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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10. 우리, 사랑할 시간 - W.해늘°
10. 우리, 사랑할 시간 - W.해늘°






우리, 사랑할 시간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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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촬영까지 마친 후 시작된 이틀의 휴식시간이 지나 이곳에서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이안은 커피 한잔을 마시며 벤치에 앉아 노을을 보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 해변가에 거의 다 도착할 즘에 누군가 등을 툭 쳐서 놀라 돌아보니 생글거리며 웃고 있는 지민이었다.


“진짜 놀랐어.”

“성공했네요. 놀래켜 주려고 살금살금 따라왔는데.”
“너도 보러 온 거야?”

“네, 내일이면 떠나잖아요.”
“그러게. 여기 노을이 예뻐서 더 아쉽다.”


둘은 근처 카페에서 산 커피를 들고 처음 도착해서 바라본 곳까지 걸어가 일몰을 지켜보았다.


“노을은 끝인사 같아서 보고 있으면 조금 슬퍼지는 것 같아요.”
“그러게...”

“다 하지 못한 무엇이 있는 게 아닌가 자꾸 생각해보게 되고.”


이안은 걱정 말라는 듯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민은 이안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누나... 멤버들에게도 말 못 한 마음들을 누나가 알아주는 것 같아서... 많이 위로되었어요.”


이안은 말없이 웃어주기만 했지만 지민은 정말 그랬다. 베를린에서 약해진 몸, 약해진 마음으로 공연할 때 무대 아래서 자신을 지켜주는 듯 바라보아주고 있던 이안을 발견했고 손짓으로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물음에 울컥해 눈물이 날 뻔했었다. 그 모습에 힘입어 한껏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공연에 남은 애를 다 쏟아부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저 노을처럼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이 이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끝이 다가옴으로 느껴져 마음이 허해지는 것 같았다.



“누나가 계속 우리 팀으로 일했으면 좋겠어요.”


웃으며 말하는 지민을 바라보며 이안 역시 웃어 준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부신 노을빛이 서 있는 공간을 가득 채워주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일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그런 생각이 스치듯 들기도 했지만 자신의 자리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의미를 찾으라던 최교수의 말이 생각났고 서울에서의 공연 날 아름답던 객석의 은하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찾기 바랐던 마음도 생각났다. 가슴속에서 바람 타고 올랐던 깃털 하나는... ...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걸까.










우리, 사랑할 시간










방콕에서의 첫 공연을 끝낸 날, 이안은 선주와 함께 밥을 먹게 되어 전에 스태프들과 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보았는데 정말 예상치 못하게 선주는 선뜻 그러라며 한번 해보라는 것이었다.


“전 언니가 안된다고 할 줄 알았어요.”
“작년 같으면 그랬을지도. 너도 하는 거야?”
“전 머릿수 채우기 용도 내지 보여 주기 용도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안은 웃었다.


“나도 봐야겠다. 얼마나 열심히들 준비했는지. 휴가비까지 얹어준다고 해. 대신 성의 없이 하는 거면 안 하는 것만 못하게 되겠지.”


일이 조금 커졌음을 느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반응이 어떨지 이안은 상상만으로도 재밌어 선주 몰래 웃음을 삼켰다.


“일은 할만해?”
“네, 도움이 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은 하고 있어요. 삼촌한테 폐가 되면 안 되잖아요.”
“삼촌은 너의 성실성을 믿으시기 때문에 보낼 수 있었던 거고, 내가 케어 팀장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같았어. 너가 계속 이렇게 해외 투어 때마다 같이 가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시더라. 어때? 아예 직원이 되는 건?”


이안은 마시던 물컵을 내려놓았다.


“제자리가 아니에요.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시잖아요.”
“맞아. 하지만 네가 다른 곳에 뜻을 두는 게 어렵다면 확실한 자리를 찾을 때까지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서 그래. 삼촌은 네가 편해지기를 바라시고 나 또한 그렇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해볼게요. 어쨌든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그래, 한번 잘 생각해봐. 참, 홍콩 공연까지 하고 나면 한국에 잠시 들어가. 알지?”
“네. 무슨 팬미팅 한다고 하셨죠?”
“우리 애들 데뷔일 기념 축제야. 매년 해, 팬들이랑. 그거 끝나고 나면 미국 공연 가는 거고.”





