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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빙의글 상국 - W.가비
상국 - W.가비


*몽유병, 살인 요소 주의*



1954. 1. 8.
낙인으로부터의 해방. 옆 집 살던 정 무슨 놈이 일을 벌였다. 장에 나가서 알게 되었다. 너무 걱정말라던 사내 두 입술이 겨울 낙엽처럼 비쩍 말라있던 것을 나는 말하지 않았다. 사내의 온 몸이 이미 겨울에 달았기에 직감적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동자로 저무는 그 노을은 다시 뜨지 않을 것임을. 이튿날, 뒷 외양간의 소가 울어댔다. 구유를 채우려 스쳐 지나가는 부엌에서 썩은 냄새 같은 게 났다. 노루이거나 사람이거나. 어느 쪽도 안전하지 않았다.




1954. 1. 11.
저간의 사정. 비로소 침묵과 한 몸이 되었다. 전령이 모두 핏빛이다. 정 무슨 놈의 이름을 알 지 못해 아쉽다. 그는 영영 떠나버렸건만. 나는 이제 그의 이름을 알 방법이 없다. 끝이다. 사내의 영혼이 육신을 뒤흔드는 것만 같다. 머리가 핑하고 도는 것이 겁이 나 순간 눈동자에 모든 하늘을 담았다. 살아있었다. 웃긴 일이다. 나는 누군가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까닭으로 파멸의 절벽에 발을 디디고 또한 누군가를 아주 모르기에 절망을 맛 본다. 몸소름이 끼친다. 곧 날이 저무는 데 아무도 없는 골목서 혼자다. 울고 싶다 아이가 되어서, 죽고싶다.




1954. 1. 14.
모든 사물과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이 주위 내가 만든 모조품들 투성이지만 주둥아리 붙여주고 싶다. 주인네 큰 아들은 노회하긴 하나 손 대면 빗껴나가는 일 없어 그 따깜질로 종종 술을 받아먹었다. 여우와 대화를 해 본 적이 있는가? 녀석은 고작 사람인 척 하는 여우다. 아닌 일에도 벌컥 성을 내며 나를 사갈시하지만 그만한 말동무 또한 없다. 비로소 바라던 흙이 되었을 때, 그가 미소 짓는 모습이 떠올랐다. 눈이 소복히 그 위를 덮을때면 녹아내린다. 나의 두 눈. 특히 그러한 밤. 사내가 보고싶다.




1954. 1. 22.
옆구리가 시큼해온다. 폭발할 화력을 감당할 만치 핑계 삼을 나이는 이미 몇차례를 깎았기에 호흡은 절명 직전의 불꽃이다. 두 발이 시렵고 두 입술은 붙었으며 두 손은 죽여달라 별안간 고함을 친다. 무엇이든 그때가 좋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때는 과거이며 방금의 필기 또한 과거가 되었다. 지금도 과거고 앞날은 과거다. 누군가 펄떡이는 허파를 출발선 앞에 데려다놓는다. 숨은 가빠지고 경주마처럼 폭주한다. 아 아, 날숨으로 끝내고 싶어라. 도달할 때 즈음하여 겨울이 빗발친다.




1954. 1. 23.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쓴다. 손이 아직 움직이는 것을 보니 아직 살아있다. 살았다.




1954. 1. 24.
아직 괜찮다. 어제보다 군데군데 부은 것 빼고는.




1954. 1. 25.
살아있다.




1954. 1.
아직.




195




1954. 1. 26.
사내가 웃더라 소슬에도 당신은 보라색으로 웃는다고.












반란군을 살해함으로서 최후를 맞이한 옆 집 청년 정호석. 일기의 배경은 사내라 일컫는 자와 동거하던 몽유병 화자의 이야기. 혼란스러워진 세상은 화자의 정신까지도 어지럽혀놓고 결국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나`는 반란군에게서 해방된 그 날, 사내를 죽입니다. 평소 몸이 좋지 않던 사내에게서 화자는 오늘을 꼬박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육체가 보내는 마지막 경고. `나`는 알아채지 못하고 그 밤을 넘깁니다. 다음날 울지 않던 소들이 배고픈 소리를 내기에 이릅니다. 아침마다 사내가 항상 여물을 챙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부엌에선 알 수 없는 핏빛 현장이 눈 앞에 펼쳐졌고 화자는 사내가 죽은 연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해합니다. 일기를 쓰면 쓸수록 자신이 절벽처럼 깎이고 있음을 느끼고 사내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결국 화자는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필기를 함으로써 목격하려다 최후를 맞이합니다. 마지막 구절은 이미 생을 다한 화자가 사내를 만나게 되는 장면. `나`가 사내의 생을 끊을 때 검의 손잡이 부분이 보라색의 천이었던 것을 알 리가 없습니다.



+이 엄청나게 난해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석이 너무 길어졌네요ㅠㅠ 항상 감사합니다!

상국 - 잃어버린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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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罗宾  99일 전  
 필력 대단하세요

 답글 0
  nayoung06  99일 전  
 글 너무 좋아요ㅜㅜㅜㅜ

 nayoung06님께 댓글 로또 5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틸다_  99일 전  
 틸다_님께서 작가님에게 1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공전선  100일 전  
 공전선님께서 작가님에게 115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강하루  100일 전  
 글 잘쓰시네요

 답글 0
  외반  100일 전  
 외반님께서 작가님에게 50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1
  외반  100일 전  
 외반님께서 작가님에게 3000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박로젠  100일 전  
 가비님... 제발 방빙 말고 진짜 작가 해주세요 책 내시면 완전 많이 살게요 ㅠㅠㅠㅠ

 박로젠님께 댓글 로또 8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리비에르  100일 전  
 사랑합니다 글 너무 좋아요

 리비에르님께 댓글 로또 17점이 지급되었습니다.

 답글 0
  리비에르  100일 전  
 리비에르님께서 작가님에게 334점의 포인트를 선물하였습니다.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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