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방탄빙의글 [2주년|작당글] 달상한 백조의 멜로디 - W.자연
[2주년|작당글] 달상한 백조의 멜로디 - W.자연
Trigger Warning
글의 소재가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달상한 백조의 멜로디

W r i t t e n  b y  자 연







young and beautiful - lana del rey


almost lover - a fine frenzy

선택해서 들으세요. 굳이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기억 속 소년은 아름답지만 손에 닿으면 금방 녹아 잡을 수 없는 작은 눈꽃송이였나. 나는 항상 심술 난 겨울의 끝자락, 이맘때쯤이면 소년에 대한 꿈을 꾸곤 한다.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는 그 시간으로부터 10년이 지나가는 시점이었다. 어엿한 성인이 된 나는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놓치고 미래를 아무 생각 없이 맞이하는 그런 철없는 행동을 하면 안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소년을 그리워하며 꿈을 꾼 것이다.


흉내 낼 수 없었던 그 묘한 소년의 공기 흐름이 오늘따라 더 그리웠다.




나는 오늘이 주말이라는 것에 다행이라 여겼다. 만약 출근을 했다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낭패를 겪었을 것이다. 꿈에서 소년을 보는 날에는 늘 그래왔다. 그 시절, 그 아이가 내 머릿속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물 밀려오듯 자연스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추억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내 인생에 다시는 생기지 못할 것 같은 아름다운 추억이 나를 절망스럽게 했다. 아름다움이라는 이름 속에 슬픔을 숨긴 추억이 나를 괴롭게만 했다.






애석하게도 내 첫사랑이었다.






더 이상 내 옆에 존재하지 않는 소년이 주말을 빼앗아 간 것 같아 억울한 감정도 들었다. 너도 내 생각에 시간을 하염없이 흘려보내고 있을까. 그 시절, 아름답고 순수했던 우리의 추억이 너를 괴롭히고 있을까. 나를 생각하며 눈물 훔친 적은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될 것 같다.































학창시절, 같은 반에 아주 특별한 소년이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미운 오리 새끼처럼 느껴졌다. 따돌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소년이 여느 아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온통 회색빛을 띠고 있는 어정쩡한 아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새하얀 아이였으니 말이다.






"나는 걔가 어떤 아이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니까요?"






평소답지 않게 고요한 급식실에서 교사들끼리 식사를 하며 나누는 얘기였다. 선생님들이 지칭하고 있는 `걔`는 특별한 소년, 반장 정국이었다. 나와 전정국의 접점은 특별히 없었다. 오묘한 분위기를 가진 소년에게 눈길이 계속 가는 바람에 짝사랑이라도 하는 소녀처럼 힐끔 쳐다보는 것이 다였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정국의 표정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얼추 알 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발언이었다. `한번도 전정국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 왠지 기분이 묘했다. 나만이 소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착각이 들었다.




소년은 완벽에 가까웠다. 인간관계가 아쉽기는 했지만 적어도 학생이라는 신분 안에서는 예체능 및 공부, 출결 등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그런 소년이 오늘로 3일째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아이의 말에 따르면 이때까지 단 한 번도 결석이나 지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 혼자 멀뚱히 생각에 빠져있을 때면 선생님께서 반에 들어오셨다.






"반장 아파서 며칠 안 나왔는데 누구 병문안이라도 간 사람 있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역시 `반장`이 아닌 `전정국`으로서 찾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질문에 지금 교실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 침묵은 부정의 의미였다. 앞서 말했듯 왕따는 아니었지만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는 아이라 딱히 친하다고 내세울 친구가 없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나라도 병문안을 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찰나, 뒷자리에서 듣기만 해도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얘기가 들려왔다.






"하긴 그 재수 없는 놈한테 병문안 가는 놈이 어디 있냐?"
"아마 그거는 정신 나간 놈일걸."






