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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3YEARS] 재벌 3세 김여주 - W.민트차양
[3YEARS] 재벌 3세 김여주 - W.민트차양





새 학기가 밝았다. 남들과 똑같이 반 배정을 받고, 남들과 똑같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됐다. 좀 다른 게 있다면 재벌 3세라는 사실, 그 정도려나.





재벌 3세 김여주
W. 민트차양









새로운 학교생활의 첫날이었다. 미리 자리 배정을 해놨던 건지 칠판 앞에 붙어있는 자리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내 자리라 표시된 있는 자리를 찾았다. 옆자리엔 누군가 이미 앉아있었다. 책상에 시선을 처박곤 고개를 들 생각도 없는지 부동인 모습에 쯧, 혀를 차고선 내 자리로 향했다. 이름있는 브랜드의 가방을 책상 위에 대충 던져놓고 다리를 꼬아 앉았다. 쭉 둘러본 반 아이들의 표정은 모 아니면 도였다.


1학년 생활은 그저 그랬다. 내 뒷배경 하나만 보고 친한 척 굴거나, 재수 없다며 뒤에서 까거나. 물론 앞에서 그러는 애들은 없더라. 찌질하게도. 아무튼,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떠한 형태로든 내게 관심을 주지 않는 이는 없었단 거다. 학생이었든, 선생이었든. 흔한 소설 클리셰처럼, 내게 관심을 주지 않는 이는 아주 당연하게도 내 관심을 빼앗기엔 충분했다.





"......"

"......"





옆자리에 누가 앉았는지엔 시선조차 안 주면서, 그 시선 끝에 매달린 문제집은 휙휙 잘만 바뀌더라. 얜 대체 뭘까.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첫날이 첫날인지라 수업을 하는 선생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놀거나 의미 없는 자습 시간을 줄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아가는 그동안에도, 이 아이는 그런 덴 관심 없다는 듯 꿋꿋이 문제집만 잡고 있었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공부만 하는 건지. 물론 사람을 시킨다면 일주일도 채 안 돼서 저 아이에 관한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왠지 그랬다.










재벌 3세 김여주











"안녕?"

"......"





기사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 내리고, 기사가 건네주는 가방을 매고. 꽤나 다양한 시선을 받으며 교실로 들어왔다. 딱히 신경쓰진 않았다. 늘 있던 일이니까. 자리에 도착하고, 늘 그랬듯이 가방을 책상 위에 대충 던져놓곤 다리를 꼬아 앉았다. 한 쪽 팔로 턱을 괴어 그 아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인사를 건넸다. 돌아오는 건, 나를 힐끗 보곤 다시 문제집을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얼굴 근육이 일그러졌다. 처음. 난생 처음 개무시라는 걸 당했다.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아무 감정이 없든, 일단 대답같은 건 무조건 해줬는데. 17년 이상을 살며 처음 받아본 반응에 얼이 빠졌다. 잔뜩 얼이 빠져 헛웃음을 치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처음과 같은 자세로 샤프를 휘날리는 그 아이였다.

괜한 승부욕이 타올랐다.





"안녕."

"......"



"안녕?"

"......"





만나기만 하면 인사를 건넸다. 결과는 역시 힐끗과 개무시였다. 까이는 만큼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럴수록 승부욕 역시 비례하게 타올랐다. 이쯤 되면 받아줄 만도 할 텐데, 싶어도 그 아이는 꿋꿋하게 무시할 뿐이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여전히 별다를 게 없는 등교를 했다. 괜히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 인사를 건네고 싶어서 가방도 내가 챙기고, 차 문도 내가 열어서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교실 앞까지 도달하고 나서 턱턱 막히는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서둘러 왔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숨을 진정시키고 나서 교실 문을 열었다. 역시나, 문제집을 붙들고 있었다.





"안녕."

"어."





귀를 의심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가방을 던져 올려놓고 다리를 꼬아 앉아 정면을 응시하면서 무심한 듯 인사를 건네면, 역시 무심한 듯 어, 라는 대답을 내놓은 그 아이였다. 대답을 처음 들었다는 사실에 놀라 정면을 꼿꼿이 응시하던 상체를 비틀어 그 아이를 바라봤다. 물론 그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은 마냥 태연하게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근데 그러고 보니까...."

"......"

"나 네 이름 몰라. 이름 뭐야?"





