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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D+700] 완 벽 한 푸 른 색 - W.한글℃
[D+700] 완 벽 한 푸 른 색 - W.한글℃

「 순수했던 그 시절을 뒤로 남긴 채로
한 발짝씩 내딛어 도착한 바닷물을
발가락 사이사이에
발끝으로
온전히 내 것으로 물들인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바다로 들어가
바다의 모든 기운이 나의 품으로 안겨
모든 어둠을 알려주고 있을 그때
나의 손가락
손끝으로
전율을 일깨운

신비로운 그 존재를 난
잊지 못한다. 」





“있잖아, 박지민.”
“응?”
“…,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생각해도 너무 이상해서.”
“…….”
“뭐 재밌는 이야기 없어? 학교 이야기라던가…….”
“학교는 재미없어. 그냥 네가 있어서 다니는 거야?”
“…….”
“너가 없는데 다닐 이유가 있어?”









Perfect Blue





作 한글







배경음악은 글의 몰입을 도와줍니다.





A.

지민이는 앞을 보지 못한다.



이런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지민이의 성격은 우중충하거나 소심하지 않았다. 답지 않게 밝은 그의 모습이 퍽이나 웃기면서도 흥미로웠던 적이 많았다. 나의 옆자리로 배정받아 책상을 조심히 더듬거리면서 내 옆에 앉은 그가 또박또박, 말을 뱉은 그 한마디가 너무 기억에 남았다. 너랑 친해지고 싶어.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나의 모습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모른 채 내게 무식하리만큼 용감한 모습을 보인 것이 재밌기도 하고 그 용기가 너무 멋져보여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해줘서 고마워.”
“치, 친해지는 거야…?”
“그래.”





고맙다는 말이 지금 생각해보면 옳은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민이와의 대화가 재밌었기에 이건 넘어간다.





“너, 너는 지금 뭐해?”
“책 읽어.”
“재밌겠다…….”
“동화 읽는 건데 무슨…….”





B.

장애우 고등학교에 가도 된다는 주위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지민이는 굳이 나와 같은 학교를 지망해 일반고로 진학을 했다. 힘들 것이라는 걱정도 많았지만 그런 선택을 했다면 모든 불편은 감수하겠다는 것이니까, 딱히 그 뒤로 말리지는 못했다. 나이를 먹고 자라고 자라면서 우리는 우리 앞의 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사소하게는 큰 틀로 이런 일을 하고 싶다, 라는 직업부터 시작해서 더욱 자세하게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다, 까지. 소설에나 나올법한 조그마한 동네에서도 그런 현실적인 요소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슬프게만 다가왔다.



어렸을 적 순수함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바다에 다 두고 온 걸까? 아니면 하늘에 던졌나? 아니면…….



상담을 시작한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카롭게도 종이 그 정적을 파고들었다. 선생님이 교실을 뜨자 교복을 각자 알아서 갖춰 입은 학생들이 동시에 책상에 널브러진다. 성적이, 진로가, 생기부가, 지긋지긋하게 다가오는 단어들에 넋을 놓고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내고 있으면,







“여주야!”





네가 복도에서 날 부르고 있다.





C.

“박지민! 학교 구조는 다 익혔나 보네?”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참 대단하다. 안 힘들어? 시험 치는 것도 언제나 다른 식으로 봐야하고……, 물론 장애우 고등학교가 여기서 많이 멀긴 한데 그래도…….”
“내가 여기 없었으면 좋겠어?”
“…….”



“난 여기 너랑 있어서 좋은데.”





D.

지민은 언제나 자신에게 시선이 쏠린 것 같다며 간혹 가다 오한이 들 때가 있다고 한다. 내 생각이지만 그에게 시선이 쏠리는 건 정말 당연하게 그가 평상 사람처럼 다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불과 한 달 만에 학교 구조를 다 익혀 안전사고를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적게 내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다음 이유론 그와 나의 오묘한 관계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눠온 우정보단 사이가 깊고, 또 사랑을 즉각적으로 나누는 애인보다는 사이가 얕고.





