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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무명손님: _無明 - W.공아람
무명손님: _無明 - W.공아람









무명손님: _無明








그는 사실적 묘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한 눈에 꼭 담은 그 모습 그대로를 남의 눈에 토시 하나 엇나가지 않고 끼워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난한 무명 화가였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손님 한 명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 손님은 그림 실력은 커녕, 정녕 화가 자체가 맞는지 길거리에 조용히 나앉아 멍 때리고 있던 그에게 그저 ` 제 모습을 그려주세요. 세상에서 최고로 예쁘게요. ` 하고 부탁한 것이 전부였다.






-저는 사실적인 묘사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예쁘도록 부각은 시켜 드리겠으나, 과장은 하지 않겠습니다. 괜, 찮으십니까?






연필과 종이가 맞부딪치는 엷은 소리가 나기도 전에 낮은 중저음이, 한 갈래로 묶은 긴 머리를 스치는 쌀쌀한 바람과는 반대 방향으로 역류해 묵직하게 흘러 들어온 것이 의외인듯 먼 풍경을 바라보던 눈을 천천히 돌려 그의 것을 주시하는 손님이다. 어정쩡하게 잠시 텀을 두더니, 말없이 그의 눈을 재어 보며 고개를 끄덕하는 그는 영 힘이 없어 보였다. 어디가 아픈 환자인지 맑은 눈망울이 정확한 때 없이 오락가락하는 그 모습은 왠지 모르게 선한 인상을 싹수 없는 기묘한 인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는 손님의 의향에 그저 눈매만 잘 옮기면 되는 그는, 기묘한 손님으로부터 신경 쓸 일이 줄었는지 다시금 어깨를 바로 폈다. 연필 한 자루 쥐어잡고 빠르게 그려나간 부드러운 인영은 싹수 없는 손님과 뒤이어 서있는 그의 영혼까지,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습니까.


` 형편 없는 정도는 아니네요. 예쁘게 그려 달랬더니, 그저 지금의 못난 제 모습이 담겨 있어요. 이 그림의 속뜻은, 지금 저의 이 모습도 예쁜 모습이라는 걸까요? `






덩어리감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무엇인가가 빠르게 몸을 훅- 치고 들어오는 낯선 느낌에 손에서 연필을 아직 놓지 않은 그의 미간이 티 날듯 말듯 묘하게 찌푸려진다. 상대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나긋하면서도 낮고 편한 음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발음도 또박또박 정확히 낼 줄 알았다. 다만, 어린 아이 못지 않은 순수하면서도 감당 할 수 없는 구석이 차고 넘치게 보이는 그녀. 제 자신은 사실 묘사만 하겠다는 말 만큼은 분명히 전달한 기억 속에서도, 아까의 말을 못 들은 것인지, 못 들은 척 하는 것인지 터무니 없는 질문을 묻고 난 뒤 손님의 눈꼬리가 간드러지게 휘어졌다.







` 깊은 뜻이 맞았군요. 마음이 참 예뻐요, 그 쪽. 정말 고마워요. 다음에 한 번 더 뵐 수 있으려나. 제게 번호를 주셔도 될까요? `






얄팍한 문장 하나 하나를 굳이 띄어 말하며, 그 사이 반점을 많이도 채워 넣는 손님이었다. 눈꼬리, 걸음거리, 말 표현, 섬세한 것까지 깊은 기억 한 켠에 담으며 마지막으로 그의 눈망울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저 겉핥기로 지나갔던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마음과 기억 한 켠에 담아 둘 만한 이끌림의 이유가, 그녀의 눈망울에 있는 느낌으로. 그로서 손님이 느는 것은 별로 반기지 못할 이유가 없기에 반신반의 하면서도 번호를 찍으며 주의 사항을 덧붙이기를, 자신은 그저 떠돌이 길거리 화가라고. 그녀가 원할 때 근처에 없을 수도 있다, 조심스레 전했다. 한 마디 더, 차라리 나에게 줄 이런 풋돈 아끼고 모아 재대로 된 화가에게 가서 예쁜 모습 전해 받으라고. 얘기를 하면서도 마지막에, 지금도 예쁘단 말은, 잊지 않았다.






