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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04. 우리, 사랑할 시간 (밖으로) - W.해늘°
04. 우리, 사랑할 시간 (밖으로) - W.해늘°






우리, 사랑할 시간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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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렸을 적 읽었던 한 명랑소설은 미국인 여주인공이 어느 부유한 친척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여행지인 프랑스 니스에서 미국 해군인 그 친척의 동생을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지는, 가계도가 어떻게 되는 건가 싶어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한 내용의 책이었지만 회색빛 드레스에 손목에 빨간 장미를 단 주인공이 선상 파티에서 남자 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읽으며 가슴 두근거리던 걸 여전히 기억한다.


그 주인공의 첫 여행지가 영국이었다. 비 내리는 날씨와 그다지 맛있지 않은 음식들로 표현되어 있긴 했지만 그런 영국이 무척 흥미롭고 궁금했었더랬다. 그런데 지금, 돈보다도 시간이 문제였던 상황을 벗어나 구경만을 위한 여행은 아니지만 영국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게 이안으로선 무척 신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곧 착륙할 거란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비행기는 무사히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다.



모든 입국 수속 절차를 마치고 나와 스태프들은 현지에 준비되어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멤버들은 벌써 호텔로 출발했다고 들었다.


“언니, 배고파 죽겠어요. 기내식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네. 호텔에서 짐 풀고 펍에 가서 간단히 먹을까요?”


소정은 추운지 몸을 웅크린 채 묻고 있었다. 미리 찾아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영국의 날씨는 서울보다 더 추웠다.


“그럴까? 나도 펍에 가보고 싶었어.”


소정은 뒤돌아 근처에 있는 다른 스태프들에게도 의견을 물었고 꽤 여러 명이 함께 하기로 했다. 호텔에 도착한 멤버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한 시간 뒤에 만나 선주, 매니저들과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 사랑할 시간










짐을 먼저 정리해야 하지만 만사 귀찮아 정국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침대 위로 엎어졌다. 깨끗이 세탁 되어 있는 이불의 향기가 좋았다. 그 상태로 좀 더 있고 싶었지만 그러다간 잠이 들 것만 같아 일어나 서울에서부터 챙겨 온 목욕용품을 꺼내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세면대에 필요한 물건들을 세워놓고 거울을 보자니 피곤해 보이는 자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또다시 시작된 해외투어, 설렘도 있지만 새해를 전후로 생각이 많아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때때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정신이 한 곳에 온전히 있지 못 할 때가 있었다.  최대한 그런 모습을 멤버들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영상들을 볼 때면, 아직은 자신만이 알아챌 수 있는 정도지만 갈 곳 읽은 눈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나이 먹어 그런 건가 하고 넘기고 싶었지만 겨우 21에서 22가 된 것임에도 가지고 있는 직업으로 볼 때, 나이의 변화는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고 행복해할 테지만 몇 년 후로 떨어진 미래를 생각해 볼 때 그 속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되는 것이 없어 조금··· 두려워졌다.


정국은 생각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씻자. 준비하고 나가서 맛난 거 먹자.”

 
샤워를 끝내고 나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시간에 맞추어 나가 보니 멤버들이 기다려주고 있었다.

 
“가자, 이사님이랑 매니저 형들 벌써 올라가 있어.”

 
남준이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멤버들 모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 기다리는데 익숙한 얼굴들 몇몇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스타일리스트 팀들이었는데 그 속에 이안도 함께 있었다.


“소정 누나, 이제 오는 거예요?”
“응, 짐 찾는 게 좀 시간 걸렸어.”

 
내리는 팀과 타려는 멤버들 사이에서 짧게 대화가 오고 갔다. 이미 안에 사람이 있어 멤버들 전부 타지 못하고 정국과 지민이 남아 다음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누나들 저녁은요?"


지민의 물음에 소정이 답해 주었다.

 
“우린 펍에 가기로 했어. 식사도 하고 간단히 맥주도 마시고."

“맥주? 아, 나도 이 팀에 끼고 싶다.”
 

술 한 잔이 하고 싶은 건지 지민은 소정의 말에 장난치듯 눈을 깜빡였다.