“네 얼굴 궁금하다.”
“나 그렇게 예쁜 사람 아니야.”
“예쁠 것 같은데.”
“함부로 이런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진짜로. 나 다른 사람은 기억 못 하는데 너만 다 하는 건데?”





그만 얕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나의 감정의 골은 깊다는 걸 그 누구에게도 사실 보여준 적이 없었다. 나조차도, 몰랐다.





E.

“유여주!”
“박지민?”
“네 목소리 들리길래!”





어떻게 내 목소리를 그렇게 잘 듣지
어떻게 나를 한 번에 찾지
어떻게 나를…….





“진짜로. 나 다른 사람은 기억 못 하는데 너만 다 하는 건데?”





진짜로?





F.

어김없는 하굣길. 선생님과의 상담을 마치고 혼자서 하교를 하던 길에 빨간 노을이 비치는 바다가 보였다. 바다 옆 학교가 바로 지어짐에도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가끔 망각하고는 한다. 혼자서 가만히 파도치는 바다를 감성 어린 감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흰 거품이 조그맣게 진 파도가 모래를 함뿍 덮고는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어쩐지 많이 허전하게만 느껴진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거슬리게 부드럽고,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이 거슬리게 펄럭거린다. 바다와 나 사이의 거리 몇 킬로를 메꾸는 바람이 서로의 소식을 전해주는 양 왔다 갔다 서로를 자극하고만 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간다. 모든 걸 씻어내려 주는 듯한 그 바다를, 노을이 지고 하늘을 아낌없이 비춰주는 그 포용성이 짙은 바다를 난 어딘가 마음 구석에 접어두고만 있었다. 아낌없는 미련이다.



미련.



나를 감싸다 못해 옥죄어 와 나를 죽어가게 했던 바다에 대한 미련이다.





G.

“박지민?”



“유여주?”
“여기 올 줄은 몰랐는데.”
“나도. 바다……,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렇지. 사고당한 후로는……. 근데 오늘 좀 예쁘더라.”





그 바다에 박지민이 있었다. 바다 한끝에 쌓인 돌담 위에 고독히 앉아 향수 짙은 눈으로 바다를 보던 그의 모습이 어딘가 낯설었다. 초점 없는 그의 눈동자가 정확하게 바다를 향해 초점을 잡았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눈빛이 바다를 향해 있었다. 낯설면서도 또 기이하다. 내 앞에 있는 그의 모습이 참 낯설다. 생각을 지우고자 아무런 말을 뱉으니 더욱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어색한 분위기가 오늘따라 우리답지 않았다.



결국엔 나 또한 지민이 앉은 돌담 옆에 바로 앉아 바다를 곧이곧대로 보았다. 파도가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은은한 소리들이 정적을 다시 메꾼다. 나와 바다 사이의 몇 키로, 그리고 지민과 나 사이의 몇 센치. 그 사이를 메우는 커다란 파도 소리. 거리의 공백을 아득히 만들어주는 미묘한 분위기. 차마 깰 수 없고, 깨기에도 모호한 이 기묘한 분위기가 우리 둘을 덮어버렸다는 것이 꽤나 신기하다. 가만히 고개를 돌려 지민을 바라보았다.





“넌 바다 좋아해?”
“아니.”
“왜?”



“…….”





아까의 그 향수 짙은 눈빛.



어쩐지, 또 이상해지잖아. 누가 봐도 좋아하는 건데.





H.

“내가 사고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었나?”
“……, 아니. 내가 안 물어봤을 걸.”
“나름 엄청 크게 났었어. 내가 물에 빠졌는데 부모님은 아무도 몰랐던 거야. 내가 혼자서 조그마한 동네 놀러다니다 그만 호기심에 들어가서 사단이 난 거지.”
“철부지였네.”
“그럴 수도. 그랬는데……, 내가 일어났을 땐 바다에서 나오고 난 뒤였대. 물 안에서 허우적대다 정신을 잃었고 다음엔 누가 날 꺼내줬는지도 모른 채 일어났어.”
“…….”
“이걸 잊을 수 없는 이유가, 난 물 안에서 누가 내 손목을 잡은 느낌을 아직 기억하거든. 무언가가 날 잡았는데…….”
“…….”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너무 생생했어.”
“…….”
“너에게만 이야기하는 거야. 부모님은 몰라. 사실 그때 정신이 없기도 했고, 또 말하면 걱정하실 거야.”
“있을 수도 있지.”
“어떻게?”
“언제든지 가능성은 열려있는 거야.”