` 빨리 벚꽃이 피었으면 좋겠어요. 그때나 올 수 있으려나. `






손님의 마지막 의미심장한 말마디가 계속 귀에 엇들려 온다. 비루한 인생에 한 번 찾아온 재미랄까. 그 후 오랫동안 시간이 흐르고, 자연스레 잊고 지내온 탓에 이젠 그 손님의 인상착의가 가물가물하다. 기억하겠다며 주책을 놓고선. 연해 보이는 분홍색 바지에, 스웨터를 겹쳐 입었던가, 부드러운 남방을 두 단추 꿰어 입었던가. 꽤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해 온 자신에게 이런 사소한 일로 충격을 받은 모습은 멀찍한 앞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습관으로 나타났다. 그 손님이 오고 간 다음 날, 그림 하날 더 만들어 놓지 않은 것이 날이 갈수록 후회가 될 줄이야, 그도 그저 지나가는 인연, 손님 하나에 미련 참 많다 싶었다. 미련이 밝음으로 또다시 어두운 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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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돌아 흐드러진 벚꽃이 만개한 계절을 달력은 그려낸다. 환절기라 그런지 독한 감기에 걸려 며칠 동안 일을 쉬고 있음에 이리 저리 쑤시는 몸은 오늘도 그를 일에서 벗어나게 할 좋은 핑계였지만, 무슨 바람인지 그는 오랜만에 쓴 베레모에 긴 청색 데님 코트로 단장까지 마치고 집 밖의 부서진 돌계단에 발을 디뎠다. 온통 분홍 빛으로 물든 시내 공원에 들자, 그의 양 쪽 뺨 위의 홍조가 분위기에 취해 더욱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져간다. 길 가에 나란히 심어진 벚꽃 중 중앙 분수를 기점으로 남쪽 방향으로 대략 서른 번째 벚꽃의 아래에 자리를 잡은 그의 모습은 전에 비해 비교적 자연스러워졌음을 확인시켰다. 떠돌이 화가 생활의 요령까지 얻었는지, 자리 잡은 그 곳은 사람들이 많이 몰릴 만한 눈에 띄는 곳이었다.





때문에, 평소에는 구경도 못 할 손님을 벌써 다섯 째 봬는 중인 무명 화가다. 봄 계절에 맞게 싱그럽다면 싱그러울 모습을 하곤 환히 웃어주는 그의 본새에 다들 빠져드는 것은 흡사 마력에 가까웠다. 주로 파릇한 커플들이 그의 앞에 진을 치고 있음에 그들에겐 예쁜 보조개를 내세우곤 뒤에서는 잠깐씩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는 그에게, 저희 둘은 실루엣으로 그려주시고 저 뒤에 벚꽃은 옅은 색으로 흩날리게 해주세요, 라던지, 벚꽃처럼 싱그러운 분위기 부탁할게요, 등의 말이 날아왔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실력 하나 죽지 않은 것이, 그의 그림 하나만으로 보여졌다. 마치 연필 하나로 세상 그대로를 종이 하나에 옮겨 놓는 능력은 신이 각별히 곱게 빚어 주셨나 싶을 만큼이다. 그림을 받아간 모두가 무시 아닌 극찬을 하고, 평소 받는 돈의 곱절을 준 사람도 더러 있었다. 속으로 꿰뚫기에는 나중에 자신이 떠돌이 돌팔이에 그 돈을 쏟아 부은 것에 대해 분명 후회 할 만한 미적지근한 사람들에 불과했다.




허나 과연 이 행운 속, 그가 기다리는 것이 그저 손님이나, 바닥에 떨어진 돈을 발견하는 일, 평소와 같은 그런 하루 연명의 방법이었을까. 손님이 뜸해진 틈을 타 묘하게 엇나간 듯한 시선이 비어있는 캔버스에서부터 비틀려져 있다. 후-, 그의 텅 빈 한숨 소리는 왁자지껄 서로의 말만 해대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부딪치고, 부서져 사라져 갔지만 그것이 무색할 정도로 진심을 담았기에. 잠시 만개한 벚꽃을 보며 상상에 젖은 그는 시선을 부드러이 옮겨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더 예쁘게 그려줄 것을 그랬다, 후회가 잇새로 흘러나온다. 이런 곳에서 이런 직업 가진 자에겐 좀 의외지만 어디에서도 말로 진 적 없는 이른 바 머리 좀 되는 사람 중 한 명인 그는, 필터링 없이 내뱉은 자신의 말과 행동의 사이를 향유하며 다시금 그 손님을 담은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손도 깨끗이 하얗게 빈 캔버스 위에 그의 윤곽선을 그리고 있더라.






` May I buy this picture? `

(제가 이 그림을 사가도 될까요?)






갑작스레 들려오는 또렷한 소리. 나긋하면서도 낮고 또렷하고 편안한 음성. 분명 그 목소리는 사람의 관심을 끄는 군데가 조금도 없었지만, 그의 고개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정확히 그 쪽을 향해 돌려졌다. 흰 마스크, 쓰셨네. 눈매가 깊어요.







- Do you want buy this humble painting? Besides, this painting is not what you look like. I could paint your self-portrait.