 
“우리 간다. 가서 맛있게들 먹어.”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지민과 정국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위로 올라가 식당으로 들어서 자신들의 일행을 찾아가 자리에 앉았다. 윤이 나도록 닦여 있는 접시들에 담겨 있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연이어 나오고 테이블에 올려졌다. 피곤함과 배고픔으로 말수가 줄어 있던 멤버들은 그제서 기운 내듯 식사를 시작했고 선주는 음식을 먹기 전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안아, 밥은?··· 펍에 간다고? 혼자?”

 
윤기는 밥을 먹다 멤버들에게 물었다.


“나도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우리도 펍에 가볼까?”

“형이 뭔 일이래요~ 바로 잘 줄 알았는데.”
 

놀리는 듯한 지민의 대꾸에 아랑곳하지 않고 윤기는 재차 멤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우리 지난번에 왔을 때도 펍에는 가보지 못했잖아. 그냥 근처에 있는 데서 간단히 마시고 싶어서. 분위기라는 게 있잖냐.”

“그럴까요? 피곤한데 맥주 한 잔은 하고 싶네. 캐스크 비어라는게 유명하데요.”
 

남준의 말에 자연스레 맥주 이야기가 오고 가는 사이 통화를 끝낸 선주는 잠깐 이야기가 끊긴 타이밍에 들어와 말했다.


“자, 그건 그렇고 내일 점심 이후에 여기 공연 기획자와 미팅 있어. 최종적 세부사항 맞춰보고 공연장 가서 리허설해야 돼. 알지? 6월에 페스타 때 잠깐 들어가는 것 빼곤 계속 해외에 있으니까 다들 건강 잘 챙겨서 아프지 말고 잘 지내다 돌아가자. 오케이?”

 
멤버들은 서로에게 건강하자며 옆에 있던 잔을 들어 부딪치곤 덕담하듯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윤기는 굳히기에 들어가듯 다시 물었다.


“그럼 남준이만 가는 거야?”

“저도 갈게요, 형.”
 

그다지 마음에 없던 정국은 오랜만에 윤기가 나가자는 말에 동행하기로 했다. 밤의 런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까 보니까 소정 누나랑 다른 스태프분들 같이 펍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도 그리로 갈까요?”
“아니, 우린 우리끼리 움직이자. 가서 만나면 만나는 거고.”

 
결국 최종 고사(?)한 남준을 제외하고 윤기, 정국과 지민이 몇 매니저들과 움직이기로 하고 로비에서 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정했다.










우리, 사랑할 시간










숙소 근처, 일단 사람들이 좀 많다 싶은 곳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시키고 이안을 포함한 일행들은 각자의 앞에 놓여 있는 맥주를 마시며 조금씩 다른 품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 건지 몰랐는데?”


헤어팀 균석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긴 했지만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알고 있었던 이안마저도 차갑고 청량감 있는 맥주에 익숙한 터라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지만 그래도 캐스크에 담겨 있던 영국 에일 맥주의 맛은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독특함이 있었다. 그리고 맥주 맛이야 어떻든 이안은 그저 그동안 자신이 속해 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들을 하는 현재의 상황이 즐거웠다.


“우리 내일 관광 나갈건데 언니도 같이 나가실래요? 우리 숙소 근처로 해서 관광 코스가 있더라고요.”


한잔을 다 비운 소정이 말했다.


“팀장님한테 들으니 점심 이후에 리허설한다고 하더라고. 나도 가야 하니까 오전 중에 하이든 파크부터 시작해서 볼 수 있는데 까지만 보고 오려고. 같이 나가면 좋겠지만 난 중간에 들어와야 하니까 아무래도 혼자 나갔다 오는 게 좋을 것 같아.”

 
헤어팀 미루가 맥주를 더 시키려 사람들에게 주문을 받으려 할 때 ‘어?’ 하는 표정으로 문쪽을 바라보았다. 몇몇 사람들이 따라 문쪽을 바라보았더니 방탄 멤버들과 매니저들도 이쪽을 바라보곤 환하게 웃으며 여기 있었냐는 듯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뭐야, 다들 여기서 만나네?”

 
매니저가 다가와 친근감을 표현하며 인사를 건넸다. 방탄 멤버들도 비어있던 옆 테이블로 앉아 결국 다 같이 모여 맥주 한잔을 하게 되었다. 맥주가 맛없다는 사람, 독특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해 각자가 원하는 선택을 하고 몇 사람들이 맥주 외 다른 음료를 주문하러 일어날 때 이안도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어 함께 일어났다.