그 말을 하곤 다시 바다로 고개를 돌린다. 파도가 모래에 예쁘게 부딪힌다. 그 위에 떠 있는 노을 사이의 구름이 그대로 거울처럼 바다에 비쳤다.





I.



“장관이네.”





J.

너 보여?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랐다 다시 내려왔다. 그 와중에 박지민은 바다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눈빛으로 다 느껴진다. 그 또렷한 초점에 그가 말하고픈 모든 메시지가 저릿하게 전해진다. 바다에 대한 미련과 바다에 대한 향수와 바다에 대한 그 모든 절박함이 아스라이 눈빛에 다 녹아 들어있는 꼴을 보아 하면,



내가 이거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입을 막아버린다. 바다를 다시 담았다. 내 눈에도 담고, 박지민 눈에도 담았겠지.



예쁘긴 예뻤다.



미련 남을 바다였다. 그 바다는.





K.

의심한다는 건 비겁했다.



자그마치 몇 년 동안 함께 해왔지만, 갑작스레 든 불신은 온전하던 나와 박지민 사이를 갉아먹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앞에 눈이 보이지 않는, 앞이 캄캄한 박지민이 있는데 막상 또 그렇게 믿자고 하니 미련 많고 향수 넘치는 박지민이 머리에 깊이 박혀 그사이를 갈등하고만 있다. 칠칠맞게 흘리는 박지민의 잔반을 얼추 챙긴 뒤 제각기 제 맛을 펼치는 제 잔반으로 젓가락을 옮길까, 박지민이 의아한 눈으로 내게 묻는다.



초점이 없다. 또렷한 초점이 생생한데도 내 앞의 그는 생기 없이, 아무 초점 없이 나를 보고 있다.





“무슨 일 있어?”
“응?”
“아니, 오늘은 애가 조용하길래…….”
“하하, 아니! 나 오늘 웃고 있었는데!”
“…, 거짓말.”
“…….”
“밥 먹자. 나 챙겨준다고 한 숟갈도 안 먹은 것 같아.”
“한 숟갈은 먹었어.”
“까분다 진짜.”





여전히 초점이 없는 박지민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에 밥을 구겨 넣었다. 초점 없는 그를 더는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학교 옆 바다가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L.



“…….”





다 먹었어?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급하게 급식을 먹는다, 난.





“천천히 먹어. 체할라.”
“괜찮아, 나 안 체해.”
“그러다가 체해, 진짜.”



“어쭈, 이제 큰소리도 하고.”
“걱정되잖아.”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고맙다, 말하고 말 그 단어가 왜 이리도 내게 크게 다가오는지.





M.

“넌 왜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했어?”
“응?”
“네가 전학 왔을 때. 네가 나보고 친해지고 싶다며.”
“…….”
“요즘 누가 친해지자고 하면서 친해지니? 그냥 자연스럽게 두루두루 친해지는 거지…….”





언제부터인가 박지민의 상징은 돌담이 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 늘 앉았다. 교복 치마가 더러워진다고 생각하긴 하다만 그와의 대화가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가 저물어가 하늘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주황빛이 파란 바다와 오묘하게 어우러질 때, 그때. 아무런 대화가 없는 우리 둘의 적막한 정적 사이에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난데없는 추억팔이처럼 느껴지다가도, 또 그와의 뚜렷한 첫 만남. 언제나 그 만남을 먼저 꺼내는 건 나였다.







“그게 싫어서.”
“응?”





그의 대답이 이상하게 느껴져 그를 쳐다보자, 뚜렷하게 그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다 헝클어진 머리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긴 채로 휘날리고 있을 때, 박지민이 손을 들어 나의 머리를 잡았다. 정확하게. 더듬지 않고. 오묘하게 빛나는 박지민의 눈동자에 초점에는 정확하게 내 몸이 서려 있었다. 또다시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마음 속에서 기어오른다.



