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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작탈글] - 제비야, 너는 알고 있느냐? - W.설윤하
[작탈글] - 제비야, 너는 알고 있느냐? - W.설윤하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냇가에 흘러가는 물소리만 들리던 고요한 조선의 어두운 밤의 적막을 깨는 사람 둘이 있었으니, 그중의 하나가 바로 좌의정 최 씨의 하나뿐인 손녀 최 여주이니라. 가히 경국지색이라 칭할 수 있는 고운 얼굴과 한 마리 학처럼 빼어난 성품을 가진 그녀가 이리 야심한 시각에 몸종 한 명 없이 왜 이런 곳에 나와 있냐, 하면 그 이유는 당연히 대조 판서의 증손자 전 정국 때문이리라.
북두칠성의 별 중 하나가 풀밭을 비추고, 매미 짝 찾는 울음소리만 들리는 한밤에 두 젊은 남녀가 이런 외딴 곳에서 무얼 하고 있겠는가- 당연, 밀회를 즐기는 것이지. 젊음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그러기에 더욱 소중하고 의미 있는 젊은 날의 밀회를.
그러나 이리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에도 시간은 슬픔으로 젖어가고 있었으니 정국이 곧 청으로 떠난다는 말이었다.




이제 떠나면 수년 후에나 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왜 이리 아파보이는 것인지. 지나가는 솔바람마저 그들의 헤어짐에 흐느끼며 여주의 옥빛 고운 저고리를 살짝씩 흐트러뜨렸다. 밝게 빛나는 달빛에 반사되어 냇물에 비치는 그녀의 까맣고 여린 눈은 누가 보더라도 투명한 눈물을 쏟아내기 직전의 눈으로 보였으리라.




"제 곁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옵니까."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라도 잡아보겠다는 그녀의 염원이 담긴 말이었다. 하얗고 고운 그녀의 작은 손이 그의 쪽빛 소매를 붙잡았고, 맑은 눈동자에선 하염없이 따듯한 눈물이 흘러내리기만 했다.
아아, 가지 마세요. 나의 낭군이시여, 흐느끼며 속삭이는 그녀에게 정국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4년 동안 조선 땅을 밟지 못하는 건 정국의 결정이 아니었으므로. 그가 청에 가는 것은 그 스스로 결정한 게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그저 그에게 누군가 `권유` 가 아닌 `명령` 을 했고, 그녀는 정국이 이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것과 그 명령을 한 것이 대조 판서라는 것만 알 뿐이었다.
그저 자신의 손자가 더 큰 나라에 가 학식을 넓혀오기를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그러한 사실을 안다고 해서 야속히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릴수는 없는 것이었다.
정국은 살며시 손을 들어올려 눈치도 없는지 그녀의 아리따운 얼굴을 가리는 투명한 눈물을 닦아주었다.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시간인 늦가을과 초가을의 사이었으나 계절에 맞지 않는 날카로운 바람이 그들 사이를 가르며 지나갔다.




"그곳에 있어도 낭자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그가 자신의 품속에 있는 작고 가녀린 여인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한 갈래로 땋아 내린 검은 머리카락은 저를 본다고 달려 나오느라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고, 값비싼 옥빛 고운 저고리는 눈물 때문에 누더기가 되어 있었으나 그녀의 맑은 눈동자 속 은하수는 변함없었다. 마치 암흑 속에서 빛나는 샛별 같았으며, 한밤중에 켜는 촛불 같았다.
그는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여전히 훌쩍이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약조하겠습니다. 반드시 4년 안에 낭자에게 돌아오겠다고."




풀벌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는 야심한 시각에 정국은 감히 그녀에게 이와 같은 약조를 해버렸다.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 채 그저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감히 약조해 버린 것이었다.
물론 그도 알고 있었다. 이 약조를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저 자신도 모른다는 것을. 그러나 영원히 못 볼 수도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돌아올 지, 못 돌아올 지 그건 그 누구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게 중요했다. 그 희망마저 없다면, 그들은 너무나도 절망스러울 것이기에. 그 희망이라는 이름의 별을 손에 넣기엔 너무나도 작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별을 손에 쥐기 위해 노력해보려는 것일까.




정국의 품에서 한참동안 눈물로 의복을 적시고 있다가 무어가 생각났는지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중얼거리며 풀숲에 주저앉아 무얼 찾는지 땅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집중하는 그녀였다. 정국은 호기심이 돌아 그녀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고, 마침내 그녀가 다홍빛 고운 꽃을 꺾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지금 무얼 하는 것입니까-"




"기다려 달라고 했지 않사옵니까."




