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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05. 우리, 사랑할 시간 - W.해늘°
05. 우리, 사랑할 시간 - W.해늘°






우리, 사랑할 시간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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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까지의 런던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멤버들도 스태프들도 다치지 않고 끝난 것이 무엇보다도 다행스럽게 여겨져 이안은 풀어진 긴장감에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와 숙소로 돌아와 쉬기로 했다. 멤버들을 챙겨주는 일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챙겼어야 했던 소정은 침대 위에 물먹은 종이처럼 뻗어 있었다.


“아우··· 언니, 새해 되고 한 살 더 먹으니 체력 완전 달리네요.”
“백스테이지는 정말 바쁘더라. 난 한 것도 없이 피곤하네.”
“언니는 여기저기 다 뛰었잖아요. 우리 일도 도와주고, 케어팀 일도 하고.”
“다치지만 않으면 난 다 괜찮아.”


침대에 누워 있던 이안은 일어나 캐리어 가방을 보았다.


“짐 정리해야 하는데···.”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넘어가야 했다. 그러니 오늘이 영국에서의 마지막 밤이었고 이대로 누워 있는 채로 보내는 것은 너무 아쉽다는 생각에 한 번 더 런던의 밤거리를 보러 가고 싶어 졌다. 시간을 확인한 후 더 늦어지기 전에 나가야 할 것 같아 이안은 가방을 챙겨 들었다.


“언니, 또 나가시게요?”
“응, 야경 좀 보려고. 쉬고 있어~”
“밤인데··· 조심히 다녀요, 언니.”


이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겉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우리, 사랑할 시간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템즈강에 이르니 멀리서도 켜진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런던 아이가 보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야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지만 조금 늦은 시간이라 커피를 파는 곳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낮과는 다르게 걸어가며 내내 바라본 밤의 템즈강은 무척 고요해 보였다.  



런던아이가 가까워져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타보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이렇게나마 가까이서 구경이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정면으로 잘 보이는 곳으로 다가가는데 한 남성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척 낯익은 차림이라 설마, 하는 생각으로 걸어가며 주시해보니 검은 모자를 쓴 정국이었다.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고민스러웠지만 주변을 보니 혼자 온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안 되겠다 싶어 조심히 이름을 불렀다.


“정국아.”


조금 놀란 듯한 정국이 이안을 바라보았다.



“어, 누나.”
“구경 왔어?”
“네, 누나도요?”
“응, 근데 위험하게 왜 혼자 왔어.”
“누나가 더 위험한 거 아니에요?”


정국은 웃어 보였다. 넌 스타잖아, 라는 말을 하려다 이안도 웃어 보였다. 왠지 지금의 정국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밥은 먹었고?”
“아뇨, 별로 생각 없어서 안 먹었어요.”
“그래도 뭐 좀 먹을래?”

“사주실래요?”


한참 낯설어하며 눈도 안 마주치던 정국이었는데 조금 더 말이 편해진 것 같았다.


“그래, 저쪽으로 가볼까? 갈만한 데가 있나 한번 보자.”


도로를 건너려 서 있다가 정국의 몸이 조금 앞으로 나와 있어 이안은 팔로 정국의 몸을 뒤로 살짝 밀어주었다.


“위험해, 안으로 들어와.”
“네.”





다행히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열려있는 펍이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저마다의 대화에 집중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안과 정국은 런던아이가 보이는 창가 쪽에 앉아 있는 메뉴 중 가볍게 먹을 수 있을 만한 것으로 주문했다.


“공연 끝나고 피곤하지 않아?”
“아뇨, 괜찮아요.”
“어려서 그런가?”


이안은 웃었다.


“어리지 않아요. 22살인데요.”


31살의 눈엔 충분히 어려 보였지만 이안은 ‘그래’라는 대답으로 가볍게 응해줬다. 병원 안에서만 살다시피 한 자신에 비해서 일찍 사회생활하며 이만큼의 자리까지 올라왔으니 나이가 어떻든 그 경험치는 자신보다 어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광 좀 하셨어요?”
“응, 숙소에서 다 가깝게 있길래 걸어서 다녀왔어. 박물관 보지 못한 건 좀 아쉽긴 했지만."
“박물관 좋아하세요?”
“좋아한다기보단 그냥 보고 싶었어. 어떤가 하고.”

“누난 남준 형이랑 취향이 비슷한 것 같아요. 누나도 책 좋아하죠? 남준 형도 책 엄청 좋아하는데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대개 다 그런가 봐요.”