선주와의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함께 모여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이안은 아까 선주와 이야기를 했다며 서두를 꺼냈다. 휴가비를 더해 허락해 주었다는 말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안은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다.


“근데 선주 언니도 본데요.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보겠다면서 성의 없이 할 거면 안 하는 것만 못한 거라고 하시더라고.”


조금 전까지 감탄사가 나오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 이런... 그럼 대충 할 수가 없게 되잖아. 불붙겠는데?”
“퍼포먼스 팀 애들한테 모르는 건 물어봐야겠다.”
“멤버들한테 물어보면 되지 뭐.”
“그런 의미에서 난 빠지면 안 될까?”


기습적인 이안의 질문에 다들 빤히 바라보다 답했다.


“안돼요. 언니는 꼭 껴야 돼.”
“나 춤 못 춰. 내가 속해서 팀이 지면 안 되잖아.”
“다들 비슷해요 언니. 이건 완벽한 춤을 보는 게 아니라 노력을 보는 거라구요 노력.”
“지고 나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
“에이, 뭐, 일단 즐겁게 하자구요~”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목표는 일주일 휴가 일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그 과정의 즐거움에 더 기대가 있는 것 같았다. 비슷하게 돌아가는 해외 체류 생활에서 일하는 것 외에 함께 모여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그 나름대로 이 시간들을 재밌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짰던 팀 있지? 이젠 각자 멤버별 파트 나눠서 연습해야겠다. 페스타 축제 멤버들 연습할 때 우리도 한쪽에서 연습하지 뭐.”


이안은 그때 나온 이야기가 이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자 머릿속에서 뻣뻣하게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니 우스웠다. 춤이라... 언제 춰봤는지 기억도 까마득했다.

먼저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복도에서 정국과 마주치는 동시에 연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 연호야.”


이안은 그냥 손짓으로 정국에게 인사하고 지나쳤고 정국도 고개만 간단히 숙여 인사를 하다 뒤돌아 멈춰 서서 전화를 받으며 저만치 걸어가는 이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이제 방콕.”


방 안으로 들어선 이안은 의자에 앉았다.


-덥지?
“응, 덥고 습하다. 잘 지내고 있어?”
-응, 매일이 같다가 매일이 새롭다가 그래. 오늘은 낙상환자가 왔었는데 교수님이 간신히 살려냈어. 어시스트 섰는데 배 열자마자 솟구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고생했네... 살았으니 다행이다.”


벨이 울리는 소리에 이안은 일어났다.


“잠깐만 연호야”


이안은 문쪽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누구세요?”
“정국이에요.”










우리, 사랑할 시간










이안이 문을 열어주었다. 위아래로 까맣게 입고 있는 정국이 서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아, 잠깐만. 연호야,”


이안은 급히 연호와 짧게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 있어?”

“저 머리 아파서 그런데... 두통약 좀 주세요...”
“두통? 약은 있지만, 많이 아프니?”


정국이 방으로 온건 처음이라 이안은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다가 두통이란 말에 조금 안심하며 약을 찾았다.


“그냥 조금요.”


이안은 정국에게 약을 내밀었다.


“조금 아픈 거면 약 먹는 것보다 바람을 쐬던가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방에만 있지 말고.”

“같이 나가주실래요? 이 호텔 루프탑 바 있어요.”
“... 그래. 넌 준비시간 필요하지?”

“네. 10분이면 돼요. 거기 입구에서 봐요 누나.”


정국이 나간 후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겼다. 사실 좀 피곤해서 쉬려고 아까 그 방에서도 일찍 나온 거지만 그냥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온 김에 바에 한 번 가보지 뭐.”


이안은 편한 차림 이대로 갈까 하다가 ‘바’라는 말에 언제 입을 때가 있을까 싶었던 초록색 원피스를 꺼내 들었다. 거울을 보며 대보았다. 이렇게 된 거, 기분이나 내보자 싶었다.

정국은 준비랄 게 없었다. 지갑에서 카드를 빼내어 핸드폰과 함께 주머니에 넣고 올라갔다.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이안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입술을 옆은 코랄빛으로 물들인 그녀는 예쁘게 어울리는 원피스를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어색한 거 나도 알아. 원피스는 있는데 구두가 없더라구. 자, 들어갈까?”


앞서 들어가는 이안의 머리 풀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을 본 이래 이런 모습을 본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둘은 바람 부는 루프탑 바 안으로 들어서 안내해준 자리로 가 앉았다. 방콕 시내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우와~ 여기 멋지다. 루프탑 바라는데 처음 와봤어.”