전정국과 친한 건 아니었지만 이 세상을 오직 가오 하나에 죽고 사는 모자란 아이들에게 저런 소리나 듣는다니, 내 마음 한켠에는 작은 분노가 피어나고 있었다. 쓰레기같이 저급한 너네한테 그런 소리 들을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나는 친하지도 않은 정국을 걱정하는 척하며 병문안 가겠다 굳이 손을 들어 말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종례가 나로 인해 마무리를 짓게 되었고, 교실을 나가면서도 나를 힐끗 쳐다보는 반 아이들 사이에서 친구라고 하기엔 애매한 한 무리들이 다가와 남자 집에 함부로 가도 되냐는 둥 시덥지 않은 걱정을 했다. 나는 그 소년을 믿었다. 남들이 아무렇게나 떠들어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 이번 기회로 내가 얼굴에 철판 한번 깔고 다가간다면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괜찮았다.




선생님께 주소를 받아 적어 겨우 전정국 집 앞에 도착했다. 품위 있어 보이는 그의 행동을 미루어 봤을 때 나와 같은 부잣집의 도련님일 것이라 추측했던 예상과 다르게 그는 소위 말하는 달동네에 살고 있었다. 이런 말이 실례이긴 하지만 문을 가볍게 두드리면서도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이 동네 중에서 가장 허름해 보이는 집이었다. 진짜 이런 집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게 맞아? 나름대로 심각한 생각에 빠져있을 때 밍기적거리는 사람이 나왔다. 전정국이었다. 내가 올 것이라 예상도 못 했는지 약간은 당황해 보였지만 이내 나름대로 평소의 무표정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와이셔츠 첫 단추와 마이 단추까지 굳게 잠그고 다니던 깔끔한 차림이 아닌 목 부근이 주욱 늘어날 대로 늘어난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채로 나를 내려다보는 정국의 모습은 참 신선했다.






"어쩐 일로 온 거야?"






전정국의 순수한 질문에 무어라 대답할까 굉장히 고민됐다. 네가 걱정이 되어서? 사실대로 뒷자리 아이들이 너 친구 없다고 깔보길래 친구 행세 좀 하고 왔다고 할까? 그 짧은 찰나,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껄끄러우면 말 안 해도 돼."
"어, 어…"






다행히도 무어라 변경하기 전에 흐지부지 넘어가버렸다. 그 이후에도 별다른 질문 없이 손님 대접하겠다며 주방으로 향한 전정국에 뻘쭘히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아… 아파서 3일간 학교도 못 나온 애였는데 내가 할걸 그랬네. 후회하고 있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정국은 벌써 쟁반에 물 담은 컵을 가지고 오고 있었다.


내게 걸어오는 와중 발에 채이는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옆으로 쓰윽 밀어버린 그것은 마루에 아무렇게 놓인 베개였다. 베개가 왜 저기에 있지? 아프다면서 저런 곳에서 잠을 자나…?






"미안해, 집에 별다른 게 없어서 물밖에 못 주네."
"아니야. 멋대로 찾아온 내가 더 미안하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물을 벌컥 마시다 컵을 내려놓고 방금 전에 봤던 베개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내 질문에 그는 그냥 마루에 있을 때 졸려서 잔 것 뿐이야. 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고, 그 이후로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레 끊기었다. 나는 멀뚱히 눈동자를 굴려 집안을 둘러보았는데 양말은 방 한구석 아무렇게나 벗어져 있었고, 뚱뚱한 티비 앞에는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는 접시와 젓가락이 놓여 있었다. 여기저기 구석에는 뿌연 먼지들도 볼 수 있었으며, 집안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학교에서 완벽하던 전정국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왜? 내 집이 신기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내 말에 풋사과 같은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전정국이었다. 남자가 이렇게 웃는 모습이 예쁠 수도 있구나. 전정국의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웃음이 아닌 정말 자연스럽게 나온 그런 즐거운 미소는 보는 나마저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긴 해. 새벽에 배고프면 밥 꺼내 먹기도 하고, 하루종일 그냥 누워있기도 해. 생활의 질서따위 없이 살아."
"그렇구나."
"너는 이런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학교에서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면서 집에서는 이렇게 엉망진창이잖아."
"그다지. 지금 이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보여서 좋아."






무안할까 봐 입에서 내뱉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는 학교에서 보던 딱딱한 모습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한폭의 그림 같았다. 그 분위기며, 행동 하나하나며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태어날 적부터 어른들이 정해놓은 방식에 갇혀 살아온 나는 자유로운 소년의 집이 너무나도 새롭고 신기했다. 질서는 없지만 그렇다고 또 어지럽지도 않은, 그 독특하고 묘한 공기의 흐름이 마음에 들었다.