 
“왜, 에일 한번 마셔보지.”

 
윤기의 말에 정국은 고개를 흔들었다.

 

“맛없대잖아요. 형은 위스키 파인데 웬 맥주?”

“그냥 펍에 와보고 싶었어.”
“와~ 근데 여긴 밖에서 서서 마시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창밖을 살피며 말하는 지민에게 소정은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건넸다.


“몸은 괜찮아? 오기 전부터 조금 안 좋았잖아.”

“괜찮아요. 다행히 내일 시간 있으니까 잘 쉬고 그러면 될 것 같아요. 많이 조심하고 있어요 누나.”
 




정국은 이안이 주문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의사는 영어도 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주문하러 간 사람들과 이안이 주문한 맥주들과 음료를 들고 와 테이블 위에 놓아주었다. 처음 마셔본 에일 맥주 맛에 윤기는 만족감을 표했고, 지민은 얼굴을 찡그렸다. 정국은 자신 앞에 놓인 탄산음료를 마셨는데 생각보다 시원하진 않았다. 이안은 연신 얼굴을 찡그리는 지민에게 웃으며 물었다.

 
“다른 거 마실래? 보니까 페로니라는 맥주가 맛있다고 그러던데. 종류가 많아서 시음도 할 수 있어.”
“그래요? 윤기 형, 이거 마실래요?”

 
윤기는 이미 한 잔을 비운 상태였고 지민이 내민 맥주잔을 받아 들었다. 즐겁게 수다 떨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 지민과 이안은 일어서 bar에 다가가 몇 가지를 시음해 보았다. 정국은 그런 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쉽게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지민의 친화력이 조금 부럽기도 하면서 어쩌다 보니 마주 앉게 된 이안과 아직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처음부터 제일 어렸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보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해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의 시작은 항상 고민이었다. 그리고 이상한 건 이안이 자신에게만은 별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음을 끝내고 선택한 맥주를 손에 들고 온 지민과 이안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거 괜찮다. 정국아, 마셔볼래?”

 
정국은 지민이 내민 잔을 들고 마셔본 뒤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내 거보다 낫네. 탄산음료가 별로 시원하지 않아요.”

“그럼 같은 거 마셔볼래?”
“이거 마시고요 형.”

 
이안은 잔에 남아 있던 맥주를 모두 마셨다.


“누나, 술 잘하세요?”


윤기가 물었다.


“그냥 맥주 한두 잔 정도. 얼마나 마실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의사들은 술 마실 시간이 별로 없겠죠?"
“음... 뭐, 많지는 않지.”


이안은 웃어 보였다.


“나 어렸을 때 ‘외과의사 봉달희’라는 드라마 했었는데, 너희들 아냐? 누나 알아요?”


지민과 정국은 고개를 흔들었고 이안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예전에 한 거야. 너네 둘은 한창 꼬맹이 었겠네.”


이안은 정국과 지민을 가리키며 웃었다.


“나 그때 그거 엄마가 보실 때 가끔 봤었거든. 근데 진짜 병원 생활이 그래요 누나?”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전공의 1년 차치곤 시간이 많아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드라마잖아. 재밌어야 하는 목적이 있는 거니까.”

 
전공의 1년 차를 모를 것 같아 이안은 간단히 부연 설명을 해주었고 이후에도 몇 가지 더 그 드라마와 실제 생활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더 해주었다. 정국은 처음 듣는 세상의 이야기에 신기해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조심스레 첫 질문을 했다.

 
“누나는 무슨 의사 선생님이에요?”
“나도 외과.”

 
대답해주는 이안을 바라보다 정국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럼 수술도 하고 그랬어요?”
“전공의는 주로 보조를 서. 집도를 하는 건 전공의 과정을 다 끝내고 난 이후 과정에서 하는 거지. 맹장 수술 정도는 상황에 따라 집도 할 수도 있고. 그나저나, 드디어 정국이랑 말 좀 해보게 되는 건가?”
“네? 아, 네... 제가 좀...”

 
지민은 귀엽다는 듯 정국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흩트렸다.

 
“이번엔 꽤 오래 걸리더라. 얘가 좀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 걸려요 누나.”
“나도 그래.”

 
이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이안을 보며 윤기가 팔짱을 낀 채로 웃었다.

 

“에이, 누나가 뭘요. 처음 본 날부터 우리 회사 식구들이랑 잘 어울리시던데~”
“그랬나?”

