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의 이야기가 끝이 아닙니다. 남은 이야기는 번외편에서 연재할 계획이니, 그점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살..려줘... 제발...
머리쪽으로 피가 쏠리며 온 핏줄이 곤두섰다. 얼굴에 나타나진 울긋불긋한 빨간 혈관들. 허리가 뒤로 확 꺾여있어 제대로 발버둥을 칠수도 없었다. 자칫하면 15층 높이에서 떨어져 내 몸이 바닥에 내리꽃힐테니.
눈이 점점 감겨오고, 저항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아,ㅅ,살려!,허윽,!"
말을 하려해봐도 목이 졸려 목소리조차 나지않았다.
여주의 목을 조르는 조직원. 그의 이름은 킬러 블랙이였다. 뷔 조직내에서 킬러로서 조직원들의 우두머리에 서있는 사자같은 존재였다. 그가 여주의 목을 점점 더 죄여왔다. 눈을 두어번 깜빡이는 여주를 보고서 블랙이 비소를 흘렸다. 블랙의 손을 어떻게든 목에서 떼어놓으려는 여주의 가냘픈 움직임이 우스울 뿐이였다.
이 과정은 악이 선을 집어삼키는 것에 불과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그 공포감이 어마어마했다.
마치 아무것도 잡을것없는 물속에서 숨도 쉬지못한채 살고싶어 몸부림치는 기분.
그 공포감이 또다른 생각을 만들어냈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뒤덮자 흐리멍텅해졌던 정신이 조금은 들깨워진다. 살고싶다는 생각. 김태형이 날 고문할때도 한번도 들지않았던 생각이 지금 일어나 나를 뒤흔든다. 코끝이 순간적으로 찡해지며 붉어진 눈가에서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죽기싫어..! 싫다고!
떨어질것을 각오하고서 간신히나 땅바닥에 지탱하던 발을 살짝 들어올렸다. 땅바닥에 딛고있던 것이 사라지니 몰려드는 공포감. 그것을 견뎌내며 발을 조금 들어올려 그의 허벅지를 조금씩 힘을 가해 차댔다.
블랙이 그런여주의 행동에 우스워 비소를 흘렸다.
이것봐라?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자신의 정장바지를 쳐다본 블랙이 여주의 운동화에 묻은 흙이 자신의 정장바지를 더럽히는 것을 보고서 미간을 확 찌푸렸다. 여주는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다는것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 발을 쳐올렸다. 이미 옥상아래로 깊이 내려간 여주의 목. 한층 열이 돋궈진 블랙이 센 힘으로 여주의 목을 한번에 내리찍었다.
우둑-!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순간적인 힘에 의해 마구잡이로 비틀린 뼈들. 옥상아래로 흔들리던 머리카락들, 버둥거리던 몸이 일순간 멈춰섰다. 블랙의 허벅지를 차올리던 발도 그대로 멈춰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동자하나 깜빡이지 못했다. 목이 경직된 그 순간, 말로는 형용화할수없는 아픔에 입을 옅게 벌린채로 속눈썹을 덜덜 떨었다.
아...
빨개진 눈가로 눈물이 새어나왔다.
"...하아..ㅈ,정..국..."
어느순간 목에 힘이 빠지며 감기는 눈.
살고싶다던 그 마음이 마구 짓뭉개졌다. 허리가 아무렇게나 뒤로 꺾여버린 여주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블랙이 앞으로 한걸음 성큼 다가가 옥상아래로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늘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어잡는다.
마지막까지 거슬리네. 짜증나게.
힘을 가해 옥상안쪽으로 그녀의 머리를 던져놓자, 그녀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늘어지며 머리가 아무렇게나 땅에 부딪힌다. 쿵소리를 내며 꽤나 큰 충격을 받아낸 여주의 머리. 머리카락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 그걸 빤히 바라보던 블랙이 추운입김을 내뿜으며 표정을 찡그렸다.
그녀의 가슴팍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블랙은 그것을 보고서 그녀가 아직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죽은게.... 아니야?
블랙의 입꼬리가 경직된채로 움찔거렸다. 사실 여주는 죽은게 아니라 목뼈가 살짝 뒤틀리며 건들여진 급소에 의해 잠시 기절한것이였다.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린 블랙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자신이 그녀를 죽이는 곳을 태형이 있는 병원으로 정한데에는 꽤나 큰 이유가 있었다.