정국의 말에 이안은 웃으며 물었다.


“넌 뭘 좋아하는데?”

“전 운동이요.”


마침 시킨 음식들을 점원이 가져다주었다.


“먹어. 맛있어 보인다.”
“네.”


별로 생각 없었다던 정국은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기 시작했고 정국으로부터 시선을 거둬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런던아이의 불빛이 잔잔히 흐르는 템즈강에 비추어 함께 일렁이고 있었다. 또 여기를 올 일이 있을까 싶었다.

온다면 그때의 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인 걸까.


설레는 마음으로 야경을 보러 왔지만 그 마음은 사라지고 없었다.


“야경 예쁘네요. 한 번 타보고 싶었는데, 저거.”
“런던아이?”
“네, 노을 질 때 런던 시내 풍경이 끝내준데요. 블로그에서 봤거든요. 그래서 못 탈 거 구경이나 해보자 싶어 왔어요.”
“다음에 올 때 타봐. 넌 또 기회가 주어질 수 있잖아.”

“누나도 다음에 기회 되면 우리 콘서트 할 때 또 같이 오시면 되잖아요.”


다시 한번 같이··· 이안은 농담으로라도 쉽게 답할 수 없는 것이기에 다른 이야기를 하려 물었다.


“맛은 어때?”

“솔직히 맛은 없어요.”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맛없다면서도 정국은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참, 지민이는 괜찮니? 케어 팀장님도 별 말 없으시고 하길래 묻진 않았는데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지민이 형이 몸이 좀 약해요. 뚜렷이 아픈 데가 있는 게 아니라 피곤한 것 같더라고요.”
“그렇구나··· 지민이가 몸이 약하구나···.”
“누난 지민이 형이랑 제일 친해진 것 같아요.”
“왜, 우린 지금 친해지는 중이잖아.”


한 손에 턱을 괸 채 미소 지어 보이는 이안은 실내에서도 모자를 벗고 있지 못하는 정국을 바라보았다.


“짧게 봤지만 스타로서의 삶은 멋지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하고 그러네···. 내가 너무 주제넘었나?”

“아뇨··· 우리 팬들도 알아요. 그래서 고맙고, 더 잘 해내려고 노력하는 거고. 힘들더라도 이게 영원한 건 아니니깐요.”


정국은 웃어 보였지만 어린 스타의 고뇌를 조금 엿보게 된 것 같아 이안은 괜한 질문을 했나 싶었다.


“누나는 콘서트 끝나고 나면 돌아가서 병원 의사일 하시는 거예요?”
“글쎄··· 고민하는 중이라.”
“에? 왜요?”
“잘 해낼지 모르겠어서.”
“잘하실 것 같은데···."


이안은 살짝 웃었다.


“여기에서 하는 일에 우선 책임을 다해야지. 그나저나 그렇게 춤추면서 노래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보면서도 신기하더라.”
“그거 엄청 노력한 거예요.”





가볍게 맥주 한잔씩 마시며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정국을 만난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야경을 바라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어디까지 끌려 들어갔을까.


전공의 시절은 목표도 있었지만 무언가를 생각할 틈 없이 바빴기에 좋았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바라보게 된 길은 마치 방향타 없는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와 있는 기분을 들게 했다. 그러나 눈앞의 바다에 대해 길게, 깊게 생각하지 말자 다독였다. 지금의 일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고 시간은 아직 있으니까.


이안이 중간중간 시계를 보며 숙소로 돌아갈 시간을 체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나, 저 때문에 제대로 못 본 거 아니에요?”
“아냐, 여기 앉아서 편하게 봤잖아. 그리고 가는 길에도 볼 테고. 이만 돌아갈까?”
“네.”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일어섰다. 가게도 파하는 분위기였다.





거리에 가로등 불빛이 예쁘게 줄지어 멀리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날씨가 많이 쌀쌀한 것 같아 괜찮냐고 물어보려는데 이안이 먼저 물었다.


“날 추운데, 너 괜찮니?”
“괜찮아요. 추워요?”
“옷 따뜻하게 입고 와서 괜찮아. 잠깐만.”


이안은 가방에서 스카프를 꺼냈다.


“목에 두르자. 가수가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지.”


스카프를 건네려고 하는데 그에 먼저 정국이 고개를 내밀었다. 매어 달라는 뜻인 것 같아 이안은 자신보다 큰 정국에게 팔을 뻗어 스카프를 매어 주면서 웃음이 나는 것을 참았다.  


