16살의 하랑은 이른 나이부터 오디션 하나만을 위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순회하고 다녔으며, 5번 정도의 오디션을 본 질긴 노력 끝에 한 소속사의 연습생 신분이 되었다. 연습생이 된 후로는 학교도 자주 나갈 수 없었다. 땅끝 아래에 있는 지방에서부터 서울을 오고 가는 무리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사정을 봐서 고등학교는 고향과 멀리 떨어진, 소속사가 위치한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될 예정이었다. 데뷔를 꿈꾸는 하랑의 미래는 주인인 본인조차도 모르는 새 자연스럽게 그림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스몰히트`, 그게 하랑이 돗자리를 깔고 앉은 소속사의 이름이었다. 3대 소속사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 코딱지만 한 소속사를 상대로 당시 어떤 신뢰를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하랑은 하루도 빠짐없이 설렘을 품으며 열심히 노력했다. 무명이라고 무시했던 그 작은 소속사에 많은 연습생이 속해있는 것을 보며 데뷔를 꿈꾸고 있는 자라나는 새싹들이 생각 이상으로 넘쳐난다는 사실을 하랑은 그때 처음 알았다.


16살도 상당히 어린 나이였지만, 연습생으로서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던 하랑은 뒤처지지 않도록 남들이 하는 양의 배로 연습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하랑은 18살, 약 2년 동안의 짧은 연습생 기간을 끝마치고 운 좋게 꿈에만 그리던 무대 위로, 현란한 카메라 앞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4인조 그룹이었던 `글로우`는 데뷔와 동시에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괴물 신인이라는 과한 타이틀이 그룹명에 붙을 정도였으니 그 여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인상은 물론이요, 광고부터 방송 섭외까지 전화기에는 열이 오를 정도였다.


성인의 문턱도 넘지 못했던 18살의 하랑은 글로우로 데뷔한 순간부터 밤낮없이 일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스케줄은 두터운 메이크업을 지울 여유조차 없이 화장품을 덧바르기 바쁘게 만들었고, 졸음이 몰려와 무거워진 눈꺼풀은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는 차량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TV를 틀면 어떤 채널을 돌려도 하랑의 이름이 언급되었으며, 하늘 높이 뻗은 건물에는 온통 큼지막한 그녀의 사진이, 길거리에서는 한 보도를 지날 때마다 글로우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글로우와, 차하랑, 본인이 속한 그룹의 노래로 가득 찬 세상을 바라보며 때로는 믿기지 않았고 때로는 그 인기가 영원할 줄만 알았다. 당시의 하랑은 닥쳐올 미래의 암흑은 생각하지 못한 채 순간의 행복만을 즐겼다.


환상에 빠져있던 하랑을 향해 누군가 손을 뻗으며 자만하지 말라고 충고해도 두 귀를 닫고 모른 척했을 정도로 데뷔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인인 그녀에게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과 애정은 헤어 나오지 못할 마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랑은 TV 화면을 주시하며 리모컨 버튼을 끝없이 눌렀다. 5분 전부터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나 채널을 수색하던 중이었다. 로봇처럼 일정한 속도로 버튼을 누르던 하랑은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는 음악방송에 잠시 머물렀다. 조명으로 눈부시게 번뜩이는 무대 위에서 글로우의 멤버들은 한창 노래 중이었다.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냐고? 제대로 익히지도 않은 라면이나 먹으면서 이런 말 하기는 조금 민망한 것 같기도 한데, 너네들이 예상했듯 나 그룹 탈퇴했어. 앨범이 망한 것도 아니고 인기는 끝도 모르고 상승하던 중에 탈퇴가 웬 말이냐 싶겠지만··· 세상이라는 게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거더라고.



그냥······ 운이 조금 안 좋았던 거라고 생각하지 뭐.








.