그녀는 작은 손으로 무얼 그리 만드는 지 집중하며 꽃을 이리저기 꼬기도 하고, 묶기도 하면서 마침내 꽃반지 하나를 만들어내었다. 그 손, 이리 주십시오, 그녀의 손의 들려있던 꽃반지가 정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신기하게도 그의 세번째 손가락에 딱 맞는 크기였다. 이게 무어냐, 하는 정국의 물음에 그녀는 아기의 볼같이 부드러운 꽃잎을 살살 만지며 `임과 나의 증표`라고 수줍게 대답할 뿐이었다. 손가락에 얌전히 끼워져 있는 작은 꽃반지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어차피 얼마 있으면 시들 그저 작은 꽃일 뿐인데. 정국은 약과를 처음 먹어보는 어린아이처럼 꽃반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꽃반지였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무얼 그리 만드는 지 집중하며 꽃을 이리저기 꼬기도 하고, 묶기도 하면서 마침내 꽃반지 하나를 만들어내었다. 그 손, 이리 주십시오, 그녀의 손의 들려있던 꽃반지가 정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신기하게도 그의 세번째 손가락에 딱 맞는 크기였다. 이게 무어냐, 하는 정국의 물음에 그녀는 아기의 볼같이 부드러운 꽃잎을 살살 만지며 `임과 나의 증표`라고 수줍게 대답할 뿐이었다. 손가락에 얌전히 끼워져 있는 작은 꽃반지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어차피 얼마 있으면 시들 그저 작은 꽃일 뿐인데. 정국은 약과를 처음 먹어보는 어린아이처럼 꽃반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꽃반지였다.




"이 꽃이 시들면 소녀에게 서찰을 보내주시옵소서. 낭군의 소식을 쓰셔도 좋고,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쓰셔도 좋고, 별 시답잖은 글을 쓰셔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저, 서찰을 소녀에게 보내주시기만 하면 되옵니다. 낭군께서 보낸 서찰의 답장을 보낼 때는 또 다른 꽃을 꺾어 보내겠습니다. 그 꽃이 또다시 시들면 서찰을 보내주시옵소서. 꽃이 시들었나, 피어있나 확인하며 늘 소녀의 생각을 해 주시면 소녀는 참으로 기쁠 것이옵니다. 사랑하는 나의 낭군이시여, 부디 소녀의 부탁을 들어주시옵소서."




낭자에게 소인이 못해 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낭자가 별을 원하면 저 멀리 있는 북극성을 따다 주고, 낭자가 불로불사의 약을 원하면 시황제의 무덤에 가 약을 꺼내올텐데. 살랑이는 바람이 감히 맹목적인 사랑을 약속하는 정국의 머리카락을 한 번 스치고 지나갔다.
반짝이는 별빛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던 찬란한 밤에 그는 그녀의 요청을 수락했고, 마침내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달과 별, 그리고 풀벌레만이 지켜본 그들의 이별은 한없이 절절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3년 전을 끝으로 더 이상 여주는 정국의 서찰을 받아볼 수 없었다. 달 아래에서 다짐했던 희망은 어디가고 혹시 나를 잊으신 걸까, 하는 불안만이 그녀의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청에 갔던 정국이 할아비의 뜻에 따라 이미 다른 여인과 혼인을 치루고 아이까지 둔 후였으나, 조선에서 그저 정국만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던 그녀는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안채의 정원에는 줄기가 축 쳐진 패랭이꽃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아, 낭군님의 답장이 도착하면 다음에는 저 꽃을 보내려 생각하며 몇 송이를 심어 놨었는데. 그러나 정국이 그녀에게 보낼 서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꽃들은 어느새 수명을 다 한 후였다.
임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채 집안에 갇혀 아버님이 정해 준 사람과의 원치않는 혼인만을 기다리는 여주의 비통한 마음을 아는지 기와에 앉아있는 작은 제비는 계속해서 구슬프게 울어댔다. 저 제비도 이미 떠난 임을 찾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임을 원망하고 있는 것일까.





제비야, 제비야
구슬프게 울고 있는 제비야
너는 알고 있느냐?
내 임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는지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련지

제비야, 제비야
원망스레 울고 있는 제비야
너는 알고 있느냐?
왜 임은 나에게 아무것도 보내지 않으시는지
아직도 황새냉이가 시들지 않은 것일련지

제비야, 너는 알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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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율아♥♥♥♥♥♥♥  13일 전  
 이렇게 예쁜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 작탈이라뇨o̴̶̷̥᷅﹏o̴̶̷̥᷅

 답글 0
  l담아l  19일 전  
 정국이가 잘 못 했네....

 l담아l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요주숙녀  25일 전  
 엄청 울고갑니다....ㅠㅠ

 답글 0
  수녈_⚘  44일 전  
 헐ㅠㅠ 글 너무 이쁜데요ㅠ

 수녈_⚘님께 댓글 로또 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삐까뻔쩍솔로  45일 전  
 이게 작탈이라니.....
 와...

 답글 0
  강하루  46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0
  JPP  46일 전  
 ♥♥♥

 JPP님께 댓글 로또 14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