이 병원의 원장을 죽여달라는 태형의 명령을 듣기 위함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녀를 죽이고 나서 바로 B2층에 자리한 시체안치실에 그녀를 넣어버리려 했던거다. 그럼, 신원도 확인이 되지않는 그녀를 전정국조차 찾을수없을테고, 그런 무연고자인 여주를 대학교 외과 학생들의 실습용으로 사용하게 만들어 완벽히 증거를 없애버리려고.
그런데 아직도 죽지않고 살아있다니.
바퀴벌레처럼 질긴 그녀의 목숨에 진저리가 나는 블랙이 미간을 삐딱하게 찌푸리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되는건가. 뜨거워진 머리를 한손으로 짚고서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를 다시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주 잔인했다.
살아있는 그녀를 산채로 시체안치실에 넣는것.
얼려죽이는 방법이였다. 시체가 썩지않게하기 위해 얼음창고처럼 추운 시체안치실을 이용하는 것. 그것뿐이였다. 허나, 블랙이 고려하지 못한것. 아니 고려하지 않은것.
만약 여주가 깨어났을때 자신이 시체안치실에 갇혔다는걸 알게된다면 얼마나 무서울지.
얼마나 잔인할지.
정신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서서히 자신의 몸이 얼어가는걸 온몸으로 느낄 그녀이건만.
그녀를 어떻게 죽음의 무덤으로 이끌지까지만 생각하고 있던거다. 애초에 그녀의 감정따위를 하찮게여겼기에 널브러진 그녀를 바라만 보고있겠지. 잠시동안 고민하던 블랙이 자신의 정장바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어딘가로 여유롭게 전화를 거는 꼴이 매서로웠다.
-옥상으로 배드 가져와.
자신의 용건만 말한채 전화를 툭하고 끊어버렸다.
"독한 년."
그렇게 목을 조르고 비틀었건만, 죽지않고 살아있다니.
블랙이 자신의 목을 빙글 돌렸다. 뻐근해진 목에서 관절소리가 나며 목이 뱅글 돌려진다. 그리고서 옥상 구석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몇발자국 걸어가자 블랙의 구두앞에 자리한 칼. 여주를 찌르려던 그 칼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허리를 숙여 칼을 주워올린다. 칼집에 칼을 넣고서 자신의 정장자켓 안주머니에 가볍게 넣어 정리했다.
드르르륵,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병원복도에 가득 찼다. 배드의 팔걸이를 잡고서 빠른속도로 달리는 블랙. 어느새 의사가운을 차려입은채 마스크까지 완벽히 무장해, 누가봐도 의사인것처럼 보여왔다. 빠르게 굴러가는 바퀴만큼 고조되는 블랙의 긴장감.
1층에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B2층으로 내려온 블랙이 눈동자를 매섭게 굴려가며 시체안치실을 찾고있었다. 마침내 자신의 눈앞에 보여오는 시체안치실이라는 문구에 블랙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배드의 바퀴를 끌었다.
덜커덕-!
안으로 들어가니 깜깜한 내부에 블랙이 흰색마스크를 더 끌어올려 쓰고서는 열려있는 9번 안치실의 문을 더 확 열어제꼈다. 깊은 어둠만이 자리잡고있는 그곳을 흘끗 보고서 여주를 집어넣기위해 숨을 색색 내쉬는 여주의 양다리와 목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그대로 들어올렸다.
먹은것도 없는지, 평소에 고생을 많이해서인지, 별 힘없이 들어올려지는 그녀의 몸뚱아리에 블랙은 잠시 자신의 동작을 멈추고서 여주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았다.
"안됐네."
왜 하필 김태형한테 휘말려가지고는.
허나, 눈을 감고 새근거리는 여주에게는 그 말이 들릴리없었다. 블랙은 찝찝한 기운을 떨치고자 그녀에게서 눈을 떼고는 안치실의 배드를 쭉 빼 그녀의 몸을 눕혔다.
거침없이 문을 닫으려던 블랙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눈길을 거두고서 차가운 안치실 안으로 그녀가 실린 배드를 힘껏 밀어넣었다. 딸깍이는 소리와 함께 손잡이가 돌아가며 안치실의 문이 닫혔다. 블랙이 한참동안 그곳에 시선을 집중하다, 이내 차가운 시선을 돌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잘가라, 꼬마.
-연결이 되지않아,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탁-!
표정이 굳어버린 정국이 테이블에 핸드폰을 소리나게 내려놓고서 와인잔을 들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그녀는 연락도 받지않고 레스토랑에 오지도 않는다. 자신의 바지 주머니속의 반지를 만지작대던 정국이 불안감에 와인을 급히 들이켰다.
"후우."