`요즘은 가해자도 방송에 나오나? 세상 돌아가는 꼴 봐라.`

`돈 다 떨어졌나 보네.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거 보니까.`

`차하랑 쟤는 실력도 없으면서 솔로로 나오는 건 무슨 생각임? 말만 안 했지, 글로우에서 구멍 아니었나?`

`님들 걍 관심 주지 마셈. 어차피 망할 애들은 알아서 망하게 돼 있음.`







100개의 댓글 중 칭찬하는 댓글이 99개라도 비난하는 1개의 댓글이 제일 기억에 남고 신경 쓰인다던데. 예부터 전해지는 말들은 틀린 말 하나 없나 보다. 1개도 받아들이기 벅찬 마당에 1000개가 넘어가는 댓글의 대부분이 비난으로만 가득 찬 기사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글로우를 탈퇴하고 휴식기를 가지겠다고 선언한 자신이 그룹이 아닌 솔로로서 활동을 재개한다는 기사가 일찌감치 인터넷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하랑은 하루 종일 휴대폰만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읽었던 댓글을 되풀이해서 보고 댓글에 달린 답글 또한 빠짐없이 확인했다. 좋은 말 하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랑의 눈은 홀린 듯 사람들의 말을 주워 담고 있었다.


가해자? 뻔뻔하다? 내가 철판을 깔았다고? 수많은 댓글 중에서 그녀가 공감할 수 있는 말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라 울컥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해달라, 사인을 해달라, 반짝이는 눈으로 팬 서비스를 요청하던 사람들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한 번 등을 돌린 대중들은 과거의 기억이 왜곡될 만큼 매정한 태세를 보였다.


휴대폰을 쥔 손에 땀이 차도록 글을 읽어내려가던 하랑은 끝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활동을 재개하기도 전에 대중들에게 거부 받는 자신이 과연 새 출발의 라인 앞에 당당히 설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신 없었다. 카메라에 보이는 모습만이 존재 자체가 되는 현실에서 어떠한 해명을 해야 할지도, 변명을 해야 할지도 머릿속이 까마득했다. 사람들이 진심을 알아주기나 할까?


글로우의 멤버로서 활동을 하던 당시에는 꿈을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서포트가 들어왔지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지금은 그 무엇도 의지하지 못하는 채 모든 일을 홀로 해결해야만 했다. 왕따 가해자로 낙인찍힌 하랑에게는 더 이상 곡을 주는 사람도, 방송에 불러주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직접 발 벗고 나서야만 간신히 일 하나를 주워 담을 수 있는 처지에 몰렸다.


이번 솔로 활동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자금이 넉넉하지 못했던 하랑은 최소한의 자금으로 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하고, 직접 곡을 작업하고, 안무를 짜는 등 말 그대로 혼신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장 무너질 것 같아도 무대 위에 다시 설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엿보았기 때문에 여태껏 버틸 수 있었는데 기사에 달린 댓글은 그런 하랑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그마치 2년을 기다린 저 자신의 고생을 알아서라도 쉽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16살의 차하랑이 꿈을 펼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여 남들보다 배로 열심히 연습했던 것처럼 23살의 차하랑도 의도치 않게 구설수에 올라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억울해서라도 이번 컴백은 물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기회였다. 박수를 받지 못하더라도 도전은 해야 덜 억울할 듯싶었다.






"두 번 데뷔하는 사람도 드물겠지······"






18살 `글로우`로 그룹 첫 데뷔, 23살 차하랑··· 솔로로 또 한 번 데뷔.


즉, 나 차하랑은 한 평생 두 번 데뷔하는 셈이었다.








.


탑 아이돌 시절, 세상의 중심이 저 자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잘난 때는 느껴보지 못한 불편을 최근 들어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흔하디흔한 음악 방송을 출연하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인 줄 알았겠는가. 달라진 환경에 눈이 돌아가 연습생 시절의 간절함을 절반 정도 망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대에서의 열정만큼은 잊은 적 없던 하랑이었다.


오르게 될 무대가 넓든 좁든 그녀의 춤과 노래는 항상 그릇의 크기를 똑같게 유지했다. 이미 그룹 내 왕따 가해자로 낙인찍힌 마당에 대중들의 손가락질은 억울해도 짊어져야 할 짐이 된 셈이지만,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던 무대마저 외면당하는 것은 더러운 환경 속에서도 본모습을 간직했던 하랑의 그릇에 금이 가는 일이었다.