비겁한 의심.



그리고, 미련.



어딘가의…….





“장관이네.”





왜 이 말이 떠오르는 거지. 나의 앞 박지민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 왜 또 다른 그림자의 박지민은 눈이 보이는 것만 같을까.





“내가 널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
“너도 날 그렇게 뚜렷하게 기억해주길 바랐어.”
“…, 넌 날 어떻게 기억하는데?”
“…….”
“…….”
“내가 기억하는 첫 만남은 네가 기억하는 첫 만남이 아니야.”
“…….”
“…….”



“내가 본 넌, 흠뻑 젖었거든.”






N.

그 뒤로 박지민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O.

전화를 해보아도 끝없는 신호음만 계속 갈 뿐, 기다리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도 일방적인 소통으로만 남았다. 혹시나 해 집까지 무턱대고 찾아갔지만, 문은 애석하게도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고만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내게 지민의 소식을 묻는데 정작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없어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박지민에 대해서 말문이 막혔던 것은 처음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답답함이 지금 내가 드는 심정. 홀연히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그 뒤에는 나 혼자 남아 단 한 번이라도 드리워졌던 그림자의 위치에 똑같이 서 있기만 했다. 그와 내가 마지막으로 대화와 오묘한 분위기를 나누었던 박지민의 상징인 돌담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이미 주인을 잃은 그곳은 한껏 닳은 돌멩이들이 파도와 바람을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박지민이 앉던 자리에 나도 한 번 앉아보았다. 애석하게도 박지민이 앉았다던가, 라는 희망을 안겨줄 온기는 남지 않았다.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 잔잔한 바다만 보고 있으니 평소보다는 어색하고 외로웠다.



그를 향한 깊은 감정의 골은 바다를 잃어 매말라가고 있었는데, 바다는 또 조용하게 모래를 적신다.



젖어간다…….





P.

박지민은 내가 젖었을 때 처음 보았다고 했다.



정작 내가 젖은 적은 얼마 없는데…….





Q.

정작 박지민에 아는 건 얼마 없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밝은 아이, 신기한 아이, 나와 같은 동갑. 딱 거기까지가 내가 아는 그의 정보였다. 고등학생이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진로라던가 동아리도 그는 없었고,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난 그에게서 전해 들은 것이 없었다. 사실, 난 박지민에 대해 이리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박지민이 나에 대해 아는 건 많았다.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라는 사소한 문제부터 시작해 나의 진로라던가, 나의 목표 대학이라던가, 또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던가, 물론 이건 그에게 있어 작은 놀림감일 뿐이지만 그런 아주 작은 것까지 나는 그와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에 또 새삼 놀랐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나는 이런 작은 것을 공유하지 못하는 일방적인 작은 관계라는 사실에 또 새삼 놀란다.



귀띔이라도 해주지, 혹시 자기가 떠나면 남겨질 사람은 걱정도 안 했나? 마지막으로 좀 재밌는 대화를 나눴으면 몰라, 하필이면 이런 의심스러운 대화들만 잔뜩 나눴는데 마음이 얼마나 싱숭생숭해. 요즘 내가 널 모른다는 생각이라던가, 내가 아는 너와 실상의 너는 다를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어, 그런데…….



진짜 홀연히 떠날 줄은 몰랐는데.





R.

어느 순간 바다 모래사장에 혼자 앉아 바닷물에 손을 담갔다. 차가운 파도가 손가락 사이사이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무언가가 나의 손을 잡았다.





S.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너무 생생했거든.”
“…….”
“너에게만 이야기하는 거야. 부모님은 몰라. 사실 그때 정신이 없기도 했고, 또 말하면 걱정하실 거야.”
“있을 수도 있지.”
“어떻게?”
“언제든지 가능성은 열려있는 거야.”






T.