“됐다, 가자.”
“네.”


코디 누나들에게 스타일링 받는 것에 익숙해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목을 내밀었다. 이안이 매어줄 땐 늦었고, 민망스러웠다.


먼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이안에게 걸음을 맞추며 함께 걷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 좀 쐬고 싶어 걷다 여기까지 온 것인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안을 만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런던의 밤거리를 걷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했다. 말없이 걷고 있어도 말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있을 수 있어 좋았다. 가로등이 길게 이어져 있는 템즈강의 그 길을 따라 숙소를 향해 한참을 걷기만 했다.










우리, 사랑할 시간










암스테르담은 영국보다 더 추웠고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틀째인 오늘 공연만 하고 나면 내일은 베를린으로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지민은 어제 리허설을 할 때부터 몸이 더 좋지 않아 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 근육통이 시작되려는 건가 싶어 개인적으로 챙겨 온 약을 먹었지만 크게 좋아지지 않는 것 같았다. 케어 팀장님께 말할까도 싶었지만 그저 잘 쉬면 괜찮아질지도 모를 일로 모두를 걱정하게 만들고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것 같아 스스로 조심해보자 생각했다. 아파지게 된다 하더라도 베를린으로 가면 며칠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때까지 버텨보자 싶은 마음이었다.


“지민아, 괜찮아? 너 좀 안 좋아 보여.”


소정의 질문에 지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누나.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요.”
“속이 어떻게 안 좋은데? 케어 팀장님한테 말했어?”
“그 정도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누나.”


다른 멤버의 개인 공연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자신의 차례였다. 무대 올라가기 전 한 번 더 메이크업을 체크하고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다시 다듬고 심호흡을 했다. 최고의 무대가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고 싶었다.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지는 무대를 향해 걸어가며 지민은 주먹을 꼭 쥐었다. 무대 위에서만큼은 이 몸이 나비처럼 가볍기를 기도했다. 강렬한 첼로 소리의 전주로 시작되는 자신의 곡이 나오자 꿈속 같은 무대에서 노래와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으로 지민은 날아올랐다.





공연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와 멤버들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정국이 지민의 바로 옆방이라 함께 걸어가는데 방앞에 도착해 자신의 방문을 연 지민이 정국을 불렀다.



“정국아···.”
“네.”
“이안 누나 불러줘···.”


말을 마친 지민은 그대로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형!”


정국은 급히 가방도 팽개치고 지민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요? 아파요?”
“나 좀··· 데리고 들어가.”


정국은 지민을 부축해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게 했다. 놀란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고 연락처를 찾아보았지만 이안의 번호가 없었다. 그러다 소정과 있던 것이 생각나 연락했다.


“누나, 저 정국인데요, 이안 누나 있어요?”
-응? 잠깐만.


잠시 뒤 이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누나, 지민이 형이 쓰러졌어요. 빨리 좀 와주세요. 빨리요.”
-알았어. 몇 호야?


호수를 말해주고 전화를 끊은 정국은 거친 숨을 쉬고 있는 지민 곁으로 다가왔다.


“형, 이안 누나 온대요. 케어 팀장님한테도 연락할 게요.”

“아니야··· 하지 마··· 일 커져··· ···."


무슨 믿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안이 오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럴 것 같았다.


잠시 후 이안이 방으로 찾아왔고 안으로 들어서며 빠르게 정국에게 질문했다.


“무슨 상황이었어?”
“모르겠어요. 문 앞에서 확 주저앉더라고요.”
“그동안 다른 증상 이야기 한 건 없었고?”
“아뇨, 없었어요. 며칠간 계속 안 좋아 보이긴 했는데 그저 피곤하다고만 말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어요···.”


이안은 지민 곁으로 다가가 우선 이마에 손을 얹어 보았다. 무척 뜨거웠다. 들고 온 구급상자 안에 있던 체온계를 꺼내 재보니 39.8도였다. 청진기의 차가움에 놀랄 것 같아 옷에 문질러 따뜻하게 만든 후 지민의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청진기를 대어보곤 몇 가지 질문으로 체크 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아프다고 느껴지는 곳이 있어?”


지민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구토는?”


고개 젓는 지민은 점점 더 기력이 없어 보였다.


“일단 열을 내려야 해.”


이안은 해열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여있는 물을 갖고 와 몸을 일으켜 먹인 후 다시 눕게 한 뒤 화장실로 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국에게 말했다.