다들 밥을 먹기 위해 달려나가 매우 한적해진 반 안에서 그 아이는 문제를 풀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엎드려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문질거리고 있었다. 일주일 넘게 지켜본 결과, 그 아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 왜인지까지는 모르지만, 암튼 먹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안 먹었다. 귀찮기도 하고 굳이 맛 없는 싸구려 급식을 먹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아무튼, 아직까지 그 아이의 이름을 모른다는 게 좀 웃겨서 물어봤더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없었다. 칫,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반대로 돌려 엎드렸다. 타다닥, 타다닥. 손가락들을 책상에 시간차를 두어 토도독 두드렸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는지 슬슬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시끌시끌해진 교실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박지민."





정말이지, 밀당이란 걸 매우 잘 하는 것 같았다.





***





곧이어 종이 치고, 선생이 수업을 하기 위해 들어왔다. 이름 하나 알려줬다고 내 고개는 다시 그 아이, 아니 박지민에게로 돌아가 있었다. 수업이 시작됐지만,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우리 집은 돈이 많으니까. 박지민을 빤히 쳐다보다가, 슬슬 몰려 오는 졸음에 눈을 감았다.





"......"

"우응...."





한창 꿈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보나마나 박지민이었다. 내가 깰 때까지 집요하게도 찔러오는 그 손길에 미간을 찌푸리며 눈만 떴다.





"왜애...."

"지금 시험에 나오는 거 짚어주고 계셔. 나중에 보여달라 하지 말고 일어나."





처음으로 저렇게 길게 말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잠에 푹 빠진 내가 뭘 알겠는가. 일어나기 싫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시험 못 봐도 돼.... 그냥 돈 많은 백수 할래....."





말을 마치고 자세를 틀어 팔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씨발, 재수 없어.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에 콕 박혔다. 짧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렴 어떤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재벌 3세 김여주











학교가 끝나고 일찌감치 짐을 다 싼 내가 턱을 괸 채 박지민이 가방을 싸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작은 가방이 터질 듯이 문제집을 집어넣는 모양새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주말에 놀자."





물론 개무시였다. 난생처음 개무시당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익숙해진 것 같았다. 묵묵히 터질 것 같은 가방을 눌러 지퍼까지 힘겹게 잠근 박지민이 아무렇지 않은 듯 가방을 멨다. 그러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나를 지나쳐 반을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뒷문이 박지민에 의해 쾅, 소리가 나며 닫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야! 같이 가!"





급하게 가방을 손에 들고 우다다 뛰었다. 복도로 나오니 벌써 저 끄트머리에서 코너를 돌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씨, 입술을 삐죽이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키는 작으면서 걸음은 어찌나 빠른지, 따라잡는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나한테는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손에 쥐고 있는 작은 단어장은 겁나 쳐다본다. 옆에서 졸졸 따라가다가 괜히 심통이 나 박지민의 손에서 단어장을 휙 빼앗았다. 박지민의 시선이 내 손, 아니 내 손이 낚아채 간 단어장으로 따라갔다.





"아, 뭐 해. 줘."

"싫은데~?"





단어장을 내 등 뒤로 숨기고 최대한 얄미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달라며 뻗어진 박지민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혀를 쭉 내밀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팔을 내린 박지민이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종이 쪼가리를 꺼냈다. 거기엔 옮겨적은 듯한 단어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와, 진짜 대단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단어장을 쳐다보며 걸어가는 박지민을 멍하니 보다가 다시 다가가 그 종이도 빼앗았다. 하, 고개를 힘없이 뒤로 젖히면서 빡침 가득한 한숨을 짧게 내뱉은 박지민이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다.





"뭔데."

"나랑 주말에 놀자!"

"하아."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휙 쓸어넘긴 박지민이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다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또 괜한 승부욕에 불타올라 박지민 옆에 꼭 달라붙었다. 놀자. 놀자니까? 응? 놀자아. 고개를 불쑥 들이밀며 말꼬리를 주욱 늘렸다. 그럼에도 박지민은 꿋꿋이 걸어갔고. 지치기도 했고 삐진 척 좀 해보려고 박지민의 뒤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꿍얼거리기 시작했다.





"주말에 좀 놀아달라는 게 그렇게 어렵나? 내가 24시간 동안 놀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시간 만이라도 놀아달라는데..."

"......"

"나는 친구도 누구밖에 없어서 주말마다 집에만 박혀 있어야 하는데...."

"......"

"그 누구는 매정하게 안 놀아준, 악!"





뭐야, 왜 멈춰! 고개를 숙이고 걸어갔기 때문에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턱이 없었다. 뭐 때문인지 자리에 멈춰선 박지민 덕분에 박지민의 등에 머리를 콱 박아버렸다. 아마 날개뼈에 부딪힌 것 같은데,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정수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들면 왠지 모르게 경직돼있는 박지민이 보였다.