 



화제를 전환해 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안은 잠깐 병원에서의 생활이 떠올랐다. 최선을 다한다는 결심으로 하루하루 버텨내기만 했던 것 같았는데 그저 버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 드라마 속 주인공이 느꼈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냈던 뿌듯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늘 뒤이어 오는 그 마음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들로 마음이 조각나곤 했었는데... 아니다, 이안은 더 깊이 들어가려는 생각의 끝을 붙잡았다.

 
“누나도 별 말을 안 하시길래 말하기가 조금 그랬어요.”


갑자기 들려온 정국의 말에 이안은 고개 돌려 바라보았다.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시간 지나면 편해지겠거니 했지. 지금이 그런 것 같은데?”


이안은 활짝 웃어 보였다. 멤버들 중 덩치는 제일 좋은 것 같은데 늘 볼 때마다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이 어리구나 싶어 귀여웠다. 그러다 술 한 잔 하며 이야기를 하게 되니 역시 술은 훌륭한 매개체란 생각이 들었다. 지민이는 먼저 다정하게 이야기를 걸어오고 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지만 이안 스스로도 사실 어린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말을 아낀 것도 있었다.


“앞으론 말 걸어도 되는 거야?”

“네, 그럼 당연하죠 누나.”
 

처음으로 이안을 향해 정국이 웃어 보였다. 북적거리는 그곳에서 그렇게 영국의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 사랑할 시간










일어나는데 몸이 가볍지가 않았다. 아직 피곤이 덜 풀린 건가 싶어 지민은 물 한잔을 마신 후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약속 시간은 점심 이후라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더 이상 잠이 들 것 같진 않아 핸드폰으로 어젯밤 이안에게 들은 관광지를 검색해서 보았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볼 만한 곳이 많아 나가볼까 싶었지만 몸 상태도 그렇거니와 자신이 움직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숙소에 있기로 했다.


지민은 시간을 확인했다. 어제 이야기 한대로라면 이안은 지금쯤 밖에 있을 것 같아 처음으로 톡을 보내보았다.


/누나, 밖이에요?

 
생각보다 빠르게 답이 왔다. 아침을 먹는 건지 글보다 먼저 음식이 담겨져 있는 접시를 찍은 사진이 도착했다. 샐러드와 햄, 달걀과 빵으로 이루어져 있는 메뉴였고 사진 아래 간단한 글이 있었다.

 
//아침 식사

 
지민은 바로 이어 톡을 보냈다.

 
/맛있어 보인다~ 근데 어디예요?
//하이드 파크 갔다가 지금은 웨스트민스터 근처.

 
이안이 보내준 사진을 보니 배가 고파져 회사에서 방안에 준비해준 라면을 먹으려 일어나 컵라면 하나를 사진 찍어 ‘ㅠㅠ 전 라면’이라는 글과 함께 보냈다. 곧 잘 먹으라는 답이 웃는 표시와 함께 도착했고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방해할까 싶어 그만두었다. 라면을 준비하려는데 막상 먹으려 하고 보니 배고픔이 사라져 지민은 반쯤 뜯은 컵라면을 두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리허설해야 하는데... 몸이 가벼워질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안은 간단한 메뉴로 아침을 해결하고 웨스트 민스터를 둘러본 후 걸어가다 연호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다.

 
-이 오빤 이틀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있지만 넌 즐거워 보이니 행복하다. I’m so happy.

 
하이드 파크에서 장난스레 조금 곯려줄 마음으로 여기저기 사진 찍어 보냈는데 이안은 연호의 말에 미안해졌다.

 
“환자들 많았어?”
-새벽에 T.A(교통사고) 환자가 연달아 들어와서 정신없었다가 이제 좀 정리됐어.
“몸은 괜찮아?”
-당연하지~ 4월이잖아. 적응 완료. 너나 몸조심해서 다녀. 밤에는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그렇게 위험하지 않아.”
-조심하라면 조심해.
“알았네~”
-끊는다. 난 좀 잘 거야.

 
연호의 목소리 끝이 피곤으로 갈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쉬어.”
-응.

 
이안은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려 하는 걸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빅벤까지 갔다가 트라팔가 광장까지 들리면?”

 
시간을 대략 짐작하느라 말을 멈췄다.


“점심 전까지는 갈 수 있겠다.”