“지민이 윗옷 좀 벗겨줄래?”


정국은 지민의 채 벗지 못한 신발부터 벗겨 침대 아래로 놓고는 차례로 옷을 벗기고 있었고 지민은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찡그렸다.


“정국아, 이리 와 봐.”


이안은 정국에게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을 내밀었다.


“지민이 몸 좀 닦아줘. 너무 세게 말고.”
“네."


이안은 들고 온 구급가방 안에서 상자와 수액을 꺼내 들고 다가와 상자를 열고 정맥 주사를 놓을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추워요···.”
“열이 내려야 돼. 안 그러면 응급실 가는 수밖에 없어.”


지민은 덜덜 떨기 시작했고 바라보던 정국은 너무 안쓰러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막막했다.


“누나, 지민이 형 왜 그러는 거예요?”
“발열만으로 진단하긴 힘들지만 살펴본 바로는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여. 투어 떠나기 전에 지민이 건강검진한 거 체크해 봤을 때 다른 원인이 될만한 것도 없었고. 정확한 건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해봐야 아는 거겠지만··· 어른들이 가끔 하시는 말씀 같은 거 아닐까 싶다. 진이 빠진다고 그러잖아? 쉽게 말해 몸살.”
“몸살이요?”
“응, 몸이 보내는 신호야. 좀 쉬어달라는.”


지혈대를 꺼내 지민의 팔을 묶고 혈관을 찾아 주사침을 삽입한 후 상자 안에 세팅해놓은 것들을 연결한 뒤 수액의 속도를 조절했다.


“정국아, 수건 줘봐.”
“제가 할게요.”
“아냐, 앉아 있어.”


이안은 수건을 다시 적시기 위해 일어나 화장실에 갔고 정국은 눈을 감고 있는 지민을 바라보았다. 턱까지 떨리고 있었지만 이 악물고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까의 상황이 떠올려졌다. 지금껏 한 번도 지민이 그렇게까지 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무서웠는데··· 이안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화장실에서 나와 지민의 옆에 앉은 이안은 지민의 몸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누나, 제가 할게요.”
“괜찮아. 너야말로 가서 자. 열 내릴 거니까 걱정 말고.”
“아니에요, 잠도 안 와요.”





두 시간 가까이 닦아내던 이안은 다시 체온을 재보았다. 38.6도.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다행스러워 안도의 숨을 내쉬다 옆을 돌아보니 정국은 소파에 앉아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잠 안 온다더니···."


피식 웃음이 났다. 덮을 것이 있나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아 화장실에서 커다란 목욕 타월을 찾아내 덮어주곤 다시 지민에게로 시선을 옮겨 지켜봤다. 눈으로도 처음보단 편안해진 호흡이 가슴의 오르내림으로도 확인되었지만 다시 청진기로 숨소리를 들어 보았다. 지민이 살짝 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어때, 살만해?”


지민은 열과 졸음으로 몽롱한 상태인 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누나···."
“응”
“무서웠어요··· ···.”
“뭐가?”

“몸이 아파서··· 안 나을까 봐···.”


지민의 눈 끝에 눈물이 맺혔다가 흘러내렸다. 이안은 옆에 있던 수건으로 살짝 눌러 닦아 주었다.


“몸은 마음과도 연결되어 있어. 이젠 괜찮아. 안심하고 자.”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잠들었다. 이안은 발치 아래에 있던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 주었다. 푹 잘 수 있도록 더 이상 몸을 닦진 않았지만 열이 내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간마다 조심히 열을 재고 다 떨어진 수액을 갈아 주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새벽 6시가 넘을 때쯤엔 열은 완전히 내렸고 이안은 그제야 모든 긴장을 풀고 잠든 지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낫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는 지민의 그 말속에서 이 사람이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느껴져 조금 안쓰러우며 최교수가 떠올랐다.


최교수는 늘 자신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 말했지만 그 일이 결코 직업윤리 의식만으로 이어 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곁에서 바라본 그는 늘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환자가 그곳을 넘지 않도록 놓치지 않으려 했고 소생도 죽음도 책임을 다했다. 곁에서 짧게 겪은 그 시간 동안 이안은 그의 모습에서 가끔 아빠를 떠올리곤 했었다.  


이안은 조심스레 지민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열이 내린 이마는 땀이 나 있었다.