손을 빼내고 다시 담가도 여전히 정확하게 잡힌다. 사람의 손처럼. 더 깊이 넣으면 나의 팔뚝까지 정확하게 잡는다. 바다 안에 정처 없이 떠다니는 거품들이 나의 몸에 맞아 그만 제 형체를 잃고 터지는 그 촉감들까지 다 생생하게 느껴진다. 물 안에 제대로 잠겨 피부에만 누워있는 털이며, 피부 밖으로 흘러 내려오는 짠내 함뿍 담은 바닷물이며. 바닷물의 향이 고스란히 묻은 피부며.



그 피부를 망설임 없이 붙잡은 그 알 수 없는 손이며.





“…, 젖었네.”
“…….”
“젖었어.”





지금 난, 젖어있었다.





U.

박지민!





V.

그 순간, 내 몸이 물 쪽으로 기울었다.



눈을 질끈 감고, 숨을 순간적으로 참았다. 물 안에서 나오려 안간힘을 쓰려던 순간에 내 팔뚝이 또 누군가에게 잡힌다. 누군가, 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대로 다시 젖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닷물이 몸 사이사이를 들어가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다. 기시감과 전율이 동시에 느껴진다. 오랫동안 바다 안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도 바다 안으로 점점 빨려들어가고 있음에도 난 내 의식을 온전히 놓지 않았다.





눈을 떠도 돼. 눈을 떠도 돼.
숨을 참지 않아도 돼. 숨을 참을 필요 없어.




이상한 촉감에 이어 이상한 목소리가 귀에서 맴돈다.



이상한 목소리?







“눈을 떠도 돼.”





이거 박지민 목소리인데.





W.

“…, 바, 박지민?”



“응. 나야.”





진짜 박지민이 여기 있다.




내 손을 잡은 채로 가만히, 내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으면 가까이 와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숨을 쉴 수 없다면 숨을 쉬도록 조심스럽게 다가와 입을 맞춘다. 촉촉하고 짧디 짧은 입맞춤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선명한 박지민이 바다 안에서 약간 다른 모습을 한 채로 내 손을 잡았다. 이질적인 손이 낯설었지만, 손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반짝거리는 물방울이 박지민의 손에 몽글몽글 맺힌다.



선명한 초점에, 내가 담긴다.





X.

“어떻게 여기 있어?”
“여주야.”
“…….”
“밝은 너무 밝았어.”
“…….”
“그게 내가 앞을 보지 못한 이유야.”
“그럼 지금은?”
“좋아.”
“…….”
“네 얼굴이 너무 선명하게 잘 보여서 좋아.”
“나 젖었는데.”
“똑같아. 아니, 좀 달라.”
“그걸 기억했어?”



“어떻게 기억 못 해?”





처음으로, 널 만났는데 어떻게 기억을 안 해.





Y.

그의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뜨거운 분위기를 식혀주는 차가운 바다 아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달아오르기만 한다. 장관이었다. 푸른 바다 아래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 산호가 썩지 않고 바닥에 가라앉은 모습, 돌들이 쌓이고 그 사이로 해초들이 제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모습, 그 위에 우리가 떠 전지적인 시점으로 모든 걸 보고 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다 못해 멈춘 느낌. 그 시간을 둥둥 떠다니며 영원한 이야기를 속삭인다. 나지막하면서도 달달하게.



익숙하지 않은 지민의 모습. 다리가 아닌 꼬리, 팔 중간중간에 조금씩 박힌 비늘. 그래, 이게 그의 진짜 모습이었다. 박지민이 바다에 미련이 많았던 이유이자, 그리고 내가 바다에 미련을 끝까지 놓지 못한 이유. 신비로운 존재를 접한 뒤로 새로운 감각이 잊히지 않아 바다를 잊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챈다.





“걱정 안 했어?”
“…….”
“너가 이런 모습인 거 괜찮아. 그런데 이걸 보여주는 건 걱정 했을텐데.”
“안 했어.”
“…….”
“난 네가 동화를 읽는 순간부터 알았지.”





그 동화, 인어공주였는데.





Z.

“학교는?”
“다녀야지.”
“여기서 살면 되는데 굳이?”
“나올 거야.”
“왜?”
“너가 있잖아.”
“내가 뭐라고 너가 육지로 나와.”