돈 많은 집안에서 주최하던 교양있는 사교 클럽에 나가도 만날 수 없었던 그런 참된 인간. 그 무엇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이 정도의 느낌이라면 충분할 것 같다. 인간으로서 완벽한 혹은 완전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소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나의 오만한 태도가 부끄럽기도 했지만 내 상상으로 가늠하기엔 벅찬 존재, 정국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었다.




"너는 왜 혼자 살아?"
"내가 혼자 살 것이라는 것에 대해 확신하고 말하네."
"아무래도 혼자 사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가족이 없거든. 진정한 가족 말이야."
"진정한 가족, 그게 무슨 소리인데?"


"엄마랑 새아버지는 재혼했어. 내 밑으로 동생들은 다 새아버지랑 피가 섞인 친 자식이고, 나는 엄마 전 남편의 자식이니깐 곱게 보이지 않았나 봐. 엄마 돌아가신 후 집에서 쫓겨났지."






의외의 대답이었다. 내용이 아닌 대답을 해 주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움이었다. 애당초 내가 되물은 것, 그 자체부터 이상했지만 이런 얘기를 친하지도 않은 나에게 술술 대답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전정국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아아- 소년은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구나.



이것이 소년과 나의 첫번째 만남이었다.































"정국아, 방학 때 놀러갈까?"
"가고 싶은 곳 이미 정해놓은 것 같은데."
"맞아, 내 별장으로 갈 거야."






긍정의 대답을 하면 당장이라도 끌고 갈 듯한 내 대꾸에 정국은 많이 놀랐는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고등학생 주제에 벌써부터 건물 여러 채 소유하고 있는 것부터 놀랐을지도 모른다. 대답이 없었지만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정국의 의사는 필요 없었다. 가지 않는다하여도 나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번 여름에는 기필코 같이 여행을 가고 마리라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학 시작과 동시에 짐을 꾸려 별장으로 떠났다. 별장 뒤편에는 두명이서 놀아도 여유로운 수영장이 있었고,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보호해줄 나무들도 자리잡고 있었다. 흰 페인트로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건물 안 역시 굴러다니는 먼지 없이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냉장고 안도 더위를 식혀줄 먹거리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그야말로 한여름의 파라다이스 축소판. 정국을 위해 부러 준비했던 것들이 모두 만족스럽게 준비되어 있었다.






"고마워."
"뭐가?"
"이렇게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해 준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






무엇을 고마워하는지 알고 있었으면서 놀리고 싶은 마음에 괜시리 모르는 척 물었고,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것인지 대담하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정국에 되려 부끄러워한 상대는 나였다. 발갛게 달아오르는 내 얼굴에 걱정이라도 되는 듯 다가오는 정국이 보였지만 속내를 들킬새라 나도 모르게 피해버렸고, 정국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아픈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평소의 정국이었다면 아마 나를 배려해서 더 이상 다가오지 않을 것이지만 그날의 정국은 달랐다.




소년은 더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왔고, 그와 동시에 특유의 살 내음이 조금은 강하게 끼쳐오며 우리의 입술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맞부딪힌 입술 사이로 소년의 말캉거리는 혀가 조심스레 가르질러 들어왔다.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느낌에 몸을 움츠리면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진득하면서도 부드럽게 입안 전체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어정쩡하게 주먹을 쥐고 있던 내 손은 어느샌가 소년의 목을 감싸안았고, 조금은 거칠게 헤집으며 서로에게 파고들었다. 하아… 입술을 떼어내고 쌕쌕 숨을 몰아쉬는 나를 바라보며 웃는 소년의 모습은 마치 농익은 사과가 어서 자신을 베어 물어라며 유혹하는 듯했다. 나는 결국 참지 못 하고 탐스런 사과를 베어물고 말았다.



이것이 소년과 나의 짜릿했던 순간이었다.