"벌써부터 기죽지 마. 내가 한 번 더 말씀드려볼 테니까."





절망하는 하랑을 향해 던진 매니저 보영의 위로였다. 덤덤하게 전하는 한마디가 진정제처럼 몸에 스며들었다.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는 손길이 다 괜찮을 것이라고 언질을 주는 것만 같았다. 비로소 하랑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 사소한 일에 개의치 않는 거야. 신인일 때는 당황스러운 일이 예상치도 못하게 닥치는 게 일상이니까.


위로 삼아 건넨 보영의 언질은 허튼 말이 아니었는지 하랑의 출연은 어렵사리 확정되었다. 음악방송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가슴 깊숙이 무언의 떨림이 느껴졌다. 첫 데뷔가 확정되었던 순간에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던가. 하랑은 열정으로 가득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앞으로의 나날을 향해 다짐했다. 죽기 살기로 해보자······
정상도 찍어보고 바닥도 찍어본 마당에 더 이상 두려운 것은 없었다. 후회 없이, 원 없이 제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게 하랑의 마지막 목표가 될 터였다.








.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어떠한 고난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각오가 삽시간에 가루처럼 조각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솔로 활동의 첫발밖에 내딛지 않은 이 순간에. 하랑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속에서는 붉은 사이렌이 정신없이 울리는 중이었다. 양볼에 붉게 올라온 홍조는 당황스러움을 완전히 감추기에는 무리였음을 적나라하게 알리고 있었다.


보잘것없는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출연 허가를 받아낸 음악 방송 일지라도 하랑에게는 어느 때보다 설레는 출근길이었다. 그러나 그 설렘도 찰나였다.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제 아픈 손가락인 글로우 멤버들을 마주치는 상상은 손톱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두고 대처 방법을 미리 숙지하고 있었더라면 덜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하랑은 섬세한 준비에 취약한 편이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TV로 수도 없이 봤던 3인조 글로우의 모습이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으나, 자신이 빠져버린 빈자리를 맨눈으로 보자 씁쓸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빈자리보다 더욱 씁쓸한 것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멤버들의 얼굴이었다. 어쩐지 하랑이 그룹에 속해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낯빛에 생기가 맴돌아 보이는 것은 단순한 착각일까.






"뻔뻔한 것도 아니고. 쟤는 여기가 어디라고 왔데?"

"새삼스럽게. 욕심 많은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차하랑은 좋겠네. 솔로로 활동하면 분량 걱정도 안 해도 되잖아. 자기가 바라던 바 아니야?"






물론 하랑에게 직접적으로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복도에서 마주친 하랑을 보며 그들끼리 단순하게 주고받은 몇 마디의 대화일 뿐이었지만, 그 대화를 들은 하랑은 단 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당사자가 본인들의 험담을 듣든, 말든 상관없는 저 눈빛과 비아냥거리는 말투는 간접적으로 하랑을 저격하고 있었다. 간접적이라는 말 뒤에 말끔하게 포장한 직접적인 험담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멤버들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얼굴에 홧홧하게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큰 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저 자신이 작아졌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기 위한 주작된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대화는 마치 꾸밈없는 사실 같았으며, 생생한 제 기억마저 조작하는 것 같았다.


글로우 멤버들이 지나간 자리는 알 수 없는 찬바람이 배회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무대를 앞두고 들떠있던 마음이 차게 식어 열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모르게 한숨을 내쉬던 하랑은 갑작스럽게 소란스러워진 복도 분위기에 힘입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에서는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인 `영네이션`이 분주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을 본 순간 어수선해진 복도 분위기의 흐름을 단 번에 이해하고 수긍했다. 하랑이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그룹을 탈퇴하게 된 2년 전부터 무서운 기세로 아이돌 시장을 집어삼킨 영네이션은 데뷔 4년 만에 대한민국을 자랑하는 아이돌 그룹이 되었다. 글로우와 상반되게 처음부터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그룹은 아니었다. 오히려 데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네이션이라는 그룹의 존재 여부조차 몰랐을 정도로 무명의 나날을 오래토록 견뎌낸 그룹 중 하나였다. 피땀 흘려 노력의 진가를 보여준 표본으로 그들을 내세워도 누구 한 명 반박하지 못할 터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전 세계에 케이팝을 전파하는 유명 그룹인 만큼 하랑 또한 영네이션을 잘 알았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영네이션은 `스몰히트` 소속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 하랑이 연습생 기간을 끝마치고 글로우로 데뷔했던 소속사에서 새롭게 발굴한 그룹이 영네이션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잘 알 수밖에 없는 것은······






"... 안녕하세요."