“저도 처음 와봤어요. 투어 오면 거의 방에만 있었는데.”


이안은 정국과 메뉴를 보며 칵테일을 골랐고 다가온 점원에게 주문했다.


“머리는 어때?”

“괜찮아요 이제.”
“그래? 바람 쐬고 싶어서 아팠던 거 아냐?”


이안은 웃어 보였다. 바람이 생각보다 많이 불어 자꾸 풀어놓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부딪쳤다.


“여긴 머리 풀고 있을 데가 아니구나.”


이안은 혹시 몰라 손목에 끼고 있던 고무줄을 빼 머리를 묶으려 했다.



“묶지 마요. 지금이 더 예쁜데.”


이안은 정국의 말에 묶으려 올렸던 팔을 내리지도, 더 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묶자니 눈치 보이고 안 묶자니 이상했다.



“누나... 남자 친구 있어요? 아까 그냥 듣게 되었는데 연호라고...”
“연호?”


이안은 그냥 팔을 내렸다.


“내 남자, 친구지. 귀도 밝다. 이름을 듣고.”


잠시 후 점원이 핑크빛과 블루빛의 칵테일을 들고 와 앞에 놓아주었다.


“색깔도 이쁘네.”


이안은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 후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여기도 멋지다. 유럽하고 다른 매력이 있어.”

“누나 그렇게 입은 거 처음 봐요. 화장한 것도 처음 보고.”


정국도 푸른색 칵테일을 마셨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눈길은 유리 너머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외 나가니까 뭔가 멋 좀 부리고 싶어서 산 건데 아까 생각나서 입어봤어. 구두까지 들고 올 생각은 못했지만.”


날리는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잡고 바라보며 웃는 이안의 모습은 예뻤다. 밤하늘 속 불빛이 주는 몽롱한 분위기 때문일까, 정국은 함께 하는 시간만으로 만족하려 했던 마음을 비집고 현실적으로 다가가고 싶은 욕심이 솟는 것을 느꼈다. 예쁜 구두를 사서 주고 싶고 저 사람의 손을 잡고 이 밤을 걸어보고 싶은 욕심.

이안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지민아. 나? 루프탑. 정국이랑 와 있어. 너도 올래?”


지민과의 전화를 끊고 바라보는데 정국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그래? 머리 또 아파?”

“왜 저한테 안 물어봐요? 제가 다른 누군가가 오는 걸 원하는지 아닌지 왜 묻지 않아요?”


정국은 자기 입에서 나가고 있는 말을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예쁘게 입고, 화장하고...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 봤어요? 난 누나가 별생각 없이 그렇게 하고 온 게... 화가 나요.”


자신의 말이 두서없이, 맥락 없이 쏟아졌음을 알고 있었지만 다시 담을 수도 없었다. 이안은 말이 없었고 정국은 일어섰다.


“저 가볼게요.”


바로 몸 돌려 걸어 나가 루프탑 바를 빠져나갔고 이안은 정국이 남기고 간 칵테일 잔을 바라보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촛불이 유리잔에 비추어 흔들리고 있었다.

정국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내려왔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며 숙소가 있는 층 문을 열고 재빨리 걸어 방으로 들어가 방문이 닫히자마자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우리, 사랑할 시간










얼마 안 있어 지민이 올라와 이안을 찾아내 정국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정국이 갔어요?”
“응...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라구.”

“엥? 이거 얼마 마시지도 않았네.”


지민은 정국이 남기고 간 칵테일을 마셨다.


“안 피곤해? 내일도 공연 있잖아.”

“괜찮아요. 이렇게 술 한잔 마시고 푹 자면 다 풀려요.”


잔을 내려놓은 지민은 그제야 이안의 다른 모습을 확인했다.



“누나 이쁘네~ 치마 입은 건 처음 본 것 같은데? 잘 어울려요.”
“그런 것 같아. 나도 방금 전에 알았어. 원피스가 엄청 어울린다는 거.”

 

파리에서의 자신처럼 무언가 다른 것이 마음속에 있었나 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설마... 하는 생각은 접기로 했다. 설마 하며 드는 생각이 스스로도 어처구니없어 고개를 저었다.


“왜요?”
“아냐, 저녁은 먹었어?”