"여주야, 졸업 축하해."
"이게 뭐야?"
"화분이야. 내가 주고 싶은 꽃이 있는데 지금은 안 피는 시기라서 꽃다발 대신."
"난 선물이 없어서 미안한데 어떡하지."

"괜찮아. 네가 내 선물인걸."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집에서부터 내 생각을 하며 들고왔을 화분은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이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찝찝했다. 까맣지만 어딘가 반짝이던 소년의 눈동자는 더욱 검게 물들어져 슬픔과 억울함이 담겨있는 듯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보이는 그 미소가 평소보다 더 씁쓸해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정국이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예사롭지 않게 넘겼다. 이내 `안녕하세요. 아버님.` 이라며 깍듯이 인사하는 정국에 놀라 뒤를 돌아보면 아버지가 서계셨고,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아버지께 끌려가는 나와 그 자리에 굳은 채 서있는 정국이는 그저 서로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정국이가 어떻게 나의 아버지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는지,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휴대전화와 집 전화가 없던 정국이를 만나는 유일한 곳이 학교였지만 졸업까지 한 마당에 마땅히 만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결국 우리의 첫만남 때처럼 예고도 없이 그의 집을 찾는 방법밖엔.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를 반겨주는 것은 그 특별한 공기의 흐름도, 소년도 아니었다.




마당에는 창문 유리가 산산조각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고, 많은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익숙하게 자리잡고 있어야할 가구들이 사라져 있었고, 오래전에 나갔다는 것을 알려주듯 서늘한 공기만이 맴돌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선물을 주며, 내 걱정을 해 주던 소년이 하루 아침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몇 주가 되었고, 몇 주는 몇 개월이 되어 소년은 끝내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이 소년과 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시간이 흘러 화분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모든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망가져만 가는데 어째서 꽃은 하루가 다르게 예쁘게 피어날까. 앙증맞게 피어난 꽃봉우리를 가만히 바라만 보며 소년의 생각에 빠져 있으면 덜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화분에 벌써 꽃이 피었네?"






회색빛에 찌들어 있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밝은 회빛을 띠고 있는 다정하신 어머니였다. 아무와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묵묵히 화분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내 태도를 모두 이해한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은 결국 나를 울게 만들었다. 왠지 소년이 정말로 나를 버리고 간 것만 같아서, 그런 나를 안쓰럽게 보는 시선이 소년과 내가 정말로 끝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으니.






"꽃 이름은 알아? 이건 물망초라고 하는 거야."
"… …"






어머니는 눈물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애써 대화 화제를 돌려보려고 해봤지만 결국 화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화분만을 바라보는 나의 등을 토닥여주는 어머니의 손길이,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가 나에게 묻고 있었다. 괜찮아?




아니요.
사실 괜찮지 않아요.
소년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저는 소년을 위해서라도 괜찮은 척을 하고 싶어요.
몰래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이것은 소년에 대한 나의 미련이었다.































결국 와버렸구나. 소년과 함께였던 이후 단 한번도 찾지 않았던 내 별장. 그 시절, 추억에 잠겨 방안에서 허덕이던 내가 운전대를 잡고 향한 곳은 고작 내 별장이었다. 10년간 손길이 닿지 않은 이곳은 많이 변해있었다. 아늑하고 깔끔했던 수영장은 뿌연 먼지와 쓰레기들로 뒤덮여 있었고, 식물들은 관리해 주지 않아 시들어 말라버린 것이 반, 가지정리를 못해 지저분하게 자란 것이 반이었다. 흰색 페인트로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건물도 벗겨져 소름끼치는 폐가처럼 보이기 십상이었고,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삐그덕거리기를 몇 번, 어렵사리 열렸다.




이렇게 모든 것들이 성한 데 없이, 철저하게 무너지고 부서져 먼지로 뒤덮여 있는데 유일하게 우편함만이 멀쩡했다. 누군가가 사용한 것처럼 삐그덕거리는 소리조차 없이 말이다. 궁금한 마음에 우편함을 열어보면 의문의 편지들이 담겨있다. 이 별장 주소는 나밖에 모르는데 누가 보낸 거지? 주소조차 쓰여있지 않은 빛바랜 봉투들을 조심스레 뜯었다.