"......"






하랑의 또 다른 아픈 손가락, 박지민이 영네이션의 멤버이기 때문이었다.


`연예인들의 연예인`, 영네이션은 그 말이 참 잘 어울리는 그룹이었다. 같은 연예인이라고 할지라도 우상으로 삼고 싶고, 옷깃 한 번 더 스쳐보고 싶은 게 그들이었다. 연예계에서 감히 무시할 수 없는 파급력을 가진 영네이션의 등장은 어떤 그룹보다 소란스러워야 마땅했다. 스케줄 끝마치고 다음 스케줄인 음악방송을 위해 곧장 달려온 듯한 그들은 큰 보폭으로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글로우 멤버들이 뱉은 말을 곱씹으며 멀뚱히 서 있던 하랑은 자신과 점차 가까워지는 영네이션을 보며 복도 벽에 몸을 밀착시켰다. 방송에 나오든 말든 일말의 영향력도 엿볼 수 없는 한낱 나부랭이는 그들에게 걸리적거리는 장애물 그 이상, 이하도 아닐 터였다. 그들이 정신없이 지나갈 길을 군말 없이 터주는 게 암묵적으로 해야 할 임무였다.


다른 출연자들이 그러하듯 하랑도 영네이션 멤버들을 향해 큰 소리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데뷔 연차로 보면 하랑이 한창 선배였지만, 2년 전 모든 연예 기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로 큰 사건을 거친 이후로 다시금 데뷔한 현재로서는 영네이션은 우러러봐야 할 선배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선배 대우를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신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여겨줬으면 하는 게 하랑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그마저도 필요없다.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해줬으면.


영네이션 멤버들은 하랑의 소심한 인사에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며 대기실로 향했다. 그 찰나의 인사마저도 껄끄러운 듯싶었다. 한때는 같은 소속사의 식구였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니 불편한 듯한 그들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민의 반응만큼은 가슴에 못을 박은 듯 마음의 통증이 잇따랐다. 하랑을 스쳐 지나가던 지민은 그녀가 건네는 인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한기가 맴도는 무표정한 얼굴로 없는 사람 취급했다.


누구보다 친했던 너였는데. 어쩌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을까. 하랑은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지민의 태도에도 속으로 섭섭해할 뿐, 겉으로 티를 낼 수 없었다. 남몰래 섭섭한 감정을 품는 것 자체도 지민에게는 양심 없는 죄가 될 게 뻔했다. 그는 자신을 더 무시해야만 했고, 더 미워해야만 했으며, 더 원망해야 했다.


과거에 제 얼굴을 바라보며 따스한 햇살처럼 미소 짓던 지민은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다. 하랑은 본인을 상대로 완전히 돌아선 지민을 보며 과거의 잘못을 속죄해야 할 터였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지민은 하랑에게 관대한 자비를 베푼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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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연화ღ  9일 전  
 작가님 보고싶었어요 ㅠㅜㅜ 이번 작품도 너무 좋고 잘 챙겨볼게요

 연화ღ님께 댓글 로또 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iuiuiuiu0  13일 전  
 후회물인가...?
 오해가 있었겠지?

 iuiuiuiu0님께 댓글 로또 1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디우♥♥♥  15일 전  
 오 기대되요!!♡

 답글 0
  트연트연  16일 전  
 기대할께요

 트연트연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강하루  17일 전  
 기대할게요

 답글 0
  백운  17일 전  
 백운님께서 작가님에게 1085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백운  17일 전  
 진짜 너무 기대됩니다ㅜㅜㅜ

 백운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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