“시간이 몇 신데요~ 여기 쌀국수가 맛있다고 해서 먹었어요. 진짜 맛있더라구요.”


둘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했고 지민이 내일 있을 공연에 무리 가지 않게 쉴 수 있도록 적당한 시간에서 멈추고 나와 헤어졌다. 이안은 지민과 헤어져 혼자가 되어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아까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지만 결국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하나였다.

잊자, 머릿속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정국은 씻고 누워 천정을 바라보았다. 나간 말은 나간 거고 자기의 말을 이안이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했다. 그래도 그녀가 어떻게 할지는 예상되었다.

아마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할 테지. 내가 한 행동과 말은 한 꾸러미가 되어 어딘가로 밀려나 버리겠지.

이기적으로, 애처럼 들릴지 몰라도 정국은 그저 둘이 있고 싶었다. 꿈만 꾸는 건데... 기분 좋은 꿈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랬던 건데 바보스럽게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우리, 사랑할 시간










공연이 시작되기 전 준비하는 시간에 어쩌다 마주치게 된 이안은 예상대로 평소와 같았다. 변함없는 그녀를 보며 그래도 조금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마음이 무너졌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떤 마음으로 그 말을 한 건지 알 텐데. 모른 척이든 알고 싶지 않은 것이든 다만 알 것 같은 한 가지는 그녀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이젠 꿈으로라도 간직하고픈 시간들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자라난 마음들은 잘라내지 못하겠지만 이젠 물은 주지 말아야 하는 거다.

공연이 시작되고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무대 위에서 행복하게 웃었지만 마음은 무거워 별빛 바다를 이루며 환호하는 팬들에게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미안해요... 내 마음이 여기에 온전히 다 있지 못해서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





아시아 투어 마지막 일정인 홍콩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안은 창가에 앉아 아래로 펼쳐져 있는 구름들을 바라보며 정국을 떠올려 보았다. 자신이 괜한 추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예 신경을 안 쓸수도 없어 정국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어도 한정된 공간 안에서 결국 마주쳤을 땐 움츠러든 마음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만일 맞다면 그대로 잊히기를... 정해진 시간에서 벗어난다면 그건 무척 자연스럽게 잊힐 일이 될 거라 마음으로라도 정국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안은 소정과 함께 전철을 타고 홍콩의 북부로 건너가 소호 쪽을 돌아다녔다. 유명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보려 했지만 마침 갔을 때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걸어 올라갔다. 소호 거리는 이국적인 색채가 짙은 곳이었는데 올라가는 계단 중간중간에 있는 작은 펍들은 저녁이어서 술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안과 소정은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집을 찾아 먹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주려 넉넉히 사기도 했다.


“언니, 이 타르트 정말 맛있네. 숙소 가서 커피랑 함께 먹어봐요.”
“그러자, 이젠 갈까?”
“어쨌든 조금 돌아다녀보기는 했다. 홍콩 일정은 좀 빡빡해서 될까 싶었는데 말이에요.”
“이번에도 숙소가 관광지에서 가까워서 가능했어. 그동안 대개 다 그랬던 것 같아.”
“맞아, 주변에 침사추이도 있죠? 우리 팀 애들 거기 갔겠네.”
“숙소에서 걸어서 십분 정도 걸리더라.”
“가까우니까 한 번 정도는 갈 수 있겠죠 뭐. 난 여기로 와보고 싶었거든요. 언니가 같이 와줘서 든든~합니다.”


이안은 엄지척을 하며 웃어주는 소정을 보며 고마움을 느꼈다. 소정이 있어 오히려 이안 자신이 든든했던 시간들이었다. 특별한 인연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사람들 속에 섞여 마음 편히 지내자 싶은 생각으로 왔지만 이렇듯 좋은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시간들. 소정이, 남동생 같은 지민이, 그리고... 그리고...

아까의 상황이 떠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호텔에 도착해 방으로 갈 때 마주친 멤버들과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으며 보지는 않았으나 보고 있다는 눈길이 느껴지던 정국에게는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스스로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보인 어쩌면 실수일지도 모를 그 행동을 그보단 어른답게 받아들여 줄 수 없었던 건지... 이안은 숙소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편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자며 마음을 다독였다.





계속하던 대로 이안은 공연장에 도착해 작은 처치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청소를 하고 약품들 외 필요한 물품들을 바로 찾아 쓰기 편하게 정리를 해놓았다. 그리고 케어 팀장을 찾아 오늘 다른 챙겨야 할 일이 있는지 물었다.