“누나···."
“열 다 내렸어, 걱정 마. 물 좀 마실까?”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안은 팔로 지민의 어깨를 감싸서 살짝 일으켜준 후 물을 마시게 해 주었다. 다시 누운 지민은 이안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누나밖에 생각나질 않았어요···."
“잘했어. 앞으로도 아플 땐 누나한테 꼭 말해. 물론 케어 팀장님한테 먼저 말하고. 오늘 일은 내가 알게 돼서 한 거라고 말씀드릴 테니. 그리고 이후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아진다면 그땐 꼭 병원 가야 해. 알았지?”


지민은 훨씬 나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그런 지민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잘 먹고 잘 쉬어. 입맛 없어도 스프라던가 매니저한테 부탁해서 죽을 좀 구해서라도 먹어야 돼. 자, 이젠 바늘 빼줄게.”


이안은 조심스럽게 바늘을 빼고 알코올 솜으로 소독한 다음 밴드를 붙여 주었다. 그리고 일어서 구급가방에 물건을 챙겨 넣었다.


“간다. 더 자. 정국이는 소파에 있어.”


이안은 엄지손가락으로 정국을 가리키며 웃어보인 뒤 손을 작게 흔들곤 조심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이안이 나간 뒤 정국도 일어났다. 깨어 있었던 것 같았다.


“형, 괜찮아요?”
“응, 좋아졌어. 미안하다···.”
“나한테 미안할 게 아니라 형 몸한테 미안해야죠. 그렇게 무리하면 큰일 나요.”
“투어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몸이 안 좋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 그리고 빠지면 안 되니까···.”
“어쨌든 다행이에요. 형 그렇게 되는 거 보고 정말 많이 놀랐어요.”
“응··· 이안 누나가 와줘서 다행이었어. 누나도 엄청 피곤하겠다···.”
“오늘 베를린으로 가는 건데··· 갈 수 있겠어요?”
“응, 오전 동안 푹 자면··· 괜찮아질 것 같아. 참, 누나가 뭐 좀 먹으라고 했는데···.”
“매니저 형한테 죽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 더 자요 형.”
“응, 너도 가서 편히 자. 피곤하겠다.”





정국은 밖으로 나가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샤워를 하곤 조금 더 자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민의 방에서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때 보게 된 장면이 떠올랐다. 잠든 지민과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던 이안의 모습이었다. 잠에서 깨었지만 왠지 그런 이안에게 말을 걸 수가 없어 그 상태로 깨어난 지민과 그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었다. 조명 때문인 건지 그녀가 보여준 행동 때문인 건지 지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지은 이안의 미소가 무척 다정해 보였었다. 문득 런던 밤거리에서 자신의 목에 스카프를 매어주느라 가까이 다가왔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말없이 템즈강가를 따라 걸었던 그 시간들도.


정국은 일어났다. 오지 않는 잠은 포기하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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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벨라와꾹꾹이♡  15일 전  
 실제로는 더 힘들텐데 좋은모습만 보여주려구버티는 탄이들이겠죠... 안쓰러워ㅠㅠ

 벨라와꾹꾹이♡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⁰⁷아수신  16일 전  
 진짜 오빠들도 저럴까봐 속상하네요 ㅠㅠㅠ

 ⁰⁷아수신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망개조아  29일 전  
 아프지마요 진짜ㅠㅜㅜ

 답글 0
  또로록  41일 전  
 열내려서 다행이다ㅠㅠㅠㅠ 아프지마ㅠㅠㅠㅠ

 답글 0
  깡미★  43일 전  
 지민아 참으면 안되요ㅠ

 깡미★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ekgus  49일 전  
 77ㅑ

 답글 0
  방꾹  49일 전  
 에구....아프지마...ㅠㅠㅠ

 답글 0
  수수까아저씨  63일 전  
 작가님을 오랫동만 알게된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작가님에 알람이 울릴때면 언제나 설레입니다
 그냥 사랑한다고요ㅠ

 답글 1
  선묘화  89일 전  
 아니 나 이 글 방금 읽었는데 왜 어디서 읽은것 같죠? 혹시 나한테 보내준적 있어요? 꿈에서 봤나? 쨌든, 글 잘 쓰신다구요❤

 선묘화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zxmn4118  92일 전  
 저 정도로 몸이 아플때까지 연습하고 하는걸보면 정말 팬들을 사랑하고 진심이고 보여주는 공연이 거짓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만들어내신 설정이지만 실제로도 저러는 경우가 분명 있을테니 더 겅감되고ㅠ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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