 



빅벤까지 걸어가니 템즈강 반대편으로 런던아이가 제대로 보였다. 시간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 예약을 하진 못했지만 숙소에서 멀지 않으니 시간이 된다면 꼭 밤에 나와서 봐야겠다 생각하며 트라팔가 광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멀리서부터 높게 솟아 올라 있는 넬슨 제독의 동상이 보였는데 그 동상보다 더 높은 하늘에서 헬리콥터 한 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영국의 에어엠뷸런스 였다. 환자를 싣고 날아가는 건지, 실으러 날아가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곳, 영국에 와서 우연찮게 보게 된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빠르게 지나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그 빨간 점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최교수가 말하는 여러 가지 외상센터의 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닥터헬기였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문제지만 최교수는 언젠가는 될 것이고 되야 한다며 그 모범으로 영국을 뽑곤 했는데 그걸 직접 보게 되다니... 한국으로 돌아가 만나게 되면 꼭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안쪽에 있는 분수로 가 앉았다.


잠시 광장 쪽을 바라보며 많이 걸어온 다리를 쉬고 있는데 톡이 와 확인하니 팀장이었다. 1시 반까지 아래로 내려오라는 내용이었다. 시계를 확인한 후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아 이안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숙소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 사랑할 시간










멤버들은 공연장에 도착해 회사 측 사람들과 현지 공연 제작자들과 함께 전반적인 리허설 과정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고 무대 위로 올라가 리허설을 하며 체크하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 백댄서들도 같이 올라와 동작을 맞춰보기 시작했고 무대 바로 아래서 이안은 백댄서들을 바라보다 멤버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안은 멤버들이나 백댄서들, 그리고 그 외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공연의 이면이 이렇게나 복잡하고 긴 시간의 준비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리허설을 마친 백댄서팀에게 다가가 이안은 아이스팩을 건넸다.

 
“누나, 아직 괜찮아요. 본 공연 때만큼의 강도로 하지 않는 거라.”
“그러다 아파. 미리미리 대비하는 거지. 관절 잘 풀어줘.”
“네, 그럴게요.”

 
돌아다니며 다른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다 멤버들을 관리하는 팀원들을 도와줄 상황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바라보았지만 몇 멤버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걸 보니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멤버들 사이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지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좀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자신이 나서서 물어보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있기로 했다.

 
“누나, 두통약도 있어요?”


한 백댄서 팀원이 다가와 물었다.


“응, 있지. 왜? 머리 아파? 어떻게 아파?”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그런 것 같아요. 가끔 그래요.”
“잠깐만.”

 
이안은 구급상자를 열어 두통약을 찾아내 건넸다.

 
“차례 될 때까지 앉아서 쉬어. 핸드폰 보지 말고. 속이 메스껍다거나 더 심해지면 얘기하고.”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이안은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간 댄서팀들이 자리에 남긴 아이스팩을 거둬 정리한 뒤 자리에 앉아 리허설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무대 위에 올라간 지민은 아까와는 다르게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 리허설은 끝이 났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 이안은 방에서 쉬고 있는 소정을 만났다.


“언니, 오전에는 잘 다니셨어요?”
“응, 보고 싶었던 곳이 다 숙소와 가까워서 걸어서 다녔어. 넌 어땠어?”
“말도 마요. 윤지가 먹은게 안 좋았는지 체해서 토하고 난리도 아니어서 바로 돌아왔어요."
“그래? 윤지 방이 몇 호지?”
“아이고~ 아니에요, 언니. 그러고 나서 괜찮아졌어요. 본인이 챙겨 온 약도 있어서 그거 먹고 쉬고 있을걸요?”
“그래?”

 
이안은 찾아갈까 하다가 혹 자고 있을지도 몰라 안 좋으면 얘기하라고 톡을 남겼다.


“언니, 밥 먹었어요?”
“아니, 배고프다. 너도 안 먹었니?”


격하게 끄덕이는 소정을 보며 웃었다.


“나갈까?”





이안과 소정은 밖으로 나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 어디 안 좋아요?”
 

정국은 내내 별로 말이 없는 지민이 걱정되어 물었다.



“아니, 피곤해서 그렇지 뭐. 호석이 형한테 난 피곤해서 방에서 쉰다고 전해줘. 씻고 눕고 싶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죠.”