와인이 목을 타고 흘러들어가자 이내 뱃속이 찌르르해지는것이 느껴진다. 곧 있으면 레스토랑이 끝날 시각. 도대체 왜 그녀는 오지 않는걸까.
잘 갖춰입은 정장이 초라해보이긴 또 처음이었다.
.
.
"...으.."
좁은 안치실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던 여주가 깨어났다. 눈을 비비적대려 손을 올리자, 천장에 닿는 팔꿈치에 몸을 움찔거렸다. 이내 낯선장소에 놀라며 눈을 크게 뜬 여주.
여기... 어디야?
고개를 들수도, 일어날수도 없는 이곳에서 당황한 여주가 팔을 휘적이며 버둥댔다. 분명 관 같은데, 사방에서 차가운 바람이 흘러나오는 이곳은 뭔지. 자신이 왜 이런곳에 갇혀있는지. 아까 블랙에게 잡혔던 목이 뻐근한건 신경조차 쓰이지않았다. 그저 공포만이 자신을 감쌀 뿐이었다.
눈물이 새어나오려는걸 간신히 참고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서 아까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자 머리속에 비추어지는 그 조직원, 그리고 병원.
잠시만... 병원?
병원안에 이런곳이 있는지 머리속을 샅샅히 뒤져 정보를 찾아본다. 아무리 기억을 해보려하지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통에 아무것도 떠오르지않아 답답하고 불안할 뿐이었다. 결국 불안감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새어나오는 울음. 그것이 잇새로 터져나온다.
애써 단순히 생각해보려 단어를 조합해보았다.
병원. 관. 냉동.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한가지의 단어.
시체안치실.
"하아,으흑!!"
이곳이 어딘지를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증폭되던 불안감과 공포는 이내 이곳이 시체안치실이라는 걸 알아챈 후에 폭발하고야 말았다. 강하게 터져나온 울음. 제발 나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이 먹힐리 없었다.
쾅쾅-!!
"흐으!, 여기 사람 있어요!!"
좁은 공간안에 내 목소리가 가득 울려퍼진다. 눈에 보이는 천장을 두손으로 쾅쾅 두들기며 악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이렇게 하면, 지나가는 누군가가 듣지않을까 싶어서. 큰 목소리와 더불어 서러움이 터져나와 눈매를 타고 흐른다.
쾅-!!!
"으, 끄흐, 살려,주세요!! 사람 있어요!!!"
발로도 천장을 차보고 두들겨봤다. 강한 힘으로 애써 두들기고 천장을 긁어댔다.
목이 터져라 힘껏 살려달라 외쳐본다. 허나 아무도 들리지 않는건지, 내 목소리는 내 귓가로 다시 되돌아오고 만다. 10분여 동안 계속 두드리고 차대니 온몸에 힘이 빠져버려 눈물밖에 남지않는다.
손톱을 세워 천장을 마구 긁어댔다. 듣기 싫은 소리가 좁은공간 가득 울려퍼진다.
끼익, 끼이익-!
"흐,끅, 살,려주세요!!...으흑, 제발요..."
할수있는 힘껏 몸을 바둥거리고, 할수있는 힘껏 천장을 두들겼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 머리카락을 적셨다. 점점 내려가는 몸의 온도. 차가워지는 발끝과 손끝.
온 힘을 다해 천장을 박박 긁어대자, 아무 힘 없는 손톱이 차게 얼어버려 벗겨지고야 만다.
까득,으드득-
벗겨진 손톱조차 신경쓰지 않고서 할수있는 최선을 다해 온몸을 비틀고 천장을 긁어댔다. 핏자국이 선명한 천장을 보고서 다시 한번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든 나갈수있다는 희망을 품고 싶건만, 나갈수없을것같다는 현실이 닥쳐와서.
"하,으흑! 정,국아!"
보고싶은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의 이름도 아닌,
오로지 내 사랑인 그의 이름을.
2시간 후.
여주의 턱이 달달 떨려왔다. 눈썹위에 하얗게 얼어붙은 결정이 지금의 온도를 알려주는듯 했다. 핏자국이 마구 엉겨붙은 손끝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아니, 온몸의 장기까지 모두 한기가 서렸다. 가쁜숨을 간신히 내뱉었다.
죽음의 끝에 다다르니 자꾸만 니 생각이 난다.
"정국아, 이거 봐봐. 진짜 예쁘지!"
"꽃도 예쁜데, 난 니가 더 예뻐."
"내가 진짜 예쁜 꽃반지 만들어 왔지롱-"
"아- 김여주, 진짜.. 귀여워 미치겠다."
