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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공책. - W.향월
공책. - W.향월
공책.
 
 
 
 
©2019. 향월 All rights reserved.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한 상자. 겉으로만 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낡고 허름한 상자였다. 그 상자의 주인은 바로 나. 오랜만에 추억을 정리하다 이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에 채워져 있는 자물쇠를 딸깍-하고 열자 상자 안에는 공책 한 권만 덩그러니 들어 있었다. 오랜만에 꺼내는 거라 손으로 먼지를 턴 뒤 조심스럽게 공책을 펼쳤다.

 

 

 

"그 때 봤던 거랑 똑같네.."

 

 

 

마지막으로 이 공책을 보았을 때와 변함이 없었다. 단지 글씨가 흐려진 것만 빼면. 추억을 떠올리며 한 페이지를 넘기려는 순간, 종이 아래에 써진 무언가로 눈길이 갔다. 그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누군가가 갈겨 적은 듯한 글씨. 생각났다.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그 아이의 싸인이었다. 다른 페이지를 확인해봐도 어김없이 싸인이 써져 있었다. 이 싸인이 그 아이가 내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문득, 그 때가 떠오른다.

 

 

 

 

*

 

 

때는 봄의 어느 날이었다. 나와 그 애는 친구였기에 우린 함께 놀고 있었다. 나의 집과 그 애의 집을 번갈아 가며 놀았었는데 우리 집에서 놀 차례가 되었다. 인형으로 가득찬 내 방에서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자기 그 애가 침대에서 일어나 나의 책상으로 향했다. 뭘 하는 건가 싶어서 그저 지켜보니 내 책상에 올려져 있는 공책 한 권을 가지고 다시 침대에 앉는 것이었다.

 

 

 

"공책은 왜?"

 

 

 

왜 공책을 가져온 걸까. 그 때는 마냥 궁금하기만 했다.

 

 


 

 

 

"여기에, 우리 추억 담으려고."

 

 

"추억? 어떻게?"

 

 

"오늘 있었던 일. 또는 서로한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쓰는 거야."

 

 

그 애의 말을 들으니 일리가 갔다. 이대로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추억이었기에.

 

 

"좋아."

 

 

 

그 날 이후로 우리는 그 공책에 하나 둘씩 우리 둘만의 추억을 채워갔다. 서로 공책을 주고받으면서. 가끔 그걸 보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또 위로도 받았다. 평소처럼 공책을 주고받던 날, 왠일인지 그 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물어봤다가 그 애가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냐는 걱정 때문에.

 

 

그 애가 짓고 있던 표정. 쓸쓸하면서도 아련했다. 마치 다시는 못 만날 것처럼.

 

 

 

"기분..괜찮아?"

 

 

 


 

 

 

"응. 괜찮아."
 
 
 
좀 피곤해서 그런가봐. 머리를 긁적이며 그 애가 말했다. 웃을 때면 나타나는 보조개를 띄며.
 
그 애가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 같아 안심했다.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듯 그 애는 내 머리를 헝클었다. 
 
순간 두근두근- 하고 심장이 뛰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애써 감춰보지만 자꾸만 심장은 뛰었다.


 

이 감정은 뭘까.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감정이었다. 설렘과 두근거림, 

 

 

 

내가..그 애를 좋아하나 보다.

 

 

 

 

 

그 애에 대한 내 마음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건 이미 그 애가 떠나버린 뒤였다. 내가 갈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그 애가..이사를 갔다고요? 언제요?"

 

 

"한 이틀 정도 지났을 거야. 가장 친했던 친구한테 간다고 말도 안 했나 보네."

 

 

이틀. 그 애가 나에게 가족 여행을 간다고 말한 날이었다.

 

 

이틀 전, 나는 그 애를 만났다. 하루 못 봤을 뿐인데 그 애가 그리웠다. 아. 공책 깜빡할 뻔했네.

 

이번에는 그 애가 공책을 적을 순서라 공책을 건넸다. 그 애는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더니 뭔가 적은 뒤 다시 공책을 덮어 내게 돌려주었다.

 

 

"오늘은..공책 안 가지고 있어?"

 

 

"이번엔 너가 가지고 있어줘. 나 이틀 동안 여행 가거든."

 

 

이틀 동안 여행을 가게 되어 그동안 내가 공책을 가지고 있으라는 얘기 같았다. 왜 하필이면 지금인지. 여행을 가지 않기를 바라는 건 단지 나의 소망에 불과했다.

 

 

"여행..꼭 가야 돼?"

 

 


 

 

 

"..어."



"그러면, 이거 가지고 가."



내가 그 애에게 건넨 것은 목걸이였다. 내가 차고 있던 것과 같은. 여행을 가도 이 목걸이를 보면서 나를 기억해줬으면 했다. 이러면 작별 선물 같으려나.



"이거 가지고 조심히 갔다 와."









"고마워. 잘 간직할게."

 

 

목걸이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가던 그 애를 만났던 날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정말 마지막이었다.