 
지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속도 좋지 않아 이 상태에서 무리하게 먹었다간 체할 것 같았다.


“가서 밥 먹어. 난 쉴게.”
“네, ... 잘 쉬어요 형.”

 
정국은 지민과 헤어져 호석의 방으로 갔다. 룸서비스로 시킨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정국에게 호석이 물었다.

 
“지민이는?”
“피곤해서 방에서 쉬겠대요.”
“아까 보니까 표정이 안 좋던데. 어디 아픈 건 아니고?”
“잘 모르겠어요. 피곤하다고만 말해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기 시작한 멤버들은 지민으로 인해 나온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준아, 너 발목 아픈 건 어때?”

“괜찮아. 한국에서 계속 병원 다니면서 치료했잖아. 그리고 케어 팀장님이 저녁마다 봐주고 계셔.”
 

호석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은 먹고 있는 멤버들을 한번 쭉 훑어보더니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스스로 챙긴다고 하더라도 무대 위에서는 그런 생각 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무리하게 되고, 무리가 되는지도 모르고 움직이게 되고.”
 

별말 없던 윤기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니까 잘 쉬어야 돼. 쉬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지민이 수프라도 먹일까?”
 

태형의 말에 정국은 손을 흔들었다.

 

“그냥 푹 자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스테이크 조각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던 호석은 약간의 탄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끓여주는 김치찌개 먹고 싶다. 돼지고기 팍팍 넣어서 지글지글 끓는 김치찌개.”
“난 참치 넣은 김치찌개.”
“난 두부조림. 울 엄마가 만든 거 끝내주게 맛있는데.”
“라면 먹을까요?”


정국의 제안에 멤버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구비해져 있는 라면들 중 원하는 걸 선택해 정국에게 말했고 석진이 정국과 같이 준비하려 일어섰다. 하다 보면 익숙해지지만 이제 해외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국에서 먹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아니, 그건 어쩌면 음식이 아니라 부족한 시간 안에서 채워지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정국은 죽 늘어져 있는 6개의 컵라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 나누고 있는 나머지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자, 다 됐어요.”

 
멤버들은 정국과 석진이 나누어 주는 라면을 받아 들고 먹기 시작했다. 방안에 후루룩 거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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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망개조아  29일 전  
 오빠들은 지금 뭐하고있을까요,,

 망개조아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또로록  41일 전  
 아고 잘 챙겨먹어야되는데ㅠㅠㅠ

 답글 0
  방꾹  49일 전  
 와...진짜 울 집에 있는 반찬 싹 쓸어서 다 보내주고 싶다..
 

 답글 0
  수수까아저씨  63일 전  
 짐오빠 아프면 안대여ㅠ

 답글 1
  『폐뮤늉』슙슙  93일 전  
 아닝ㅠ 해늘님 넘 퀄리티 있게 잘 쓰시구 마악 몰입도 잘 되게 써주셔서ㅠㅠ

 답글 1
  ohsh9791!  98일 전  
 지민이를 비롯한 방탄이들 모두가 무대위에선 아파도 괜찮은척해서 더 걱정되..ㅠ

 답글 1
  HR^^아미  98일 전  
 지민옵이 아프면 안되는데ㅠㅠㅠ

 HR^^아미님께 댓글 로또 3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zxmn4118  98일 전  
 지민ㅠㅠㅠㅠ 공연에서 실수하면 누구보다 아쉬워하고 더 많이 연습하는데 뭔가 이번 글에서 아파보야서 맴이 아프네요ㅠㅠㅠ 흐어엉

 zxmn4118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98일 전  
 아니 ㅜㅠ 저 ㅜㅠㅠ 휴가 기간동안 폰을 못해서 댓을 못달았었어요 ㅜㅜㅠ 흑 정말 보고싶었습니다 ㅠㅠㅠ 여전히 너무 재밌고 저에게 최고의 작품이에요 ㅠㅠ그동안 댓 못달아서 속상했어요 앞으로 계속 달꺼니까 기대해죠요!

 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CARAT♡ARMY  98일 전  
 와......읽을 때 마다 감탄하면서 읽는.......
 진짜 어떻게 하면 이렇게 글을 잘 쓰수가 있는지....
 진짜.......와.........너무 잘쓰셔서 할말이 (와...밖에 안나온다;;;;)

 CARAT♡ARMY님께 댓글 로또 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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