"......"

"......"





박지민을 쳐다보다가 박지민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웬 아저씨들이 우글우글했다. 딱 보니까 사채업자 같은데. 어느 집 앞에 모여앉아 껄렁이는데, 존나 시끄러워서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돌아서 가자고 하려고 박지민의 소매를 잡아끄는데 아주 단단히 굳어버린 박지민은 미동조차 없었다.





"......"

".....야."





뭔가 이상해 박지민을 쳐다보니,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눈동자는 공포에 질려있었고, 꽉 쥔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저 사람들은 박지민을 찾아온 것이라고. 박지민의 앞으로 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다시 잡아끌었다. 이번엔 힘없이 끌려왔다. 귀퉁이를 돌아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고나서야 손을 뗐다. 그제야 박지민은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잔뜩 충혈된 눈이 안쓰러웠다. 같이 주저앉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나 먼저 가볼게. 갑자기 일이 생겨서."

"......"





박지민은 반응이 없었다. 손에 얼굴을 묻고 있는 박지민을 내려다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나름의 배려였다. 누가 치부를 드러내고 싶겠어. 아까 상황만 봐도 대충 그려지는 스토리에 혀를 쯧,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잊기 위함이었다. 난 오늘 아무것도 보지 않은 거야, 김여주.










재벌 3세 김여주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그 며칠동안 아무 티도 내지 않았다. 박지민도 아무 티를 내지 않았다. 그랬는데, 평소처럼 엎드려서 공부하는 박지민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상처를 하나 발견했다.





"이거 뭐야? 어디서 다친 거야?"

"......아."





내가 손가락으로 상처 주변을 쿡 찌르며 물어보자 황급히 손을 들어 상처를 가린 박지민이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자연스럽게 내 손은 박지민의 얼굴에서 떨어졌고. 아무것도 아니야.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의문을 품었다. 뻘쭘하게 떠있던 손가락을 주춤거리며 내렸다. ....미안. 엎드렸던 몸을 세워 머리카락을 늘어뜨렸다.


그렇게 하루를 어색하게 보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날이 가면 갈 수록 박지민의 얼굴에 생긴 상처는 늘어만 갔다.





"너 똑바로 말해. 요즘 누가 너 괴롭혀? 아님 누구랑 싸웠어?"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냥... 긁힌 거야."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너네 집 가는 길에 가시 덩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얼굴의 상처를 언급할 때마다 박지민의 얼굴은 굳어졌다. 이번에도 굳어진 채 허공을 응시하는 박지민에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렇게 나한테 말하기 싫은 건가. 서운한 마음에 박지민을 지나쳐 교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엎드려 손가락을 타다닥 두드리다가 굳은 결심을 하고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





"......"





박지민의 모습이 사라졌을 즈음에야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박지민을 미행하는 거였다. 내가 아무리 추궁해도 절대 말을 해주지 않을 거란 걸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나 같으면 누가 내 뒤를 몰래 쫓는다 생각하면 소름이 쫙 끼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를 하며 박지민의 흔적을 계속해서 쫓아나갔다.


하교할 때마다 손에 쥐고 놓질 않던 단어장은 어디로 버렸는지, 그저 앞을 바라보며 다소 뻣뻣하게 걸어가는 박지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박지민의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박지민의 마이를 험하게 잡아당기는 손에 의해 박지민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 어!"





들키지 않기 위해 벽 뒤에 달라붙어 있다가 주춤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박지민이 사라진 곳까지 뛰어서 다시 벽 뒤로 몸을 숨긴 채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미친."





그리고 내 시야에 들어온 모습은, 저번에 봤던 험상궂은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여 무자비하게 발길질을 당하는 박지민이었다.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팔로 얼굴만을 가린 채 맞는 그 모습에 내가 다 아픈 느낌이었다. 더이상 보기 힘들어 벽에 등을 기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화가 났다.


둔탁한 소리와 더불어 간간히 들려오던 박지민의 신음소리가 멎었다. 곧이어 차 시동소리가 들리고, 부르릉 거리던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박지민이 바닥에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교복이 잔뜩 더러워져 있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여보세, 요.

"....뭐하고 있었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목소리가 휴대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입술을 더 꽉 깨물었다가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냥, 후, 공부하고 있었지.

"....그렇구나. 열심히 해."





끊어버렸다. 목소리를 더 들었다간 울어버릴 것 같았다. 아직도 바닥에 늘어진 채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이는 박지민에게서 시선을 떼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휴대폰을 쥔 손이 하얗게 질렸다.





***





"지민아, 폰 줘 봐."