 

 

이사를 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애가 살았던 집을 찾았다. 이미 다 비워진 상태이겠지만, 가보고 싶었다. 텅 비어버린 공간. 하얀색으로만 남아버린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 애 방이..여기였었지."

 

 

거실 바로 뒤의 벽. 그 벽 뒤가 바로 그 애의 방이었다. 줄곧 이 방에서 함께했다. 그만큼 추억이 깊은 곳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그 애의 방이었던 곳에 들어섰다. 다 없어졌어도 그 애의 향기가 묻어있는 벽지만은 아직 존재했다. 벽지를 매만지던 중 이상한 느낌이 들어 벽지를 바라보았다. 벽지 한 가운데에, 특이하게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일부러 뚫어놓는 듯한 구멍이었다. 호기심에 구멍 안으로 손을 넣어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 안에 무언가가 잡혔고 그대로 구멍에서 손을 빼냈다.

 

 

"이건,"

 

 

손에 잡힌 무언가는, 내가 그 애에게 선물했던 목걸이였다. 이걸 왜 여기에 숨겨둔 걸까. 가져가지 않고 남겨둔 걸까. 이미 그 애는 떠나버렸는데, 나만 혼자 이 목걸이를 바라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 날, 펑펑 울며 손에는 그 목걸이를 꽉 쥔 채 집으로 돌아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

 

 

 

"시간이..많이 흘렀네."

 

 

낡고 글씨가 번져버린 공책. 녹이 슬어버린 두 목걸이.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다시 공책을 덮으려다 알게 된 사실 하나. 그 애가 남긴 싸인이 전부 다르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종이와 펜을 꺼냈다. 그 애의 싸인이 남겨진 페이지부터 시작해 하나씩 종이에 옮겨 적었다. 마침내 그 애의 싸인이 남겨져 있는 마지막 장. 그 페이지까지 종이에 옮겨 적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던 싸인까지 합쳐서 읽어보았다. 첫 부분부터 읽자마자 울컥한 게 올라왔다.

 

 

"널 두고 가서 미안해. 여행 간다고 떠나 버려서 미안해.."

 

 

"이 말은 꼭 이렇게라도 너에게 전하고 싶었어.."

 

 

"..은월아. 좋아해. 널 많이 좋아해..내가."

 

 

끝내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도 널 좋아했는데..널 많이 좋아했는데.

 

 

"나도 좋아해..아직도 널 많이 좋아해.."

 

 

그 애는 내가 자신을 좋아했다는 걸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자신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조차.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애의 얼굴과 이름. 내게 했던 모든 말들을. 어쩌면 그 목걸이가 그 애가 내게 남긴 마지막 흔적일지도 모른다. 

 

 

난 여전히 그 애를 좋아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내가 그 애를 너무 깊게 사랑했기 때문이겠지. 아주 깊이.

 

 

"잘 지내..지민아."

 

 

탁-하고 공책을 덮어 상자 안에 다시 넣었다. 시간을 이기지 못한 나의 목걸이도 함께.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평생 차고 있을 것만 같았던 목걸이가 힘없이 상자 속으로 떨어졌다. 언젠가 그립고 보고 싶겠지만, 이젠 잠가야 할 기억과 추억이었기에. 자물쇠를 잠궜다. 철컥-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 그 애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 애는 착했고 다정했다.

 

그 애는 공책과 목걸이를 좋아했다. 그 애는 나를 좋아했다.

 

많이 늦어버렸지만, 다신 돌이킬 수 없는 나와 그의 화양연화지만,

 

나의 화양연화를 함께한 그 애에게 닿기를 바래본다.

 

 

 


 



너무나도 공책을 좋아했던, 내가 정말 좋아했던 어딘가에 살고 있을 기억 속 한 소년에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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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밤하늘☪(Nightsky)  20일 전  
 문이 완전 금손이였구나ㅜㅜㅜ 글 너무 이쁘다

 밤하늘☪(Nightsky)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나ᅠᅠ늉ᅠᅠ  64일 전  
 나ᅠᅠ늉ᅠᅠ님께서 작가님에게 219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나ᅠᅠ늉ᅠᅠ  64일 전  
 문이 이런 글 진짜 너무 좋은거 같아 표현 하나하나가 예뻐 너무 사랑해 문이 ❤

 나ᅠᅠ늉ᅠᅠ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조아써  66일 전  
 헐ㄹ 문이 글을 왜 이렇게 잘 쓰는 거야...

 조아써님께 댓글 로또 1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강_지인  66일 전  
 와 진짜 분위기 너무 좋고 아 진짜 미쳤어요 . 둘이 다시 이어질줄 알았는데 그리 되니 진짜 너무 더 애틋하고 가습아프고 사랑해요 진짜 ㅜㅜ

 강_지인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새콤♡  66일 전  
 잘 보고 갑니다!

 새콤♡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잡덕지연  67일 전  
 대박입니다

 답글 1
  도레  67일 전  
 도레님께서 작가님에게 2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2
  종지부.  67일 전  
 종지부.님께서 작가님에게 1004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2
  강하루  67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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