첫 번째 편지

네가 이 편지를 읽는 것이라면 너 역시 이 별장에 왔다는 뜻이겠지? 내 원망 많이 했을 거야. 괜찮아, 그 정도는 다 감수하고 떠났으니까. 걱정 마, 너희 아버지께서 좋은 집을 구해주셨으니 말이야. 아마 내가 네 아버지였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하나뿐인 딸을 지켜주겠다는 놈, 이왕이면 믿음직스러운 놈에게 주고 싶은 마음 말이야. 나는 이렇게 편지로 너를 만나러 갈게. 잘 지내.




두 번째 편지

네가 별장에 와서 편지를 발견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써내려 가. 보고 싶다. 너 또한 그렇겠지? 아니면 네가 더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온통 새로운 환경 속에 던져져 있지만 넌 우리의 추억이 얽힌 곳에 갇혀 있으니 말이야.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너와 나, 평범한 아이들이었다면 지금쯤 함께 할 수 있을까.






.
.
.






마지막 편지

너는 아직 이 별장을 찾아오지 않았구나. 네가 얼른 찾아와줬으면 했던 건 내 욕심이었을까. 난 너라는 사람을 만나 행복했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알게 됐거든. 늘 미움만 받던 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은 너야. 고마웠고, 그리고 사랑해.


2012년 X월 X일








심하게 울그러져있는 이 종이,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지금의 나처럼 너 또한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겠구나. 너도 내 생각에 시간을 하염없이 흘러보냈고, 아름답고 순수했던 우리의 추억이 너를 괴롭히며, 나를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구나. 이 편지는 애써 해석하려고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만을 사랑하던, 오로지 나밖에 모르던, 나 역시 사랑했던 그 소년이 더 이상 곁에 없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우리는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언젠가 늦더라도 나의 품에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내 어린 생각을, 이 편지가 다시 한번 현실을 일깨워줌으로써 접어야만 했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10여년간 잊혀지지 않은 나를 바라보던 소년의 눈빛에 담긴 메시지를 말이다. 비집고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지 않았다.


네가 볼까 봐 참았던 그 눈물을 이제는 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더 울린다.










이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전정국` 이라는 사람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돈과 권력이 사람의 전부가 되어 가진 것 없는 정국을 숨게만 만들었다. 그런 소년이 안타깝다며 함부로 입을 놀리는 사람들은 모른다.




소년은 남들에게 동정 따위를 받을 `미운 오리 새끼` 가 아닌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백조였다는 것을. 고귀한 백조는 결국 이 숨막히는 더러운 물 속을 버티지 못했다.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사람이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자리에 들며 그 사이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이다.
by. Bob Dylan




~ END ~





(1) 단어 의미

- 일종의 꽃말과 같은 개념으로 백조의 의미는 멜로디라고 합니다. 저는 백조 = 정국, 멜로디 = 주인공이라는 설정을 세웠고, 제목은 달상한 백조의 멜로디 혹은 백조의 달상한 멜로디로 두가지 의미를 띄고 있어요. 인생의 전부가 서로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작도생 ,,


- 회색빛, 밝은 회색, 흰색 물질적인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 아버지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은 회빛으로, 일반인들과 비교했을 때 물욕이 상대적으로 적은 어머니는 밝은 회색, 순수하게 오직 인간으로서의 참된 삶을 살아가려 하는 정국은 흰색으로 표현했습니다.




(2) 정국의 선물과 편지

- 마지막 만남에 건네주었던 화분. 꽃 물망초는 나를 잊지 마세요를 뜻합니다.


- 마지막 편지를 통해서 정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 현재는 2017, 편지는 2012. 주소 없는 편지는 정국이 직접 이 별장에 찾아와 우편함을 열었다는 뜻이죠.




(3) 장르

혹시 장르가 로맨스인지, 사회 비판인지 구분이 안 가시나요? 사실 이야기 속 캐릭터의 `죽음`이 있다면 그 뒷 이야기를 이어갈 또 다른 인물이 필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또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그 인물 시점에서 글을 시작했어요. 그의 사연을 안타까워하면서 각별한 사이를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큰 연결고리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사회 비판적 글에 로맨스를 끼얹을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로맨스 중심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정국을 안타까워 하는 로맨스 물 혹은 로맨스에 사회 비판적 요소를 추가했다고 봅시다!