"왜?"

"내 번호 뭐라 저장해놨는지 보려구~"





다음 날 박지민은 더러워진 적이 있기는 했냐는 듯이 깨끗해진 교복을 입고 있었다. 여전히 문제를 풀고 있는 그 모습을 문 앞에서 물끄러미 보다가 자리로 향했다. 난데없이 휴대폰을 달라는 내 말에 눈썹을 들썩이던 박지민이 억지스러운 이유였음에도 선뜻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건네줬다. 폴더폰이었다. 처음엔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 바꾼 건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괜히 씁쓸해져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리다가 폴더를 열었다.





"아, 정 없게 김여주가 뭐냐?"

"그럼 뭐라고 하는데."

"우리 여주- 라고 할 건데?"





내 말에 한숨을 푹 내쉰 박지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사실 그냥 한 말이었다. 휴대폰에 고정해뒀던 시선을 슬쩍 돌려 박지민을 힐끗 쳐다봤다. 타자를 꾹꾹 눌러 통화 내역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저장되어있지 않은 전화번호가 잔뜩 나열돼있었다. 미간이 찌푸려지려는 것을 애써 막은 채 번호들을 눈에 익혔다. 조용하게 휴대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가 이상했던 건지 뭐하냐, 하며 고개를 들이미는 박지민에 깜짝 놀라 전원 버튼을 눌러버렸다. 다행히도 박지민이 볼 땐 바탕화면으로 돌아가 있었다.





"바탕화면에 뭐 있냐? 그렇게 노려보게."

"어... 그... 고양이가 귀여워서! 어, 좀 귀엽네. 하하."

"뭐래... 수업 종 쳤어. 수업 들을 준비해."

"어어! 알겠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물함으로 향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에 아까 눈에 익혔던 번호 11자리를 입력했다. 그러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다음 수업의 책을 꺼내 자리로 돌아갔다.


앉자마자 풀썩 쓰러져 엎드리자 나를 힐끗 본 박지민이 바로 앉아. 그러다 허리 굽는다. 라며 내 양 어깨를 잡아 일으켜줬다.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더불어 예상치못했던 걱정까지 받았다는 생각에 입을 틀어막고 눈을 반짝이자 박지민은 뒤늦게 들어온 선생님께 시선을 돌리며 무시를 시전했다. 쳇. 입을 삐죽이며 다시 엎드리려다가 좀 전에 박지민이 했던 말이 떠올라 꼿꼿이 앉았다.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





-여보쇼.

"박지민. 얼마야?"





차에 기대 앉아 메모해뒀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물론 운전기사는 잠시 나가있으라고 한 상태였다. 두어 번의 수화음에 이어 들리는 목소리에 서두 없이 본론을 말했다. 박지민? 하고 되묻는 말과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리고나서 조금 뒤에야 아아, 하는 탄성을 내뱉는 남자였다.





-박만식씨 아들이네, 박지민.

"그래서. 얼만데?"

-다 괜찮은데 목소리 앳된 아가씨가 와 반말을 틱틱 해댈까? 내 몇 살일 줄 알고?

"네가 몇 살이든 상관없고, 또 내가 어디가서 존대는 해 본 적 없는 사람이라. 말 돌리지말고 액수나 말해. 현금으로 뿌릴 테니까."





아따, 화끈한 아가씨네. 현금이라는 말에 만족했는지 남자가 와하학, 웃어 보였다. 문자로 장소와 액수를 보내준다는 남자에 미련 없이 전화를 끊었다. 똑똑, 창문을 두드려 운전기사를 불렀다. 곧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고 그와 엇비슷하게 문자가 날라왔다.





이자까지 해서 7500
00역 4번 출구 5시 30분





뭐야. 얼마 안 하네. 생각보다 적은 액수에 어깨를 으쓱하다 운전기사를 불렀다.





"아무 은행 들렀다가 00역으로 좀 가자."

"네, 아가씨."





근처에 있던 은행에서 직접 돈을 인출했다. 나 참, 박지민 덕분에 별 경험을 다 해보네.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봉투에 돈을 넣고 마이 안주머니에 넣었다.


차에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00역에 도착했다. 4번 출구 근처엔 지나가는 사람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5시 25분이었다. 팔짱을 끼고 시트에 기댔다. 그쪽에서 도착하면 나갈 생각이었다.


3분쯤 지났을 때, 목까지 문신이 올라온 덩치 큰 남자와 조금 왜소한 남자가 슬금슬금 걸어왔다. 덩치 큰 남자가 주위를 휙휙 둘러보는가 싶더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곧이어 내 폰으로 어디쯤이냐는 문자가 날아왔다. 쯧, 혀를 차곤 차 문을 열었다. 운전기사가 당황한 듯 보였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누구쇼?"