"정국아! 우리 사진 찍자!"
"이리와."
"하나, 둘, ㅅ,"
쪽-
"아, 진짜.. 전정국!"
얼어붙은 눈가에서 다시끔 뜨거운 눈물이 새어나온다. 풀려버린 눈에서 눈물이 베어나오면서도 왜 입꼬리는 희미하게 올라간건지. 그와의 함께한 모든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였다. 그걸 회상하는 이 죽음의 끝이 행복하고도 씁쓸해서.
이젠 정말 더 이상 버틸수없었다.
난 꿈꾸던 로망도 이루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적어도 후에 우리가 결혼을 하면
그의 목에 넥타이를 메어주는것쯤은 해주고 싶었는데.
"하아..으..."
숨을 가파르게 내쉬자 입김이 훅 나온다. 이미 죽음의 코앞까지 다가온 지금. 뼛속까지 얼어붙은 나는 스스로 입을열었다. 가장 편하고 슬프게 잠들수있는 법.
차가운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이곳에서, 여주의 눈매를 타고 뜨거운 눈물 한방울이 떨어졌다. 그대로 여주의 숨이 멈췄다. 뼛속까지 얼어붙어버린 여주의 온몸에서 더 이상의 온기라고는 찾아볼수없이 얼음이 베어있었다. 쿵쾅대던 심장이 더 이상의 심장박동을 하지않았다. 그녀는 악의 희생자였다. 높은 계급이 있는것도 아닌, 특별한 능력을 가진것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걸 꿈꾼 한 소녀였을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그리워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사랑했다.
다음생에서는 꼭 널 만나 행복할수있길.
모든것이 담겼을 그 눈물안에
"정국아!"
간절하게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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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가 죽은뒤 10분후, 석진이 방금 죽은 환자의 시체를 옮겨놓으려 배드하나를 끌고서 시체안치실로 들어왔다. 캄캄한 어둠사이에서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켠 석진이 무심코 시선을 옮기다, 의아함에 살짝 눈을 찌푸린다.
3시간 전쯤에 다른환자의 시체를 넣어놓으려 열어놓고갔던 9번 안치실이 닫혀있었으니.
불길한 기운이 석진의 머리를 감싼다. 촉이 그렇게 가리키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천천히 9번이라고 쓰여진 안치실로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커지는 불안감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9번안치실의 손잡이를 돌렸다.
끼이익-
기이한 소리와 함께 열리는 안치실의 문.
석진의 예상대로 그곳에는 다른 시체가 들어있었다. 배드를 빼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사람의 발이 보여왔기 때문에 알수있었다. 허나, 이상하리만큼 정돈되어있지 않는 발을 보고서 다시 한번 기괴한 느낌을 받은 석진이 배드의 끝부분을 잡고 강한힘으로 한순간에 밖으로 쭉 빼내었다.
몸을 아등바등 거린듯한 여자의 시체가 옆쪽으로 돌아누워있었다. 하얀색 배드, 하얀색 피부와 대비되는 빨강색이 시야에 강렬하게 들어온다. 석진은 놀란눈으로 그녀의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천천히 내렸다. 이럴수가. 그는 경악할수밖에 없었다. 손톱은 완전히 벗겨진채로 다 닳아 피 범벅이 되어있는 여자의 손을 보고서는 석진은 곧장 그녀의 몸을 쥐어잡았다.
젠장! 이 여자, 분명 몇분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어!
머리카락이 걷혀지자 보이는,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얼굴.
"!!!!!"
저번에 총상으로 크게 다쳐왔던 그 여자였다.
석진은 자신의 의사가운 윗주머니에서 급히 라이트 볼펜을 꺼내어 빛을 비추며 그녀의 동공을 살폈다. 허나, 이미 돌아가버린 그녀의 동공에는 생기란 없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의 몸을 보고서 석진은 왠지 모를 울컥거림을 느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왔더라면 살수있었을까.
이 여자가 왜 여기있는건지, 왜 산 채로 이곳에 갇혀 이유모를 죽음을 당한건지.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답해줄 이가 없었다. 당사자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가 되었고 그 시체 앞에 서있는 석진은 죄책감이 들 뿐이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가둬둔것이 틀림없었다.
9번 안치실앞에 시체의 이름도 써놓지 않았으니.
어느샌가 빨갛게 물든 석진의 눈가. 석진은 애써 미안함을 억누르며 주머니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몇번의 번호를 누르던 석진이 이내 핸드폰을 귓가로 가져다댔다.