아직 부족하지만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 _ _ )







와우 숨기고 숨겨왔던 ,, 제 작당글입니다. 작당 2주년이라 한번 공개했어요.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복붙하면서 오타난 글자들을 수정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어느 정도 제거했습니다. 사실 그래도 썩 만족스럽지 못 한 글이라 여전히 부끄럽기는 하네요.


작도할 때 생각나네요 ㅋㅋㅋㅋㅋㅋ 두 번 다시는 글 안 쓰고 그냥 보기만 할 거라고 했었는데 역시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 읽다 보니 저도 글이 쓰고 싶어지고 소재가 계속 떠올라서 미치겠더라구요. 결국 도전해서 이렇게 붙어버리기 ,,,


신입작가 때 열심히 잉챠 글을 썼어야 했는데 작당된 이후로 잠수를 타는 바람에 이렇게 신입과는 거리가 멀고 인지도도 없어 조회수 조차 난리나지 않는 작가가 되었지요. 눈팅보다는 조회수 자체가 낮을 때 제일 슬픈 것 같아요. 내가 보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 남들 보라고 쓰는 글이다보니 많은 분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 사실 눈팅은 뭐 제가 기분 나빠지면 그냥 안 오고 안 쓰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신경쓰는 부분은 아니고 그저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바람· · ·








축전 빠리 따임


ㄴ 엉엉 매력 님 너무 사랑해요 ㅠㅠ 이렇게 깜찌구리한 것을 저에게 주시다뇨 ㅜ.ㅜ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들이 우리 시터 귀여운 거 다 알아좃쓰면 좋겠어요. 아니요. 다시 생각하니까 시터 덕질은 저만 할래요. 다들 못 들은 척 해 주세요(??)



ㄴ [속보] 글메이트들에게 2주년 홍보하다 축하받아· · · 굠듕이들 ㄳㄳ



ㄴ 캘리 천재 샤인 님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큰절)♡♡♡♡♡♡


축댓 써주신 가든 님, 김빱 님, 로젠 님, 센꼬 님, 소다 님, 수근 님, 쫀쪼니 님, 연 님, 향월 님, 시터, 애터, 에요 빅힛 겸둥이들 너무 감사합니다♡♡♡♡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대들의 아이피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차차 정리해서 추가 자랑하겠읍니다 ,,, 쥐짜 다들 사랑합니다♡





추천하기 8   즐겨찾기 등록
글이 재미있었다면 작가님에게 포인트 선물을 해주세요.
나의 Point :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작가님에게
추천수와 선물받은 포인트 합산을 기준으로 글의 순위가 결정됩니다.




자연 작가님의 다른글 보기       전체보기
[현재글] [2주년|작당글] 달상한 백조의 멜로디
봐 주세요. 봐주세요.
패배자
너를 사랑하는 남편, 김태형
04. 안녕 29살
    로그인 후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댓글
  3년정거장  26일 전  
 진짜 짱입니다ㅜㅜㅜ 너무 너무 축하드려요♡♡♡♡

 3년정거장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F.L채냥  27일 전  
 글 넘 잘쓰세요ㅠㅠㅍ 2주년 축하드려요!♥♥

 F.L채냥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華而不實  27일 전  
 와....진짜 글 진짜 잘 쓰신다..

 답글 0
  리온밈  27일 전  
 2주년 축하드려요!!!

 답글 0
  민학주ᅠᅠ  27일 전  
 민학주ᅠᅠ님께서 작가님에게 399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민학주ᅠᅠ  27일 전  
 사랑해요 축하해요 알러뷰

 민학주ᅠᅠ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ω・∪  27일 전  
 2주년 너무너무 축하드려요!!꒰◍ˊ◡ˋ꒱

 답글 0
  •정화_炡華•  27일 전  
 2주년 축하드립니다...ㅠㅠ!!

 •정화_炡華•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백이쁨  27일 전  
 백이쁨님께서 작가님에게 20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일드  27일 전  
 2주년 축하드려요!♡!

 일드님께 댓글 로또 1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27 개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