“아니, 특별한 건 없어요. 멤버들 컨디션도 좋네. 조만간 한국 들어가게 돼서 그런가.”


멤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스태프들이 한국 들어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을 조금 들뜬 분위기가 말해주고 있었다. 이안은 세상 구경하며 가슴 트이는 경험도 좋긴 했지만 한국으로 들어갈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숙제 못 끝낸 채 학교 가는 기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별빛 바다를 보며 찾기를 소망했는데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원하는 게 뭔지, 찾고자 하는 것이 있는 것인지 답을 찾지 못했다. 오늘도 열심히 걸어가고 있을 교수님에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안은 공연장 밖으로 나가 리허설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난치며 웃고 있는 멤버들이 보였다. 멀리서 지민이 알아보곤 크게 손 흔들며 웃어 주었고 다른 멤버들도 짧게 손인사를 했지만 정국은 잠시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이것도 숙제라면 숙제구나...”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시간이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어지는 다른 연습들을 바라보려 하는데 무대 옆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다급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 어-!!!”


이안은 사고가 났음을 직감하고 달려갔다. 가슴이 덜컹거리기 시작했고, 두려웠다.


“비켜봐요, 비켜보세요!”


사람들을 헤치자 눈에 들어오는 건 바닥에 등을 댄 채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조명 설치 기사였다. 이안은 빠르게 다가갔다.


“구급차 불러주세요! 사고 상황 보신 분 있으세요?”


누군가 나섰다.


“안 되는 조명 하나 고치려 올라갔는데 저기서 떨어졌어요.”


사람이 가리킨 곳은 6미터가 넘는 곳이었지만 떨어지면서 다른 곳에 부딪칠 곳이 없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호흡과 맥을 확인해 보았지만 모두 약했고 되는대로 핸드폰 조명으로 동공을 확인했다. 다행히 반응이 있었다. 상지와 하지를 살펴 촉진으로 최대한 할 수 있는 확인을 해 보았다. 골반쪽이 심상치 않았다. 장기 파열로 인해 복부 출혈이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확인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구급차 연락했어요. 5분 안에 온대요.”


한 시간 같은 5분이 지날 때쯤 구급차가 도착했다. 이안은 응급구조사 같은 사람에게 영어로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그는 알았다며 고맙다고 말했다. 구급차가 황급히 떠나가고 나자 이안은 자리를 벗어나 빠른 걸음으로 장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잠시라도 어디든 아무도 없는, 아무도 오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찾으러 돌아다니다 아무도 없는 탕비실 같은 곳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 뒤에서 팔을 잡아 돌려세웠다.



“누나.”


정국이었다. 놀라 동그래진 눈이 자신을 걱정스럽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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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또로록  39일 전  
 안이언니 걱정되네요ㅠㅠㅠ

 또로록님께 댓글 로또 1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수수까아저씨  63일 전  
 이안 멋져!요!

 답글 1
  『폐뮤늉』슙슙  66일 전  
 작품 알림에 한 번 치이고 글에 두 번 치이고 맨 첨에 나온 지민옵의 사진에 세 번 치이공 마지막 작가님 글솜씨에 죽었씀다 .. 크흡 ..

 답글 1
  지민뽀듕  69일 전  
 안이★♥♥♥♥♥(

 답글 1
  lucy8  70일 전  
 담화가 기다려지는 글♥

 lucy8님께 댓글 로또 2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2
  BEST_OF_ME_  70일 전  
 흐어 해늘님ㅠㅠㅠ 저 옵미인데용... 잘못눌러서 로그아웃이 됐는뎀.. 비밀번호를 잊어서 계정을 못찾았어용ㅠㅠㅠㅠ 포인트 많이 모았었는데 죄송해요ㅠㅠ 근데 이안이 진짜 멋있네용❤❤

 BEST_OF_ME_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샛별-★  70일 전  
 이제 봐서 미아내요ㅜㅜ이와중에 이안..♡♡))

 답글 1
  CARAT♡ARMY  70일 전  
 에구구ㅠㅠ 이와중에 이안이 너무 머싯써ㅠㅠ

 답글 1
  깜찍아아  70일 전  
 이안 너무 너무 멋져여 (엄치척

 깜찍아아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옐율  71일 전  
 옐율님께서 작가님에게 3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20 개 댓글 전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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