내가 가까이 가자 덩치가 작은 남자는 무슨 볼일이냐는 듯 덩치 큰 남자를 막아서곤 눈썹을 들썩였다. 그에 별다른 대꾸없이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건네자 두 남자의 표정이 묘해졌다.





"칠천오백에 플러스 오백, 총 팔천. 이 정도면 되나?"

"아까 전화한 아가씨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덩치 작은 남자를 밀어내고 다급히 봉투를 낚아챈 남자가 봉투를 벌려 액수를 확인했다. 점점 밝아지는 표정변화가 한심했다. 됐지? 꼼꼼히도 액수를 세는 모습을 보다 가기위해 몸을 돌리자 날 붙잡는 남자였다.





"무슨 사이길래 큰 돈을 대신 갚아주는 거요?"

"알 바니?"





미련없이 뒤를 돌았다. 뭐, 잘 가시오. 뒤에서 들리는 인사소리는 대충 넘기고 차에 다가갔다. 이번엔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줬다. 집으로 가자. 시트에 푹 기대어 눈을 감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기분이 찝찝했다.










재벌 3세 김여주











돈을 대신 갚아주고 난 뒤로부터, 박지민의 얼굴 상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표정도 묘하게 편해보이는 것 같고. 그 결과에 만족하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체육시간이었는데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핑계로 교실에 머물러있던 참이었다. 뭐,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자리에 앉아 휴대폰만 의미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재밌는 게 단 1도 없었다. 아, 체육하는 박지민 보는 게 제일 재밌는 건데. 허공을 응시하며 혀를 쯧 차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절로 나오는 하품을 쩍쩍하고 있는데, 벌써 체육 시간이 끝난 건지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뛰어 올라온 건지 숨을 헐떡이던 박지민이 날 불러냈다. 입을 가리던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박지민을 따라나섰다.


박지민의 걸음이 멈춘 곳은 급식소 앞이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성큼성큼 걸어가는 걸음을 따라잡느라 애먹었다. 점심시간이 아니었기에 주위가 한적했다. 내게 등을 보이며 서 있는 박지민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네가 돈 갚았다며."





목소리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천천히 뒤를 돌아 마주한 박지민의 눈가가 빨갰다.





"그렇게 내 자존심 깎아 먹으니까 기분 좋았어?"

"......"

"왜 해달라고 하지도 않은 짓을 하는 건데! 왜!!"





박지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둘 사이로 바람이 쏴아, 지나갔다. 내 시선이 내려갔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낙엽이 구르는 소리를 듣다가 그 소리가 멎었을 즈음에, 다시 박지민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직도 눈가가 빨갰다.





"....빌어먹을 자존심만 세우면서 뒤지던가, 그럼."





뒤를 돌았다. 이번엔 내가, 박지민에게 등을 보였다. 풀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

안녕하세요, 아가들! 갑자기 알람 떠서 의아했을 것 같은데, 오늘이 3주년이라길래 안 올 수가 없었어요. 음, 돈을 갚아본 적이 없어서 저렇게 묘사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일단....아무렇게나 해봤네요. 헤헤.

한 달 뒤에 잠시 연중된 장편들과 새로운 장편들 폭풍업뎃 할 거니까 그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아가들!



(chayang0613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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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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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망개한츄파춥스  9일 전  
 늦었지만 3주년 축하드립니다!!!

 망개한츄파춥스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뿌악^<^  10일 전  
 글 너무 좋아요!!!

 뿌악^

 답글 0
  디우♥♥♥  16일 전  
 늦었지만 3주년 축하드려요ㅠㅠ!! 작가님 글 너무 잘쓰셔요ㅜㅜ 사랑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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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띠까뜨  16일 전  
 조금 늦었지만, 3주년 축하드려요! 그리고 앞부분에 문제집만 들고 다닌다 그래서 지민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암튼 글 너무 잘 읽고 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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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어셩  16일 전  
 글 넘 좋아오ㅡ!!!

 천사어셩님께 댓글 로또 1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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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00  17일 전  
 글 너무 좋아요!!!!!!^^
 그리고 3주년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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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원(소정)  17일 전  
 3주년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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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ʚ물실ɞ❀  17일 전  
 늦었지만 3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글 진짜 잘보고 갑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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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태는꽃길만  17일 전  
 3주년 축하드려요!!

 태태는꽃길만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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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쒀:)  17일 전  
 3주년 축하드려요!!

 민쒀:)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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