“온통 밝은 세상에 너 혼자 어두워.”
“…….”



“그게 나에겐 빛이야.”
“…….”




순수함으로 가득 찬 그의 눈은,



완벽하게 푸른색이었다. 순수함으로 잔뜩 무장한 채로 빠진 나를 그대로 밟아 나의 옆을 지킨 그가 대단하면서도 또 사랑스러웠다. 그 푸른 눈동자에 내가 선명하게 담긴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영광이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어둠이자, 그에게 있어 유일한 빛이 나라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확인한 그 순간이 푸르렀다.



완벽하게.


























+) 팬덤에서 축하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사실 꽤나 급하게 챙겼는데 축하한다고 보내주신 분들ㅠㅠ
정말 따뜻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인어 연성에 큰 도움을 준 사진_jpg)


어느덧 700일이 왔네요. 사실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던 700일이 이렇게 성큼 다가오니까 찡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합니다. 사실 작가는 700일이지만 실제로 글을 제대로 쓴 날은 200일 되가나? 하지만 전 카운트를 언제나 딴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700일루... 챙겼습니다

바다에 비해 세상은 너무나도 밝기 때문에 인어는 눈을 못 뜬다구 설정을 잡아봤어요. 여주의 순수함을 믿고 곧이곧대로 옆에 머문 지민이와 지민이의 생각대로 순수함을 잃었다고 생각하나 언저리에 순수함을 잃지 않고 환상을 기억하는 여주의 이야기였습니다. 좀 더 각잡고 예쁘게 쓰고싶었는데 기간이 기간인지라ㅠㅠ 시간이 된다면 수정해보고 싶어요!

축하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당
700일이라는 긴 기간동안
그리고 그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백기동안
절 잊지 않고 기다려주신 정음이들
새롭게 찾아와 좋아해주는 정음이들
처음이지만 절 차차 알아갈 정음이들
모두 고맙고 사랑합니다.
앞날이 창창하길 바랍니다(하트)

다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셨다면 짤막한 댓글도 좋으니 흔적 한 번만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있잖아, 지민아. 넌 날 어떻게 믿었어?"
"넌 날 어떻게 믿어?"
"너니까 믿는 거지. 사실 좀 실감이 안 나긴 하지만 그래도 너잖아."
"나도 똑같아."
"……."
"나도 너라서 믿은 거야."
"……."
"물에 빠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네 옆에 있으면서,"
"……."
"단 한 번도 내 옆을 떠나지 않은 것이 그 이유고,"
"……."
"그 누구보다 순수했던 그 시절을 남겨둔 것이 두 번째 이유고,"
"……."
"내 눈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솔직했던 것이 세 번째 이유고,"
"……."
"너가 네 번째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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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팅커벨*♧  95일 전  
 머무너므 예쁜 글이고 몽글몽글한 글이에요ㅜㅠ

 답글 0
  °•°•께껍질•°•°  96일 전  
 글이 너무예쁘네요 ! 작가님 700일 축하드려요 !!

 °•°•께껍질•°•°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가㉡ㅏ다  96일 전  
 칠백일 축하드려요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답글 0
  단멸  96일 전  
 ㅠ ㅠ ㅠ 묘사... 가 넘 앱버요 한글님... ㅠ ㅠ ㅠ 억.. 진짜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그런 예쁜 글이네요 ㅠㅜㅠ ♡♡♡ 700일 축하드려요 ㅠ ㅠ ♡♡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ㅠ ㅠ!! ♡♡♡♡

 단멸님께 댓글 로또 9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sunflower8  96일 전  
 글 너무 이뻐요ㅜㅜ 축하드립니다

 답글 0
  바다  96일 전  
 700일 축하드려여!

 답글 0
  _예림:  96일 전  
 700일 축하드려용!,!

 _예림:님께 댓글 로또 2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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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하루  96일 전  
 700일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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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백✨  96일 전  
 공백✨님께서 작가님에게 1054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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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백✨  96일 전  
 한글이 700일 축하해 ㅠㅜㅠㅜ 너무 사랑해 내 친구 ㅜㅜㅠ

 공백✨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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