(이 보잘 것 없는 그림 말입니까? 게다가 이 그림은 당신을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당신을 그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 That`s all right. I think I`m the one in that picture. `

(괜찮아요. 제 생각엔 그 그림 속 사람, 저인 것 같거든요.)







몇 마디가 두 사람의 휑한 사이를 오간다. 익숙함을 가진 말이 오간 그 길의 양 끝에 위태롭게 걸려 앉은 두 사람. 그의 초점은 서서히 당차게 말을 건 그녀의 눈매의 희미한 웃음으로 옮겨갔다. 천천히 마스크 속 얼굴의 윤곽선을 훑기 시작한 끝에, 그의 얼굴은 미묘하게나마 굳어졌다. 곳곳을 유람한 자신이 매년 벚꽃이 필때마다 이 곳으로 온 이유, 연필을 쥐면 어느새 캔버스에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놓여져 있는 이유, 자신의 무심함과 무지함에 한탄하며 매일 밤 그녀를 기억하려 애썼던 순간들이 모두 예외 없이 제 머리 위로 쏟아진다. 흔들리는 눈빛까지도 바로 잡아주는 인상의 차분하고 선한 손님. 싹수 없는 그 모습은 이제, 찾기 힘들었다. 그를 보는 자신에게도 어느새 웃음이 얼굴 전체에 번져 있음을, 자신의 마스크를 벗어 알려준 손님이다. 수수한 화장이 더 돋보이는 그녀의 뒤로는 이미 수만가지의 확신이 들어차 있다.






` 매년 이 예쁜 그림들을 그려준 거예요? 절 생각해서? `





목소리는 제 오랜 기억 속 잠재워 놓은 것이었고, 망상에 미쳐 남의 행동이나 말을 제 멋대로 해석해 결론을 내뱉는 습관은 공연히 걱정 될 정도로 고쳐진 것이 없었다. 예전의 그대로였다, 유난히 웃고 있는 입꼬리를 제외하고는. 그녀에게서 보이는 밝음을 제외하고는. 자신 또한 홀리듯 환히 웃자 그를 따라 더 정확하고 바른 웃음을 내비치는 그녀의 화사한 매력이 근방으로 은은히 퍼져간다. 몰랐던 그대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 틀렸어요. 생각나게 되어서, 그린 그림입니다. `


` 역시 제가 기대한 그 말투, 그 말들. `


` 이제야 저희 만났네요. 정식으로 통성명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떠돌이 무명 화가입니다. `


` 안녕하세요, 무명 손님입니다. `






먼 곳으로 떠난 이의 입가가 열릴 줄 모르던 숱한 밤들이 괜히 무색해지네요, 자신 자체를 밝음으로 생각하기에 주변은 너무 어둡기 때문이죠. 내 모습을 내가 보기에 나의 눈은 나의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이죠. 거울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 밤이 지나 다시 밝음이 찾아왔다. 그대와 내가 마주보고 서, 서로에게 의지 할 수 있는 지금을 낮이 아닌 밝음으로 부르겠다. 악수를 청하고자 내민 화가의 손보다 한참이 작은 손님의 손이 맞춰진다. 뼈만 있을 것 같던 손에 생각지 못한 힘이 실리자 그 역시도 환히 서로를 마주본 모양새를 벚꽃이 흩날리는 분위기에 맞게 옅은 수채화로 덧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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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글인데도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 감사드립니다 :)



2019. 05. 13
P.S.) 처음은 조금 서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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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pw175656  64일 전  
 와 글의 몰입도 가 장난아니네요ㅡㅠㅠㅠ

 pw175656님께 댓글 로또 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Min슈키  69일 전  
 대박이에요!!!♥♥

 답글 1
  8학년  69일 전  
 글 너무 예뻐요!♡

 답글 1
  롯리  69일 전  
 작당 축하드려요!! 글 너무 좋아요ㅠㅠㅠㅠ

 답글 1
  °•°•께껍질•°•°  69일 전  
 작당축하해오 ㅠㅠㅠ
 글너무 예뻐요 ㅠ

 °•°•께껍질•°•°님께 댓글 로또 20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쩡암이  70일 전  
 헉 글 넘 예뻐요...ㅠㅠ
 작당 축하드립니다!

 쩡암이님께 댓글 로또 2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치런  70일 전  
 작당 축하드려요

 치런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망개V  70일 전  
 글이 좋네요!

 망개V님께 댓글 로또 6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전루살이꾹  70일 전  
 작당 축하드립니다!
 글 예뻐요!

 전루살이꾹님께 댓글 로또 1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1
  임도현ᅠᅠᅠ  70일 전  
 임도현ᅠᅠᅠ님께서 작가님에게 10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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